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찬 “대통령이 여당 대표로 나서 야권과 협치하는 정치행위 필요”
  • 감명국 기자 (kham@sisajournal.com)
  • 승인 2022.09.19 11:05
  • 호수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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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인터뷰] 이종찬 전 국정원장의 여야 정치권 향한 쓴소리
“팬덤에 종속된 지금의 민주당, 너무 안타까워” 

1990년 2월 어느 날. 서울 중구 L호텔의 한 방에 익숙한 얼굴들이 하나둘씩 들어섰다. 집권여당 민자당의 이종찬·남재희·김윤환, 제1야당 평민당의 김원기·이철, 제2야당 민주당의 김광일, 재야의 이부영 등. 당시 정계를 쥐락펴락하던 여야 중진들이었다. 1988년 4월 총선은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의 여소야대 정국을 만들었고, 집권 초기 노태우 정부는 시장 개방 압력과 냉전체제 종식이라는 새로운 국제질서의 도전에 직면해 있었다.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서로 반목하던 여야 정치권을 한자리에 모이게 만든 이는 박권상 당시 시사저널 편집인이었다. 만남 자체만으로도 신문 1면 헤드라인을 장식할 수 있었던 시절, 박 편집인은 비보도를 전제로 여야 중진들에게 대화의 장을 제공했고, 몇 차례 벌어진 난상토론에서 여야는 이해의 폭을 넓히고 협치의 물꼬를 텄다.

역사의 데자뷔. 30여 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은 다시 여소야대 정국이 만들어졌다. 윤석열 정부 집권 초기 여야의 극한 대치로 인해 정치는 실종됐고, 반복되는 정쟁에 국민의 피로감은 가중되고 있다. 날로 치솟는 물가와 환율, 금리로 인해 경제난 우려는 갈수록 커지고, 미-중·러 대립 속에 세계는 신냉전 체제에 접어들었다. 여기에 추석 연휴 때 불거진 북핵 리스크까지. 그야말로 대한민국은 백척간두에 서있다.

얽히고설킨 실타래는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까. 이종찬 전 국정원장은 당초 시사저널의 인터뷰 요청을 한사코 고사했다. “나이 든 사람이 너무 나서서 이러쿵저러쿵 얘기하는 게 어른스럽지 못하다”는 이유였다. 그러면서 30여 년 전 시사저널의 제안으로 이뤄진 L호텔 회동 기억을 조심스레 꺼내놓았다. 그와 관련된 얘기를 좀 더 듣고 싶다는 거듭된 요청에 노정객(老政客)은 “추석 민심을 좀 들어보고 나서 만나자”고 화답했다. 9월14일 이 전 원장과의 자리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시사저널 이종현

“김건희 여사, 뭔가 깔끔하지 못해”

추석 명절 잘 보내셨습니까. 최근 언론 인터뷰 요청을 다 고사하신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나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노태우 정부 첫해 정무장관을 지냈어요. 당시의 여소야대 정국은 지금보다 더 큰 충격이었고, 야당은 ‘3김’(김영삼·김대중·김종필)이라는 그야말로 막강한 인물들이 포진해 있었죠. 대화가 쉽지 않은 때였어요. 그런 상황에서 박권상 시사저널 편집인이 ‘이럴 때일수록 여야의 책임 있는 정치인들이 자꾸 만나야 한다’며 자리를 만들었어요. 밥 한 끼 넣어주고 문 닫아걸고 난상토론을 벌이게 만든 거예요. 절대 보도 안 할 거니까 무슨 얘기든 허심탄회하게 하라 그래요. 그렇게 몇 차례 만나면서 서로 낯 붉히고 욕도 했지만, 결국 친해지고 이해의 폭을 넓혔습니다. 시사저널에 대한 그때 그런 고마운 마음이 지금도 있어요. 지금은 그때보다 더 심각한 대치 정국이잖아요. 그래서 그때의 얘기도 할 겸 이렇게 (인터뷰에) 응하게 됐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지금 여야 간 끊이지 않는 정쟁으로 국민이 갖는 피로감은 극심한 듯합니다.

