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앨범은 ‘마흔 살 장기하’의 좌표”
  • 하은정 우먼센스 대중문화 전문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3.05 16:00
  • 호수 16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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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만에 첫 솔로 앨범 ‘공중부양’ 발매한 장기하

장기하가 밴드 해체 후 3년 만에 첫 솔로 앨범 ‘공중부양’을 발매했다. 활동을 쉬는 동안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그 결론은 “가장 나다운 걸 나답게 하자.” 그 결과물이 ‘공중부양’이다. 장기하는 2008년 《싸구려 커피》로 데뷔해 《달이 차오른다, 가자》 《별일 없이 산다》 《우리 지금 만나》 등 꾸준히 히트곡을 냈다. 독창성과 실험정신, 사회풍자가 담긴 다수의 히트곡으로 ‘독특하다’는 정체성이 따라다닌다.

장기하는 스스로 “이번 앨범은 지난 3년의 결과물이면서 솔로 장기하의 출발점이자 자기소개서”라고 소개했다. ‘공중부양’은 장기하가 음반의 작사, 작곡은 물론 프로듀싱, 믹싱까지 도맡으며 장기하의 세계관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온라인 인터뷰를 통해 장기하를 만났다.

ⓒ두루두루아티스트컴퍼니 제공
ⓒ두루두루아티스트컴퍼니 제공

‘공중부양’에 장기하의 정체성이 담겨있다고 설명했는데, 어떤 심경이 반영된 건가.

“‘장기하와 얼굴들’ 마지막 음반을 낸 시점부터 3년 반 정도 지났다. 처음 2년은 어떻게 음악을 할까 고민했다. 장기하라는 싱어송라이터의 바꿀 수 없는 정체성이 무엇인지도 생각했다. 내가 내린 결론은, 내 목소리를 내 목소리답게 활용하는 것, 그리고 나머지는 어떻게 바뀌든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걸 중심으로 5곡을 만들었다. 평소의 내 목소리를 노래에 담으려고 노력했고, 그 외의 부분은 목소리에 어울리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장기하와 얼굴들’ 해체 이후 솔로 앨범을 발표하기까지 3년 넘는 시간이 걸렸다. 공백이 길어진 이후가 뭔가.

“초반 2년은 일부러 음악을 만들지 않았다. 어줍잖게 밴드 때와 비슷한 음악을 만들 거라면 음반을 내는 게 의미 없다고 생각했다. 장기하라는 뮤지션이 어떤 사람인가부터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내 삶에 대한 생각도 많이 했다. 그 결과가 에세이집 《상관없는 거 아닌가》라는 책에 녹아있다. 그 2년 동안 창작보단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고, 그 후에 곡 작업을 시작했다.”

앨범 전체에서 ‘방황’이나 ‘혼란스러움’과 같은 감정들이 느껴진다.

“밴드로 활동할 땐 할아버지가 될 때까지 ‘장기하와 얼굴들’을 하고 싶었다. 그만큼 밴드를 중요하게 생각했고, 그래서 밴드를 해체하는 건 내 인생에서 아주 큰일이었다. 인생의 계획이 바뀌어서 단순히 가수 활동을 어떻게 하느냐가 아닌 어떤 인생을 살아가야 하나, 어디를 바라보고 살아야 하느냐는 생각부터 시작했다. 여행도 가보고 여러 사람을 만나 얘기도 나눠봤다. 방황과 혼란을 겪었다. 그 결과, 나한테 필요한 것과 그 외 다른 것은 필요하지 않구나, 하는 식의 결론을 얻었다. 결론을 내리고 음악을 만들었지만 방황했던 시기의 마음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완성된 음반을 듣고 어떤 느낌이 들었나.

“앨범 완성 뒤의 느낌은 늘 같다. ‘개쩐다.’ 하하. ‘장기하와 얼굴들’의 모든 앨범도 마찬가지였다. 그 생각이 안 들면 완성시키지 않는다. 물론 ‘개쩐다’라는 느낌은 완성 직후의 생각이고, 다음 날엔 생각이 바뀌기도 한다(웃음). 매일매일 시시각각 생각이 달라지지만 어쨌든 완성본을 처음 들었을 땐 늘 ‘개쩐다’ ‘명작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뮤지션이 아닌 인간 장기하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인간 장기하의 정체성은 이번 앨범 4번 트랙의 가사에 나와 있는데, 웬만하면 가만히 있고, 의미 없는 행동을 하고 싶지 않다는 것. 그게 나의 중요한 정체성 중 하나다.”

