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농구코트는 너무 좁다” 여준석의 거침없는 포효
  • 김종수 스포츠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6.26 15:00
  • 호수 170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큰 신장과 脫아시안급 신체능력에 ‘만찢남’ 외모까지 스타성 다 갖춰
20세에 국내 농구 평정하고 미국 무대 도전 선언

예전부터 ‘2m’는 국내 남자 농구에서 부동의 센터로 인정되는 상징적 숫자였다. 장신 자원이 질과 양적으로 귀한 상황에서 어느 정도 기량을 갖춘 2m대 빅맨은 국가대표팀을 지탱하는 기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서장훈(207cm·은퇴), 김주성(205cm·원주 DB 코치), 오세근(200cm·안양 KGC) 등이 대표적이다.

때문에 대표팀은 국제대회에서 항상 높이의 어려움을 피부로 느끼며 경기를 치러야만 했다. 2m 초반대 빅맨들로 힘겹게 골밑을 지킬 때 상대팀은 그와 비슷한 신장의 스윙맨들이 내·외곽을 넘나들며 전체적인 높이 싸움에서 한 수 위 전력을 과시했다. 한국 대표팀은 장신숲에 맞서 외곽슛과 속공 등을 앞세워 선전하다가도 제공권을 빼앗기고 결국엔 흐름까지 넘겨주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 상황에서 최근 국내 농구계에 전에 없던 ‘신풍(新風)’이 불어오며 팬들을 설레게 하고 있다. 2m대 장신 포워드의 잇단 출현이 바로 그것이다. 센터 한 명만 2m 선수를 세워놓고 나머지 포워드와 가드에 180~190cm 선수들로 베스트5를 구성하던 그런 팀이 아닌 것이다. 

슈팅가드와 스몰포워드를 오가는 장신 슈터 이현중(22·미국 데이비슨대학)은 신장이 무려 202cm다. 전주 KCC 간판스타 송교창(26)은 201.3cm의 큰 키에도 어지간한 가드 이상으로 코트를 뛰어다니는 게 가능하다. 서울 SK 최준용(28)은 주 포지션은 스몰포워드지만 가드도 문제없이 소화할 만큼 넓은 시야와 빼어난 패싱 센스를 인정받고 있다. 상황에 따라 앞선에서 게임 지휘도 가능한 독보적인 장신(200.2cm) 야전사령관이다.

이들은 플레이 스타일까지 각각 달라 함께 코트에 나서도 다양한 조합으로 원활한 운영이 가능하다는 부분에서 장점이 크다.

여기에 더해 또 한 명의 무서운 신예가 등장했다. 센터 포지션을 맡아도 모자라지 않을 큰 신장을 가지고 내·외곽을 오가며 탈(脫)아시안급 신체능력을 과시하고 있는 압도적인 선수, 다름 아닌 국가대표팀의 막내 여준석(20·203cm)이다. 

6월17일 경기도 안양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남자농구 국가대표 평가전 한국과 필리핀 의 경기. 한국 여준석이 슛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6월17일 경기도 안양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남자농구 국가대표 평가전 한국과 필리핀 의 경기. 한국 여준석이 슛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앨리웁 덩크에 3점슛까지…이런 선수는 없었다

최근 농구계에서 가장 뜨거운 선수를 꼽자면 국내는 허웅·허훈 형제, 해외는 이현중이다. 허웅 형제는 오빠 부대를 되살린 자타 공인 최고의 인기 스타이며, 이현중은 NBA를 목표로 걸음을 내딛고 있다는 점에서 지속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하지만 최근 국가대표팀의 필리핀과의 두 차례 평가전에서 최고의 화제는 단연 여준석이었다. 

여준석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놀라운 운동신경이다. 초등학교 때 190cm, 중학교 시절 키가 2m를 넘어가면서 신장으로 먼저 주목받았지만, 거기에 더해 무시무시한 신체능력까지 뽐내고 있다. 단순히 신장에 비해 좋은 수준이 아니다. 서울 용산고 2학년 재학 중 참가한 측정 프로그램에서 서전트 점프 83.7cm, 맥스 버티컬 점프 리치 349.6cm로 고교 1위를 기록했다. 거기에 준수한 기동력까지 갖추고 있다.

