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까지 두 달, 손흥민의 부진은 곧 대한민국의 근심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9.17 15:05
  • 호수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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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중인 지난 시즌 EPL 득점왕, 새 시즌 개막 후 8경기에서 무득점
시즌 초는 항상 슬로스타터 성향…벤투 감독 “걱정 없다”

손흥민의 현재를 만든 최고의 조련사이자 멘토인 부친 손웅정 SON축구아카데미 감독은 지난 시즌 아들의 프리미어리그 득점왕 등극 이후 들뜬 분위기를 경계했다. 그는 언론이 찬사를 거듭하고, TV를 틀면 수많은 광고에 손흥민이 나오는 상황을 마냥 반기지 않았다. 농부의 심정을 강조한 손 감독은 “올해 풍년이 왔다고 지나치게 좋아하지 말아야 한다. 내년에 흉년이 올 수 있다.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은 대단한 일이지만 흥민이가 꾸준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겼다.

누구보다 손흥민을 잘 아는 이의 통찰력이었을까? 2022~23 시즌 초반 손흥민의 득점포가 침묵에 빠졌다. 한국시간으로 9월14일 새벽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벌어진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D조 2차전 스포르팅 CP와의 대결에서도 손흥민은 시즌 첫 득점을 올리지 못했다. 왼쪽 측면 공격수로 선발 출전한 손흥민은 후반 27분 데얀 쿨루세브스키와 교체될 때까지 슈팅을 쏘지 못했다. 토트넘은 손흥민이 나간 뒤 내리 2골을 내주며 0대2로 시즌 첫 패배를 기록했다.

손흥민이 8월6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토트넘-사우샘프턴 경기에서 득점에 실패하자 아쉬움에 얼굴을 감싸고 있다.ⓒEPA 연합

경기력 면에서도 지난 시즌과 다소 차이 드러내

지난 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 23골을 기록하며 모하메드 살라(리버풀)와 공동 득점왕에 오른 손흥민은 히트 상품이 됐다. 손흥민의 커리어하이와 함께 6월 열린 대표팀의 A매치 4연전(브라질, 칠레, 파라과이, 이집트)은 모두 매진됐고, 7월 토트넘 방한 경기도 성공적으로 치러졌다. 토트넘의 다니엘 레비 회장이 “이런 열기라면 내년에도 또 오고 싶다”고 감탄했을 정도다. 브라질과의 친선전 때는 네이마르가 경기 후 손흥민을 라커룸으로 초대해 따로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하지만 산이 높으면 골이 깊은 법. 곧바로 다가온 새 시즌은 손흥민의 숙제였다. 지난 시즌의 성과에 버금가는, 혹은 그 이상의 결과물을 내야 한다는 기대감과 부담감이 동시에 왔다. 매해 여름 세계적인 선수들이 새롭게 입성하는 최고의 리그에서 손흥민은 정상을 지켜야 하는 입장이 된 것이다. 결국 우려가 현실이 됐다. 지난 시즌 공식전 45경기에서 34개의 공격포인트(24골 10도움)를 올렸던 손흥민은 개막 후 40여 일이 지난 현재까지 8경기에서 1개의 공격포인트만 올렸다. 그나마도 사우샘프턴과의 개막전에서 올린 도움이었고, 그 뒤 7경기는 골도 도움도 없다.

손흥민이 시즌 초반 어려움을 겪는 가장 큰 이유는 상대의 집중 견제 증가다. 지난 세 시즌 동안 리그 11골→16골→23골 순으로 득점력이 증가한 데는 토트넘의 간판 스타인 해리 케인에 대한 견제를 손흥민이 역이용한 측면이 컸다. 최전방 공격수지만 연계 능력이 좋은 케인은 자신에게 쏠리는 수비로 인해 생긴 공간을 손흥민에게 열어줬다. 2015년 여름부터 발을 맞춰온 두 선수는 토트넘에서만 41골을 함께 만들며 프리미어리그 최다 합작 득점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올 시즌에는 양상이 바뀌었다. 토트넘을 상대하는 수비수들의 1차 견제 대상은 케인이 아닌 손흥민이다. 미드필더에서부터 강한 압박과 협력 수비로 손흥민이 공을 잡고 달려 나가기 전에 견제가 시작된다. 아이러니하게 손흥민이 집중 견제로 초반 어려움을 겪는 사이 케인은 리그 6경기에서 5골을 기록하며 2년 전 득점왕에 올랐을 당시의 페이스를 보여주고 있다.

공격진의 경쟁이 심화된 점도 지난 시즌에 손흥민이 처한 것과는 다른 상황이다. 지난 시즌 중 부임한 안토니오 콘테 감독은 여름 이적시장에서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다. 7명의 선수를 영입했는데, 공격진에는 브라질 국가대표 히샬리송이 가세했다. 토트넘의 약점은 손흥민과 케인, 그다음의 3번째 공격 옵션이 약하다는 점이었다. 그 부분을 강화하기 위해 콘테 감독은 에버턴에서 지난 4시즌 동안 53골을 올린 히샬리송을 택했다. 히샬리송은 마르세유와의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멀티골을 터트렸다. 그 전후로 3경기 연속 풀타임을 소화 중이다.

