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양당을 견제할 ‘제3지대 주자’, 이제 심상정 정의당 후보 홀로 남았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사퇴를 결정하면서다. 정치권에서는 안 후보의 사퇴가 정의당에는 ‘반등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다당제를 지지하는 유권자, 중도층 여성 표심 일부가 정의당으로 향할 수 있다는 기대에서다. 과연 심 후보는 20대 대선에서 의미 있는 성적표를 받아들 수 있을까.
여론조사기관에 따르면, 심 후보는 지난해 10월12일 정의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이후부터 대선 토론이 진행된 최근까지 지지율이 줄곧 5%를 넘지 못했다. 한 조사에서는 허경영 국가혁명당 대선 후보보다도 지지율이 뒤처지는 결과를 받아들기도 했다. 심 후보의 정치 경력과 대중 인지도에 비하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다.
지지율이 정체되면서 심 후보도 주변에 좌절감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월12일에는 당직자들과의 연락을 끊고 선거 일정 중단을 선언하기도 했다. 심 후보는 자택에 머물며 정의당의 위기 원인을 성찰했다고 한다. 심 후보는 5일 뒤 일정을 재개하면서 “이번 대선에서 국민들께 심상정과 정의당의 재신임을 구하겠다”며 “그 길이 아무리 고되고 어렵더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후 심 후보의 ‘공격수 본능’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주최하는 세 차례의 TV토론회가 심 후보에겐 기회가 됐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도덕성과 전문성을 전방위로 공격하면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토론 과정에서 심 후보는 “(김건희씨 녹취록으로 인한) 2차 가해로 고통받는 (안희정 성폭행 사건) 피해자 김지은씨에게 이 자리를 빌려 사과할 용의가 있냐”고 윤 후보에게 물었고, 이에 윤 후보가 직접 사과에 나서기도 했다. 그는 이 후보의 ‘대장동 의혹’에 대해서도 “투기 세력과 결탁한 공범이냐 활용당한 무능이냐”라며 강하게 추궁했다.
이에 대선 토론의 ‘MVP’로 심 후보를 뽑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았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마저 2월3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심 후보가 (토론에서) 상당히 돋보인 부분이 있었다”고 평가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토론의 실력으로만 보자면 심 후보가 단연 돋보였다”며 “특히 윤 후보가 ‘일본군이 (한국에) 들어올 수 있다’는 등의 발언을 하며 논란을 불렀는데 이런 실언 역시 심 후보가 (윤 후보를) 거침없이 몰아세우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심 후보의 선전에도 이번 대선에서 정의당의 선전을 자신하는 전문가들은 많지 않다. ‘정권교체vs정권사수’라는 구도가 대선판을 좌우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21대 총선부터 지적받아온 정의당 내 고질적인 인재난과 부족한 지역 기반, 의제 설정 부재라는 ‘3중고’가 심 후보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변수가 생겼다. 안 후보가 사퇴하면서 대선판이 3자 구도로 재편된 것이다. 이로써 안 후보를 지지했던 일부 중도‧보수 유권자들의 표심은 윤 후보에게 흡수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안 후보의 지지 기반이었던 △거대 양당 후보 비토 세력 △다당제 찬성파 △2030 여성 유권자 등의 표심은 공중에 뜬 셈이다. 진보 진영 일각에선 이 표심 중 일부가 심 후보에게 향할 수 있다는 기대 섞인 관측이 나온다.
이 같은 기대에는 심 후보가 증명한 ‘저력’이 있다. 지난 2017년 19대 대선에서 심 후보는 ‘심블리’라는 별명을 얻으면서 6%의 지지율로 진보정당 역사상 최대 득표를 기록한 바 있다. 정의당 역시 한때 15% 넘는 지지율을 자랑하며 21대 국회에서 교섭단체 구성을 노리기도 했다. 심 후보는 지난 3일 중앙선관위 주관 3차 토론 마무리 발언에서 “지지율 10%를 넘기고 싶다”며 “기득권 양당 정치를 시민의 삶을 지키는 다당제 정치로 바꾸고 싶기 때문”이라고 포부를 드러냈다.
민주당 한 초선의원은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야권 단일화로) 오히려 진보 표심 중 상당수가 (정의당이 아닌) 민주당으로 결집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면서도 “안 후보를 지지했던 지지층은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 모두를 싫어하거나 다당제를 꿈꿨던 사람들이다. 이들 모두가 한 표를 행사한다면 심 후보가 지금보다는 높은 지지율을 기록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