여준석의 탈아시안급 신체능력은 플레이에서도 드러난다. 그의 주특기는 덩크슛이다. 경기 중 조금이라도 틈이 보인다 싶으면 망설임 없이 덩크를 꽂아 넣는다. 뻣뻣한 소위 ‘작대기 덩크슛’이 태반인 국내 농구장 상황에서 격을 달리하는 윈드밀 덩크, 앨리웁 덩크 등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필리핀과의 평가전에서는 최준용이 띄워준 공을 그대로 앨리웁 덩크슛으로 마무리 짓는 등 마치 NBA 경기에서나 봤음 직한 플레이를 국내 경기장에서 재현해 냈다.

그렇다고 여준석이 운동신경만 앞세운 덩크머신인 것만은 아니다. 탄탄한 웨이트를 바탕으로 골밑에서 전투적으로 리바운드 쟁탈전을 벌이는가 하면 슈팅능력 또한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제 상대 수비수들은 여준석을 막으려면 포스트 인근은 물론 외곽까지 신경 써야 한다. 만화 《슬램덩크》를 예로 든다면 ‘강백호에서 서태웅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셈이다. 여기에 운동선수에게 필수인 투쟁심과 승부욕 또한 대단해 자신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상대들과의 경쟁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정면승부를 펼친다.

고교 시절 이현중과 함께한 여준석(왼쪽) ⓒ성정아 제공
고교 시절 이현중과 함께한 여준석(왼쪽) ⓒ성정아 제공

이현중과 함께 NBA 입성하는 것이 최종 목표

필리핀과의 평가전이 끝나기 무섭게 여준석은 또다시 농구팬들을 놀라게 했다. G리그 진출을 위한 쇼케이스 참석 차 6월20일 미국으로 떠난 것이다. 최종적인 이유는 역시 NBA 입성이다. G리그는 NBA의 2부리그 격이다. 신인 드래프트에 도전하지 못한 선수 혹은 탈락한 선수들이 이 리그에서 대거 뛰고 있다. 많은 이의 시선이 집중되는 무대이니만큼 이곳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주며 NBA로 올라간 선수도 적지 않다.

그의 거침없는 도전에 농구팬과 관계자들은 기대감을 감추지 않는다. 한 농구 커뮤니티 운영자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부동의 원톱이라고 평가받던 여준석이 곧바로 프로행을 선택하지 않고 고려대를 선택한다고 했을 때 우려의 목소리가 컸는데, 해외 진출 선언으로 자신의 진심을 전달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자칫 국내 아마추어 1인자의 자리에 안주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기우였다는 것이다. 물론 아시안컵이라는 중요한 국제대회를 앞두고 대표팀에서 전격 이탈한 것을 아쉬워하는 목소리도 있다.  

해외 진출에 도전하게 된 여준석이 헤쳐 나가야 할 과제는 산적해 있다. 그중 하나가 포지션 정립이다. 국내에서야 워낙 독보적이라 포지션에 상관없이 뛰어도 당장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미국 무대에서는 다르다. 여준석 이상의 신체능력에 더해 기술과 경험에서 앞서는 선수가 즐비한지라 자신이 확실한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을 선택해 방향을 잡는 게 중요하다. 우리 국가대표팀에서는 올라운드 플레이어인 이현중이 미국에선 전문 슈터로 뛰고 있는 점이 이를 입증한다.

2017년 6월 중국 항저우에서 있었던 ‘아시아태평양 팀 캠프’ 당시 이현중·여준석 등의 인솔자 겸 코치를 맡았던 김효범 서울 삼성 코치는 “현재의 여준석은 공수에서 한층 성장한 상태여서 작전 수행능력 등만 좀 더 개선하면 어느 포지션에서든 제몫을 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국내든 해외든 3번 스몰포워드가 맞는 옷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여준석은 잘생긴 외모로 인해 농구에 큰 관심이 없는 팬들로부터도 인기를 얻고 있다. ‘농구판 서강준’ ‘만찢남’(만화책을 찢고 나온 남자) 등의 애칭으로 불리고 있을 정도다. 여기에 미국에서의 활약까지 더해질 경우 허웅·허훈 형제나 이현중 못지않은 파급력도 기대할 수 있다. 한국 농구의 재도약을 위해서라도 그의 향후 행보가 주목되는 이유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