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킴이 누구냐?” 세계 깜짝 놀래킨 대형 루키가 떴다
  • 안성찬 골프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10.02 13:05
  • 호수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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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 김주형, 프레지던츠컵에서 어퍼컷 세리머니 환호
세계 최강 미국에 맞서 전혀 주눅 들지 않은 플레이로 돌풍 일으켜

“톰킴(Tom Kim)이 누구냐?” 9월26일(한국시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의 퀘일 할로 클럽에서 열린 프레지던츠컵을 지켜본 세계 골프팬들은 김주형(20)의 플레이와 리액션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프레지던츠컵은 미국팀과 세계연합팀(유럽 제외) 간 단체전이다. 남자골프계를 양분하는 미국과 유럽의 대항전인 라이더컵을 본떠 1994년부터 시작돼 2년 단위로 열린다. 세계연합팀(인터내셔널팀)은 미국과 유럽을 제외한 국가의 선수들로 구성되는데, 세계랭킹 순서대로 12명의 선수가 선발되는 만큼 그동안 골프 강국인 호주·남아공 선수들 중심으로 팀이 구성됐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선수에게는 그저 동경의 대상이었던 셈이다. 최경주 선수가 2003년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프레지던츠컵에 선발된 것이 큰 뉴스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20년 만에 한국 남자골프의 위상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이미 세계 정상에 오른 여자골프 못지않다. 이번 프레지던츠컵에서 한국은 인터내셔널팀 12명 가운데 무려 4명이나 선발됐다. 역대 최다 선수 출전이다. 숫자뿐만 아니라 실제 경기에서도 압도적인 기량을 자랑하는 미국팀에 당당히 맞서는 첨병 역할을 했다. 당초 일방적인 열세 예상을 깨고 인터내셔널팀이 선전할 수 있었던 것 또한 모두 한국 선수들의 맹활약 덕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바로 20세의 겁 없는 동양 청년 김주형이 있었다.

9월24일(한국시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의 퀘일 할로 클럽에서 열린 프레지던츠컵 대회 사흘째 경기에 출전한 인터내셔널팀의 김주형이 18번홀에서 퍼팅에 성공한 뒤 기뻐하고 있다. ⓒEPA 연합

갤러리들 열광시키는 강력한 세리머니로 팀 분위기 주도

이번 대회에서 인터내셔널팀은 첫날(현지시간 9월22일)부터 완패당하면서 미국팀에 끌려다녔다. 그러다가 셋째날(24일) 3라운드부터 분위기 반전이 일어났다. 김주형은 김시우(27)와 한 조를 이룬 포섬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마지막 18번홀(파4)에서 버디 퍼트를 성공시키면 승부가 결정되는 상황이었다. 상대는 세계랭킹 4·5위인 미국의 패트릭 캔틀레이-잰더 쇼플리 조였다. 미국은 먼저 파로 마무리 지었다. 지형은 약 3m 내리막 슬라이스 라인. 김주형이 툭 하고 헤드로 댄 볼은 슬금슬금 굴러 오른쪽으로 휘더니 홀을 파고들었다. 그는 볼이 홀에 들어가기도 전에 승리를 직감한 듯 퍼터를 그린에 내던졌고, 모자를 벗어 내동댕이치더니 주먹을 불끈 쥐고 인터내셔널팀으로 다가가 환호성을 질렀다. 그런 뒤 김시우와 부둥켜안았다.

