규제 몽둥이 휘두르다 부동산發 부메랑 맞은 중국
  • 모종혁 중국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12.26 10:00
  • 호수 16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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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헝다 이어 부동산 업체 줄줄이 디폴트 빠져
정부는 뒤늦게 “사회 안정 유지” 강조

12월20일 밤 중국 부동산 업체인 ‘자자오예’가 홈페이지에 긴급 공지를 발표했다. “12월7일 4억 달러 규모의 채권 만기가 도래했지만 원금과 1293만 달러의 이자를 상환하지 못했다”면서 “11월11일과 12일에도 2건의 달러 채권 이자 2988만 달러, 5850만 달러를 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12월20일 기준으로 자사의 총 달러 채권 규모가 117억8000만 달러”라면서 “3건의 채무 불이행(디폴트)이 전체 달러 채권 연쇄 디폴트로 이어질 수 있지만 아직 다른 달러 채권 보유인의 조기 상환 요구는 없었다”고 밝혔다.

이는 자자오예가 현재 디폴트 상태에 빠졌다는 솔직한 고백이었다. 자자오예는 중국 부동산 개발업체 중 매출 순위가 25위로, 규모가 크지는 않다. 하지만 달러 채권은 약 14조400억원에 달해 헝다(恒大)그룹에 뒤이어 두 번째로 많다. 무엇보다 12월 들어 중국 부동산 개발업체가 연쇄 디폴트를 선언하는 상황에서 시장에 큰 충격을 주었다. 실제로 6일에는 ‘양광100’이 “달러 채권 1억7000만 달러와 이자 890만 달러의 상환이 불가능하다”며 디폴트를 선언했다. 9일에는 국제 신용평가사인 피치가 신용등급을 강등시키면서 헝다가 공식적인 디폴트에 들어갔다.

중국 상하이에 위치한 헝다그룹 사옥 앞으로 중국의 오성홍기가 보인다.ⓒEPA 연합

줄 잇는 부동산 개발업체 디폴트 행렬

그러나 디폴트 행렬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사실 12월에는 헝다그룹과 그 계열사, 자자오예, 양광100의 달러 채권 만기가 집중적으로 몰려 있다. 세 기업은 모두 디폴트에 빠진 상태다. 문제는 다른 중국 부동산 개발업체들의 채권 원금과 이자 상환의 만기가 2022년 1월부터 8월 사이에 몰려 있다는 점이다. 미국 블룸버그통신의 분석에 따르면, 1월에는 위안화 채권 5억2000만 달러와 달러 채권 6억1000만 달러의 원금과 이자를 상환해야 한다. 2월에는 규모가 줄어들지만, 3월에는 위안화 5억9000만 달러와 달러 5억6000만 달러에 달한다.

특히 7월이 가장 많아, 위안화 7억5000만 달러와 달러 6억2000만 달러의 채권 원금과 이자를 상환해야 한다. 8월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채권 원금과 이자는 위안화가 38억3000만 달러이고, 달러는 36억8000만 달러다. 블룸버그는 “현재 중국 부동산 개발업체들은 위안화 자금 조달마저 여의치 않은 상황”이라며 “내년 3분기까지 대부분의 부동산 개발업체가 디폴트에 빠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동안 한국에는 중국 자산 순위 2위인 헝다그룹의 위기만 알려졌지만 그게 전부가 아닌, 중국 전체 부동산 개발업체가 공멸로 갈 수 있는 상태인 것이다.

이렇듯 위기가 가속화하자, 주식시장부터 크게 출렁였다. 특히 홍콩 증시에 상장된 중국 부동산 개발업체의 주가가 급락했다. 한때 거래가 중단됐던 헝다는 여전히 속절없이 추락하는 상황이다. 연초 대비 무려 90% 이상 주가가 빠졌다. 오피스건물 개발기업인 ‘스마오’의 주가는 65%나 떨어졌고, 종합개발업체인 ‘룽촹’은 45%가 빠졌다. 세 기업은 중국 10대 부동산 개발업체로, 총자산이 1000억 달러에서 3600억 달러에 달한다. 중국 10대 부동산 개발업체 중 8개가 홍콩 증시에 상장됐는데, 2021년에만 전체 평균 주가가 25% 하락했다.

