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업계 큰 별’ 김정주가 걸어온 길
  • 송응철 기자 (sec@sisajournal.com)
  • 승인 2022.03.02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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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 온라임 게임 ‘바람의 나라’ 아버지
게임 불모지에서 새로운 길 개척한 리더
김정주 넥슨 창업자 ⓒ연합뉴스
김정주 넥슨 창업자 ⓒ연합뉴스

김정주 넥슨 창업자(NXC 이사)가 향년 54세로 유명을 달리했다. 게임 불모지였던 국내 게임업계에서 새로운 길을 개척했고, 제1 부호의 반열에 올랐지만 마음의 병을 이기진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전부터 우울증 치료를 받아온 김 창업자는 최근 증세가 악화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1968년생인 김 창업자는 올해 창립 28주년을 맞는 넥슨을 설립, 국내 게임산업을 이끌던 리더였다. 1991년 서울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한 그는 1993년 카이스트 전산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1994년 동기인 송재경 엑스엘게임즈 대표와 넥슨을 공동 창업했다. 서울 역삼동의 작은 오피스텔이 시작이었다. 초창기 넥슨은 웹오피스라는 인터넷 솔루션을 개발했다. 게임 제작을 위한 자금을 마련 차원이었다.

창업 2년 만인 1996년 김 창업자는 ‘바람의 나라’라는 온라인 게임을 세상에 내놨다. 만화가 김진의 동명의 작품을 원작으로 만든 세계 최초의 그래픽 온라인 게임이었다. ‘바람의 나라’는 당시 인터넷과 PC방의 대대적인 보급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출시 이듬해인 1997년부터는 서비스를 세계 각국으로 확대하기 시작했다. 올해 서비스 25년차를 맞은 ‘바람의 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PC 온라인 게임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돼 있다.

김 창업자의 두 번째 작품은 1997년 출시한 ‘어둠의 전설’이었다. 이후 1998년 ‘알렌시아’와 1999년 ‘퀴즈퀴즈’를 차례로 선보였다. 특히 퀴즈퀴즈는 한국 온라인 게임 역사상 최초로 반(半) 유료화를 도입해 성공을 거뒀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에도 넥슨은 ‘크레이지 아케이드’와 ‘카트라이더’ ‘메이플스토리’ 등 히트작을 내놓으며 게임업계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했다.

출시한 게임들을 연이어 성공시킨 김 창업자는 2001년부터 국내외를 오가며 인수·합병(M&A) 작업에 몰두했다. 2004년 메이플스토리 개발사인 위젯스튜디오 인수를 시작으로 2005년 엔텔리전트, 2006년 두빅엔터테인먼트, 2008년 네오플, 2010년 엔도어즈와 게임하이, 2011년 JCE, 2015년 불리언게임즈 등을 연이어 품에 안았다.

김 창업자는 2011년 국내 게임업계 최초로 넥슨을 일본 증시에 상장시키면서 업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또 타사의 게임을 서비스하는 퍼블리셔로 사업영역을 넓히고, 모바일 게임 분야까지 성공적으로 진출하며 승승장구했다. 그 결과 넥슨은 국내 게임업계 최초로 연매출 1조원을 달성했고, 2020년엔 매출 3조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이처럼 승승장구하는 가운데 2019년에는 넥슨 매각설이 제기되며 업계에 충격을 주기도 했다. 김 창업자와 가족이 보유한 NXC 지분 98.6%를 매각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김 창업자의 지분 가치가 10조원을 상회할 것으로 추산되면서 국내 M&A 사상 최대 규모의 거래가 이뤄지리란 관측이 나왔다.

그러나 김 창업자의 NXC 지분 매각은 2019년 6월 최종 무산됐다. 적절한 인수자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김 창업자의 경영 의지가 꺾인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그러나 김 창업자는 2020년부터 ‘게임사를 넘어 종합 엔터테인먼트사로 도약하겠다’며 신사업 진출 의지를 밝혔다.

이를 위해 넥슨은 지난해 6월 영화·드라마 제작사 AGBO에 6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앞서 지난해 3월에는 일본의 반다이남코홀딩스와 세가사미홀딩스, 코나미홀딩스 등에 1조원을 투자했다. 이들 기업이 모두 글로벌 IP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업계에서는 넥슨이 영상 콘텐츠를 앞세워 세계 시장을 공략에 나설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사업 외적으로 김 창업자는 사회공헌 활동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김 창업자는 또 2018년 ‘1000억원 규모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자녀에 경영권을 승계하지 않겠다’고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와 협력해 현재 서울에만 있는 어린이재활병원이 전국 주요 권역에 설립할 수 있도록 하고 청년들의 벤처 창업투자 지원 등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일들로 기부를 확대해 나가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는 특히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사회공헌 활동에 관심을 보여왔다. 넥슨의 출연금과 김 창업자의 자금 200억원을 기부하며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 개원에 힘을 보탰다. 이 병원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장애 아동의 재활 치료에만 집중해 운영되고 있다.

넥슨은 병원 건립 이후에도 환아의 재활치료 지원 및 안정적인 운영을 지원하기 위해 지난해까지 19억2000만원을 추가 기부했다. 올해 완공을 앞둔 국내 최초 독립형 소아 전문 완화의료 제공 시설인 ‘서울대학교병원 넥슨어린이완화의료센터’에도 김 창업자의 의지가 담겼다. 김 창업자는 평소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은둔의 경영자’로 불렸지만 어린이 재활 병원 행사에는 꾸준히 참석했다.

김 창업자는 2005년 넥슨을 지주사 체재로 전환하면서 탄생한 지주사이자 글로벌 투자사인 NXC의 대표이사직을 비교적 최근까지 맡았다. 그러던 지난해 7월 이재교 NXC 브랜드홍보본부장에게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넘겼다. 향후 넥슨의 미래가 될 글로벌 투자 기회 발굴과 고급 인재 영입에 전념하겠다는 것이 사퇴의 변이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약 7개월여 만에 김 창업자가 세상을 떠나면서 넥슨을 비롯한 게임·IT업계는 비통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게임·IT업계는 물론 정치권 등 각계각층의 추모 행렬이 줄을 이었다.

그의 마지막 떠나는 길은 외롭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 창업자의 첫 게임이자 지금의 넥슨이 있게 한 ‘바람의 나라’ 내에서도 이용자들이 모여 추모식을 열었다. 추모식이 열린 장소는 게임 내 부여성 남쪽 흉가다. 게임 서비스 초기부터 존재한 이 곳은 올드팬들에게 상징적인 장소다.

게임 내 추모식에서 이용자들은 ‘바람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덕분에 게임합니다’ ‘즐겁게 하고 있어요. 회장님’ 등 김 창업자를 애도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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