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부터 삐끗한 文-尹…신-구 권력 갈등 비화 조짐
  • 조문희·감명국 기자 (moonh@sisajournal.com)
  • 승인 2022.03.18 10:00
  • 호수 1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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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동 불발 놓고 “민주당, 대통령 압박해 회동 결렬시켜” vs “尹 측, 인사 협의 아닌 통보 형식” 공방
친문과 친이(MB)의 반복되는 구원(舊怨)에 ‘보복의 악순환’ 우려도

[시사저널 조문희·감명국 기자]

새 정부가 출범하기도 전부터 기존 권력과 새 권력 간 갈등이 노출되면서 대선 이후 “통합”을 기대했던 국민을 정치권이 다시 실망감에 빠트리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차기 정부 인수인계 과정 초반부터 파열음을 냈다. 3월16일 예정됐던 오찬 회동을 당일 전격 취소하면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신구 권력 갈등이 본격화할 수 있다는 어두운 전망도 나온다.

갈등 이면에는 MB(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을 둘러싼 논란과 인사권 행사를 둘러싼 양측의 기싸움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여기에 불필요한 감정싸움까지 더해졌다는 전언이다. 공기업·공공기관 인사로 임기 마지막 날까지 소임을 다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와 새로운 정부에 인사권 일임을 요구하는 윤 당선인 측이 의견 조율을 이뤄내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일각에선 MB 사면 논의가 표면적인 이유라는 얘기도 나오지만, 시사저널 취재를 종합하면 사면 여부는 양측이 상당한 의견 접근을 이룬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 인사권 행사 문제도 당초엔 과거 권력 이양기 때와 다르지 않게 잘 진행될 것으로 전망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7월25일 청와대에서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간담회장으로 함께 이동하고 있다.ⓒ연합뉴스

청와대와 윤 당선인 측의 회동 지향점과 범위 달라

그럼에도 대통령과 당선인의 회동이 전격 취소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빚어진 것은 처음부터 청와대와 윤 당선인 측이 생각하는 지향점과 범위가 사뭇 달랐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3월16일 청와대와 윤 당선인 측은 “실무 협의가 마무리되지 않았다”며 회동 취소 배경을 밝혔다. 정확한 취소 사유는 언급하지 않았다. 양측이 그 사유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기로 했다는 전언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윤 당선인 측 한 관계자는 시사저널에 “민주당 인사들이 공기업·공공기관 인사와 관련한 이해관계 때문에 문 대통령을 압박해 회동을 결렬시킨 것”이라고 말했다.

윤 당선인 측은 문 대통령의 명예로운 퇴진을 위해서는 인사권 행사에 협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정권 이양기와 맞물린 공공기관·공기업 인사는 문재인 정부에서 무리하게 진행할 게 아니라, 신임 정부와 협의하는 게 맞는다는 것이다. 윤 당선인도 대선 직후 청와대에 “임기 말 인사를 우리(국민의힘)와 협의해 달라”는 의사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3월31일 임기가 마무리되는 한국은행 총재 인사가 관건이다. 한국은행 총재는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자리니만큼, 윤 당선인 측은 새로운 정부의 경제관을 확립하는 데 한은 총재 인사가 중요한 카드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에 더해 한은 총재의 임기는 4년이어서 윤석열 정부의 5분의 4를 함께하게 된다. 이에 따라 윤 당선인 측은 청와대에 이주열 현 한은 총재 후임 인사를 보류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후문이다.

당초 청와대 역시 한은 총재를 비롯한 문재인 정부의 남은 인사를 윤 당선인 측과 협의한다는 입장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후 청와대의 기류에 변화가 느껴졌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분명한 것은 5월9일까지는 문재인 정부의 임기”라며 “임기 내 주어진 인사권을 행사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윤 당선인이 민정수석실 폐지 방침을 밝히고 김오수 현 검찰총장의 거취를 압박하자, 정부·여당 일각에선 “윤 당선인 측이 점령군 행세를 한다”는 날 선 반응도 나왔다.

3·16 회동 불발 이후 청와대 측은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다. 한 관계자는 어렵사리 성사된 통화에서 “취소 사유에 대해서는 서로 밝히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저쪽(윤 당선인)에서는 다양한 목소리가 나온다. 저쪽에 물어봐라”라며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그러면서 청와대 관계자란 표현을 쓰지 말아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시사저널이 다양한 루트로 청와대와 여당의 입장을 확인해본 바로는, 청와대의 당초 방침도 한은 총재 인사를 윤 당선인 측과 협의한다는 입장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청와대는 ‘협의’에 방점을 찍은 반면, 윤 당선인 측은 마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듯이 사실상 ‘통보’ 형식이었고 여기서부터 서로 지향점이 어긋났다는 게 여권의 주장이다. “두 분의 만남도 당초 서로 덕담을 나누고 국민 앞에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형식을 구상했는데, 저쪽(윤 당선인)에서 너무 크고 많은 의제를 가지고 오니까 좀 당황스러울 정도”였다는 말도 나왔다.

