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을 향한 빅 스텝, ‘빅 보이’ 이대호는 KS 무대 밟을 수 있을까
  • 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7.26 11:00
  • 호수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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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4번 타자’ 이대호, 감동의 은퇴투어 본격 시작
모든 기록 다 가졌지만 “한국시리즈 뛰어봤으면” 간절한 소망도

이 남자, 울었다. 큰 덩치에 ‘조선의 4번 타자’라는 별명까지 있는데도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그라운드 위 삶의 끝은 누구에게나 오고, 이대호(40·롯데 자이언츠) 또한 예외는 아니다. 그래도 초라한 은퇴 시즌은 아니다. 오승환(삼성 라이온즈) 등 일부 야구 동료와 팬들은 오히려 그의 은퇴를 극구 막는다. 왜일까.  

7월16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2 KBO 올스타전 은퇴투어 기념식에서 이대호가 동료선수들로부터 헹가래를 받고 있다.ⓒ뉴시스
7월16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2 KBO 올스타전 은퇴투어 기념식에서 이대호가 동료선수들로부터 헹가래를 받고 있다.ⓒ뉴시스

은퇴 시즌, 불혹의 나이 무색하게 ‘전반기 타격 1위’

불혹의 나이가 무색하게 이대호는 전반기 타율 1위(0.341)에 올랐다. 호세 피렐라(0.340·삼성), 이정후(0.331·키움 히어로즈) 등을 제쳤다. 여차하면 2006년, 2010년, 2011년에 이어 4번째 타격왕에 오르고 유니폼을 벗게 될 참이다. 이대호는 2006년 타격 3관왕(타율·홈런·타점 1위)에 올랐고, 2010년에는 도루를 제외한 타격 7개 분야를 휩쓰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만들었다. 20대에도, 40대에도 그의 방망이에 멈춤 버튼은 없다. 그는 타율 외에도 피렐라와 함께 최다안타 공동 1위(108개)에 올라있다. OPS(출루율+장타율)는 0.871.   

이뿐만이 아니다. 2022년 올스타전 사전행사로 열린 홈런 레이스(7월15일 잠실야구장)에서 그는 전반기 홈런 1위 박병호(KT 위즈) 등을 제치고 당당히 홈런왕에 올랐다. 드넓은 잠실야구장에서 삼성 포수 김태군이 던져준 공을 5개나 담장 밖으로 넘겼다. 2009년과 2018년에 이은 통산 3번째 우승. 생애 마지막 홈런 레이스 참가에서 박재홍·양준혁·김태균과 함께 최다 우승자로 이름을 남기게 됐다. 이대호는 500만원 상금 중 100만원을 김태군에게 주고 나머지는 전부 기부했다. 김태군 또한 이대호의 기부에 동참했다.  

그의 마지막 올스타전은 축제 같았다. 코로나19 탓에 3년 만에 처음 열린 ‘대면’ 올스타전은 2만3750명의 팬으로 가득 찼다. 프로야구 출범 40주년을 맞아 전문가와 팬 투표로 선정된 레전드 40인 중 톱4(최동원, 선동열, 이종범, 이승엽)가 참석(고 최동원은 아들이 대신 참석)해 의미도 컸다. 이대호의 등번호(10번)는 고 최동원(11번)에 이어 롯데 야구단 역사상 두 번째로 영구 결번될 전망이다. 

 이날 올스타전의 방점은 5회말에 찍혔다. 드론쇼와 불꽃놀이가 끝난 뒤 이대호의 공식 은퇴투어 행사가 열렸다. 팬들은 이대호가 그라운드에 들어서자 한목소리로 ‘대~호’로 시작되는 그의 응원가를 불렀고, 마지막 올스타전에 나선 이대호에게 우렁찬 박수를 보냈다. 롯데 팬이든 아니든 상관이 없었다. 팬들은 한국 야구사를 화려하게 수놓았던 리빙 레전드를 한껏 예우했다. 그를 아직 떠나보낼 준비가 되지 않은 일부 팬은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이대호는 이날 한국야구위원회(KBO)로부터 부산 사직야구장의 1루 베이스와 흙이 담긴 일러스트 액자를 받았다. 1루는 그가 안방 경기를 할 때마다 늘 서있던 곳이었다. 내내 굳은 표정을 하고 있던 그는 가족들이 그라운드에 입장하자 흔들렸고 이내 눈물을 글썽였다. 북받치는 감정을 애써 추스르고 그가 한 말은 “즐거웠고 행복했습니다. 남은 경기에서 최선을 다하고 더 좋은 사람으로 남겠습니다”였다. 그가 관중을 향해 큰절을 할 때는 이름 대신 그의 등에 적힌 ‘덕분에 감사했습니다’라는 글귀가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이대호는 경기 후 그라운드에서 10개 팀 올스타 선수들로부터 헹가래도 받았다. 육중한 몸이 하늘 위로 솟구칠 때마다 그는 얼굴 가득 함박웃음을 지었다. 

