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스멀스멀 되살아나는 히어로즈 ‘선수 팔기’의 추억
  • 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4.29 15:00
  • 호수 16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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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연 총재의 KBO, 이례적으로 히어로즈 박동원 트레이드 하루 뒤에 승인
이면계약으로 뒷돈 챙긴 과거 사례 재현될까 우려

프로야구단 간 트레이드가 성사됐다. 보통의 트레이드라면 그날 바로 승인이 떨어진다. 해당 선수 또한 옮긴 팀 유니폼을 입고 프로필 사진까지 찍었다. 하지만 한국야구위원회(KBO)는 당일 “신중하게 살펴보겠다”면서 보류했다가 다음 날에야 트레이드를 승인했다. 왜 그랬을까.

KIA 타이거즈와 키움 히어로즈는 4월24일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KIA는 내야수 김태진(27)과 현금 10억원, 2023년 신인 2라운드 지명권을 히어로즈에 내주고 포수 박동원(32)을 받았다. 장정석 KIA 신임 단장이 히어로즈 운영팀장·감독 출신이라서 트레이드가 일사천리로 진행된 감이 없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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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타이거즈로 트레이드된 박동원이 4월24일 서울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프로야구 키움 히어로즈와의 경기 전 KIA 유니폼을 입고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다.ⓒ연합뉴스

히어로즈, 이면계약으로 챙긴 트레이드 머니만 131.5억원

히어로즈로서는 트레이드 명분이 있었다. 박동원이 예비FA 신분이기 때문이었다. 히어로즈는 올 시즌 선발투수에 따라 박동원·이지영·김재현 등 3명의 포수가 번갈아가며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여기에 주효상까지 시즌 중 제대해 팀에 합류한다. 고형욱 히어로즈 단장은 트레이드 성사 직후 “박동원이 면담 과정에서 더 많은 기회가 있는 팀에서 뛰고 싶다는 의지를 밝혔다”고 했다. 박동원의 경우 지난 스프링캠프 때부터 꾸준히 트레이드 얘기가 나왔다.

예비FA가 트레이드 시장에 나오는 사례는 종종 있다. 1년 뒤 떠나보낼 선수를 미리 타 팀으로 보내 운영비를 절약하고 팀 전력에 보탬이 될 만한 선수를 데려오는 식이다. 가뜩이나 모그룹 없이 네이밍 마케팅과 광고비 등으로 운영비를 충당하는 히어로즈 구단은 지금껏 대형 FA 선수와 계약을 거의 하지 않아왔다. 유일한 예외가 있다면 이택근이었다. 이택근은 히어로즈 창단 초기 운영비 마련을 위해 LG 트윈스로 현금 트레이드됐다가 FA계약(4년 50억원)으로 다시 히어로즈로 돌아왔다. 그를 제외하면 히어로즈는 지금껏 외부 FA 영입이 단 한 명도 없었다.

내부 FA에 대한 방침도 꽤 명확한 편이다. 총액 20억원이 넘는 계약은 거의 하지 않았다. 오죽하면 팀의 심장과도 같던 박병호(KT 위즈)와도 계약하지 않았을까. 히어로즈는 지난해 시즌 중반 때도 예비FA였던 2루수 서건창을 LG 투수 정찬헌과 맞바꿨다. 2011년에도 FA를 앞둔 불펜 핵심 자원 송신영을 LG에 보내고 박병호를 데려와 트레이드 성공 사례를 만들었던 히어로즈다. 김성현·심수창 등이 낀 이 트레이드 때도 이면계약으로 현금 15억원이 오간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히어로즈 외에도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가 FA를 앞둔 우완 투수 송은범을 KIA로 보내고 외야수 김상현을 데려온 적이 있다. 메이저리그에서도 스몰마켓 팀이 예비FA 선수를 트레이드하는 일은 간혹 있다.

KIA는 박동원 영입에 앞서 한화 이글스에 우완 투수 이민우(29)와 외야수 이진영(25)을 내주고 우완 김도현(22·개명 전 김이환)을 받는 트레이드도 성사시켰다. 이때는 KBO 사무국으로부터 곧바로 승인을 받았다. KBO가 KIA와 히어로즈의 트레이드에서 문제 삼은 것은 ‘현금 10억원’이었다. 아무래도 ‘선수 팔기’가 의심되기 때문이었다.

