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여성 전용’은 역차별인가? [남인숙의 귀여겨듣기]
  • 남인숙 작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9.04 14:05
  • 호수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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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에게 ‘정액 테러’를 해도 재물 손괴죄만 적용되는 나라
역차별 이유로 여성 전용 주차장 폐지하는 건 아직 일러

8월20일 서울시는 여성 전용 주차장을 없앤다고 밝혔다. 이는 2009년 오세훈 시장이 ‘여성 행복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시행한 것을 가족 및 노약자 우선 주차장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는 실효성 문제로 폐지 수순을 밟는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입장문에 명시되어 있듯 여성 전용 주차장이 역차별이라는 20·30대 남성들의 주장을 받아들인 정책이라는 것 또한 사실이다.

지난 6월 서울시는 ‘엄마행복 프로젝트’라는 초안으로 같은 내용을 예고한 바 있고, 비슷한 시기에 일제히 여성 전용 주차장의 폐해가 드러나는 기사를 여러 언론사에서 게재했다. 구미의 한 대형마트 주차장에서 어느 모녀가 빈자리를 찜해 두고는 임신한 아내를 태운 남성 운전자가 주차하는 것을 막았다는 내용이었다. 실효성 없는 제도가 ‘비양심적인 여성들에게만’ 이용되는 현실을 반영해 제도의 개선을 이룬 모양새다. 하지만 새로운 제도가 시행된 뒤에도 기존 여성 전용 주차장을 이용하는 계층은 비슷할 것으로 보인다. ‘가족 우선 주차장’을 표방하고 있어 아이를 동반한 성인이 우선 이용하는 것을 권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 발표 초안이 ‘엄마행복 프로젝트’였던 사실에서 짐작할 수 있듯 아이를 동반하는 성인은 통상 우리 사회에서 여성일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사회의 어떤 이면이든 제도의 허점을 이용한 소위 ‘진상’들은 존재한다. 그런데 세금 탈루나 배임, 강력범죄가 아닌 고작 주차장 자리를 찜한 일이 도화선이 되어 특정 계층을 보호한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제도가 없어졌다는 것은 다시 생각해볼 여지가 있는 일이다. 우리 사회에 ‘여성 전용’이라는 것을 꼴 보기 싫어하는 계층이 존재하며 정치권이 그들의 감정을 정책에 반영하고 있다는 것의 방증이다.

서울의 한 대형마트 지하1층에 마련된 여성 전용 주차장 모습ⓒ시사저널 박은숙

여성, 완전한 ‘금남의 구역’ 가져본 적 없어

어느 시대, 어느 문화권이건 여성 전용 비슷한 것은 늘 있어왔다. 이슬람의 하렘, 조선시대의 규방이 그렇고, 오늘날에도 필라테스 스튜디오나 미용실처럼 업장 분위기에 따라 여성들이 주로 드나드는 곳도 있다. 그러나 이런 집단은 어디까지나 ‘여성 전용’이 아니라 ‘여초 구역’일 뿐이다. 여성의 의지로 형성되고 지켜지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시작되어 19세기 서구권에서 크게 유행한 신사 클럽(Gentleman’s clubs)은 ‘사적이고 가정적인’ 존재인 여성을 배제한 사교의 장소였다. 취지에 맞게 공적인 의제가 다뤄지면서도 자유롭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했다. 이 신사 클럽은 철저하게 남성의 필요와 수요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었고, 당연히 그 과정에 여성의 의지가 반영된 부분은 없었다. 여성의 출입은 철저히 제한되었다. 이런 클럽하우스 중 하나인 영국왕실골프협회(R&A)에 처음으로 여성 기자가 들어간 것이 2009년이었다. 그러나 골프계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이 클럽에서 여성을 멤버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은 그 일로부터도 한참 지난 2014년이 되어서였다. 이 클럽이 생긴 지 260년 만이었다.