2001년 투수로 신인 지명됐으나 첫 전지훈련 때 어깨 부상을 당해 타자로 전향한 뒤 숱한 어려움을 겪었던 그다. 몸무게 때문에 늘 체중 감량 압박을 받았고 “선수도 아니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보란 듯이 리그 최고 타자임을 입증해 냈다. 한국 야구 역사상 타격 트리플 크라운을 두 차례나 달성한 이는 이대호밖에 없다. 9경기 연속 홈런이라는 전 세계적으로 유일무이한 기록도 남겼다. 한·미·일 프로리그에서 뛴 유일한 한국인 타자이기도 하다. 

국가대표 성적도 빼어났다. 2008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2009 WBC 준우승,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 금메달, 2015 프리미어12 우승 때 대표팀을 이끌었던 멤버였다. 괜히 ‘조선의 4번 타자’가 아니다. 피나는 노력에는 그에 상응하는 명예가 따르는 법. 이대호는 이승엽(2017년)에 이어 KBO 공식 은퇴투어 두 번째 주인공이 됐다. 

이대호가 클리닝 타임에 진행된 은퇴투어 기념식에서 소감을 말한 뒤 울컥하고 있다.ⓒ뉴시스
이대호가 클리닝 타임에 진행된 은퇴투어 기념식에서 소감을 말한 뒤 울컥하고 있다.ⓒ뉴시스

전반기 6위 마감한 롯데, 후반기 대반격 시동

올스타전으로 출발 테이프를 끊은 이대호의 은퇴투어는 7월28일 두산 베어스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두산은 이날 경기에서 이대호에게 이천 달항아리를 은퇴 선물로 전달할 계획이다. 달항아리에는 ‘가장 큰 실패는 도전하지 않는 것이다’라는 이대호의 좌우명이 새겨진다고 한다. 나머지 8개 구단이 이대호에게 선사하는 은퇴 기념 선물이 무엇일지 지켜보는 재미도 앞으로 쏠쏠할 것이다.  

화려한 전반기를 보내고 홈런 레이스에서도 우승했으나 이대호는 마냥 아쉽기만 하다. 개인 성적은 괜찮지만 팀 성적은 5강 밖으로 밀려나 있기 때문이다. 소프트뱅크 호크스 소속으로 일본시리즈에서는 두 차례나 왕좌에 오르고 최우수선수(MVP)로도 뽑힌 그였으나 아직 KBO리그에서는 한국시리즈 무대에 서본 적이 없다. 그가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고 은퇴하고 싶다”는 열망을 계속 드러냈던 이유다. 롯데는 이대호가 미국 시애틀 매리너스에서 돌아왔던 2017년 마지막으로 가을야구에 진출했다.

이대호가 현역으로 뛸 수 있는 경기는 이제 59경기(7월21일 현재)밖에 남지 않았다. 이대호는 그 이상 뛰기를 원한다.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면 그의 남은 경기 수는 늘어난다. 이대호는 올스타전이 끝난 뒤 “59경기보다 더 뛰고 싶다. 남은 경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다 하겠다”고 했다.

롯데는 KIA 타이거즈와 4경기 차이가 나는 6위로 전반기를 마감했다. 반격 채비는 끝냈다. 전준우·정훈·한동희 등 부상자들이 돌아와 완전체로 후반기를 맞았다. 타율이 0.228에 그쳤던 외국인 타자 D.J 피터스도 교체했다. 야구 해설위원들은 “젊은 선수로 구성된 롯데가 바람을 타면 후반기 순위 경쟁의 다크호스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이대호의 역할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이대호의 ‘라스트 댄스’는 점점 끝을 향해 가고 있다. 등 떠밀린 끝이 아니라 박수받기 위한 끝을 향해 ‘조선의 4번 타자’는 오늘 다시는 오지 않을 타석, 경기에 나서고 있다. 단 한 톨의 후회도 남기지 않기 위해 ‘빅 보이’는 ‘빅 스텝’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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