‘가장 나다운 걸 나답게 하자’라는 초심이 강조된 앨범이다. 그런 이유로 데뷔 초 때와 같이 수염도 기른 건가.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하다 보니 《싸구려 커피》를 불렀을 때 가지고 있던 정체성만 남게 되더라. 그러고 보니 어느 날부터 수염을 기르고 있더라. 문득 거울을 보니 《싸구려 커피》의 장기하가 거기 있더라. 마흔 살을 앞두고 어려 보이려고 노력하지 않고, 내 발로 40대로 걸어가겠다는 의지로 기른 건데, 이제 40대에 입성해서인지 잘라도 되겠다는 생각도 든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5집이 너무 마음에 들어 밴드를 해체한다고 말한 바 있다. 완성도 면에서 그 5집과 이번 앨범을 비교하자면.

“완성도가 100%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작업을 마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비슷한데, ‘성격’은 다르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5집은 밴드를 마무리하는 성격이었다. 밴드로 할 수 있는 건 거기까지라고 생각했고, 발전할 수 있을 만큼 했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이번 앨범은 장기하라는 싱어송라이터의 기본값이 이 정도라고 제시하는 앨범의 성격이다. 이번 앨범은 저 혼자 만들었지만 앞으로는 다양한 분과 협업을 하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앨범은 앞으로 함께할 협업자들에게 저는 이런 사람이라고 자기소개를 하고 새로운 솔로 커리어를 시작하는 앨범이기도 하다.”

해체한 ‘장기하와 얼굴들’에 대한 후회는 없나.

“그 시기에 마무리한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 없다. 그때 마무리해서 이런 형태의 음반도 낼 수 있는 것이다.”

이번에 제작한 몇몇 뮤직비디오를 보면 팝아트와 음악의 접목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쉬는 기간 동안 미술 전시나 작품을 접할 기회가 많았다. 여기저기 많이 다녔고, 전문가에게 설명도 들을 기회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재미있더라. 결국엔 대중예술도 ‘개념예술’(특정의 완성된 상태를 의도하지 않고 창작의 이념이나 과정을 중시하는 예술)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정확히 어떤 작품, 어떤 작가가 내게 영향을 끼쳤는지 모르겠지만 은연중에 영향을 받은 것 같다.”

늘 그렇듯 가사가 재미있다. 일상 속 우리가 느끼는 소소한 심정들을 잘 포착했다.

“경기도 파주 출판도시 쪽에 살았는데, 가사는 거기서 다 썼다. 이런 루틴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먹고 임진각으로 차를 몰고 간다. 신호도 안 걸리고 차도 별로 없어서 계속 그냥 쭉 갔다. 철원까지 가면 사람이 멍해진다. 멍해지다 보면 뭔가 떠오르더라. 물론 안 떠오르는 날도 있는데, 문장 하나가 떠오르면 그걸 건져 오는 식이다. 집에 와서 음성 메모로 녹음을 하는 것을 시작으로 작사, 작곡 단계까지 갔다. 작사, 작곡이 거의 동시에 이루어졌다.”

정체성과 삶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하는데, 그래서 결론이 났나.

“지금 마흔 살이 된 장기하라는 음악인의 좌표가 이번 음반이다. ‘여기서부터 시작하겠습니다’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나는 이제 누구처럼 되고 싶은 게 없다. 예전에 배철수 선배처럼 되고 싶었는데 누구처럼 되고 싶다고 해서 되지도 않고, 시대가 변하고 있어 여러 상황이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 결국엔 내 길을 제시하는 사람은 나 자신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40대 이후에는 롤모델 없는 삶을 살아보고 싶다.”

2년의 팬데믹이 음악에 영향을 끼쳤는지도 궁금하다.

“죄송스러운 이야기인데, 팬데믹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았다. 팬데믹과 상관없이 활동을 접고 나에게 집중해 보자는 생각이었다. 무대에 설 생각이 없었다. 그냥 가만히 지내며 내면에 집중하는 시간을 보냈다.”

싱어송라이터 장기하를 설명하는 한 문장은.

“‘가만히 있으면 되는데 자꾸만 뭘 그렇게 하려고 해.’ 쓸데없는 짓을 하기보다는 가만히 있자는 주의다.”

3월에 단독공연도 계획 중이다. 기대된다.

“이번 솔로 음반은 ‘결과’보다는 ‘시작’의 의미가 짙다. 그런 의미로 ‘장기하와 얼굴들’의 음악을 듣고 싶은 분들도 있겠지만 이번 콘서트에서는 배제할 것이다. 밴드 구성의 공연도 하지 않을 것이다. 제가 좋아하는 전문가들과 팀을 짜서 뭔가 보여드리겠다는 마음으로 작업 중이다. 앞으로도 무언가를 꾸준히 하는 뮤지션이 되고 싶다.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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