일각에선 윤 당선인 측에서 꺼내든 ‘MB 사면’이 양측의 갈등을 점화했다고 해석하지만, 시사저널 취재를 종합하면 청와대도 원칙적으로 MB 사면을 받을 의향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양측의 공감대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실제 회동 불발 후 윤 당선인 측은 시사저널에 “이 전 대통령 사면은 문제가 없다. 김경수 전 경남지사를 사면하는 데도 공감대를 이뤘다”고 말했다. 양측의 회동이 취소된 이유는 MB 사면이 아니라고 못을 박은 것이다.

하지만 협의 과정에서 윤 당선인 측 인사가 언론을 통해 한 발언들이 청와대를 자극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권성동 의원이 3월15일 MBC 라디오 인터뷰에서 “아마 (MB와 김경수 전 경남지사를) 같이 사면을 하리라 본다”고 말한 것이 발단이 됐다. 지난해 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 당시 문 대통령이 MB를 김 전 지사와 동시 사면하기 위해 남겨뒀다는 자신의 주장을 되풀이한 것이다. 마치 청와대가 MB와 김 전 지사의 사면을 놓고 윤 당선인 측과 거래하듯이 했다는 뉘앙스로 여겨질 수도 있는 사안이었다.

ⓒ시사저널 임준선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18년 3월23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자택 에서 동부구치소로 압송되고 있다.ⓒ시사저널 임준선

권성동 “김경수 사면” 발언 등이 청와대 자극

이에 대해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권 의원이 과연 그 말이 몰고 올 파장을 모르고 대통령과의 회동 전날에 방송에서 그런 발언을 했을까. 다분히 의도적이라고 본다. 지금 국민의힘은 대선에 이은 6월 지방선거의 승리로 기세를 이어가려 한다. 마치 청와대와 민주당이 새 정부의 길을 방해하고 인사 문제 등으로 몽니를 부리려 한다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일부러 갈등을 부추기려는 의도가 읽힌다”고 비판했다.

이 같은 양측의 갈등 분위기는 인수위에 발탁된 인사 등 윤 당선인 측 주변의 면면이 대부분 친이(MB)계 인사들로 채워지면서 우려스러운 징조가 엿보이기도 했다. 친문(친노)과 친이의 갈등 구도는 지난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검찰 수사와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이 이어졌고, 10년 후인 2018년 문재인 정부에서 적폐로 몰린 MB의 구속이 이어지면서 양측엔 회복하기 힘든 적대감이 형성됐다. 마치 보복의 악순환이란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듯한 양상이다.

민주당은 윤 당선인 인수위에 MB계 인사가 대거 포진한 점을 꼬집으며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소영 민주당 비대위원은 3월16일 “인수위에 MB 정부 출신 인사가 빽빽이 포진돼 있다. ‘윤핵관’ 정치인들이 보여주었던 구태가 그대로 나타날 것”이라고 견제구를 던졌다. 신동근 민주당 의원도 SNS에 “윤석열 정부는 가히 2기 MB 정부라 불러도 손색없다. 윤 당선인의 MB 사면 요구는 당연한 수순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MB계 인사들이 윤 당선인 인수위 전면에 등장한 것은 사실이다. 2007년 이명박 캠프 외곽 조직인 ‘선진국민연대’ 출신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이 대표적이다. 인수위에 합류하진 않았지만 차기 원내대표로 거론되는 권성동 의원도 같은 조직 출신이다. 통상 인수위 주요 인사들이 청와대와 내각에 대거 입성해온 만큼, MB 출신이 신흥 권력의 최대 계파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다만 MB계 인사들이 차기 정부 전면에 등장하게 된 터라, 신구 권력뿐만 아니라 국민의힘 내 계파 갈등이 고개를 들 가능성도 거론된다. MB계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관계 설정도 새로운 변수로 떠오를 전망이다. 당장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 대표를 중심으로 한 신진 세력과 MB계 사이 갈등이 표출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경선 과정에서부터 MB계 실세로 꼽히는 장제원 비서실장 및 권성동 의원과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 문제로 파열음을 연출한 이준석 대표가 지방선거 공천에 강한 그립감을 가지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어서다.

권력 이양기 내내 신구 세력 간 갈등이 국민의힘 안팎에서 지속될 전망이다. 일단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 측은 이번에 파열음을 연출한 인사권 행사와 관련해 실무진 협의를 이어갈 계획이다. 이들은 협의할 수 있는 인사권부터 조정해 나간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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