히어로즈는 과거 현금 트레이드에서 이면계약 등의 파행을 저질렀다. 2009년 장원삼을 삼성 라이온즈로 보낼 때 발표액은 20억원이었으나 실제로는 현금 35억원이 오갔다. 이현승의 경우에는 금민철과 현금 10억원에 두산 베어스와 트레이드했다고 발표했으나 실제 두 팀 간 오간 현금은 10억원이 아닌 30억원이었다. 고원준과 롯데 이정훈·박정준을 맞바꿀 때(2010년)도 현금은 없다고 했으나 현금 19억원이 얹어있었다. 2018년 조사 결과 히어로즈가 이런 이면계약으로 챙긴 트레이드 머니만 131억5000만원에 이르렀다.

더욱 문제가 된 사실은 구단 내부 규정으로 트레이드 머니 일부(0.5%)가 인센티브 형식으로 이장석 전 구단주 개인 호주머니로 들어갔다는 점이다. 내부 규정이라서 법적인 문제는 없으나 도덕적 문제는 제기된다. KBO가 히어로즈 박동원 현금 트레이드에 “세부 내용을 신중하게 검토한 뒤 트레이드 승인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제동을 걸었던 이유다.

KBO는 박동원 트레이드 발표 다음 날 오후 회의를 거쳐 승인했다. 하지만 차후에 야구 규약 88조를 들어 KIA와 히어로즈 구단에 현금을 주고받은 입금명세서·세금계산서 등을 따로 요청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암암리에 이뤄진 이면계약 행위를 근절하겠다는 강한 의지로 해석될 수 있다.

야구인 출신의 허구연 총재가 취임한 뒤 계약 승인 건에 대해 더욱 깐깐해진 측면도 있다. 박동원 트레이드 건 이전에 히어로즈 구단은 3월18일 KBO에 강정호에 대한 임의탈퇴 해지를 요청했다. 뺑소니 교통사고를 일으켜 징역형까지 받은 강정호와 최저 연봉(3000만원)에 깜짝 계약을 한 직후였다. 한 달이 넘도록 승인을 미뤄온 KBO는 일찌감치 내부적으로 복귀 불허 방침을 세우고 있었다. 허 총재는 “야구 붐업을 위해서도 안 될 일”이라고 단호하게 선을 그은 바 있다. KBO는 법률적인 검토까지 마치고 히어로즈 구단이 향후 제기할 수 있는 법적인 다툼까지 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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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연 KBO 총재(왼쪽)와 오세훈 서울시장이 4월24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프로야구 LG 트윈스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연합뉴스

‘선수가 그저 거쳐만 가는 구단’이란 주홍글씨 새겨져

박동원 영입으로 KIA는 한층 전력을 강화했다. 박동원은 공수에서 기량이 검증된 포수다. 그는 KIA 유니폼을 입고 첫 출전한 4월26일 KT전에서 쐐기 투런포를 터뜨리면서 힘을 과시했다. 반면 히어로즈는 박동원을 트레이드하면서 팀 연봉 규모를 줄일 수 있게 됐다. 올해 박동원의 연봉은 3억1000만원, 김태진의 연봉은 1억원이었다. 이미 지급된 월봉 등을 제하면 최소 1억4700만원의 예산을 줄일 수 있다. 여기에 현금 10억원까지 더하면 코로나19로 2년간 이른바 인공호흡기를 달고 구단을 운영해온 히어로즈에는 가뭄에 단비 같은 계약이다.

전력적인 면을 봤을 때도 히어로즈는 그동안 한 선수가 떠나면 그 선수를 메워줄 선수가 나타나곤 했다. 박동원 공백은 일단 김재현이 채우게 된다. 하지만 수많은 스타플레이어를 떠나보내면서 구단 팬층이 점점 얕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오죽하면 히어로즈 팬들이 벌써부터 이정후·김혜성 등과 헤어질 날까지 머릿속에 그리고 있을까. 히어로즈에는 점점 ‘시한부 선수가 머무르는’ ‘선수가 그저 거쳐만 가는’ 구단이란 주홍글씨가 새겨지고 있다.

트레이드는 각 구단 고유의 권한이다. 하지만 트레이드 안팎에서 ‘돈’ 문제를 일으켰던 히어로즈 구단이기에 KBO의 잣대는 더욱 엄격해질 전망이다. 박동원 트레이드를 둘러싼 힘의 싸움은 어쩌면 전초전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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