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성범 이적 나비효과가 몰고 온 프로야구 FA ‘100억’ 광풍
  • 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1.08 15:00
  • 호수 16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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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 없는 프로야구 FA시장의 ‘묻지마 몸값’
150억원에 나성범 영입한 KIA의 올 시즌 관중 수입은 12억원

2015년 말이었다. 삼성 라이온즈에서 자유계약(FA) 자격을 얻은 박석민은 NC 다이노스로 이적하면서 96억원(계약기간 4년·옵션 포함)을 받았다. 하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야구 관계자는 드물었다. 가뜩이나 2014년 말부터 특A급 선수 몸값이 이미 100억원을 넘어섰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 터였다. ‘100억원’은 섣불리 공개되기 어려운 숫자였다. 야구계 안팎의 파장을 고려하면 더욱 그랬다.

그리고, 1년 뒤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삼성 4번 타자였던 최형우가 KIA 타이거즈로 이적하면서 FA 세 자릿수 계약이 현실화됐다. ‘100억원’이라는 숫자에 야구판은 달아올랐다. 리그 현실과 수준이 100억원 몸값의 선수를 배출할 만한지에 대한 논란도 일었다. 2016년 당시 KIA 구단이 시즌 내내 관중 수입으로 벌어들인 돈은 78억원이었다.

ⓒ연합뉴스

10명 선수가 ‘100억원 클럽’ 가입

최형우가 ‘공식적으로’ 열어젖힌 ‘FA 몸값 100억원’은 이후 이대호(롯데·4년 150억원), 김현수(LG·4년 115억원), 최정(SSG·6년 106억원), 양의지(NC·4년 125억원)로 이어졌고, 특히 올 스토브리그에는 무려 5명이 총액 기준 100억원 이상의 계약을 성사시켰다.

박건우(6년 100억원·두산→NC)가 가장 먼저 계약했고, 김재환(4년 115억원·두산 잔류), 김현수(4+2년 115억원·LG 잔류), 나성범(6년 150억원·NC→KIA), 양현종(4년 최대 103억원·KIA 잔류)이 그 뒤를 이었다. 이들 5명에게 투자된 금액만 583억원이다. 물론 타 팀 이적 선수의 경우 원소속팀에 보상금도 지불해야 하니 영입 구단이 내야 하는 금액은 훨씬 더 커진다.

이들뿐만이 아니다. 1월5일 정훈이 원소속팀 롯데와 계약(3년 18억원)하면서 이번에 풀린 FA 15명 선수에게 투자된 돈은 총 989억원에 이른다. 올해 처음 허용된 비(非)FA 선수의 다년계약까지 포함하면 이번 스토브리그에는 총 1169억원의 돈이 쓰였다. ‘스토브리그 1000억원 시대’가 열린 셈이다. 스토브리그가 시작되기 전 코로나19 상황 탓에 계약이 순조롭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을 철저히 비켜갔다. 더군다나 10개 구단은 운영비를 줄이기 위해 수많은 선수를 시즌 종료 전후에 방출한 터였다.

선수 몸값 폭등 이유는 분명 있었다. 일단 최형우를 100억원에 영입한 뒤 이듬해(2017년) 통합우승을 이룬 KIA가 움직였다. 여러 부침을 겪은 KIA는 올해 9위에 머물렀고, 팬들은 현대기아차그룹 본사 앞에서 단장 경질 등을 요구하며 트럭 시위를 했다. 투자하지 않는 구단에 대한 성토였다.

KIA는 시즌 뒤 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매트 윌리엄스 감독과 계약을 해지하고 이화원 대표이사, 조계현 단장을 경질하는 수순을 밟았다. 대신 최준영 KIA 부사장을 대표이사에 선임하고 장정석 전 히어로즈 감독을 단장으로 영입했다.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의 김종국 수석코치가 감독으로 승격했다.

