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4번 타자’ 이대호도 은퇴 투어 안 된다고?
  • 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3.01 15:00
  • 호수 16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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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은퇴 앞둔 이대호 두고 또 자격 논란
레전드 예우 너무 인색한 현실 개탄 목소리도

‘‘빅보이’의 마지막 시즌이 다가온다. 하지만 끝을 향한 그의 여정을 놓고 야구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시끄러웠다. ‘은퇴 투어’ 때문이다. KBO리그 레전드급 선수들의 은퇴 시즌마다 그에 대한 예우를 놓고 서로 다른 의견들이 충돌한다. 박용택(전 LG 트윈스)이 그랬고, 이제 이대호(롯데 자이언츠)가 맞닥뜨린 현실이다.

이대호의 성적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2001년 프로에 데뷔한 그는 수많은 기록을 남겼다. 2006년 타격 3관왕(타율·홈런·타점)에 올랐고, 2010년에는 도루를 제외한 타격 7개 분야를 휩쓸었다. KBO리그 역사상 타격 3관왕은 이만수(1984년·삼성)와 이대호(2006년, 2010년)밖에 이루지 못한 대기록이다. 그만큼 그의 타격 능력은 누구와 견줘도 손색이 없다. 2015년 일본프로리그(NPB)에 진출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소프트뱅크 호크스를 2년 연속 정상으로 이끌면서 한국인 선수 최초로 재팬시리즈 최우수선수(MVP·2015년)로도 뽑혔다.

미국프로야구(MLB)에서도 시애틀 매리너스 소속으로 1년간 뛰면서 준수한 성적(104경기 출전에 타율 0.253, 14홈런, OPS 0.740)을 남겼다. 한·미·일 프로에서 전부 통한다는 사실을 스스로 입증해 냈다. 이대호의 KBO리그 통산 성적은 1829경기 출전에 타율 0.307, 351홈런, 2020안타, 1324타점. 이 기록에는 물론 일본·미국에서의 5년간 성적이 빠져있다. KBO에서는 한 구단에서만 계속 뛴 프리미엄까지 갖추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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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KBO 은퇴 투어는 이승엽 단 한 번뿐

국가대표 성적도 빼어나다. 이대호는 2006 도하아시안게임 때 처음 성인 대표팀 태극마크를 달았고, 2019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까지 총 51경기에 출전해 타율 0.323(167타수 54안타), 7홈런, 49타점, OPS 0.951을 기록했다. 이 같은 그의 성적은 이승엽(39경기 출전에 타율 0.338, 10홈런, 44타점, OPS 1.051)과 비교해서도 그리 뒤처지지 않는다. 대표팀에서 뛴 경기 수는 오히려 이대호가 더 많다. 이대호는 2008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2009 WBC 준우승,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 금메달, 2015 프리미어12 우승 때 대표팀 멤버였다. ‘조선의 4번 타자’라는 말은 그냥 생겨난 게 아니다.

이대호의 존재감은 그가 메이저리그에서 돌아온 2017 시즌에 잘 드러났다. 4년 150억원이라는 초대형 계약의 무게를 견뎌내며 롯데를 5년 만에 포스트시즌 무대에 올려놨다. 이대호는 그해 단 2경기에만 결장하며 타율 0.320, 34홈런, 111타점의 성적을 냈다. 비록 롯데 전력상 데뷔 후 지금껏 한국시리즈 우승반지를 껴보지는 못했으나 충분히 야구팬들의 박수를 받으며 은퇴하기에 모자람이 없는 성적이다. 하지만 이대호를 향한 팬들의 시선은 그리 호의적이지만 않다. 이유가 있다.

한국프로야구 첫 은퇴 투어의 주인공은 이승엽(삼성·현 KBO 홍보대사)이었다. 이승엽의 은퇴 투어에 대한 이견은 많지 않았다. 그는 아시아 최다 홈런 신기록을 세웠고, 소속팀 삼성의 우승을 여러 차례 이끌었다.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한 경기에서는 ‘병역 브로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극적인 모습을 여러 차례 연출했다.

