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당권 주자들, 너도나도 김동연과 ‘투샷’ 찍는 이유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22.07.18 10:00
  • 호수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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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연 경기지사 호남 지지율 10%의 숨은 의미
‘민주당스럽지 않은’ 이미지로 정계개편 주도할까

더불어민주당 당권 주자들에게 ‘수원행’이 하나의 코스로 자리 잡고 있다. 김동연 경기지사와의 만남을 위해 연이어 경기도 수원에 위치한 경기도청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7월6일 박용진 의원에 이어 8일 강병원 의원이 김 지사를 방문해 환담을 나눴고, 당 대표 출마 의지를 피력해온 박지현 전 공동비상대책위원장도 11일 김 지사를 찾아 비공개 면담을 가졌다. 지난달 SNS에 김 지사를 응원하는 글을 올린 이재명 의원 역시 당 대표 출마 후 김 지사를 만날 가능성이 크다.

선거 기간 동안 주자들의 행보 하나하나엔 표에 대한 철저한 유불리 계산이 깔린다. 이들이 지금 일제히 김 지사를 찾는 건 곧 그와의 ‘투샷’이 지지세 확장에 ‘플러스’가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는 현재 김 지사가 갖고 있는 정치적 위상을 가늠케 한다. 이미 그는 6·1 지방선거 민주당 참패 속에서 극적 승리를 이루며 단숨에 야권 차기 리더 반열에 올랐다. 최근 ‘어대명’(어차피 대표는 이재명) 분위기에 대한 민주당 내 우려와 반감이 커지면서 김 지사는 이재명의 대항마이자 차기 구심점으로 더욱 부상하고 있다.

김 지사가 이토록 러브콜을 받는 ‘유력 주자’로 부상한 건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민주당스럽지 않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지방선거 이후 민주당 싱크탱크 민주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김 지사가 당선될 수 있었던 요인으로 지지층 10명 중 4명 이상이 ‘민주당 색채가 약해서’라고 답하기도 했다. 민주당에 합류한 물리적인 시간이 짧아서이기도 하지만, 김 지사가 갖고 있는 정치적 가치나 궤적이 기성 민주당과 차별화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왼쪽부터)7월6일 김동연 지사(오른쪽)와 만난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7월8일 경기도청을 방문한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왼쪽), 7월11일 김동연 지사와 비공개 면담을 가진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원장ⓒ박용진 의원실 제공·강병원 페이스북·연합뉴스
(위부터)7월6일 김동연 지사(오른쪽)와 만난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7월8일 경기도청을 방문한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왼쪽), 7월11일 김동연 지사와 비공개 면담을 가진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원장ⓒ박용진 의원실 제공·강병원 페이스북·연합뉴스

범주화하기 어렵다는 것이 강점

우선 김 지사는 현재 민주당 최대 쟁점인 계파 구도에서 벗어나 있다. 문재인 정부 경제부총리를 지냈지만 정책 기조를 두고 청와대와 강하게 대립한 건 유명한 사실이다. 이재명 의원과도 지난 대선에서 후보 단일화를 이루며 연대했지만, 오히려 지방선거 후 이 의원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하면서 자연히 거리감이 형성됐다. 친문이냐 비문이냐, 친명이나 비명이냐로 구성원이 갈리는 지금의 민주당에서 김 지사는 범주화하기가 간단치 않은 존재다.

그런가 하면 김 지사는 민주당의 고질적인 약점으로 꼽혀온 ‘경제’와 ‘혁신’을 줄곧 자신의 강점으로 내세우기도 했다. 김 지사는 ‘세계은행 근무’ ‘경제부총리’ 등의 이력을 강조하며 자신이 민생경제의 해법을 갖고 있다고 자신해 왔다. 또한 신당 ‘새로운물결’을 창당할 때부터, 대선 후 민주당 일원이 된 후에도 정치교체를 앞세우며 기성 정치권과 차별화를 시도했다. 실제 김 지사와 만난 민주당 당권 주자들은 일제히 김 지사와 ‘정치혁신’과 ‘당 쇄신’에 대한 공감대를 이뤘고 함께 실현해 나가기로 약속했다고 강조했다.

