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의 우크라 침공 진짜 의도는 따로 있다
  •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3.14 12:00
  • 호수 1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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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생존과 직결되는 ‘지정학 완충지대’에 대한 종교적 신념…무리한 전쟁 감행해 부메랑 맞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왜 2월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까. 이로 인해 국제사회의 공적 1호가 되고, 또 러시아가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혹독한 경제제재를 받게 될 것을 잘 알았을 텐데 말이다. 미국과 서방이 금융에 이어 에너지 수출마저 막으면서 러시아 경제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다.

주목되는 것은 서방은 물론 국제사회 모두가 푸틴과 러시아에 싸늘하다는 사실이다. 유엔총회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고 즉각 철군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3월2일 채택했다. 전체 193개 회원국 중 181개국이 표결에 참여해 141개국이 압도적으로 찬성했다. 러시아는 고립되고 있으며, 푸틴은 국제사회의 ‘악당’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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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6일(현지시간) 폭격을 받은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 외곽 소도시 이르핀ⓒAP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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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5일 우크라이 나인들이 이르핀강을 건너 피난하려다 파괴된 다리 밑으로 모여들고 있다.ⓒAP 연합

소련의 비극적 역사 온몸으로 겪은 가족들

일부에선 푸틴을 공산주의자로 부르면서 푸틴의 행동을 공산주의자의 군사적 모험주의로 평가한다. 하지만 푸틴은 옛 소련의 특징을 이루던 공산주의·전체주의·권위주의 중 전체주의와 권위주의는 계승했지만, 공산주의는 따르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푸틴은 사유재산 철폐와 생산수단 사회화, 그리고 중앙계획경제·배급제 등을 특징으로 하는 이데올로기 중심의 공산주의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푸틴은 1989년 11월9일 동·서독을 가르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당시 동베를린에 있던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 지국 사무실에서 시민들의 난입에 대비해 기밀서류를 소각하느라 바빴던 것으로 전해졌다. 푸틴은 난생처음 죽음의 공포를 느끼며 소련 공산체제의 비효율성과 무능함, 무기력함을 온몸으로 체험했을 것이다. 강한 나라, 자기 운명을 스스로 책임지는 나라, 국제사회가 두려워하는 나라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절실하게 느꼈을 것이다.

푸틴의 가족 배경을 살펴보면 소련과 러시아의 비극적인 역사를 온몸으로 겪은 인물임을 알 수 있다. 발트해 연안의 옛 제정 러시아 수도 레닌그라드에서 1955년 태어나고 자란 푸틴은 레닌그라드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유럽인이라는 자부심이 강한 지역이다.

푸틴의 아버지 블라디미르(이름이 같다)는 제2차 세계대전 때 해군에 징집돼 잠수함에서 근무하다 KGB 전신인 내무인민위원회(NKDV)의 파괴부대로 옮겨 반소련 파르티잔 토벌과 마을 초토화, 처형 등을 맡은 것으로 전해졌다. 공장 노동자였던 어머니 마리아는 1941년 9월8일부터 44년 1월18일까지 872일 동안 계속된 ‘레닌그라드 포위전’ 당시 이 도시에 남아 기아와 포격 속에서 지냈다. 푸틴의 큰형 빅토르는 포위 당시 디프테리아로 사망했으며, 작은형 알베르트는 유아기 때 숨졌다. 나치의 레닌그라드 포위전으로 숨지거나 부상당한 407만8000여 명의 소련인 중에는 푸틴과 같이 뼈아픈 가족사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푸틴의 외할머니는 1941년 나치 점령하에서 살해됐으며, 외삼촌은 소련군에 입대했다가 행방불명됐다. 대다수 소련 유럽 지역 주민과 마찬가지로 온 가족이 나치와 전쟁의 희생자다. 그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강한 나라’ ‘안전한 나라’라는 어젠다임을 짐작할 수 있는 개인사다.