홈런공을 잡기 위한 이른바 잠자리채 열풍까지 몰고 올 정도로 ‘이승엽’이라는 이름 석 자는 야구팬뿐만 아니라 야구를 모르는 일반인조차 대부분 알았다. 이 때문에 이승엽이 은퇴를 예고했던 2017 시즌에 이뤄진 은퇴 투어는 감동의 연속이었다. 해당 구장에서 마지막 경기가 열리기 직전 두 팀 선수들은 도열해 레전드와 작별을 고했다. 은퇴 선물 목록도 큰 화제를 불러모았다.

그렇다면 이대호의 은퇴 투어에는 왜 팬들이 거부감을 느낄까. 2020 시즌 박용택을 떠올리면 된다. 박용택의 업적도 대단했다. 한 구단 프랜차이즈로만 뛰면서 KBO리그 통산 최다 안타 기록(2504개)을 썼다. 통산 성적은 타율 0.308, 213홈런, 1192타점. 그라운드 밖에서도 그는 많은 선행을 이어갔다. 그는 모두의 박수를 받으며 그라운드를 떠날 자격이 충분했다. 하지만 마지막 시즌 때 그의 은퇴 투어 얘기가 입길에 오르자 일부 팬은 국가대표 활약 여부와 2011년 타격왕 논란을 꺼내며 거센 거부반응을 보였다. 결국 박용택이 은퇴 투어를 고사하면서 여론은 잠잠해졌으나 모두에게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이대호의 경우는 한국시리즈 우승이 없다는 점과 선수협회 회장 때 일이 걸림돌이 된다. 이대호는 판공비 논란으로 회장직을 불명예스럽게 물러난 바 있다. 박용택과 이대호 사례에서 보듯이 인성적으로나, 기록적으로 조금만 흠집이 있으면 팬들은 은퇴 투어 반대부터 한다. 사실 이승엽 은퇴 투어 때도 일부 팬이 반대하기는 했다. 사인 거부 일화나 그라운드 난투극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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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 이승엽이 2017년 9월30일 잠실야구장에서 LG 트윈스가 마련한 은퇴 투어 행사에서 LG 선수들의 박수를 받고 있다. 왼쪽의 LG 박용택 선수는 이후 끝내 은퇴 투어에 실패했다.ⓒ연합뉴스

“서글프다” “이대호도 안 된다면 누가?”

야구계는 이대호의 은퇴 투어 논란이 그저 안타깝다. 이승엽은 “서글프다”고까지 말한다. 이대호의 친구이기도 한 추신수(SSG) 또한 “이대호가 은퇴 투어를 안 하면 누가 할 수 있을까”라고 되묻는다. 이대호 자신은 논란을 의식해서인지 은퇴 투어에 대해 선을 긋는다. 다만 “(각 구장에서) 마지막 경기를 할 때 현장 팬들에게 사인을 해줄 수 있는 시간은 갖고 싶다”고는 말한다.

결론은 은퇴 투어의 기준이 너무 높다는 것이다. 박용택의 은퇴 투어가 거부당한 것도 하나의 기준점이 되어버렸다. “박용택도 은퇴 투어를 못 했는데?”라는 식으로 고착화된 것이다. 만약 이대호마저 은퇴 투어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차후 “이대호보다 어떤 점이 낫지?”라는 반대 의견이 나올 것이 자명하다. 양현종(KIA), 최정(SSG) 등 각 팀 프랜차이즈 스타의 은퇴 시기가 다가올 때마다 논란은 빚어질 것이고, 그때마다 팬심은 갈라져 충돌할 것이다. 이승엽의 말대로 참 서글픈 일이다.

KBO리그는 올해로 출범 40주년을 맞는다. 리그의 전통은 구단이나 선수만 만들어가는 게 아니다. 팬들도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승엽의 은퇴 투어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어서는 안 된다. 각 구단에서 영구결번으로 추대될 만한 선수에 대해서는 다른 구단의 팬들도 예우를 해줘야만 한다. 그래야만 자신들이 응원하는 구단의 프랜차이즈 스타도 예우를 받는다. 반대는 또 다른 반대만 부를 뿐이다.

나 구단, 그리고 선수협회의 적극적인 의지 또한 필요하다. 그들이 야구 레전드에 대해 고개를 갸웃하면 다른 이들도 그렇게 한다. 이대호에 대한 호불호는 분명 갈린다. 하지만 이대호가 한국프로야구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선수임은 부정할 수 없다. 나무가 아닌 숲을 보는 객관적 판단이 필요한 때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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