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한·미 핵 공유’를 말할 때다
  • 조경환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kham@sisajournal.com)
  • 승인 2022.03.20 10:00
  • 호수 1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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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환 기고]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들이는 실효적 레버리지 만들어야

북한 김정은 정권의 고강도 도발이 다시 정점으로 치닫는 느낌이다. 2017년 11월29일, 미국 본토를 사정거리에 두는 1만3000km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화성-15형 시험발사에 성공하면서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던 무렵의 기시감이다. 영변의 핵시설은 지난해 7월초 재가동됐다. 폐쇄했다던 동창리 ‘서해 위성발사장’은 김 위원장이 3월10일 방문해 “개건·확장”을 지시했다. 2018년 5월24일 폭파했다고 선전한 풍계리 핵실험장은 갱도 일부가 복구 중이다.

이번엔 길이 24~26m, 100톤 안팎의 신형 ICBM ‘화성-17형’이다. 한반도 정세도 달라졌다. 3월13일 “서훈 국가안보실장이 윤석열 당선인에게 ‘당장 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임박’이라고 보고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2018년 3월8일 대북특사로 다녀온 뒤 백악관에서 “김 위원장은 비핵화 의지가 있고, 향후 어떤 핵 또는 미사일 실험도 자제할 것을 약속했다”고 밝혔던 정의용 당시 국가안보실장(현 외교부 장관)과 함께했던 그이기에, 지난 5년 현 정부의 속단과 속수무책이 도드라진다.

ⓒ연합뉴스
북한이 2020년 10월10일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미 본토를 겨냥할 수 있는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공개했다.ⓒ연합뉴스

5년 전과 다른 ‘미 對 중·러’ 신냉전 구도

북핵 외교는 어떠한가. 2017년 4개의 대북 제재 결의안을 채택했던 때와는 기류가 다르다. 미·중 패권경쟁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로 ‘미국 대 중국·러시아’의 신냉전은 선명하다.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는 안보리의 대북 조치에 제동을 건다. 올해 들어 북한이 10회에 걸쳐 12번 미사일을 발사(3월16일 발사는 실패)해 다수의 유엔안보리 결의안을 위반했지만, 안보리의 조치는 없다. 제재 결의나 의장성명, 언론성명 등 공식 대응은 중국·러시아의 반대로 번번이 무산됐다. 미국과 동맹국들이 장외에서 규탄성명을 냈을 뿐이다. 앞으로도 중국·러시아는 안보리의 대북 징벌에 비협조적일 것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 정부가 연초 세 차례의 장외 공동성명에 불참했던 현실 인식 부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김정은 정권의 ‘핵 국가’를 향한 의지와 능력은 명징하다. 폭주는 거칠 것이 없다. 중국·러시아는 묵인과 비호의 본색을 드러냈다. 이제 우리의 사활적 안보는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 북한의 태도 변화를 견인하고 중국·러시아의 책임 있는 행동을 유도할 옵션은 있을까?

2017년 10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한반도에 핵을 배치하지 않아도 미국과 핵을 공유한다는 협정을 맺어 북한에 억제력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번 대선에서도 “한·미 핵 공유 협정 추진”을 여러 번 주장했다.

‘핵 공유’ 논란은 미국의 ‘확장 억지’에 대한 불신에서 출발한다. “동맹국이 핵 공격을 받으면 미 본토가 공격받았을 때와 같은 전력 수준으로 응징 타격한다”는 개념으로, 2006년 한미안보협의회(SCM) 공동성명에 명시돼 있다. 그 수단으로 ICBM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전략폭격기 등 3대 전략 핵무기에다 미사일방어(MD) 및 초정밀타격 체제를 더했다. 그러나 북한이 ICBM으로 미국의 개입을 제약하는 상황에서도 과연 미국이 자국의 희생을 무릅쓰고 대응할 수 있을지 한국으로선 불안하다. 역으로 미국이 한국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한반도에서 핵전쟁을 벌일 가능성도 염려한다.

그래서 나토(NATO)식 ‘핵 공유’가 모델로 거론된다. 독일 등 나토 5개 회원국은 미 전술핵인 B61(중력폭탄) 100기를 전적으로 미국의 관리·통제하에 두지만, 유사시 자국의 전투기로 투하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주요 회원국 장관급이 참석하는 핵계획그룹(NPG)을 연 2회 열어 핵정책을 관장하고 조율한다. 실무그룹이 상설로 뒷받침한다. 물론 “미국 대통령만이 핵무기 운용 및 발사에 관한 기본권을 독점한다”는 미 국내법에다, 핵확산금지조약(NPT)상 핵 사용 권한을 실질적으로 나눠 가질 수는 없는 구조다. 엄밀히 말해 ‘핵 공유’는 실상 부풀려진 관점이긴 하다. 그렇지만 나토국에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정치적 의미는 상당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핵 태세를 들먹인 푸틴을 옆에 둔 현실에서는 더 그렇다.

이런 차원에서 우선, 2015년 4월부터 매년 개최되는 한·미 통합국방협의체(KIDD) 산하 국장급 ‘억제전략위원회’(DSC), 2016년 12월과 2018년 1월 두 차례 열린 후 멈춰선 차관급의 한·미 외교·국방(2+2)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의 기능과 법적 지위를 격상하고 내실화하는 협정을 고려해볼 만하다. 나토식으로 상설 실무조직을 두며, 미 전략자산을 언제, 어디에, 어떻게, 배치할지와 포괄적 대북 억제 방안 수립에 우리 의견을 적기에 안정적으로 반영할 제도적 장치의 필요성 때문이다. 이는 우리가 핵 개발을 하지 않는 데 대한 합당한 보상 요구이기도 하다.

둘째, 괌 앤더슨 공군기지의 전술핵무기에 대해 제한적으로 한국의 F-35를 투하 수단으로 쓰는 방안을 담론의 소재로 제시한다. 유사시 미 본토에서 30분 내 평양에 도달하는 ‘미니트맨Ⅲ’ ICBM, 인도·태평양 해역의 전략핵잠수함(SSBN)에서 언제든 발사 가능한 ‘트라이던트Ⅱ’ SLBM, 그리고 일본 미사와 기지에 전진 배치돼 20분 안에 평양 타격이 가능한 ‘B-1B 전략폭격기’를 고려할 때, 3200km 떨어진 괌에서 발진한 전술핵이 군사기술적으로 얼마나 효용이 있을지 의구심이 들겠지만, 그래도 ‘한국 전투기에 장착된 전술핵은 미국 안전보장의 상징’으로 작용하게 된다.

셋째, 핵잠수함 기술 전수다. 지난해 9월 미국·영국·호주가 오커스(AUKUS) 안보협정을 발표하면서 미국은 1958년 영국에만 제공했던 핵잠수함 기술을 호주에 제공하기로 했음을 기억한다. 미 대통령과 국무·국방장관이 기회만 있으면 한국을 인도·태평양 역내 평화와 안정의 ‘중심축(linchpin)’이라고 말하는 만큼, 핵잠수함 기술 제공을 요청하면 마냥 피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한·미 간에 이 범주의 ‘핵 공유’ 추진으로 중국과 러시아가 대북 설득에 나서고, 북한이 대화의 테이블로 나오는 실효적 레버리지가 만들어지길 고대해 본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조경환은 누구

외교부 샌프란시스코 부총영사와 국가정보원 고위 공무원을 지냈다. 행정학 박사다.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을 거쳐 통일연구원 초빙연구위원, 경기도 안보정책자문관,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이다

조경환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조경환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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