일단 콘테 감독은 손흥민과 히샬리송을 경쟁시키기보단 공존하는 형태를 모색하고 있다. 최전방에 케인을 세우고 좌우에 손흥민과 히샬리송을 배치하는 3명의 포워드 구성이 토트넘의 기본 공격 전형이다. 문제는 과거 루카스 모우라, 스티븐 베르바인 등 그야말로 손흥민의 백업에 그치던 위상의 선수들과는 다른 존재감의 공격수가 들어왔다는 점이다. 당장 히샬리송의 가세로 출전 시간이 줄어든 선수는 쿨루세브스키다. 그러나 손흥민이 현재처럼 득점하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콘테 감독이 변화의 타깃을 달리 가져갈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스포르팅전에서 손흥민이 단 1개의 슈팅도 기록하지 못하고 교체되자 영국 언론들은 “앞으로 콘테 감독의 선수 교체에서 첫 번째 대상은 손흥민이 될 것이다”는 목소리를 냈다. 실제로 손흥민은 올 시즌 풀타임 출전이 8경기 중 2번에 불과했다. 콘테 감독은 그 8경기에 손흥민을 모두 선발 출전시켰지만 최근에는 서서히 교체 타이밍을 빠르게 잡아가는 중이다. 72분을 뛴 스포르팅전은 올 시즌 손흥민이 가장 빨리 교체 아웃된 경기였다.

실제로 손흥민의 경기력 역시 절정의 상태와는 거리가 있다. 손흥민의 최대 강점은 순간 시속 35km의 폭발적인 스프린트를 하면서도 정확한 터치와 방향 전환을 해내는 볼 컨트롤, 그리고 양발의 차이가 거의 없는 정교하고 힘 있는 슈팅이다. 그런데 올 시즌 손흥민은 볼 컨트롤에서부터 미스가 잦다. 슈팅을 하기 위한 자세와 위치를 잡는 것에 애를 먹다 보니 기본적으로 공격 시도 횟수가 줄어들었고, 자연히 득점이 나오지 않는다.

예년의 손흥민은 6·7월 휴식기에 국내에서 부친과 단내 나는 개인훈련으로 몸을 만들어 초반부터 좋은 컨디션을 보였다. 올해는 카타르월드컵이 11월에 열리다 보니 개막 일정이 앞당겨져 프리시즌 일정이 짧았다. 휴식과 훈련을 병행했어야 할 6월에는 대표팀 소집이 평소보다 10일 이상 길었다. 거기다 토트넘의 방한으로 팀 합류 시점도 그에 맞춰 늦추다 보니 시즌 초반 컨디션을 올리는 데 애를 먹고 있다.

 

국내 A매치 평가전이 분위기 반전 기회 될 수도

한편으로는 초반 득점 침묵에 지나친 우려를 한다는 평가도 나온다. 손흥민은 지난 시즌을 제외하면 대부분 발동이 천천히 걸리는 슬로스타터 기질을 보였기 때문이다. 득점왕을 차지한 지난 시즌조차 맨체스터 시티와의 개막전에서 득점에 성공했지만, 초반 한 달간은 2골에 그쳤다. 상반기에 8골을 넣었지만, 후반기에 15골을 몰아치며 득점왕에 올랐다. 2018~19 시즌에는 13라운드까지 득점이 없었던 적도 있다.

최근 3시즌 개막 후 한 달 동안 손흥민의 평균 득점은 2.6골이었다. 지난 시즌 공동 득점왕을 차지한 살라도 현재 2골에 그치고 있다. 축구 국가대표팀의 파울루 벤투 감독도 9월13일 대표팀 명단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걱정해본 적이 없다. 손흥민을 만나서도 득점에 대한 얘기는 하지 않을 것이다”며 일시적인 부진이라고 간주했다.

그래도 손흥민의 득점 침묵이 더 길어지면 안 된다. 두 달 앞으로 다가온 카타르월드컵에서 한국의 최대 경쟁력이 손흥민이라는 창과 김민재라는 방패라는 건 분명하다. 황의조, 황희찬 등 다른 유럽파도 있지만 손흥민의 결정력에 날이 서있어야 다른 공격수들이 부수적 효과를 볼 수 있다. 이번 A매치가 손흥민에게는 좋은 터닝포인트가 될 수도 있다. 벤투호는 9월23일 코스타리카, 27일 카메룬과 국내에서 평가전을 치른다. 여기서 손흥민이 득점을 올려 컨디션을 회복하면 슬로스타터 기질과 함께 10월의 반격도 기대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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