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석화부터 아워홈까지…‘골육상쟁’ 끊이지 않는 재계
  • 박창민 기자 (pcm@sisajournal.com)
  • 승인 2022.03.08 12:00
  • 호수 16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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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주총 시즌 앞두고 되살아난 경영권 전쟁 망령
피도 눈물도 없는 다툼에 고소·고발도 난무  

회사 경영권을 쟁취하기 위한 재벌 총수 일가의 ‘골육상쟁’이 최근 잇따라 불거지고 있다. 경영권이나 재산 다툼은 물론이고, 계열 분리 과정에서 친족 간 다툼도 매번 반복되고 있는 상황이다. ‘형제의 난’부터 ‘조카의 난’까지 피붙이 간의 경영권 분쟁에는 말 그대로 피도 눈물도 없었다. 경영 전문가들은 회사를 사유화한 주요 재벌들이 3세나 4세로 무차별적인 핵분열을 하다 보니 ‘밥그릇 싸움’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꼬집고 있다.   

금호그룹이 대표적이다. ‘형제의 난’으로 극심한 내홍을 겪었던 금호가는 최근 ‘조카의 난’으로 또다시 경영권 분쟁에 돌입했다. 이번에는 박찬구 금호석유화학(금호석유) 회장과 조카인 박철완 전 금호석유 상무 간 대결이다. 박 전 상무는 박 회장의 둘째 형인 고(故) 박정구 금호그룹 회장의 막내아들이다. 박 회장과 박 전 상무는 삼촌과 조카 사이다.

ⓒ시사저널 최준필·연합뉴스

그칠 날 없는 재벌가 ‘밥그릇 싸움’

금호석유 관계자에 따르면 박 전 상무는 최근 금호석유에 투명성과 주주 가치 제고 등의 안건이 담긴 주주제안을 발송했다. 이와 함께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금호석유와 OCI가 맞교환한 자기주식에 대한 의결권 행사를 금지해 달라는 가처분 신청도 제기했다. 아울러 박 전 상무는 주주제안에서 임기가 만료되는 사외이사 2명과 사내이사 후임에 대한 추천권도 주장했다. 박 전 상무는 사내이사 후보로 자신을 직접 추천하기도 했다.

박 전 상무의 이 같은 움직임은 금호석유 이사회에서 의결권을 확보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그가 금호석유와 OCI가 맞교환한 자기주식에 대한 의결권 행사 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금호석유는 지난해 12월 OCI와 315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맞교환했다. 금호석유는 이 같은 결정이 전략적 사업 제휴 관계 강화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상무는 숙부인 박 회장의 경영권 방어·강화를 위한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이번 경영권 분쟁에서 최대 관건은 박 회장과 박 전 상무의 우호세력 확보다. 표면적으로는 박 전 상무의 우호지분이 박 회장의 우호지분에 못 미치는 상황이다. 박 회장의 우호지분은 자녀들을 포함해 총 14.84%다. 반면 박 전 상무의 금호석유 우호지분은 그의 세 누나와 어머니, 장인 등을 포함해도 10.08%로 평가되고 있다.

하지만 국민연금과 소액주주들의 마음을 돌린다면 박 전 상무 측의 의결권에 힘이 실릴 수도 있다. 실제로 일부 소액주주는 금호석유가 최대 실적을 달성했지만, 주가가 오르지 않아 현 경영진에 대한 불만을 갖고 있는 걸로 알려졌다. 박 전 상무는 이런 상황을 지렛대 삼아 숙부와 대결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모습이다.

두 사람의 경영권 분쟁은 지난 2020년 금호그룹 인사 이후 본격화됐다. 박 회장은 당시 인사에서 장남인 박준경 금호석유 상무(현 부사장)를 전무로 승진시켰으며, 조카인 박 전 상무는 승진에서 배제했다. 이때부터 숙부와 조카 사이에 불편한 기류가 감지됐다.

