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단거리 수영 역사의 ‘게임 체인저’ 황선우
  • 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12.25 12:00
  • 호수 168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21년 스포츠계 최대의 수확으로 꼽히는 수영 황선우
2022 항저우아시안게임 ‘다관왕’은 떼놓은 당상

“터닝 포인트.” 18세의 황선우(서울체고)가 쇼트코스(수영에서 50m 정규 코스가 아니라 25m의 짧은 코스) 세계수영선수권대회를 모두 끝마치고 난 뒤 외친 말이다. “앞으로 시작이니 더 많이 응원해 달라”는 말도 했다. 시작, 맞다. 황선우는 갓 무한경쟁의 ‘세계 수영 정글’로 들어섰다. 그리고 존재감을 한없이 드러냈다. 2021년 한 해 스포츠계의 최대 수확은 황선우의 등장이다.

황선우가 12월17일(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서 열린 2021 국제수영연맹 쇼트코스 세계선수권대회 남자 자유형 200m 경기에서 역영하고 있다. 황선우는 결승에서 1분41초60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차지했다.ⓒAP 연합

박태환·쑨양도 넘지 못했던 단거리 세계 벽에 도전

황선우는 올해 처음 메이저 수영대회에 출전했다. 도쿄올림픽 이전에 나섰던 국제대회라고는 2018년 호주 지역 대회인 맥도날드 퀸즐랜드 챔피언십에 출전한 게 전부였다. 코로나19 상황에서 국제대회가 줄줄이 취소됐기 때문이다.

지난 8월,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세계적 선수들과 겨루면서도 황선우는 기죽지 않았다. 거침없이 물살을 갈랐다. 올림픽 첫 역영(자유형 200m)에서 한국신기록(1분44초62)을 세웠다. 자유형 100m에서는 아시아 선수로는 1956년 멜버른 대회 이후 65년 만에 결승에 진출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고, 기세를 몰아 1952년 헬싱키 대회에서 일본의 스즈키 히로시가 은메달을 딴 이래로 가장 좋은 성적(5위)을 냈다. 이때 아시아신기록(47초56)도 덩달아 세웠다. 100m, 200m에서는 ‘마린보이’ 박태환의 기록들을 도장깨기 하듯 넘어서고 있다.

지난 10월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국제수영연맹(FINA) 경영 월드컵 2021 3차 대회(쇼트코스)에서는 세 종목에 출전해 금메달 1개와 동메달 2개를 따냈다. 자유형 200m에서는 1분41초17의 기록으로 국제대회 첫 우승을 차지했고, 자유형 100m와 개인혼영 100m에서는 3위에 올랐다.

경영 월드컵 이전에는 전국체전에 출전해 주종목인 100m와 200m에 출전하지 않고도 생애 첫 5관왕(자유형 50m, 계영 800m, 개인혼영 200m, 계영 400m, 혼계영 400m)에 오르면서 대회 최우수선수(MVP)로 뽑혔다. 개인혼영 200m(1분58초04)에서는 역시나 박태환의 기록을 갈아치웠다. 개인혼영 두 번째 출전 만에 박태환을 넘어버렸다.

황선우는 자유형이 주종목이지만 4개 영법(자유형·배영·평영·접영)을 고루 잘해야 하는 개인혼영도 욕심을 내고 있다. 국내 마지막 대회였던 제주한라배 전국수영대회에서 그는 평소 한 번도 훈련하지 않았던 평영 100m에 나서 2등을 차지했다. 가히 ‘수영 천재’라고 할 만하다.

황선우는 한국 수영 역사에 첫 금메달(2008 베이징올림픽 자유형 400m)을 안겨준 박태환의 뒤를 잇고 있지만, 박태환과는 약간 결이 다르다. 박태환과 경쟁했던 쑨양(중국)과도 마찬가지다. 박태환이나 쑨양이 중장거리 선수였다면 황선우는 이들과 달리 단거리 선수에 가깝다. 도쿄올림픽 자유형 100m에서 아시아 선수로는 69년 만에 제일 좋은 성적을 냈다는 사실만 봐도 세 명의 차이점을 한눈에 알 수 있다.

