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호 복귀’ 논란 배후에 어른거리는 이장석
  • 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3.27 13:00
  • 호수 16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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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 대표 지난해 복귀 이후 히어로즈 분위기 바뀌어…선수단 구성부터 구단 운영까지 절대적 영향

다시 ‘이장석의 시간’이 시작된 것일까. 2022 시즌 개막을 앞둔 KBO리그가 시끄럽다. 키움 히어로즈의 최근 계약 논란 때문이다. 히어로즈는 3월18일 강정호(35)와 최저연봉(3000만원)에 선수 계약을 마쳤다고 발표했다. 고형욱 히어로즈 단장은 “40년 넘게 야구인으로 살아온 선배 야구인으로서 강정호에게 야구선수로서 마무리할 마지막 기회를 주고 싶었다”는 이유를 댔다. 강정호가 단순히 뛸 기회를 박탈당한 ‘히어로즈 레전드’였다면 그의 복귀는 문제가 될 게 전혀 없었다. 오히려 ‘선배’ 야구인의 배려로 훈훈한 미담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강정호는 음주운전으로 징역형까지 받은 선수다.

ⓒ연합뉴스
국내 프로야구 복귀를 추진 중인 강정호가 2020년 6월2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의 한 호텔에서 사과 기자회견을 마친 뒤 고개를 숙이고 있다. 강정호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음주 운전 관련 논란 등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연합뉴스

‘징역형’까지 받은 강정호의 복귀 후폭풍

강정호는 히어로즈에서 뛰다가 2014 시즌 종료 뒤 포스팅을 통해 메이저리그(MLB)에 진출했다. 피츠버그 파이리츠가 강정호 영입을 위해 지불한 포스팅 비용만 500만2015달러(약 60억원)였다. 강정호는 거포형 유격수로 메이저리그에서 입지를 다져갔다. 하지만 2016년 말 국내에서 음주운전 뺑소니 사고를 일으켰고, 운전자 바꿔치기 시도까지 했다. 조사 과정에서 2009년과 2011년에도 음주운전을 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음주운전 삼진아웃으로 그는 법원으로부터 징역형(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까지 선고받았다. 강정호는 2019년 8월 피츠버그로부터 방출당했고, 이듬해 5월 KBO리그에 임의탈퇴 복귀 신청서를 제출했다. KBO로부터 1년 유기 실격 및 봉사활동 300시간 징계를 받고 친정팀인 히어로즈 복귀를 원했으나 복귀 반대 여론이 거셌다. 징역형을 받은 선수에게 허락될 그라운드는 없었다. 강정호는 스스로 복귀를 포기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의 활성화로 음주운전 등 비도덕적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KBO나 구단은 가차 없이 출장정지, 혹은 임의탈퇴 등의 징계를 내렸다. 지난해 송진우 전 한화 이글스 코치의 아들인 송우현도 음주운전 적발로 히어로즈에서 방출됐다. 박한이(전 삼성 라이온즈)는 음주 다음 날 아침에 딸을 학교에 데려다주다가 음주 단속에 걸려 스스로 유니폼을 벗기도 했다.

송우현을 방출한 지 6개월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히어로즈는 음주운전 삼진아웃의 강정호를 전격 영입했다. 사실 2020년의 경우와는 달리 이번엔 강정호가 아닌 히어로즈가 먼저 움직였다. 현재 미국에 머물고 있는 강정호는 현지에서 야구 클리닉센터 등을 설립하려던 것으로 알려졌다.

2020년과 2022년 사이 히어로즈가 달라진 점은 이장석 전 대표이사의 존재다. 이 전 대표이사는 회삿돈을 횡령해 비자금으로 사용한 혐의 등으로 2018년 12월말 징역 3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지난해 4월께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이 전 대표의 실형 확정 이후 KBO는 이 전 대표의 구단 경영 참여를 금지하는 영구 실격 징계를 내렸다. 이 전 대표의 수감 기간에 허민 이사회 의장이 대신 히어로즈 구단주 역할을 했으나 여전히 ‘옥중 경영’ 의혹은 있었다.

