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당 대표 위상에 걸맞는 큰 정치 리더십 못 보여줘 [유창선의 시시비비]
  • 유창선 시사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8.13 14:00
  • 호수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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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교체의 희망에서 14개월 만에 자동 해임당한 이준석
반짝성 아이디어 아닌, 다음 세대 이끌 비전 제시했어야

이준석 대표가 결국 ‘자동 해임’ 당했다. 국민의힘은 8월9일 전국위원회를 열고 비상대책위원회 체제 전환을 위한 당헌 개정안을 의결했다. 이에 근거해 곧바로 ‘주호영 비대위’가 출범함으로써 ‘당원권 6개월 정지’ 상태였던 그는 대표직에 복귀하지 못한 채 그대로 물러나게 돼버렸다. 이 대표가 선출된 것이 지난해 6·11 전당대회였으니까, 임기를 10개월 남겨두고 1년2개월 만에 대표직을 그만두게 될 처지가 됐다. 어쩌면 곧 그를 ‘전 대표’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른다.

이 대표의 강력한 반발에도 비대위 체제로의 전환은 국민의힘 내에서 진즉에 대세가 되었다. 8월1일 열린 긴급 의원총회에 참석했던 의원 89명 가운데 비대위 전환에 반대한 사람은 김웅 의원 단 한 명뿐으로, 거의 모든 의원이 ‘이준석 해임’을 의미하는 비대위 전환에 찬성했다. 그동안 이 대표를 옹호해 왔던 정미경 전 최고위원도 “이 지점에서 대표가 멈춰야 한다”며 최고위원직을 사퇴해 비대위 출범에 힘을 실어주었다. 이어 이 대표가 임명했던 한기호 사무총장도 사퇴함으로써 이준석 지도부는 붕괴되었고 비대위 전환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이 대표에 대해 우호적인 태도를 보여왔던 오세훈 서울시장까지도 “선공후사의 마음으로 자중자애할 것을 간곡히 당부드린다”며 이 대표가 비대위 전환을 수용할 것을 요청했다.

마지막까지 최고위원직을 사퇴하지 않고 이 대표 편에 섰던 김용태 전 최고위원과 당내 친(親)이준석 그룹이 있기는 했지만, 이 대표로서는 중과부적의 상황을 맞게 된 것이다. 지난해 ‘30대 제1야당 대표’가 탄생했을 때, 이준석은 한국 정치의 숙원인 세대교체의 바람을 몰고 올 희망처럼 여겨졌다. 당시 불었던 ‘이준석 바람’이 여야의 경계를 넘어 우리 정치의 낡은 판을 바꿀 계기가 되기를 많은 사람이 기대했다. 그랬던 그가 임기도 채우지 못한 채 당내 절대 다수의 의원이 해임에 동의하는 존재가 돼버린 것이다. 그동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7월7일 국회에서 열린 이 대표의 ‘성 상납 증거인멸 교사’ 의혹 관련 당 중앙윤리위원회에 출석하기에 앞서 울먹이며 입장을 밝힌 뒤 회의실로 들어가고 있다.ⓒ시사저널 박은숙

‘이준석 정치’ 제대로 설명해 준 적 없어

한마디로 말하자면, 이준석은 제1야당 대표였을 때는 물론이고 집권 여당의 대표가 된 후에도 자신의 위상에 걸맞은 큰 정치 리더십을 보여준 적이 없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이 야당이었을 때는 정권교체를 해서 어떤 나라를 만들고 정치를 어떻게 바꾸겠다는 비전을, 집권여당 대표가 된 뒤에는 어떤 큰 목표와 그림을 갖고 당과 국정을 책임지겠다는 비전을 보여주었어야 했다. 그러나 그가 내내 보여준 것은 그런 큰 그림이 아니라, 피곤한 말싸움의 무한 반복이었다. 이 대표는 당을 이끄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언제나 당 안팎의 누군가와 다투고 있었다.