박 전 상무는 지난해 3월 주총에서 박 회장의 특수관계 해소와 이사진 교체, 배당 확대 등을 주장하며 숙부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러나 박 전 상무는 박 회장과의 표 대결에서 완패했다. 박 회장은 ‘회사에 대한 충실 의무 위반’ 등을 이유로 박 전 상무를 해임했다. 이 때문에 이번 금호석유 경영권 분쟁이 조카의 난 ‘2라운드’라는 평가가 나온다.

대구 토종 건설기업인 화성산업에서도 최근 총수 일가의 경영권 다툼이 불거졌다. 창업주 뒤를 이은 2세 경영은 형제 공동경영 체제로 간신히 지탱해 왔지만, 3세 경영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결국 형제간 경영권 분쟁이 일어난 것이다. 화성산업은 1958년 설립된 중견 건설업체로, 도급순위(시공능력평가)는 44위다.

ⓒ뉴시스

숙질·형제·남매 간 인정사정 없는 분쟁

비교적 최근까지 화성산업은 고(故) 이윤석 창업주의 장남인 이인중 명예회장과 차남인 이홍중 회장의 ‘형제경영’ 체제가 유지됐다. 2019년 이인중 당시 회장은 명예회장으로 경영에서 한발 물러나면서 아들인 이종원 전무를 대표이사 사장으로 내세웠다. 이 시기에 사장이던 이홍중 회장은 화성산업 회장직을 맡게 됐다. 오너 2세와 3세가 함께 경영 일선에 나선 것이다.

화성산업의 형제경영에 금이 간 건 지난해 말 이홍중 회장이 화성개발이 보유한 화성산업 주식 112만 주(9.27%)를 동진건설에 매각하면서다. 이 때문에 동진건설은 기존 12만 주(0.96%)에 더해 화성산업 지분 10.23%를 가진 최대주주가 됐다. 동진건설은 이홍중 회장과 그가 지배하는 화성개발 등이 60%에 가까운 지분을 소유한 회사다.

문제는 화성개발이 보유한 화성산업 지분은 의결권이 없던 상호주였지만, 동진건설로 넘어가면서 의결권이 복원됐다는 점이다. 결국 차남이 동진건설 의결권(10.23%)을 확보해 지배력을 끌어올린 셈이다.

이로써 이인중·이홍중 형제의 의결권 지분은 비등해졌다. 이인중 명예회장(9.34%)과 아들 이종원 사장(5.31%)의 화성산업 지분율은 14.65%다. 이홍중 회장(5.2%)과 동진건설(10.23%)의 지분율은 15.43%다. 이홍중 회장이 화성산업 경영권을 놓고 이인중 명예회장 부자와 맞설 수 있는 구도가 형성된 것이다.

이인중 명예회장은 동생인 이홍중 회장을 비롯해 화성개발과 동진건설 이사진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이 명예회장 측은 “이 회장이 화성산업 지분을 매각하면서 상호 공동경영상 신뢰를 깨뜨리고 주주 가치를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이홍중 회장은 이번 사태의 원인을 이인중 명예회장 측에 돌렸다. 이 회장 측은 입장문을 통해 “명예회장 측이 경영능력 부족을 인지하지 못하고, 이 회장을 경영에서 배제하려고 시도해 지금의 사태를 초래했다”고 했다. 분쟁의 장기화 여부는 이달 주주총회에서 판가름 날 전망이다. 주총 ‘표 대결’을 통해 이 회장의 사내이사 선임 여부가 갈릴 예정이다.

ⓒ뉴시스·연합뉴스

LG가 방계인 아워홈도 지난 몇 년간 ‘남매의 난’으로 치열한 경영권 분쟁을 겪었지만, 현재는 일단락되는 분위기다. 창립자 구자학 회장의 장남이자 아워홈 최대주주인 구본성 전 부회장이 보유지분 전량을 매각하고,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뗀다는 입장을 밝히면서다. 아워홈은 창립자인 구자학 전 회장의 1남 3녀가 전체 주식의 98%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 이 가운데 구 전 부회장은 지분 38.6%로 최대주주다.

