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감 옅어진 김종인‧이해찬, ‘킹 메이커’는 없었다
  • 박성의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22.03.08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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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 선대위에서 중도 하차…李, 칼럼 쓰며 ‘간접지원’
“선거 끝나면 사라지는 ‘킹 메이커’…이제 낡은 전략 돼”

대선 때마다 여의도에는 ‘킹 메이커’가 등장했다. 관록과 지략을 앞세워 선거판을 지휘하는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김종인 전 국민의힘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이 주인공이다. 그러나 20대 대선이 하루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두 정치인의 활약은 기대보다 미미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과연 무엇이 노련한 두 ‘킹 메이커’의 존재감을 가린 것일까.

여야 대선 후보가 추려진 지난해 11월, 정치권은 일제히 두 ‘킹 메이커’에게 손을 내밀었다. 민주당은 이해찬 전 대표를 선대위 상임고문으로 불러드렸고, 국민의힘은 삼고초려 끝에 김 전 위원장을 총괄선대위원장으로 추대했다. 두 정치인은 한국 정치계의 좌장이자 큰 선거를 지휘했던 전략가다. 여야 선대위 관계자들은 여야 후보 모두 선거 경험이 부족한 탓에 ‘킹 메이커’의 조력이 절실했다고 입을 모은다.

경기도를 지역구로 둔 민주당 한 의원은 “선거는 치열한 고지쟁탈전이나 다름없다. 지능이나 인품과 별개로 경륜과 경험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라며 “노련한 지휘관이 필요한데, 두 사람(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이재명 민주당 후보) 모두 여의도 경험이 ‘0선’이지 않나. 그렇다보니 ‘선배’의 조력이 절실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선대본부 한 관계자는 “(김 전 위원장의) 지혜와 경험은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이다. 이제 갓 정치권에 데뷔한 윤 후보에게는 당연히 필요했던 좌장”이라고 평가했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이 10일 오후 서울 마포구 다리소극장에서 열린 자신의 저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 출간 기념 청년포럼에서 마스크를 벗고 있다. ⓒ연합뉴스
김종인 전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이 2월10일 오후 서울 마포구 다리소극장에서 열린 자신의 저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 출간 기념 청년포럼에서 마스크를 벗고 있다. ⓒ연합뉴스

다만 ‘킹 메이커’가 호출된 게 비단 이번 대선만의 일은 아니다. 다선 의원들이 후보로 추대됐을 때도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이들을 호출했다. 심지어 김 전 위원장의 경우 두 당 모두에서 등판하기도 했다. 전문가 일각에서는 ‘킹 메이커’가 현실 정치가 아닌 선거철에만 영향력을 발휘하는 현실이, 한국 정치의 ‘후진성’을 보여준다는 지적도 나온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우리 정당들은 평소엔 지지층과 극단적인 지지층을 결집하는 진영 논리를 앞세워 활동한다. 이른바 ‘당심(黨心) 우선’이다. 그런데 대선처럼 큰 선거가 열리면 당은 ‘민심 우선’이 돼야 한다”고 했다. 이어 “갑자기 이게 될 리가 없다. 중도 성향의 유권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선거 도사’라 불리는 이들을 소환한다. 선택지가 이것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그렇다고 킹메이커라 불리는 이들이 선거 이후 집권 과정에서 책임을 지지도 않는다. 정당 스스로 능력 부족과 책임 방기를 자인하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30년 이상 정치 컨설턴트로 활동해온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대선후보들이 스스로 상왕을 모시겠다고 자처했지만, 효과도 별로 없을 뿐만 아니라 정당들이 지금까지 제대로 된 정당으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증거다. 후보도 당도 한심하다”고 잘라 말했다.

역대급 초박빙의 판세 속, 과연 두 좌장은 ‘이름값’을 해냈을까. 우선 김 전 위원장은 경륜을 발휘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국민의힘 선대위에 합류했지만, 이후 윤 후보가 1월5일 선대본부를 개편하는 과정에서 김 전 위원장과의 결별을 선언하면서다. 김 전 위원장은 윤 후보의 결심을 알게 된 1월4일, 선대위 실장단과 저녁 식사를 하며 “대한민국 국운이 다했다”고 한탄했다는 후문이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이 1월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선대위 미래시민광장위원회 출범식에서 축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이 1월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선대위 미래시민광장위원회 출범식에서 축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 전 위원장이 대선판에서 퇴장한 반면 이 전 대표는 끝까지 이 후보를 지원사격하고 있다. 다만 캠프 지휘는 이낙연 민주당 총괄선대위원장에게 맡겼다. 이 전 대표는 주로 이 후보의 소통용 애플리케이션인 ‘이재명플러스’에 칼럼을 쓰는 형태로 ‘여론전’을 전담하는 모양새다. 다만 이 전 대표의 주장이 이 후보의 ‘확장성’을 되레 좁히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일례로 지난 1월28일 이 전 대표는 이 후보 유튜브 채널과의 인터뷰에서 “조국이 멸문지화가 됐잖나. (선거에서 지면 그렇게 될 것 같다는) 그런 느낌을 시민들이 받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후보가 ‘조국 사태’를 사과한 것과는 다소 결이 다른 발언이다.

진영을 넘나들던 ‘킹 메이커’는 당 밖으로 밀려났고, 당을 주름잡던 ‘킹 메이커’의 역할은 대폭 줄어든 모양새다. 전문가 일각에선 ‘선거 구도’와 ‘세대’의 변화 탓에 ‘킹 메이커’가 활약할 수 있는 기반이 대폭 축소됐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나이 든 정치인’을 앞세워서는 실용적, 스윙보터적 특성이 강한 2030세대의 지지를 끌어내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교수는 “정치권이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모습이다. 당내에서 영향력 있는 인사를 선거 때마다 불러내지만, 정작 선거 판세를 좌우하는 중도층이나 젊은 세대에게 그들은 ‘흘러간 물’일 뿐”이라며 “차라리 기존 정치인들과 다른 참신한 인물을 선대위 전면에 내세우는 게 전략적으로 나은 판단일 수 있다. ‘킹 메이커’를 계속 호출하다가는 선거에서 역풍을 맞게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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