유라시아대륙에 걸쳐 있는 러시아는 지정학적으로 ‘영향권’과 ‘완충지대’가 필요하다는 논리에 빠졌다. 영향권을 확보해 강한 나라가 되고, 안전한 나라를 위해 강한 타국과의 사이에 완충지대 또는 안전지대, 중립지대가 필수적이라는 인식이다. 푸틴은 2007년부터 공개적으로 이런 논리를 펼쳐왔다. 그는 2007년 2월 독일에서 열린 뮌헨안보국제회의에서 “나토 확장은 이 기구의 현대화나 유럽의 안보 확보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며 “이는 상호 신뢰의 수준을 낮추는 심각한 도발일 뿐”이라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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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AP 연합

두긴의 ‘지정학적 역습’ , 푸틴의 사상적 배경

나토는 이듬해인 2008년 4월 알바니아·크로아티아·마케도니아 등 옛 동유럽 국가를 신규 회원국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하지만 옛 소련권 국가인 우크라이나와 그루지야(현재 조지아)에 회원국 가입 전 단계인 ‘회원국 행동계획’ 지위를 부여하는 문제는 회원국 간 이견으로 다음 기회로 연기됐다. 결과적으로 ‘다음’은 없었다. 푸틴은 2008년 8월 국경을 맞댄 조지아를 침공해 팔목을 꺾었다. 그다음이 이번 우크라이나 침공이라고 볼 수 있다.

푸틴의 서방 압박은 국내에서 러시아 민족주의를 자극해 권위주의 통치에 힘을 실어줬다. 푸틴의 공세적인 외교정책은 러시아와 협력을 원했던 서방과 동유럽 국가에 거부감을 안겨줬다. 하지만 푸틴은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왜일까. 푸틴은 1991년 소련의 공산체제가 무너지고 맞았던 체제 전환기의 혼란 속에서 당시 보리스 옐친 대통령이 주창했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가치에 회의를 느낀 것이 분명하다. 그는 러시아의 역전을 노렸다.

푸틴은 민주주의나 시장경제 대신 러시아의 지정학적인 영향력 확대 또는 부활에 주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 푸틴의 눈에 들어온 것이 러시아의 민족주의적인 지정학 이론가인 알렉산드르 두긴이다. 1990년대부터 러시아의 ‘지정학적 역습’을 주장해온 극우적인 인물이다. 두긴은 《지정학의 근본: 러시아의 지정학적 미래》(1997)라는 책을 내고 “러시아가 미국에 맞서 유라시아대륙에 대한 과거의 영향력을 재건할 것”을 촉구했다. 국가적인 자존심이 땅에 떨어졌던 러시아인으로선 귀가 솔깃해질 수밖에 없었다.

두긴은 그 방법론으로 동맹세력을 확장하고 일부 지역은 병합할 것을 제안했다. 궁극적으로는 미국과 서유럽이 만든 정치·경제·안보 질서인 ‘대서양주의’와 ‘자유주의’에 맞서 러시아 고유의 가치를 바탕으로 새로운 세계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대서양주의의 핵심에 나토가 있는 것이다.

두긴의 주장은 극우 민족주의 성격이 강했지만, 러시아 내에선 군대·경찰은 물론 대외정책 엘리트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그의 저서는 러시아 합동참모군사대학 교재로도 사용됐다. 소위 ‘러시아의 길’이 된 셈이다. 두긴의 ‘지정학적 역습’ 주장은 푸틴이 2000년 집권 이후 대내적으로는 ‘주권 민주화’라는 미명 아래 권위주의 통치를 강화하고, 대외적으론 서구 중심의 국제 질서에 끊임없이 반기를 들며 세력 확장을 꾀해온 바탕이 됐다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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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7일 우크라이나 이르핀에서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피란길에 올랐다 러시아군의 박격포 공격을 받고 쓰러진 일 가족을 살펴보고 있다ⓒAP 연합