“그래도 1989년, 1990년 당시엔 정당이 정당 역할을 했습니다. 논어에 ‘군군신신 부부자자’란 말이 있어요.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세상이 평화롭고, 부모는 부모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가정이 평화롭다는 거죠. 전 지금을 빗대어 ‘여여야야’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여당은 여당다워져야 하고 야당은 야당다워졌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여야가 서로 제 구실을 못 하기 때문에 이런 정치 불신과 국민 불안이 가중되고 있는 겁니다. 사실 국민의힘의 정치력이란 게 지금 완전히 붕괴됐죠. 허구한 날 가처분이나 하는 여당이 되었어요. 민주당도 지금 굉장히 불안한 상황입니다. 이재명 대표가 51% 정도를 얻었으면 괜찮았을 텐데, 70~80%라는 팬덤정치로 완전히 ‘이재명당’을 만들었습니다.”

여야가 제 역할을 못 한다는 말씀은 결국 여야 지도부의 문제인 셈인데요.

“그렇죠. 결국 지도력의 문제죠. 지도력을 상실한 거죠.”

대통령의 책임을 빼놓을 수 없을 듯합니다. 당초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인 출신이 아니어서 오히려 국민에게 기존 정치와는 다른 새로운 정치를 선보일 것이라는 기대감을 많이 갖게 한 게 사실인데요.

“그런데 과거엔 대통령이 여당 대표(총재) 역할을 했는데, 아마 노무현 정부부터 그게 바뀐 것으로 압니다. 당정 분리라는 명분하에 대통령이 여당에서 분리되다시피 했습니다. 이론적으로는 삼권분립 원칙도 있고, 또 대통령이 정당에 소속되면 중립적이지 않게 되니까 그렇게 바뀐 측면이 있습니다만, 그게 꼭 옳기만 한 건지 좀 의구심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실제 대통령이 여당의 수장 역할을 해야 여야가 분명해지고 정당이 정당 구실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것 아닌가 싶어요. 그렇지 않으니 지금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 얘기를 물으면 앞에선 아예 피하고, 오히려 원내대표에게 이상한 문자 보낸 게 찍혀서 논란을 초래하고, 이게 더 부자연스러워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게 아마 과거 제왕적 총재시절 정당 민주주의가 어렵다는 지적에서 ‘3김 시대’ 이후 총재 체제에서 대표 체제로 바뀐 것으로 압니다. 그리고 대통령은 자연스레 여당과 거리를 뒀죠.

“이런 제도가 이론적으로는 옳아요. 그런데 현실정치에선 이게 좀 혼란을 야기하는 원인이 되지 않나 봅니다. 이 문제에 대해 정치학자들이 좀 더 생각을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대통령이 정치를 하는 것도 아니고 안 하는 것도 아니고, 공중에 뜬 느낌이에요. 대통령이 때로는 여당을 대표해서 야당 대표와 만나고 정부를 운영하는 상황이 되어야 보다 책임이 명확한 정치가 되는 것 아닐까요. 지금은 대통령이 정치를 하면 왜 정치에 개입하느냐고 비난하고, 정치를 안 하면 또 왜 방치하느냐고 비난하는 이런 모호한 상황이 되고 있어요. 여당이 이렇듯 지도력 상실로 무너지고 있는데, 윤핵관이니 윤심(尹心)이니 하는 막연한 말만 나오는 건 책임정치 차원에서 옳지 않다고 봅니다.”

그 외에 또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요?

“윤 대통령은 어떤 면에서는 행운아입니다. 남들은 일생을 투쟁해서 간신히 대통령이 됐는데, 그는 1년 만에 됐어요. 그야말로 국민들이 불러낸 대통령이죠. 그만큼 기대가 클 수밖에 없어요. 제 주변에서도 그럽니다. 대통령 된 지가 벌써 4개월이나 지났는데, 도대체 뭘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과거 YS(김영삼)가 집권 초기 가장 성공한 대통령이란 평가를 듣는데, 그 분은 취임하자마자 국민들이 정신 못 차릴 정도로 개혁정책을 밀어붙였어요. 하나회 척결하고 금융실명제 도입하고, 이전 정부 사람들 다 청산하고. 그런데 지금은 그런 방식이 가능하지도 않아요. 임기제라는 이유로 이전 정부에서 임명된 사람들이 쉽게 물러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국민들은 너무 빨리 성과를 원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김건희 여사의 문제를 야당에서 계속 지적하고 있습니다. 급기야 특검까지 발의되는 양상입니다만.

