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 중시하는 골프, 알고도 속였다면 ‘괘씸죄’ 적용
  • 안성찬 골프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8.21 08:00
  • 호수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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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윤이나의 ‘양심 불량’ 파장…“중징계 불가피할 듯”
국내외에서 다양하게 벌어진 ‘골프 부정행위’ 천태만상은?

윤이나(19)의 ‘골프 규칙 위반’ 논란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윤이나는 지난 6월16일 한국여자오픈 1라운드 15번 홀에서 ‘오구(誤球·wrong ball) 플레이’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티샷한 뒤 러프에서 자신의 볼을 찾던 중 누군가가 잃어버린 볼을 자신의 볼인 것처럼 플레이했고, 이런 사실을 알고도 계속 경기를 진행한 뒤 한 달이나 지난 시점에 신고한 탓에 ‘치팅’(속임수) 논란이 불가피한 것이다.

사실 한국뿐 아니라 미국과 유럽의 프로골프대회에서도 규칙 위반 사례는 다양하게 나타난다. 미국의 골프전문매체 ‘골프매거진’이 최근 PGA투어에서 활동하는 캐디 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54%가 ‘경기 중 선수들의 부정행위를 봤다’고 한 것만 봐도 부정행위는 수시로 발생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윤이나처럼 규칙을 위반하고 한 달이 지나서야 신고한 사례는 처음이라서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한 경기위원은 “협회가 생긴 이래 윤이나 같은 특이한 상황은 없었다”며 “3년 정도의 출전금지 징계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실제 8월19일 대한골프협회(KGA)는 윤이나 선수에 대해 한국여자오픈 등 KGA가 주최하거나 주관하는 대회에 3년 출전금지의 징계를 결정했다. KLPGA는 아직 상벌위원회를 열지 않고 있다. 

6월16일 KLPGA투어 한국여자오픈에서 ‘오구 플레이’로 논란을 일으킨 윤이나가 큰 위기를 맞고 있다.ⓒ뉴시스

알고 위반하면 2벌타, 모르고 하면 1벌타

부정행위를 하고도 속인 사례는 국내외에서 수없이 존재한다. 지난 6월30일 부산 아시아드컨트리클럽에서 열린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 아시아드CC 부산오픈 첫날. 2부 투어 격인 스릭슨투어에서 활약하는 정석희는 이 대회에 초청받아 출전해 소위 ‘알까기’를 했다가 실격당했다. 자신이 샷한 볼을 찾지 못하자 다른 볼을 꺼내 놓고 플레이한 것이다. 그는 처음에는 오구플레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볼을 찾은 경기위원장에게 발각됐다. 결국 정석희는 오구 플레이를 시인했고, 자격정지 5년에 5000만원의 중징계를 피할 수 없었다.

1985년 메이저대회 디오픈 예선대회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데이비드 로버트슨(스코틀랜드)이 그린 위에서 반복적으로 볼을 홀 가까이에 옮겨놓고 치는 속임수로 적발됐다. 흔히 아마추어 골퍼들이 그린에서 장난치는 ‘동전치기’ 수법이다. 그린에 먼저 올라간 뒤 볼 뒤에 마크를 하는 것이 아니라 마커를 홀에 가까이 던지는 것이다. 특히 볼을 마크할 때마다 조금씩 옮기기도 한다. 로버트슨의 캐디 코널리가 9홀이 끝난 뒤 로버트슨의 치팅을 신고해 적발됐다. 주관하던 R&A는 로버트슨에게 평생 출전 정지의 중벌을 내렸다. 로버트슨의 선수 생명도 끝났다.

골프에는 재미난 규칙이 있다. ‘알고 위반하면 2벌타, 모르고 하면 1벌타’를 받는 것이다. 플레이할 수 없는 지역으로 공이 떨어지는 OB(out of bounds)가 나거나 워터 해저드에 들어가면 1벌타를 받고 원래 위치에 가서 다시 치면 된다. 하지만 오구 플레이 같은 경우에 원래 위치로 돌아가 치면 1벌타지만, 알고도 그냥 플레이하다 적발되면 2벌타 혹은 실격 처리된다. ‘명예와 진실성을 우선으로 하는’ 골프 규칙은 사실 벌타가 목적이 아니고 선수가 불이익을 당하지 않고 플레이할 수 있도록 돕는 성격이다. 규칙을 제정한 영국왕립골프협회(R&A)와 미국골프협회(USGA)가 4년마다 규칙을 개정하고, 골프 규칙 책을 펴낸다.

미국에서 규칙 위반의 요주의 인물은 PGA투어에서 활약하다 이번에 LIV 골프로 이적한 패트릭 리드(미국). 올해 1월31일 미국 PGA투어 파머스 인슈어런스 오픈 3라운드에서 유명한 사건이 발생했다. 4타 차 선두를 달리던 리드는 10번 홀 페어웨이 벙커에서 세컨드 샷한 볼이 그린 왼편으로 날아가 러프에 떨어졌다. 리드는 볼 가까이에 있던 자원봉사자에게 “볼이 튀었다가 떨어졌느냐?”고 물었다. 자원봉사자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코스는 비가 자주 내려 볼이 땅에 박히기 쉬운 조건이었다. 자신의 볼을 찾은 리드는 경기위원을 불렀다. 경기위원이 도착하기 전에 리드는 자신의 볼을 찾아서 꺼냈다. 이런 행동이 공교롭게도 생중계하는 TV 화면에는 잡히지 않았다.

