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메이저리그에서 정처 없이 떠돌았던 코리언 5인방
  • 이창섭 SPOTV MLB 해설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3.12 16:00
  • 호수 1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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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 갈등으로 모든 일정 불투명해진 상황 길어져
올 시즌 반전 꾀했던 류현진·최지만 컨디션 조절에 난항
김광현은 결국 미국 생활 청산

메이저리그가 11일(한국시간) 간신히 노사협약에 합의했다. 지난해 12월2일부터 99일간 이어진 역대 최장기간 직장폐쇄도 마침내 막을 내렸다. 그동안 올스톱됐던 스프링캠프는 14일부터 열리고 정규시즌은 4월8일 개막할 예정이다. 

메이저리그는 구단주들과 선수노조가 5년마다 노사협약(Collective Bargaining Agreement)을 갱신한다. 이 노사협약을 바탕으로 리그가 운영된다. 2016년 12월 노사협약을 맺은 양측은 2021년 12월 새로운 노사협약을 마련해야 했다. 그러나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 노사협약 과정에서 힘없이 끌려다녔던 선수노조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나왔다. 구단주들의 강경한 태도에도 절대 물러서지 않았다. 그러자 구단주들은 메이저리그의 모든 업무를 중지시키는 직장폐쇄를 선언했다. 냉전의 시작이었다.

3월4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개인 훈련 중인 류현진(토론토 블루제이스)이 메이저리그 동료였던 야시엘 푸이그(키움 히어로즈)를 만나 대화하고 있다.ⓒ연합뉴스
3월4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개인 훈련 중인 류현진(토론토 블루제이스)이 메이저리그 동료였던 야시엘 푸이그(키움 히어로즈)를 만나 대화하고 있다.ⓒ연합뉴스

파업 장기화될수록 선수들 막대한 피해 불가피…구단주는 느긋

양측은 쉽게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았다. 직장폐쇄에 돌입한 지 44일째가 돼서야 만남을 가졌다. 그럼에도 협상은 지지부진했다.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하는 메이저리그 사무국 커미셔너도 양측의 거리감을 좁히지 못했다. 결국 정규시즌을 준비하는 스프링캠프가 미뤄졌다. 사무국은 “정규시즌이 정상적으로 개막되려면 3월1일(한국시간)까지 협상이 끝나야 한다”고 전했지만, 선수노조는 일방적으로 협상 마감일을 정하는 구단주들과 사무국의 행태가 불쾌했다. 개막은 가까워지고 있는데, 양측은 멀어지고 있었다.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갈등은 더 깊어졌다. 협상 마감일을 앞두고 뒤늦게 박차를 가했지만, 10일 협상은 끝내 결렬되고 말았다. 정상적인 시즌은 불가능해 보였다. 일각에서는 아예 시즌이 열리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도 예상했다. 그러다가 11일 극적으로 합의를 본 것이다. 

메이저리그에서 뛰던 왼손 투수 김광현이 3월8일 국내 프로야구 SSG 랜더스와 계약하고 3년 만에 KBO리그로 돌아왔다ⓒ연합뉴스
메이저리그에서 뛰던 왼손 투수 김광현이 3월8일 국내 프로야구 SSG 랜더스와 계약하고 3년 만에 KBO리그로 돌아왔다ⓒ연합뉴스

사실 구단주들은 경기가 없으면 수익도 없지만, 경기가 없는 만큼 선수들에게 돈을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 이미 억만장자인 구단주들에게는 티끌 같은 손해다. 그동안 조급해하지 않고 느긋하게 버텼던 이유다. 문제는 선수들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고액 연봉 선수들이 아닌 저액 연봉 선수들이다. 물론 고액 연봉자들의 금전적 손해는 훨씬 크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받는 타격은 저액 연봉 선수들이 더 심각하다. 책정된 금액은 적어도 생활에 미치는 비중이 다르다. 뿐만 아니라 경기 수가 줄어들수록 자신의 주가를 높일 수 있는 기회는 상실된다. 이러한 점 때문에 ‘시간은 구단주들 편’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김하성·박효준은 지명타자제 도입으로 그나마 ‘긍정적’

이번 노사협약의 장기간 파행 사태는 한국 선수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류현진은 한 시즌 개인 최다승 타이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평균자책점이 4점대에 그치는 등 좋지 않았다(14승10패 4.37, 169이닝). 올해 부진을 만회해야 하는데, 시즌이 언제 시작될지 알 수 없는 탓에 계속 한국에 머물며 개인훈련을 해야 했다. 개막에 맞춰 몸 상태를 끌어올리는 것도 어렵다. 투수는 루틴이 흔들리면 전체적으로 어긋날 수 있다. 그리고 류현진은 이제 나이(36세)도 결코 적지 않다.

최지만(32)도 제동이 걸렸다. 최지만 역시 올해, 작년의 아쉬움을 씻어내야 한다(83경기 타율 0.229, 11홈런). 소속팀 탬파베이 레이스는 올해도 우승을 노리는 팀으로, 최지만은 팀 내 입지 또한 작년보다 더 공고히 다질 필요가 있다. 또한 2년 뒤 FA(자유계약선수)가 되기 때문에 한 경기라도 더 뛰어 자신의 가치를 높여야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허무하게 시간을 보내는 건 최지만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이 터지는 상황이었다.

직장폐쇄에 갇히면서 각 구단은 메이저리그 계약을 할 수 없었다. FA였던 김광현(35)도 메이저리그에서 행선지를 찾지 못했다. 새로운 팀과 계약해야 했지만, 기약 없는 기다림에 결국 KBO리그 복귀로 발걸음을 돌렸다. 김광현은 2년 전에도 코로나19가 들이닥쳐 단축 시즌을 하면서 마음고생이 심했다. 미국살이에 지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김광현이 메이저리그에서 어떤 투수였는지 확인할 길이 없어진 건 아쉬운 부분이다.

그나마 긍정적인 건 김하성(27)과 박효준(26)이다. 구단주들과 선수노조는 올해부터 내셔널리그도 아메리칸리그와 마찬가지로 기존 투수 타석을 없애고 지명타자제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김하성의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박효준의 피츠버그 파이리츠는 내셔널리그에 속한 팀들이다. 지명타자가 생기면서 두 선수는 출장 기회를 더 많이 받을 것으로 보인다. 꾸준히 나오면 아무래도 경기 감각을 잘 유지할 수 있다. 두 선수 모두 진짜 실력 발휘를 해야 할 때다. 

김광현이 국내로 복귀하면서 메이저리그에 남아있는 한국 선수는 한 명 더 줄어들었다. 저마다 의미가 남다른 시즌이지만, 일단 뒤늦게라도 시즌이 개막하게 된 건 그나마 다행스런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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