현재 민주당 차기 대권주자로서 김 지사의 지지세 자체는 그리 위협적이지 않다. 한국갤럽이 6월7~9일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여야 차기 정치지도자 선호도에 따르면, 김 지사는 4% 지지율로 전체 6위에 머물렀다. 리서치뷰가 6월28~30일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범진보 주자 중 김 지사는 11%로 이 의원(33%), 이낙연 전 대표(15%)에 이어 3위에 자리 잡았다(두 조사의 자세한 내용은 중앙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그러나 김 지사의 지지율을 한 꺼풀 더 벗겨보면 의미심장한 지점이 눈에 띈다. 바로 호남(광주·전남북)에서의 지지율이다. 앞선 한국갤럽 조사에서 김 지사의 호남 지지율은 10%로 집계됐다. 호남을 정치적 기반으로 해 4선까지 지내고 전남지사까지 역임했던 이낙연 전 대표(3%)보다 앞선 수치다. 리서치뷰 조사의 경우 이 의원과 이 전 대표에 밀리긴 했지만 호남 지지율 두 자릿수(11%)를 기록하기도 했다. 충북 음성에서 태어나 경기에서 주로 활동하며 호남과 연고가 없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김 지사에 대한 호남의 관심은 유의미하다고 할 수 있다.

민주당에 대한 호남 민심은 단순히 한 권역의 민심으로만 해석되지 않는다. 민주당 역사에서 호남이 택한 후보는 곧 최종 대선후보가 돼왔고, 당의 위기와 대대적인 정계개편은 주로 호남 민심의 외면으로부터 시작됐다. 2002년 호남은 영남 출신 노무현 대선후보를 띄웠다. 그러나 집권 말 호남은 여당인 열린우리당을 차갑게 외면했고, 이후 분당부터 대통합민주신당 창당까지 대대적인 정계개편을 발생시켰다. 2016년 총선 당시 국민의당 돌풍 역시 호남발(發) 정계개편의 대표적인 사례다.

이러한 기억 때문에 지금 김 지사를 향한 호남 민심은 좀 더 상징적으로 해석된다. 더구나 최근 민주당은 극심한 계파 갈등을 겪으며 2024년 총선 전 또 한 번의 정계개편 혹은 분당 가능성이 꾸준히 거론되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김 지사를 향한 호남의 관심은 더욱 주목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많다. 향후 당의 크고 작은 변화 과정에 김 지사가 새로운 구심점이 될 수 있을 거란 의미다.

더불어민주당 당대표에 출마한 강병원 의원이 지난 3일 부산 강서체육공원을 찾아 김해영 전 의원을 만났다. ⓒ강병원 의원 SNS
더불어민주당 당대표에 출마한 강병원 의원이 지난 3일 부산 강서체육공원을 찾아 김해영 전 의원을 만났다. ⓒ강병원 의원 SNS

“김해영을 품어야 한다”는 말의 의미

당권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김 지사와 함께 주가가 높아지는 또 한 명의 인물이 있다. 당내 소장파로 분류돼온 김해영 전 의원이다. 당 대표에 출마한 ‘97그룹’ 주자들은 앞다퉈 김 전 의원의 이름을 거론하고 있다. 특히 강병원 의원은 7월3일 직접 김 전 의원이 있는 부산을 찾았고 그와 함께 찍은 사진을 공개하기도 했다. 강 의원은 시사저널과의 인터뷰를 통해 문재인 정부에 ‘쓴소리’를 해주었던 김 전 의원과 과거에 충분히 함께해 주지 못한 데 대한 미안함을 직접 전했다고 밝혔다.

강 의원뿐 아니라 박용진·강훈식 의원 역시 “민주당이 이제 김해영을 품을 수 있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 행간엔 현재 이재명 의원을 지지하며 당 여론을 주도하고 있는 일부 강성 팬덤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다. “이제 민주당이 듣기 불편한 ‘쓴소리’도 적극 수용해야 한다”며 당내 쓴소리 대명사인 김 전 의원을 소환하는 것이다. 김해영 수용 여부가 곧 민주당의 혁신과 다양성의 지표가 된 셈이다.

김 전 의원이 직접 당 대표에 출마할 거란 관측이 제기됐지만, 최근 장고 끝에 불출마를 결정한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새 지도부가 꾸려진 이후에도 과거 배타적인 정치에 대한 반성과 첨예한 팬덤 논쟁이 지속될 가능성이 큰 만큼, 김 전 의원의 이름은 당분간 계속해서 중앙으로 소환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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