새 지도부를 구성한 KIA는 곧바로 전력 강화에 눈을 돌렸다. 영입 1순위가 NC에서 자유계약 신분이 된 ‘거포’ 나성범이었다. 나성범은 KIA의 빈약한 장타력을 채워줄 적임자였다. 게다가 광주 출신이었다. 장 단장은 FA시장이 열리자 곧바로 창원으로 내려가 나성범과 접촉했다. KIA의 과감한 베팅에 나성범의 마음은 초반부터 KIA로 기울어져 있었다.

나성범이 이적 기미를 보이자 다급해진 것은 NC였다. 나성범 이적에 대비해 NC는 박건우를 부랴부랴 영입했다. NC는 박해민에게도 관심을 보였으나, 박해민은 LG 트윈스(4년 60억원)를 택했다. 이후 NC는 낙동강 더비 상대인 롯데의 프랜차이즈 스타 손아섭 영입에 성공했다. NC와 롯데의 제시액은 10억원 이상 차이가 났다. 손아섭이 15년간 입었던 거인 유니폼을 벗을 수밖에 없던 이유다.

한편, NC가 박건우를 데려가면서 다급해진 쪽은 원소속팀 두산 베어스였다. 매해 FA시장에서 민병헌·김현수·양의지·오재일·최주환 등을 떠나보냈던 두산은 성난 팬심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남은 FA인 김재환을 반드시 잡아야만 했다. 칼자루를 김재환 쪽이 쥐게 되면서 김재환의 몸값은 껑충 뛰어올랐다. 결국 나성범 이적 나비효과가 올해 FA시장을 소용돌이치게 한 셈이다.

 

구단 자금 사정과 무관한 FA 선수 영입

올 시즌 10개 구단 총 관중 수입은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으며 182억원에 불과했다. SSG 랜더스가 비FA 선수인 박종훈·문승훈·한유섬에게 지급한 180억원을 약간 웃도는 액수다. 나성범을 150억원에 영입한 KIA의 올 시즌 관중 수입이 12억원. 나성범에게 계약금(60억원)을 주기에도 턱없이 부족하다. 스토브리그에 분 광풍을 그대로 보여주는 수치다.

현실에 맞지 않게 프로야구 스토브리그가 전개됐으나 선수 몸값 폭등을 막을 제재 드라이브는 사실상 없다. 국내 프로야구단은 스포츠 구단의 경영논리가 아닌 모그룹 자금 사정에 따라 움직이는 탓이다. 여전히 국내 대다수 프로 야구단은 수입에 맞춰 지출하는 것이 아니라 지출에 맞춰 구단 수입을 정한다. 모그룹으로부터 명목상 광고비를 받는 형식으로 지출을 메우면 되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구단이 자체적으로 벌어 야구단을 운영하는 구조가 아니다. 필요할 경우 얼마가 됐든 그룹에서 돈을 지원받는다.

구단들의 ‘묻지마 투자’는 모그룹의 현금 유동성이 나쁘지 않은 한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돈 안 쓰는 구단은 가난한 구단(그룹)”이라는 시장 인식이 더욱 시장의 ‘거품’을 부추긴다. 구단의 적자와는 상관없이 구단주의 의지만 있으면 선수당 100억원 넘는 투자는 얼마든지 가능하기에 사실상 FA 몸값 안정화는 힘들다고 봐야 한다.

내년부터 처음 시도될 샐러리캡(연봉총액상한제)이 FA 몸값 상승을 제어할 기제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리그의 질이 점점 약화하면서 특정 선수에 대한 수요가 더 늘어난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선수 영입을 통한 전력 보강을 바라는 팬들의 요구는 트럭 시위에서 보듯이 점점 더 거세질 것이고 자금력을 보유한 구단은 그룹 평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단기에 성적을 끌어올리기 위해 선수를 사오는 것만큼 쉬운 지름길은 없다. 하지만 영입 시기라는 게 있다. ‘묻지마 영입’은 선수 육성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적절한 시기의 적합한 투자가 팀 성적으로 연결된다. 오늘의 투자가 내일의 결실이 될지는 2022 시즌이 개막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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