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정 논란’ 쇼트트랙과 ‘반칙왕’ 중국의 잘못된 만남
  • 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2.11 12:00
  • 호수 16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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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올림픽 쇼트트랙 첫·둘째 날부터 예고된 홈 텃세로 시끌
실격된 한국·헝가리·미국 등 거세게 반발

프로야구 경기가 끝나면 팬 커뮤니티에서 계속 회자되는 내용이 있다. 그날의 스트라이크 존이다. 주심의 스트라이크 콜에 일관성이 있었는지 아닌지에 대해 팬들은 갑론을박을 벌인다. 그런데 동계올림픽 때마다 야구처럼 심판 판정이 꾸준히 입길에 오르는 종목이 있다. 한국이 세계 최강국 면모를 보이는 쇼트트랙 종목이다. 한국은 2018 평창동계올림픽 때까지 쇼트트랙에서만 총 48개의 올림픽 메달(금메달 24개 포함)을 따냈다.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 첫 금메달도 2월9일 밤 쇼트트랙(남자 1500m 황대헌)에서 나왔다.

한국 쇼트트랙 남자대표팀의 에이스 황대헌이 2월9일 쇼트트랙 남자 1500m 결승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후 포효하고 있다.ⓒ연합뉴스

‘어부지리 금메달’에 ‘할리우드 액션 파문’까지

쇼트트랙의 문제는 좁은 트랙 안에서 경기가 이뤄진다는 점이다. 111.12m의 타원형 경기장에서 4~6명(많게는 10명까지)이 경주를 한다. 직선 주루에서는 그나마 낫지만 코너를 돌 때는 그야말로 서로 뒤엉키게 된다. 당연히 신체 접촉이 빈번할 수밖에 없다.

경기 중 상대 선수를 붙잡거나 밀거나 발을 거는 등의 고의적 행동도 수시로 나온다. 공간 점유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시각도 있지만 반칙은 날이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다. 같은 나라 선수 두 명 이상이 결승에 오르면 한 명이 희생하며 일부러 다른 나라 경쟁자를 가로막는 등의 행위가 나오기도 한다. 팀플레이라고 하지만 정당한 경쟁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결승에서 다른 선수의 방해로 인해 넘어질 경우에는 별도의 구제책도 없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2 솔트레이크동계올림픽 남자 1000m 결승 때였다. 안현수(현재 러시아로 귀화)와 안톤 오노(미국), 리자쥔(중국)이 뒤엉켜 넘어지는 바람에 꼴찌로 천천히 서행하며 레이스를 펼친 스티븐 브래드버리(호주)가 어부지리 금메달을 따냈다. 이후 ‘브래드버리’라는 단어는 쇼트트랙 경기 도중 뒤엉켜 넘어지거나 이로 인해 생기는 뜻밖의 사건을 지칭하는 말이 됐다.

2002년 올림픽 때는 그 유명한 ‘오노 할리우드 액션’ 파문이 일기도 했다. 오노는 당시 남자 1500m 결승전 마지막 한 바퀴 코너를 돌던 찰나에 선두에 있던 김동성을 바짝 따라가다가 갑자기 두 손을 들어 추월에 방해를 받았다는 듯한 페이크 동작을 취했다. 오노에게 어떤 방해도 하지 않았던 김동성은 실격당하며 억울하게 금메달을 뺏겨 홈(미국) 텃세 논란이 거세게 일었다.

일련의 사건들 이후 생긴 것이 비디오 판독이다. 분쟁을 없애고자 도입하기는 했으나 오히려 더 혼란만 가중되는 모양새다. 비디오 판독으로 반칙을 잡아내도, 또 잡아내지 않아도 거센 후폭풍에 직면한다. 기계에 판단을 맡기더라도 결국 최종 판독을 하는 이는 심판이기 때문이다. 심판의 주관적 판단이 많이 개입되기 때문에 형평성과 공정성 문제가 대회 때마다 끊임없이 제기된다.

이번 베이징올림픽도 이런 문제점을 피해 가지 못했다. 리자쥔부터 판커신까지 그동안 반칙 행위로 악명을 떨친 중국의 홈그라운드에서 열리는 올림픽이어서 대회 전부터 신경이 더 쓰인 것도 사실이었다. 여기에 더해 2021~22 시즌부터 국제빙상경기연맹(ISU)은 추월 상황에서 발생하는 충돌·방해에 대해 추월자의 책임을 더 강화했다. 애매한 상황에서는 아예 추월하려는 선수 쪽에 페널티를 줘버리는 식이다. 한국 대표팀 베테랑 곽윤기가 대회 전 “옷깃만 스쳐도 실격할 수 있다”고 말한 이유다.