“대통령 부인이 뭐가 있다고 하면 계속 조사했어야 합니다. 뭔가 명쾌하지 않으니까 국민들은 뭐가 있지 않나 의심하는 것이고, 그런 불신이 자꾸 가지를 쳐서 처음엔 도이치 주가조작에서 시작한 게 지금은 보니까 장신구 문제에 사적 지인 특혜까지 확대됩니다. 그렇게 방향이 조금씩 달라져요. 안타까운 건, 그런 시빗거리가 안 나오게 (김 여사가) 깔끔하게 주변 정리를 해야 하는데, 깔끔하게 못해요. 본인 성격이 그런 건지, 스스로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으려는 그런 노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지금 30%대 지지율에 갇혀 있는 윤석열 정부가 향후 지지율 반등을 꾀하기 위해서는 어떤 점에 좀 더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고 보십니까?

“그런데 사실 지지율이 떨어졌다고 해서 그걸 끌어올리기 위해 정치공학적으로 자꾸 뭘 하려는 건 자칫 포퓰리즘이 됩니다. 국가를 위해서는 중장기적인 정책과 어젠다를 계획적으로 소신 있게 펴나가야지, 인공적으로 자꾸 반짝하고, 반짝하고 해선 안 돼요. 그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뚜벅뚜벅 정책을 펼쳐 나가면 지지율은 좀 더디더라도 자연스레 올라가기 마련이에요. 또 정치인은 여론을 쫓아가고 여론을 의식해야 하지만, 여론을 끌고 가는 기능도 있습니다. 비위만 맞추려는 것은 큰 정치가 아니에요. 큰 정치는 여론을 끌고 가는 겁니다.”

그렇다면 윤 정부는 장기적으로 어떤 정책과 어젠다를 가져가야 한다고 보십니까?

“역시 연금 개혁, 노동 개혁, 그리고 인구 절벽 해소가 가장 시급한 문제 아닙니까. 그렇게 대한민국의 경쟁력을 키워서 국제 경쟁 속에서 이겨야 하는 것 아닙니까. 민생이 어렵다고 지금 큰 걱정인데요. (윤 정부가) 이 중요한 문제들의 줄기는 잘 잡았는데, 아직도 제대로 된 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젠 구체적으로 내놔야죠.”

ⓒ시사저널 이종현
ⓒ시사저널 이종현

“민주당의 당내 민주주의 부활이 정말 절실한 과제”

이제 야당 상황을 좀 보겠습니다. 경찰·검찰의 이재명 대표 관련 수사가 한창 진행 중입니다.

“이 의혹은 사실 지난해 대선 경선 때 시작된 겁니다. 민주당 경선 막판에 이낙연 후보가 제기하면서 의혹에 불이 붙었죠. 대선후보 토론에서도 다른 후보들 사이에서 대장동 문제는 계속 제기된 사안이었습니다. 이 정권 들어 갑자기 나왔으면 정치보복일지 몰라도, 그동안 의문이 계속 커져왔던 겁니다. 이런 의혹을 검찰에서 시비를 가려주지 않으면 아마 국민이 납득하기 어려울 겁니다. 정치보복은 좀 무리한 표현 아닐까요?”

하지만 민주당에선 ‘김건희 수사’와의 형평성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김건희 수사는 진즉에 했어야 했던 겁니다. 검찰이 이제라도 정확히 수사해서 밝혀야 합니다. 대통령 부인이라고 해서 검찰이 봐줄 필요도 없고 봐줘서도 절대 안 됩니다. 단 엄밀히 말하면, 그 둘의 사안이 사회적 파장이나 비중에 있어 동격은 아니라고 봅니다. 무게가 다르죠.”

지금 이 대표는 계속해서 윤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을 주장하고 있는데요.

