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잡고 조1위 가야”…벤투의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2.06 14:00
  • 호수 16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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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회 연속 월드컵 본선행 이끈 ‘벤투호’, 역대 축구 대표팀과 무엇이 달랐나

대한민국 축구가 10회 연속 월드컵 본선행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브라질(22회 연속), 독일(18회 연속), 이탈리아(14회 연속), 아르헨티나(13회 연속), 스페인(12회 연속) 등 그야말로 세계 축구 강자 중 강자들만이 갖고 있는 독보적인 기록의 새 주인공으로 한국도 이름을 올린 것이다. 최종예선 조 편성 당시만 해도 중동 모래바람 탓에 역대 가장 험난한 여정이 될 것으로 평가받았지만, 2경기를 남겨놓고 조기에 본선 진출을 확정 짓는 역대 최고의 결과를 낳았다. 그 중심에는 대표팀 최장수 사령탑 파울루 벤투 감독의 뚝심과 냉철함, 디테일이 있었다.

한국은 설날 저녁 열린 시리아와의 카타르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8차전에서 김진수·권창훈의 연속골로 2대0 승리를 거뒀다. 6승2무로 승점 20점에 도달한 한국은 3위 UAE에 11점 앞서며 남은 2경기 결과와 상관없이 본선행 티켓이 주어지는 A조 2위 이상을 확보했다. 이 정도 페이스는 8경기 체제에서 6차전 만에 본선행을 확정한 1998 프랑스월드컵 최종예선에 비견될 만하다.

2월1일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의 라시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월드 컵 아시아 최종예선 8차전 대한민국과 시리아의 경기에서 승리하며 10회 연속 월드 컵 본선 진출을 확정한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이 환호하고 있다. 가운데가 벤투 감독ⓒ연합뉴스

경기 지배력·빌드업·전방 압박 ‘3대 키워드’ 구축

특히 최근 두 차례 월드컵 본선행 과정과 비교하면 벤투호가 얼마나 안정적이었는지 알 수 있다. 2014 브라질월드컵과 2018 러시아월드컵 때는 상향 평준화된 아시아 축구 전체 판세 속에 우리 대표팀의 자중지란이 겹치며 최종전에서 간신히 본선행을 확정했다. 월드컵 예선 도중 감독 경질과 교체 카드를 꺼내야 했다. 반면 이번에는 지난 월드컵 종료 후 선임한 새 사령탑이 교체 없이 다음 월드컵 본선행을 그대로 확정했다. 이것은 한국 축구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대한축구협회 수장에 오른 뒤 치른 두 차례 월드컵 예선에서 모두 고전했던 정몽규 회장은 이번만큼은 교체 없이 오롯이 4년을 책임질 검증된 외국인 사령탑 선임을 추진했다. 국제적인 눈높이와 프로세스를 갖춘 김판곤 전력강화위원장이 선임 주체가 됐다. 당초 김 위원장은 루이스 판할,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키케 플로레스 등 유럽 빅리그에서 다년간 지도력을 키운 감독들과 접촉했다. 하지만 대부분 4년이 넘는 긴 프로젝트를 위해 동아시아로 오는 걸 주저했고, 대한축구협회가 예상한 비용(코칭스태프 연봉과 체재 비용 포함 연간 40억원)의 2배를 넘는 돈을 요구했다.

그 과정에서 튀어나온 인물이 벤투였다. 포르투갈 대표팀을 이끌고 유로 2012(4강 진출)와 브라질월드컵(조별리그 탈락)을 치르며 긴 주기의 국제대회를 치른 풍부한 경험이 있었다. 스포르팅CP(포르투갈), 크루제이루(브라질), 올림피아코스(그리스) 등 경쟁력 있는 클럽도 이끌었다. 결정적으로 중국 프로축구에서의 실패로 인한 커리어의 저점 위기에서 한국행으로 반전을 꾀하려는 강한 의지가 있었다. 김 위원장은 “세계 축구의 지정학적 위치에서 유명 지도자가 한국에 오려면 히딩크 감독처럼 스크래치가 난 상태여야 한다”고 얘기했다. 히딩크 감독도 프랑스월드컵 후 레알 마드리드, 레알 베티스에서 잇달아 실패한 뒤 한국에서 대성공을 거두며 유럽의 중심에 재진입했다.