누구에게도 지기 싫어하는 개인의 독특한 성격은 ‘선당후사’가 아니라 ‘선사후당’의 모습을 드러내곤 했다. 지난해 여름 ‘예스냐, 노냐’로 답하라”며 안철수 당시 국민의당 대표를 야유하던 태도로 인해 합당 논의는 결렬되었다. 대선 과정에서도 안철수 후보를 향한 조롱으로 후보 단일화를 아슬아슬하게 만들더니, 합당한 이후에도 ‘간장 한 사발’이라며 조롱을 멈추지 않았다. ‘윤핵관’들을 향한 비판이야 명분이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당 대표가 정치가 아니라 방송과 SNS를 통한 장외 대결에 매달린 것은 당 대표로서 정상적인 모습은 아니었다. 싫은 소리를 듣고는 참지 못하는 성격 때문인지, 그는 자신이 옳다는 것을 어떻게든 인정받으려고 매달렸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이끄는 당은 상처를 입곤 했다. 이 대표는 포용력 있는 ‘큰 정치’ 대신에 속 좁은 ‘좁쌀 정치’를 한 셈이었다.

그렇다고 이 대표가 개인의 성격 문제를 상쇄할 만한 남다른 성과를 거둔 것도 아니었다. 그는 ‘대선과 지방선거를 모두 승리로 이끌었다’는 점을 강조했지만, 그것은 ‘이준석 노선’의 승리라기보다는 정권교체 여론의 우위가 낳은 결과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 대표가 선도했던 ‘세대포위론’이나 ‘이대남’(20대 남성) 전략은 분열주의라는 비판에 직면하며 격한 논란거리가 되었을 뿐, 막상 선거에서 표를 얻는 데 효과를 거둔 것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이대남 전략으로 당시 윤석열 후보가 20대 남성에게서는 높은 득표를 올렸지만, 그만큼의 이대녀들이 이재명 후보에게 가버리도록 만들어 결국 요란하기만 했던 빈수레였던 것으로 판명 났다.

이준석의 정치는 자신이 만들고자 하는 세상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설명해준 적이 없다. 비전이 자리해야 할 자리에는 정치공학적 사고가 낳은 잔기술들만 들어섰다. 그가 내세웠던 ‘비단 주머니’도 ‘자격시험’도, 다음 세대의 정치를 이끌 비전으로서는 역부족이었다. 이 대표가 매달렸던 것은 본질과는 거리가 있는 순간의 반짝성 아이디어들이었을 뿐, 정작 우리 사회와 정치가 가야 할 길을 그는 제시하지 못했다.

 

윤핵관 문제와 별개로 개인 성찰 필요

이준석의 문제가 “이제 개의 머리를 걸고 개고기를 팔기 시작하려는 것 같다”면서 ‘윤핵관’들과 싸웠다는 데 있는 것은 아니다. ‘내부 총질’이라는 문자를 윤핵관에게 보낸 대통령에게도 분명 문제는 있고, ‘9급이라 미안’이라는 등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언행으로 여론을 자극한 윤핵관들이 대안이 될 수도 없는 일이다. 윤핵관들도 ‘개고기’를 팔려 하지 말고 뒤로 물러서야 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윤핵관들의 문제와는 별개로, 대안 부재의 상황에서도 민심과 당심을 얻지 못한 자신의 리더십을 성찰해야 하는 것은 오롯이 이준석의 몫이다.

이 대표는 당의 비대위 전환 결정에 대해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하며 법적 대응에 나섰다. 집권여당의 대표가 당의 결정에 불복해 법원의 판단을 구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게 된 것이다. 정당 내부의 결정을 법원이 뒤집는 경우는 흔하지 않은지라 그의 가처분 신청이 원하는 결과를 낳기는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이 대표로서는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마지막 카드의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한 모습이다. 하지만 앞으로 있을 법적 판단 결과에 상관없이 이준석에 대한 정치적 판단은 이미 당내에서 이루어진 상태다. 거의 대부분의 당 소속 의원이 이 대표에게서 등을 돌리고 ‘자동 해임’으로 결론 내린 광경은 지난 1년2개월 동안 그가 해온 정치의 실패를 의미한다. 그를 해임하는 과정의 무리함에도 당내에서 그의 편에 섰던 사람이 거의 없었던 현실은 이 대표에게는 뼈아픈 일이다. 이 대표는 그 부당함에 분노하기 이전에 이렇게까지 된 상황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성찰하는 것이 순서다.

전 대표는 아직 38세. 여전히 30대의 창창한 나이다. 오늘 대표 자리에서 굴욕적으로 해임당한들, 향후 그가 재기하고 정치적으로 도약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는 많을 것이다. 지금 그에게 중요한 것은 법적 소송에서 이기고 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당 대표로 있으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데 실패한 원인을 냉정하게 성찰하는 일이다. 이준석의 정치가 이쯤에서 막을 내릴지, 아니면 후일을 기약할 수 있을지는 결국 그 자신에게 달린 일이다.

유창선 시사평론가
유창선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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