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 OTT 타고 짧은 드라마들이 몰려온다
  • 정덕현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2.12 11:00
  • 호수 16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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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좋소》부터 《며느라기》까지
다양해진 숏폼 드라마 인기

‘짧아도 강력하다?’ 최근 토종 OTT 플랫폼들이 경쟁적인 독점 콘텐츠를 쏟아내면서 짧게는 15분에서 길게는 30분 내외의 숏폼 드라마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무엇이 이런 변화를 만들었고, 이들 숏폼 드라마에는 어떤 강점들이 있는 걸까.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OTT는 전회의 콘텐츠를 한꺼번에 서비스하면서 이른바 ‘몰아보기’라는 새로운 시청 방식을 유행시켰다. 그래서 한꺼번에 6회분을 올린 《킹덤》은 6회분이 언제 다 지나갔는지 알 수 없는 속도감과 몰입감을 선사했다. 그런데 이 속도감과 몰입감을 만든 데는 작품이 가진 매력 말고도 짧아진 분량이 한몫을 차지한다. 《킹덤》은 평균적으로 50분대 한 회 분량에 적게는 36분(시즌2 5화)짜리 짧은 분량도 있었다. 

왓챠 《좋좋소》의 포스터
왓챠 《좋좋소》의 포스터ⓒ왓챠 제공

웹 환경 변화 따라 짧아진 콘텐츠들 

이런 사정은 글로벌 신드롬을 일으켰던 《오징어 게임》도 다르지 않다. 대체로 50분 남짓의 한 회 분량이지만 32분(8회)짜리도 들어가 있다. 방송 분량이 제각각이고 주로 줄어드는 방식으로 제작되는 건, 다른 의도가 있어서가 아니라 콘텐츠의 매회 집중도를 높이기 위한 것이다. 해외 콘텐츠들이 그러하듯이 한 회마다 집중되는 메시지를 풀어내는 에피소드가 완결돼 나오게 하기 위해 어떤 건 50분 분량이지만 어떤 건 30분대 분량으로 채워지게 된 것이다. 그래서 OTT 콘텐츠들은 우리네 지상파를 중심으로 제작돼온 드라마 분량보다 짧은 게 대부분이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최근 서비스된 《지금 우리 학교는》의 경우 70분짜리 회차가 적지 않다. 그만큼 한 회차에 담을 내용이 많았다는 것인데, 결과적으로는 넷플릭스의 다소 짧은 콘텐츠에 익숙한 시청자들은 “너무 길다”는 반응을 내놓기도 했다. 

즉 OTT 같은 웹 환경의 콘텐츠 소비는 과거 같은 본방 개념의 소비에 비해 더 빠른 속도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웹 자체가 ‘속도’에 대한 심리적인 강박을 갖게 만드는 면이 있는 데다, 빠르게 볼 수 있는(이를테면 2배속 같은) 방식들이 제시돼 있어서다. 또한 쏟아져 나오는 콘텐츠 속에서 빠른 속도의 소비는 더 많은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게 해주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시청자들은 그래서 드라마 같은 시리즈의 경우 짧은 분량에 더 익숙해졌고, 이런 경향은 제작자들에게도 그대로 영향을 주게 됐다. 

물론 웹드라마에서 이미 추구된 것처럼 모바일 같은 이동형 미디어를 통한 콘텐츠 소비 또한 콘텐츠가 점점 짧아지게 된 요인으로 거론된다. 하지만 최근 들어 토종 OTT를 중심으로 제작되고 있는 숏폼 형식의 드라마들은 웹드라마와는 사뭇 다른 특징을 갖고 있다. 이들 숏폼 드라마는 그 짧은 분량에 어떤 승부수를 띄우고 있는 걸까.  

왓챠에서 최근 시즌4를 내놓으며 독점 서비스되고 있는 《좋좋소》는 시즌1 1화가 겨우 8분 분량이었다. 하지만 시즌4에는 회당 분량이 두 배 이상 긴 20분짜리도 있다. 이렇게 된 건 제작 규모 때문이다. 애초 유튜브 콘텐츠로 만들어진 《좋좋소》는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면서 시즌2부터 왓챠의 지원을 받아 독점 서비스되기 시작했고 시즌4는 아예 왓챠가 투자 및 제작을 도맡았다. 즉 《좋좋소》는 유튜브 콘텐츠도 인기가 있으면 OTT 같은 새로운 플랫폼의 지원을 받아 규모가 커질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사례가 됐다.