리드는 경기위원이 도착하자 볼이 박혀 있던 위치를 알려줬다. 리드는 박힌 볼을 벌타 없이 구제하는 절차에 따라 볼을 드롭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TV 영상에서는 볼이 러프에 맞고 튕겼다가 다시 떨어지는 장면이 나온 것. CBS 해설자인 닉 팔도(잉글랜드)는 “어떻게 한 번 튕겼다가 떨어진 볼이 땅에 박힐 수 있느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이렇듯 그가 불신을 받은 이유는 2019년에 비슷한 전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히로 월드챔피언십에 출전한 그는 연습스윙을 하면서 ‘웨이스트 에어리어(waist area)’에 있던 볼 뒤의 모래를 두 차례나 걷어냈다가 라이 개선으로 2벌타를 받은 바 있다. 웨이스트 에어리어는 주로 모래로 채워져 있으나 벙커가 아니라 일반구역이다. 당시 리드는 처음엔 발뺌했다. 하지만 녹화테이프를 돌려본 뒤 그의 잘못이 명백히 드러났다. TV 화면에는 리드가 백스윙하는 척하면서 모래를 쳐내는 장면이 잡혀 ‘양심 불량’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현장에서 속였어도 시청자들 제보로 발각되는 경우 많아

‘비양심 골퍼’로 찍힌 또 한 명의 선수는 메이저대회를 세 번이나 제패한 파드리그 해링턴(아일랜드). 2011년 1월 유러피언 프로골프투어 아부다비챔피언십 1라운드를 마친 뒤 스코어 오기로 그는 실격됐다. 당시 해링턴은 그린에서 볼 마크를 집어올리려다 볼을 살짝 건드렸다. 규정은 1벌타를 받고 원래 위치로 볼을 옮긴 뒤 퍼팅하면 된다. 하지만 해링턴은 그대로 퍼트했고, 스코어카드에 파를 적었다. 2벌타를 받아 더블보기가 됐어야 할 상황이었다. 당시 시청자 제보로 그는 실격됐다.

‘골프 황제’로 불리는 타이거 우즈(미국)도 규칙 위반에서는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 2013년 4월 열린 마스터스대회에서 ‘타이거 룰’이라며 비난을 받은 사건이 그것이다. 2라운드 15번 홀(파5). 87야드를 남기고 웨지를 잡아 샷한 볼이 깃대를 맞고 물에 빠졌다. 우즈는 고개를 숙이고 깊은 한숨을 쉰 뒤 볼을 드롭하고 다시 쳤다. 원래 친 위치에서 2야드 뒤로 물러나서 다섯 번째 샷을 한 것. 그런데 샷을 한 지점이 문제였다. 볼이 빠진 곳은 깃대 옆쪽 연못이었기에 뒤로 물러나려면 그쪽으로 갔어야 했다. 우즈는 순간 혼동했다. 처음 샷한 자리 근처도, 빠진 곳의 뒤도 아닌 후방으로 가서 드롭한 것이다. 벌타를 받아야 할 상황이었다.

이를 인지하지 못한 우즈는 보기로 적고, 스코어카드를 제출했다. 볼이 물에 빠졌을 때의 드롭 옵션은 크게 두 가지다. 친 곳에서 가능한 한 가까운 곳이거나 볼이 물에 빠진 곳과 깃대의 연결선상 후방이다. 이 규칙을 적용하면 워터 해저드에 관한 골프 규칙에 따라 2벌타가 주어져야 하고, 스코어카드 오기로 실격 판정을 받아야 했다. 한 골프팬이 TV 녹화를 돌려보다가 우즈의 샷 지점을 이상히 여겨 마스터스 경기위원장에게 제보했지만, 당시 위원장은 우즈에게 2벌타만 주고 상황을 덮었다. 결국 우즈는 우승자에게 4타 차 뒤진 공동 4위로 마감했다.

선수들은 플레이 중에 항상 부정행위나 골프 규칙 위반의 유혹에 노출돼 있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으면 더욱 그럴 것이다. 한 타 한 타에 희비가 갈리는 데다, 스코어가 곧 상금인 탓이다. 여기에 당장 컷오프 탈락이라는 눈앞의 엄청난 심적 부담도 도사리고 있다. 특히 매 대회 성적은 다음 시즌의 출전권이 걸려 있기 때문에 잘못된 행위임을 알면서도 눈속임이 가능한 상황이라면 조금이라도 유리한 입장에서 플레이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를 스스로 잘 극복해야만 선수로서 장수할 수 있고, 팬들에게 존경받을 수 있는 선수가 될 수 있음을 이번 윤이나 사태가 잘 보여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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