4명의 포르투갈 코치로 자신의 사단을 구성해 한국으로 온 벤투 감독은 취임사에서 능동적인 축구를 강조했다. 그는 “점유율을 높여 경기를 지배한 뒤 최대한 많은 기회를 우리의 의도에 맞게 창출할 것이다. 수비에서는 과감하게 압박하고 앞에서 싸우며 리스크를 줄여야 한다. 90분 동안 끊임없이 뛰는, 정체성이 강한 팀을 만들겠다”고 자신이 지향하는 축구를 설명했다. 하지만 시행착오가 있었다. 1차 평가 기준이었던 2019 아시안컵은 8강에서 탈락했다. 월드컵 2차 예선에서도 북한·레바논에 고전하며 무승부를 거두는 등 불안한 행보를 이어갔다.

벤투 감독 취임 후 최대 위기는 지난해 3월 요코하마에서 열린 일본과의 친선전이었다. 3골 차 완패를 당하며 벤투 감독에 대한 회의론이 거세게 일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벤투 감독은 확실히 ‘마이웨이’를 강조했다.

6월 열린 2차 예선 3경기를 최정예 멤버로 치르며 조직력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손흥민, 정우영, 김영권 등 벤투호의 핵심 선수들이 팀 안정화의 터닝포인트로 꼽은 지점이다.

최종예선에 돌입한 이후에는 벤투 감독이 원하던 스타일의 축구가 꼼꼼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구현됐다. 이른바 ‘게임모델’의 완성이다. 시행착오 속에서 큰 비판을 받을 때도 벤투 감독은 경기 지배력, 빌드업, 전방 압박의 키워드를 놓지 않았다. 3년 차에 이르러 선수들이 벤투 감독과 코치들이 요구하는 전술 시스템, 포지셔닝, 패턴 플레이를 숙지했고 이것이 시너지 효과를 냈다. 그 결과 에이스인 손흥민이 부상으로 이탈하더라도 경기력과 조직력에 큰 차이 없이 꾸준한 퍼포먼스가 나왔다. 대표팀의 핵심인 해외파가 빠진 1월 터키 전지훈련에서도 아이슬란드, 몰도바를 각각 4골 차로 압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선수 선발에서도 벤투 감독의 원칙과 디테일은 변함없이 가미됐다. 일각에서는 K리그 MVP인 홍정호와 득점왕 주민규를 한 번도 발탁하지 않는 데 대해 강한 의문을 표시했다. 이강인을 중용하지 않는 점 역시 그를 비판하는 주요 근거가 됐다. 그러나 벤투 감독은 자신의 축구를 수행할 수 있는 타입의 선수를 선호했다. 공격에서는 많은 움직임과 침투, 연계 플레이를 능숙하게 소화할 수 있는 조규성과 김건희를 선호했다. 수비에서도 김민재, 김영권, 권경원, 박지수, 정승현으로 조직력 유지에 주안점을 뒀다. 오히려 K리그 경험이 일천하거나 2부 리그에서 뛰어도 확실한 특징을 지닌 김진규, 엄지성, 정상빈 등을 적극 발탁해 대표팀이 활용할 수 있는 선수층을 강화했다.

 

본선 조추첨 ‘포트3’ 진입 위해 FIFA 랭킹 끌어올려야

벤투 감독의 남은 목표는 확고하다. 그는 “조 1위로 최종예선을 마치는 것을 다음 목표로 삼자고 선수들과 얘기했다”고 말했다. 3월 열리는 이란전(홈)과 UAE전(원정) 모두 전력을 쏟겠다는 뜻이다. 본선행을 확정한 만큼 손흥민 등 주요 선수들에게 휴식을 줘도 되지 않을까 싶지만 벤투 감독은 본선까지 내다보고 있다. 바로 월드컵 조추첨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서다. 과거에는 본선 조추첨 시 1번에서 4번까지의 포트 구분을 역대 월드컵 성적과 FIFA 랭킹을 혼합해 진행한 반면 이번 월드컵부터는 온전히 FIFA 랭킹으로 선정한다. 조금이라도 유리한 조추첨을 받기 위해서는 FIFA 랭킹을 최대한 올려야 하는 것이다.

3포트로 조추첨에 들어갈 경우 한국은 유럽과 아프리카의 껄끄러운 팀을 피하고 북중미 팀과 한 조에 속할 확률이 높아진다. 월드컵 16강 이상으로 가기 위해선 포트3 이상에 드는 전략이 중요하다. 현재 한국은 FIFA 랭킹 33위다. 1월 평가전과 최종예선 4경기 성적을 반영하면 30위 내 진입이 확실하다. 4월 열리는 조추첨까지 FIFA 랭킹을 20위권대로 유지해야 포트3를 바라볼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3월말 열리는 이란·UAE와의 최종예선 잔여 일정에서 모두 승리를 거둬야 한다. 벤투 감독의 냉철함과 디테일은 이런 전략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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