그런데 이렇게 제작 규모가 커져도 분량이 최대 20분이라는 건 《좋좋소》가 가진 콘텐츠의 특징이 이 분량과 무관하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이른바 ‘하이퍼 리얼리즘’이라 평가되는 《좋좋소》는 애초 8분짜리 1회 분량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기승전결의 이야기 구조를 세우기보다는(이것이 불가능하다) 마치 현실의 한 단면을 찍어낸 듯한 상황 전개에 맞춰진 내용들을 담았다. 면접, 야근, 명절, 사내연애, 신입 등등 영세한 회사에 다니면서 공통적으로 겪을 만한 상황들을 디테일하게 날것으로 담아낸 것이 오히려 열광적인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즉 영세한 제작 규모 때문에 분량이 적어 선택한 소재(영세업체의 일상)나 이를 담는 방식(상황 전개)으로 인해 오히려 이 콘텐츠만의 경쟁력이 생겼다는 것이다. 

이렇게 짧은 분량이어서 거두절미하고 특정 상황들을 가져와 절절한 공감을 일으키는 ‘하이퍼 리얼리즘’은 카카오TV 《며느라기》에서도 마찬가지의 힘을 발휘했다. 30분 남짓의 《며느라기》는 흔히 ‘김치 싸대기’로 상징되던 빌런화된 시월드가 아닌 평범한 시월드를 가져와, 그럼에도 존재하는 ‘미세먼지 차별’을 하나하나 포착해 내는 것으로 시청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역시 적은 분량이 내용을 좀 더 압축적으로 담아내게 만든 요인이 됐다는 것. 

카카오TV 《며느라기》 포스터ⓒ카카오TV 제공
웹툰 《며느라기》ⓒ카카오페이지 제공

이처럼 《좋좋소》나 《며느라기》의 사례처럼 짧은 분량은 기존 미니 시리즈 같은 1시간 분량으로 채워지는 드라마들이 소외시켜온 소재들을 끄집어내는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즉 지금껏 지상파 개념으로 60분 내외의 분량이 드라마라는 등식을 깸으로써 짧은 분량에 어울리는 소재들이 거기에 최적화된 스토리나 연출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최근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들 역시 30분 남짓의 분량으로 괜찮은 반향을 일으키고 있어 주목되는 면이 있다. 《술꾼도시여자들》이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지상파나 케이블 같은 기존 플랫폼에서는 잘 시도되지 않았던 ‘술’이라는 소재를 전면에 가져왔고, 19금 드라마로서 좀 더 솔직하고 대담한 이야기들을 담아낸 게 주효했다. 특히 예능작가 안소희(이선빈), 요가강사 한지연(한선화) 그리고 생계형 유튜버 강지구(정은지)라는 세 여성의 끈끈한 우정과 저마다의 사랑 이야기가 빵빵 터지는 코미디로 그려지면서 시청자들을 흠뻑 빠져들게 만들었다. 

티빙 《술꾼도시여자들》과 《내과 박원장》의 한 장면ⓒ
티빙 《술꾼도시여자들》과 《내과 박원장》의 한 장면ⓒTVING 제공

《술꾼도시여자들》은 숏폼일까, 시트콤일까 

그런데 흥미로운 건 《술꾼도시여자들》에서 기존 지상파나 케이블에서 사라져버린 ‘시트콤’의 향기가 묻어난다는 점이다. 30분 남짓한 이야기로 매력적인 캐릭터를 세워 매회 특정한 상황의 코미디를 그려내던 시트콤은 제작의 어려움과 애매한 장르적 위상 때문에 더 이상 시도되지 못했다. 매일 방송되는 일일시트콤은 제작시간에도 쫓기고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찾아내는 일도 어려워 제작진에게는 엄청난 스트레스로 정평이 난 장르였다. 하지만 이렇게 고생해도 드라마가 아니고 예능이라는 시선 때문에 연말 ‘연예대상’에서 상을 주는 촌극이 벌어지는 일이 생기곤 했다. 낮게 바라보는 시선 때문에 대다수 시트콤 작가가 드라마 작가로 전업한 건 그래서다. 하지만 유튜브 시대가 도래하면서 옛 시트콤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생겨났고, 이로써 시트콤도 충분히 매력적인 장르라는 인식이 생겼다. 

《술꾼도시여자들》이 30분짜리 숏폼 드라마라고 하지만 시트콤적 이야기 구성이 들어가 있는 건 사실이다. 그리고 이런 구성은 지금의 젊은 세대들에게도 충분히 어필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티빙은 오리지널 드라마로서 30분짜리 숏폼 혹은 시트콤적인 구성을 가진 드라마를 서비스함으로써 톡톡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 이미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던 원작 웹툰을 드라마화한 《내과 박원장》은 대표적인 사례다. 그동안의 카리스마 넘치는 의사들 이야기와는 상반되게 짠내 가득한 개업의의 현실을 시트콤적으로 구성함으로써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물론 OTT 같은 웹 플랫폼이라고 해서 짧은 드라마가 다 호응을 얻는 건 아니다. 하지만 토종 OTT들은 분명 이 숏폼에서 자신들 플랫폼만의 차별성을 찾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런 도전은 어느 정도 호응을 얻고 있다. 짧아서 오히려 다룰 수 있는 틈새 영역들을 넓혀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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