12월17일 세계수영선수권대회 자유형 200m에서 우승한 황선우가 2, 3위를 한 러시 아의 알렉산드르 시제골레프(왼쪽), 리투아니아의 다나스 랩시스와 시상대에 서있다.ⓒAP 연합

황선우의 시선, 이미 2024 파리올림픽 향해

황선우는 한쪽 스트로크에 힘을 더 싣는 ‘로핑 영법’을 구사하는데, 이 기술은 100m, 200m 단거리에서 속도를 내는 데 유리하다. 박태환은 은퇴 직전까지 좌우 밸런스를 중요시하는 기본 영법을 구사했다. 박태환은 현역 시절 자유형 800m 등에도 출전했다.

황선우는 도쿄올림픽 200m 결승에서 170m까지는 1위를 유지하다가 이후 급격히 체력이 떨어지면서 7위까지 밀렸다. 결승전이 열리기 전까지는 쑨양이 갖고 있는 아시아신기록(1분44초39) 도전도 가능하다는 예상이 있었지만 아쉽게 다음 기회로 미뤘다. 국제대회 경험이 거의 없어 단기간 체력 회복 요령이 부족한 면이 있었다. 박태환의 경우 올림픽 출전 이전에 세계수영선수권 등 여러 국제대회에 참가해 경험을 쌓았다.

황선우는 비록 정규 코스(50m)는 아니었지만 쇼트코스 세계수영선수권대회 때는 자유형 200m 결승에서 150m까지 3위로 달리다가 마지막 50m에서 스피드를 올리면서 1위로 터치패드를 찍었다. 4개월 전 열린 도쿄올림픽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 셈이다. 황선우를 가르쳤던 이병호 서울체고 수영 감독은 “선우의 최대 장점은 자기 단점을 스스로 분석해 나날이 업그레이드한다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2021년 한 해 동안 황선우는 특유의 성실함과 강인한 정신력을 윤활유 삼아 폭풍 성장을 거듭해 왔다. 자유형 100m에서 아시아신기록 및 세계 주니어 신기록 한 차례를 포함해 한국신기록만 세 차례 갈아치웠고, 자유형 200m에서는 한국기록을 한 차례, 세계 주니어 기록을 두 차례 새롭게 썼다. 개인혼영 한국기록도 그의 차지가 됐다.

자유형 100m만 놓고 보면 황선우는 미국 단거리 최강자 케일럽 드레슬이 18세 때 작성했던 기록보다 더 빨리 역영했다. 도쿄올림픽 100m를 생중계하던 미국 NBC 캐스터가 “황선우는 이제 고작 18세다. 세계 주니어 기록은 넘어섰고 이번이 첫 번째 메이저대회 100m 경기였다”며 놀랐던 이유다. 만약 여기에 체력과 국제대회 경험치까지 더하면 그가 얼마만큼 성장할지 알 수 없다.

2022년 고교를 졸업하고 수영에 더 집중하기 위해 대학이 아닌 실업팀(강원도청)을 선택한 황선우는 오는 9월 중국에서 열리는 항저우아시안게임에 도전장을 내민다. 현 추세대로라면 다관왕은 떼놓은 당상이다. 아시안게임 최고의 스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아시안게임 이전에는 오는 5월 일본 후쿠오카에서 열리는 세계수영선수권대회(50m 롱코스)에서 다시금 세계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최대 관심사는 도쿄올림픽 때 놓친 200m 아시아신기록을 깨느냐 여부다. 쑨양의 기록까지 넘어서면 자타 공인 아시아 단거리 최강자의 면모를 뽐내게 된다.

참가 대회마다 ‘처음’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황선우에게 롱코스 세계수영선수권대회도, 아시안게임도 모두 첫 출전이 된다. 올림픽이라는 최고 무대를 먼저 경험했기에 오히려 긴장감은 덜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은 2024 파리올림픽으로 향하는 여정이 될 것이 자명하다.

황선우에게 2021년은 앞서 그가 밝혔듯이 ‘터닝 포인트’가 된 한 해였다. 2022년 황선우는 한국을 넘어 아시아 수영 역사를 다시금 바꿔놓는 게임 체인저가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아시아 수영선수는 단거리에 약하다는 통념마저 깨부술지 모르겠다. 도쿄올림픽에서 그 가능성을 제기했고 비록 쇼트코스였으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이를 증명해 냈다. 수영을 잘할 뿐만 아니라 즐기기까지 하는 황선우, 그의 19세는 과연 어떤 놀라움으로 채워질까.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