“지정학을 정치적 이데올로기보다 더 중시”

덴마크 코펜하겐대학 ‘비교문화와 지역 연구학과’ 교수인 미하일 수슬로프도 2018년 1월 발표한 ‘러시아 세계라는 개념: 포스트 소련 시대 지정학적 이데올로기와 영향권의 논리’라는 논문에서 같은 주장을 폈다. 수슬로프는 “현재 러시아에서 지정학이라는 담론은 정치적인 이데올로기보다 더 중요시된다”며 “현재의 러시아연방을 넘어 더 넓은 지역에서 발언권을 강화해 ‘러시아의 세계’, 즉 영향권을 확장하는 것이 향후 20년간의 러시아 국가목표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푸틴이 권위주의적 대내 통치와 반서구적 대외정책을 현재의 서구 모델의 대안으로 해외에 적극적으로 수출해 ‘러시아의 영향권’을 확대하려고 시도한다는 이야기다.

미국의 초당파 싱크탱크인 미국외교협회(CFR)의 벤 스테일 국제경제실장은 이미 2018년 2월12일 ‘러시아와 서구의 충돌은 지정학 때문이지 이데올로기 탓이 아니다’는 제목의 포린폴리시 기고문에서 같은 내용을 강조했다. 지정학의 눈으로 러시아를 봐야 푸틴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는 의미다.

스테일은 소련의 이오시프 스탈린이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확보한 동유럽 위성국가들을 이러한 지정학적인 완충지대로 인식했다고 지적했다. 완충지대가 있으면 서유럽에서 나폴레옹이나 히틀러가 다시 나타나더라도 소련을 지킬 수 있다고 믿었다는 이야기다.

16세기 이후 동서남북으로 끊임없이 영토를 확장해온 러시아에 세계에서 가장 긴 국경을 지키는 일은 지정학적 숙명이 됐으며, 스탈린 이후 소련과 러시아가 자체 안보를 위해 완충지대에 집착한다는 설명이다. 종전 뒤 동유럽을 위성국가로 만든 것도 모자라 동독과 폴란드,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등에서 민주화나 자율을 위한 움직임이 보이면 즉각 소련군을 보내 가혹하게 탄압한 이유도 이런 측면에서 찾을 수 있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침공의 명분을 같은 맥락에서 찾는다. 다른 세계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인 셈이다.

사실 소련과 러시아는 서구의 압박을 받는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서유럽을 지속적으로 위협해 왔다. 미국의 조지 마셜 국무부 장관이 1948년 3월 132억 달러(현재 가치로 1350억 달러)에 해당하는 원조로 부흥을 돕는 ‘마셜 플랜’을 가동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서구를 하나로 묶고 소련의 팽창을 막기 위한 목적이다. 이듬해인 1949년 4월4일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를 창설했다. 나토는 러시아의 서진을 막는 서방의 핵심 안보축이 돼왔다. 경제와 안보를 하나로 묶는 전략이다.

그로부터 40여 년이 지난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고 통일 독일은 서독처럼 나토 회원국이 됐다. 1991년 12월26일에는 소련도 역사에서 사라졌다. 1999년부터 과거 스탈린이 완충지대로 여겼던 중동부 유럽은 물론, 1940년 소련이 점령했던 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 등 발트 3국까지 모두 나토 회원국이 됐다. 러시아는 순망치한(脣亡齒寒)의 신세가 됐다.

서구의 눈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무리하게 결정한 것은 이처럼 러시아와 소련이 오랫동안 숭상했던 지정학이라는 논리 체계를 바탕으로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함으로써 오히려 자국의 안보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 군사적으로도 순탄치만은 않은 것은 물론 경제 안보에서도 상당한 타격이 예상된다. 푸틴은 나토가 마셜 플랜과 나란히 구축된 군사·경제·정치 동맹축이라는 사실을 잊은 것으로 보인다. 전 세계에 러시아의 편이 그리 많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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