ⓒ연합뉴스
2월7일 쇼트트랙 남자 1000m 결승 경기에서 중국의 런쯔웨이(오른쪽)가 헝가리의 류 사오린 산도르와 결승선을 향하다 손으로 밀어내고 있다.ⓒ연합뉴스
ⓒ연합뉴스
한국 쇼트트랙 대표팀 황대헌이 2월7일 쇼트트랙 남자 1000m 준결승 경기에서 중국 선수들을 인코스로 추월하다 실격 당했다.ⓒ연합뉴스

‘심판의 시간’ 아닌 ‘선수의 시간’ 돼야

실제로 쇼트트랙 첫 경기였던 혼성계주부터 이상한 기류가 흘렀다. 이번 대회에 처음 채택된 혼성계주 준결승 2조에서 중국은 헝가리와 미국에 이어 3위로 들어왔다. 결승 진출이 좌절된 듯 보였으나 심판진은 10여 분간 비디오 판독을 한 끝에 2위 미국과 4위 러시아에 페널티를 줬고 중국이 결국 결승에 올랐다. 이 경기에서 중국은 선수 교대 때 터치가 이뤄지지 않았으나 심판진은 따로 페널티를 주지 않았다. 중국은 결승전에서 이번 대회 첫 쇼트트랙 금메달을 따냈다.

남자 1000m 경기에서는 더욱 의구심이 드는 판정이 나왔다. 준결승 경기에서 세계기록 보유자인 황대헌은 폭발적인 질주로 조 1위로 골인했으나 이후 심판진은 그에게 레인 변경을 늦게 했다는 이유로 페널티를 줬다. 황대헌의 실격으로 이득을 본 이는 또 중국 선수였다. 이어 열린 2조에서도 2위를 기록한 이준서에게 똑같이 레인 변경 반칙이 주어졌다. 이 판정으로 역시나 중국 선수가 결승으로 끌어올려졌다.

결승전은 더 황당했다. 헝가리 류 샤오린 산도르가 접전 끝에 1위로 결승선을 밟았으나 심판진은 비디오 판독 끝에 산도르에게 옐로카드 2개를 줬다. 그의 실격으로 금메달을 딴 이는 중국의 런쯔웨이였다. 결승선 부근에서 산도르와 런쯔웨이가 치열한 몸싸움을 벌였기에 둘 다 실격을 줄 수도 있는 상황이었으나, 심판진은 헝가리 선수에게만 냉정했다. 그 덕에 런쯔웨이는 결승까지 단 한 번도 1위를 한 적이 없음에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선수단의 반발은 당연했다. 연이은 편파 판정에 즉각 ISU에 항의 서한을 보냈고 국제스포츠중재위원회(CAS)에 제소하겠다고 밝혔다. 올림픽 기간 내 CAS 제소는 2004년 아테네올림픽 체조의 양태영 이후 18년 만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한국·헝가리·미국·러시아 등의 강력한 반발이 이어지자 심판 판정 기류가 갑자기 또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틀 뒤 재개된 경기(2월9일)에서 심판진은 선수 간 가벼운 접촉에 대해서는 페널티를 부여하지 않았다. 7일 경기 결과를 지켜본 각 나라 선수들이 접촉을 피하기 위해 바깥쪽으로 추월을 시도하는 경향이 많아진 탓도 있었지만 심판진도 판정에 한결 관대해졌다. 우연찮게도 심판 판정이 덜 깐깐해진 뒤 황대헌이 금메달을 딴 남자 1500m에서 중국 선수들은 단 한 명도 결승(무려 10명이 뛰었다)에 오르지 못했다.

판정이 까다롭든 느슨하든 일관성만 있으면 된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특정 팀에는 페널티를 줬던 행위에 대해 또 다른 팀에는 페널티를 주지 않는다면 판정의 신뢰는 무너지고 만다. 편파의 날개를 달면 공정성은 흔들린다. 스포츠에서 공정을 빼면 무엇이 남을까. 쇼트트랙 폐지론이 꾸준하게 제기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2월9일 여자 3000m 계주 준결승 때 결승점을 반 바퀴 남긴 상황에서의 최민정의 폭발적인 역주는 쇼트트랙의 매력을 잘 보여줬다. 스포츠는 ‘선수의 시간’이지 ‘심판의 시간’이 절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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