구 전 부회장은 여러 구설에 오르내리며 아워홈의 ‘아픈 손가락’으로 불린다. 그는 지난해 6월 보복운전을 하고 상대 운전자를 자신의 차로 들이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 때문에 지난해 세 자매가 구 전 부회장을 이사회에서 해임했다. 후임으로는 막내인 구지은 현 부회장이 대표이사를 맡았다. 구 대표는 2004년 아워홈에 입사해 4남매 가운데 유일하게 경영수업을 받으면서 후계 1순위로 지목됐다. 하지만 LG가의 ‘장자 승계 원칙’에 따라 구본성 전 부회장이 2016년 경영에 참여했으며, 구지은 대표는 자회사 캘리스코 대표직을 맡으면서 후계에서 밀려났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남매간 갈등이 본격화됐다. 아워홈이 캘리스코에 식자재 납품을 중단하며, 캘리스코가 공급선을 신세계푸드로 변경하기도 했다. 하지만 구 전 부회장이 지난해 보복운전으로 법적 처벌을 받으면서 판세가 뒤집혔다. 구 전 부회장은 지난해 11월 회삿돈을 횡령·배임한 혐의로 입건돼 조사를 받고 있다. 아워홈은 구 전 부회장이 월급과 성과급을 정해진 한도보다 더 많이 받은 정황을 발견하고 감사를 벌여 고소한 것으로 전해진다.

오너 일가의 ‘황제 경영’이 원인

이렇듯 기업의 경영권을 놓고 벌어지는 친족 간 다툼은 그야말로 피도 눈물도 없다. 실제로 삼성, 현대, 한진, 대림, 효성 등 주요 대기업에서는 최소 한 번 이상 경영권이나 재산을 놓고 형제간 분쟁이 있었다. 1세대로부터 기업을 물려받은 형제끼리의 다툼과 분쟁이 통과의례처럼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국내 주요 재벌가 중에서 형제의 난이 일어나지 않은 곳을 찾기가 더 힘들 정도다.

그동안 지속적으로 재벌가들의 다툼이 발생한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전문가들은 총수가 절대권한을 행사하는 이른바 ‘황제 경영’으로 상징되는 후진적 지배구조가 원흉이라고 지적한다. 기업의 소유와 경영이 엄격히 분리된 선진국 기업과 달리 역사가 짧은 국내 기업들은 오너 일가가 소유와 경영권을 장악하고 있다보니 시간이 지나고, 세대가 거듭될수록 분쟁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경영사학회는 ‘경영 승계 역사와 상속세에 관한 연구’ 논문을 통해 “기업을 경영자, 종업원, 주주 등 이해관계자의 합의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내 것’ 혹은 ‘내 가족의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경영승계 과정에서 갈등을 일으키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런 국내 재벌 문화는 경제·사회적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다. 경영권 세습으로 전문적인 경영능력을 갖춘 사람을 기용하지 않고, 오너 일가들이 요직을 차지하게 되면서 효율적인 기업 운영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아울러 가족 간 경영권 분쟁이 커질 경우에는 언론을 통한 상호 비방과 고소·고발로 기업 리스크를 가중시킨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그동안 일어났던 주요 대기업 오너 일가의 권력 다툼은 대부분 사정기관의 전방위적인 기업 비리 수사로 이어졌다. 이는 곧바로 해당 기업의 주가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투자자의 몫이 된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기업이 형제의 난이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 리스크를 가지고 있다. 아직 창업주가 건재하거나 2세들의 퇴진이 다가오고 있음에도 후계 구도가 명확하지 않은 기업이 많기 때문이다. 이런 기업들은 승계 리스크를 잘 관리해야 하며, 세습이 아닌 전문경영인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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