“저는 이 시점에 대통령과 야당 대표 둘만의 단독회담은 리스키하다고 봅니다. 자칫하면 윤 대통령이 이 대표 수사에 개입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고, 수사의 진정성을 의심받게 만들 수 있다고 봅니다. 만약 (회담 후) 이재명 수사의 강도가 세진다면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돼 그렇게 되는 거라고 오해받을 수 있고, 거꾸로 수사 강도가 약해진다면 정치적 밀약에 의해 대통령 뜻에 따라 봐주기 한다는 오해를 살 수도 있습니다. 어떤 쪽으로든 안 좋은 상황이 예상되기 때문에 지금은 좋은 시점이 아니라고 봅니다. 문제가 어느 정도 해소된 뒤에 만나는 게 좋을 듯합니다.”

하지만 국민들은 여야 협치와 통합정치를 바라는 목소리가 많은데요.

“그렇죠. 어차피 곧 정기국회가 이뤄지면 여야 협치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행정부와 입법부, 즉 대통령과 국회의장을 중심으로 해서 여야 협치가 이뤄지길 바랍니다. 김진표 의장은 민주당 사람이니까요. 어차피 국회 권력은 야당이 쥐고 있는 것이고요. 그리고 김 의장은 제가 지켜보기에도 부총리까지 지낸 경륜답게 굉장히 합리적이고 균형이 갖춰진 분이라고 봅니다.”

일각에선 국회 권력을 쥔 민주당의 ‘반대를 위한 반대’가 너무 심하다는 지적도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민주당은 자칫 국민들이 보기에 일종의 이재명 대표의 로펌처럼 비칠 수도 있어요. 그렇다 보니 협치를 어렵게 만드는 측면도 있습니다. 너무 이 대표 보호 쪽으로만 가고 있기에 수사가 진행되는 한 협치가 안 되는 거죠. 민주당의 당내 민주주의 부활이 정말 대한민국의 절실한 과제입니다. 물론 여당도 마찬가지로 당내 민주주의가 부활되어야 하지만, 특히 민주당은 그동안, 다른 점은 몰라도 그런 면에서는 국민들의 지지와 신뢰를 받지 않았습니까. 당내 민주주의를 다시 꽃피워야죠. 그런데 지금 당내에 비판의 목소리는 전혀 안 들리고 조금만 비판하면 팬덤들이 문자폭탄으로 제압해 버립니다. 제가 아는 지금 민주당에도 소신 있고 양심 있는 정치인이 많이 계신데, 그분들이 제대로 된 목소리를 못 내고 있는 게, 침묵하는 게 너무 안타깝습니다.”

이 전 원장께서는 특히나 민주당의 전신인 새정치국민회의 창당을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주도하셨기 때문에 지금의 민주당에 대한 염려가 더 큰가 봅니다.

“민주당이 지금 팬덤에 종속되는 상황이 참 안타깝습니다. 김대중의 민주당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합니다. 그때 김대중 총재가 물론 강력한 카리스마를 발휘해 당을 이끌었지만, 김대중이라는 절대적인 총재 체제에서도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는 당내 민주주의가 있었어요. 총재 반대파도 있었고, 주류에 맞선 비주류가 존재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민주당은 단일 색깔이에요.”

이종찬 전 국정원장이 9월 14일 시사저널과 인터뷰를 하면서 팬덤정치의 폐해를 말하며 한나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기원》을 소개하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이종찬 전 국정원장이 9월 14일 시사저널과 인터뷰를 하면서 팬덤정치의 폐해를 말하며 한나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기원》을 소개하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역시나 팬덤정치의 폐해가 지적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오늘 인터뷰를 위해 일부러 한나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기원》이란 책을 가져왔습니다. 독일의 히틀러도 국민투표에 의한 다수 지지로 집권한 것이지, 쿠데타로 집권한 것은 아닙니다. 당시의 사회현상과 광풍의 휩쓸림 영향으로 투표가 꼭 이성적으로만 되는 건 아니라는 역사적 교훈을 줬습니다. 미국의 리더십도 지금 흔들리는 게 이른바 트럼피즘 때문입니다. 이렇듯 일부의 목소리 큰 세력의 얘기만 대표화되는 이런 팬덤 현상을 극복하지 않으면 세계 민주주의의 위기가 온다고 봅니다. 비단 우리나라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민주주의라고 하면서 실제적으로는 전체주의로 가는 심각한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고 봅니다.”

☞ 계속해서 「이종찬 “자꾸 북핵 언급 말고, 한반도 평화공존만 얘기하자”」 기사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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