이장석 전 대표는 출소 이후 바쁘게 움직였다. 일단 유상증자를 단행했다. 코로나19로 구단 경영 상황이 악화돼 내린 결정이었다. 지난해 말 유상증자를 통해 야구단 법인 서울히어로즈의 총 주식 수는 종전 41만 주에서 176만5610주로 증가했다. 이 전 대표는 50억원 안팎의 자금을 투입해 지분율을 67.56%(27만7000주)에서 69.26%(122만2854주)로 늘렸다. 이 전 대표는 지난 2018년에도 유상증자를 시도했으나 기존 주주들의 반대로 무산됐었다.

이 전 대표의 구단 지배구조가 강해졌지만 아직 풀지 못한 숙제가 있다. 이 전 대표는 2008년 서울히어로즈 창단 당시 재미교포 사업가 홍성은씨에게 구단 지분의 40%를 양도하는 조건으로 20억원을 투자받았다. 이 전 대표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결국 법정 공방이 빚어졌다. 소송 끝에 홍씨에게 서울히어로즈 지분 40%(유상증자 전 16만4000주)를 양도하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으나, 이 전 대표는 서울히어로즈는 자사주를 보유하지 않고 있다는 이유로 지금껏 버티고 있다. 한 야구계 관계자는 “히어로즈 구단을 매각하려고 해도 이 전 대표와 홍씨 사이에 얽혀있는 복잡한 지분 관계 때문에 여의치 않다. 지분 관계를 정리하지 않는 한 구단을 팔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물론 이는 추측에 불과하다. 지난 2년간 마케팅이 여의치 않으면서 히어로즈 구단 운영이 어려웠던 것도 사실이다. 이 전 대표 또한 “야구단 매각은 없다”고 밝혀왔다. 그러나 3월초 검사 출신의 위재민 변호사를 새로운 대표이사로 선임한 점을 눈여겨볼 만하다. 대표이사 선임에 69.26%의 지분을 소유한 최대주주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았을 리 만무하다.

위 대표이사 선임 직후에 나온 것이 말 많고 탈 많은 강정호와의 계약이다. 엄청난 후폭풍을 고려할 때 위 대표와 고형욱 단장의 결정이라고 단정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히어로즈 구단은 모든 결정에 눈치를 봐야만 하는 모그룹이 없다. 하지만 선수단 구성부터 구단 운영에까지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이장석 전 대표는 존재한다.

이 전 대표는 지난 2009년 구단 자금 사정상 부득이하게 현금 트레이드로 LG 트윈스로 보냈던 이택근을 2년 뒤 다시 팀으로 데려왔다. 당시 형성됐던 FA(자유계약) 선수 시장가격을 무너뜨리는 50억원의 거액을 이택근에게 안겼다. 또 다른 야구인은 “이택근의 사례로 비춰보면 강정호 또한 의리적인 면에서 영입을 재추진했을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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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석 전 대표이사ⓒ연합뉴스

이장석 대표, 그는 히어로일까 빌런일까

난파된 현대 유니콘스를 2008년 인수해 재창단하면서 야구계 ‘히어로’로 불리기를 원했던 히어로즈 구단은 그동안 여러 입길에 올랐다. 구단 운영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장원삼·이택근·이현승·마일영·황재균·송신영 등 주축 선수들을 현금 트레이드했다. 아마추어 시절 학교폭력 전력이 있는 선수를 영입했고,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어긴 선수들을 KBO 징계가 끝난 직후 곧바로 경기에 기용하기도 했다.

일련의 과정에서 이장석 전 대표는 한때 국내 야구 생태계를 무너뜨리는 ‘빌런’으로도 불렸고, 또 한때는 시스템 야구를 장착해 꾸준한 성적을 낸 ‘빌리 장석’(《머니볼》의 오클랜드 빌리 빈 단장을 빗댄 것)으로도 불렸다. 분명한 사실은 강정호 계약 건으로 그동안 국내 야구계에서 잠시 잊혔던 ‘이장석’이라는 이름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는 점이다. 히어로즈의 다음 행보, 아니 이장석 전 대표의 향후 행보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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