여성은 단 한 번도 완전한 금남의 구역을 가져본 적이 없다. 하렘이나 규방과 같은 과거의 금남 구역은 여성의 활동을 제한하고 독점하기 위해 만든 것이고, 그 구역의 주인은 여성이 아닌 가부장 남성이었다. 현대의 여초 구역은 남성 출입이 제한되는 일이 거의 없는 취향 공통의 집단일 뿐이다. 암묵적으로 여성들만 모이게 된 장소는 그것을 깨고 싶어 하는 일부 남성의 침입에 무방비하다. 이제야 여성들은 자기 의지에 의한 전용 구역을 요구하고 있다. 그것은 빅토리아 시대의 남성 특권 클럽 같은 것과는 결이 다르다.

필자는 주변 남성들에게 ‘여성 전용’이라는 간판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지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저런 게 굳이 왜 필요할까?’라는 정도의 생각이 든다고 했다. 연이어 ‘남성 전용 공간’이 따로 만들어지면 좋겠냐고 묻자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쯤 되면 왜 여자들만이 그토록 ‘여성 전용’을 원하는지도 궁금해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반라로 거리를 누빈 남녀에게 벌어진 일

지난 7월 무인 빨래방에 ‘여성 전용 세탁기’가 있는 것에 대한 남성들의 불만 내용이 기사로 올라왔다. 왜 세탁기조차 여성 전용이 필요한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그대로 기사화했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실제 여성의 삶을 들여다보자면, 속옷을 도둑맞은 경험이 있는 여성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다가구주택이나 원룸의 건조대에 빨래를 널어놓으면 높은 확률로 속옷이 사라진다. 내 집에 널어놓은 빨래도 사라지는데 불특정 다수가 공유하는 빨래방은 어떨까. 빨래방에서는 앞서 기계를 이용한 사람이 세탁 완료 시점에 현장에 없으면 대기하던 손님이 임의로 그 빨래를 꺼내 트레이에 담고 이용하는 게 암묵적으로 허용된다. 이 과정이 상식만큼 아무렇지도 않은 게 아니라는 것이 문제다.

한국은 남성의 성적 욕구 표출에 비교적 관용적인 사회다. 지난 6월 한 남성이 자신의 정액이 든 콘돔을 여성 혼자 사는 이웃집 손잡이에 걸어놓았다. 그리고 경찰에 입건된 이 남성은 성범죄가 아닌 재물손괴죄가 적용된 처벌을 받았다. 비슷한 사례로 남성들이 여성의 텀블러 안에 정액을 넣거나, 옷 안이나 신발 안에 정액을 넣어둔 일도 모두 재물손괴죄를 적용받았다. 특히 6차례에 걸쳐 동료의 음식에 정액 테러를 했는데도 재물손괴죄 이상을 적용하지 못한 우리 법체계는 외신의 대대적인 조롱을 받기도 했다.

이런 사회 분위기에서 낯선 남성이 자신의 속옷에 무시로 손을 댈 수 있는 상황을 불안해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필자는 최근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을 온라인 영상을 통해 목격했다. 알 수 없는 퍼포먼스로 반라로 거리를 누비는 남녀에게 관심이 집중되었는데, 그 자리의 몇몇 남성이 여성의 신체를 임의로 만지는 것이었다. 수많은 카메라가 그 상황을 촬영하고 있고, 그걸 모두가 인지하는 상황에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나온 행동이었다. 여성의 노출 정도가 어쨌건, 그 태도가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사회적 영역을 대하는 무게다. 언제든 침범할 수 있고 그래도 괜찮은.

궁극적으로 모든 ‘여성 전용’은 사라져야 한다. 그러나 여성이 도서관에서 스토커에게 시달릴 수도, 내 집에서 툭하면 속옷을 도둑맞을 수도, 사물함 신발에 정액 테러를 당할 수도 있는 사회에서는 아직 이른 일이다.

남인숙 작가
남인숙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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