부동산 개발업체의 주가가 하락하는 배경에는 단순히 유동성 위기만 있는 게 아니다. 근본적으로 향후 중국 부동산 시장의 전망이 극히 어둡기 때문이다. 지난 수년 동안 중국 부동산 시장은 한국보다 더 높은 성장세를 구가했다. 그러나 짧은 기간에 급등한 주택 가격으로 인해 2030세대가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상황이 속출하자, 2021년 초부터 중국 정부가 강력한 시장 규제에 나섰다. 각 지방정부에 구체적인 수치까지 배정하면서 주택 가격을 인위적으로 조정토록 한 것이다. 그 덕분에 부동산 시장은 안정을 찾았고 주택 가격은 하락세로 돌아섰다.

실제로 지난 11월 중국의 신규 주택가격은 전달보다 0.3% 떨어졌다. 이는 2015년 2월 이래 월별로는 최대 하락 폭이다. 중국은 국가통계국이 매달 전국 70개 주요 도시의 주택 가격 변화 추이를 수치화해 발표한다. 10월에도 신규 주택 가격은 0.2% 하락했다. 하지만 인위적인 규제정책은 부메랑처럼 중국 부동산 산업에 치명타를 안겨주었다. 중국 당국이 금융기관을 압박해 신규 대출뿐만 아니라 연장까지 막으면서 부동산 개발업체가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빠진 것이다. 또한 강력한 시장 규제로 인해 기업의 영업실적도 급속히 악화되었다.

문제는 부동산 산업이 중국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0%에 가깝다는 점이다. 지금처럼 부동산 산업이 계속 위축되어 빈사 상태에 빠지면, 중국 경제가 받는 타격은 클 수밖에 없다. 당장 부동산 개발업체의 디폴트 행렬이 이어지면서 대규모 실직 사태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또한 부동산 개발업체가 조성하는 대규모 주택단지에 입주할 중국인들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이미 경제성장률에 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기저효과로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1분기에 18.3%로 급등했고, 2분기에도 7.9%에 달했다.

10월4일 증시의 동향을 알리는 한 은행의 옥외 전광판 주변에 홍콩인들이 서있다. 홍콩 증시의 벤치마크인 항셍 지수는 이날 오전 중국 부동산 회사 헝다그룹 주식들의 거래가 정지되면서 2% 넘게 급락했다.ⓒAP 연합

충격파에 놀라 대책 쏟아내는 당국

그러나 3분기에는 4.9%로 급격히 둔화됐다. 1분기의 높은 성과 덕분에 2021년 중국 경제성장률은 8% 안팎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2022년이다. 12월6일 중국 정부의 싱크탱크인 중국사회과학원은 2022년 경제성장률을 5.2%로 제시했다. 이는 코로나19 사태 이전인 2019년 경제성장률인 6.1%보다 훨씬 낮은 수치다. 이렇게 위기 상황이 확대되자, 12월15일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은행 지급준비율을 0.5% 인하했다. 2021년에 두 번째인데, 지난 7월에는 국제 원자재 가격 급등 충격에 대응하는 차원이었다. 이번 인하로 중국 금융기관의 평균 지급준비율은 8.4%로 낮아진다.

그에 따라 1조2000억 위안(약 224조원)의 유동성이 시장에 공급된다. 누가 봐도 부동산 개발업체들의 부채 위기를 해소하기 위한 조치임을 알 수 있다. 최근 일부 지방정부는 부동산 시장 살리기에도 나섰다. 광시좡족(廣西壯族)자치구의 2대 도시인 구이린(桂林)은 주택 거래 활성화를 위해 12월에 신규 주택을 사는 사람에게 구입액의 1%에 해당하는 지역 상품권을 지급하기로 했다. 상품권으로는 가전제품·생활용품 등을 살 수 있다. 현재 구이린뿐만 아니라 바오딩(保定)·진화(金華) 등 다른 성의 10여 개 도시도 비슷한 조치의 시행에 들어갔다.

이런 기류는 12월6일 열렸던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회의에서도 드러났다. 중앙정치국은 2022년 경제의 운용 방향을 논의했는데, 어느 때보다 ‘안정 유지’를 강조했다. 회의 후 중앙정치국은 “계속해서 민생을 개선하는 가운데 거시경제의 큰 틀을 안정시켜야 한다”며 “이를 통해 사회 안정을 유지하고 제20차 전당대회 개최를 맞이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2022년 10월 중국공산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경제·사회 안정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음을 뚜렷이 보여준다. 규제의 몽둥이를 휘두르며 조작에 가까울 정도로 시장을 쥐어짠 결과 발생한 후폭풍에 화들짝 놀라 정책 기조를 바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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