갤러리들을 불타오르게 할 강력한 ‘쇼맨십’을 발휘한 것이다. 특히 김주형의 과격한 세리머니는 팀 분위기를 띄우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롤모델인 ‘골프 지존’ 타이거 우즈(47·미국)를 연상케 하는 리액션 광경을 연출했다. 우즈는 2008년 베이힐 인비테이셔널에서 우승 퍼트를 성공시킨 후 흥분을 못 이겨 모자를 집어던지며 어퍼컷 세리머니를 했다. 김주형은 이번 대회에서 스타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1번홀에서 티샷을 하기 전에 갤러리들은 향해 목청껏 소리를 더 지르라고 유도하는 여유를 보였다. 이에 대해 NBC방송 해설가이자 미국 라이더컵 캡틴을 역임한 폴 에이징거는 “김주형이 나의 최애 선수”라고 말했고, 또 다른 방송의 해설가 저스틴 레너드는 “어떻게 이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나”라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최경주(52) 이후 김시우, 임성재(24) 등이 한국 남자골프의 뒤를 잇고 있지만 미국 그린을 휩쓸 만한 스타가 없었던 한국 남자골프는 ‘대형 루키’ 김주형의 등장으로 변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국에서는 골프계의 ‘뉴록스타(new rock star)’라며 흥분하고 있다. 비록 인터내셔널팀은 미국팀에 12.5대17.5로 졌지만, 김주형의 스타 탄생으로 한국 남자골프의 위상은 한층 더 높아졌다.

최경주가 한국과 일본에서 활동하다가 미국에 홀로 뛰어들어 황무지에서 ‘맨땅에 헤딩하듯’ 일궈놓은 PGA투어. 프레지던츠컵에서 인터내셔널팀 팬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김주형은 지난 8월 PGA투어 윈덤 챔피언십에서 역대 두 번째 최연소 나이로 우승을 일궈내더니 프레지던츠컵에서도 ‘큰일’을 내면서 월드스타로 급부상하고 있다. 사실 그는 ‘준비된 선수’였다.

골프 레슨코치인 부친의 운동감각을 제대로 물려받았다. 체격도 골프를 하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183cm, 95kg이다. 특이한 점은 엘리트 코스를 거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상급 프로선수로 가는 코스인 태극마크도 달지 못했다. 어릴 때부터 유목민처럼 노마드(nomade)로 아시아 지역을 떠돌며 넓은 세상을 배웠다. 2세 때 중국을 시작으로 태국, 필리핀, 호주 등에서 살았다. 부친이 캐디를 한 덕분에 다른 나라의 문화와 영어를 비롯해 언어를 배우고 다양한 경험을 익혔다. 떠돌이 생활로 인한 ‘힘겨운 고생’은 오늘날 ‘강한 멘털’의 밑거름이 됐다.

 

엘리트 코스 아닌 ‘노마드’…강한 멘털에 위기 극복 능력 탁월

특히 그는 편하게 골프선수 생활을 하지 않았다. 조명시설 없는 연습장에서 샷 연습을 하다가 새벽 4시30분에 일어나 혼자 백을 메고 걸어서 라운드를 했다. 김주형이 본격적으로 골프를 할 수 있었던 것은 필리핀에서 생활하던 11세 때 부친과의 내기 때문이었다. 84타 이내를 치면 골프를 해도 된다는 약속을 받았고, 거기서 김주형은 83타를 쳤다. 1타 차로 골프선수의 길로 들어선 셈이다. 2018년 필리핀 아마추어 오픈챔피언십과 RVF컵 아마추어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면서 그해 5월 프로로 전향했다. 필리핀 골프투어에서 2승을 거둔 뒤 이듬해인 2019년 아시안투어에서 17세 149일의 나이로 최연소 우승을 달성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그의 골프 패턴을 바꿔놓았다.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로 무대를 옮겨 2020년 7월 군산CC오픈에서 첫 우승하며 최연소 우승 기록(18세 21일)을 갈아치웠다. 그는 지난해 6월 SK텔레콤오픈에서 우승하며 KPGA 제네시스 대상과 상금왕, 덕춘상(최저타수상) 등 개인 타이틀을 독식했다. 올해 1월 싱가포르 인터내셔널에서 우승하며 아시안투어 상금왕에도 올랐다.

미국 진출을 노리며 콘페리투어 Q스쿨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탈락했다. PGA투어 진출을 위해 기회가 생길 때마다 무대를 밟으며 경험을 쌓았다. 드디어 2021~22 시즌 마지막 대회인 윈덤 챔피언십에서 정상에 올랐다. 놀라운 것은 윈덤 챔피언십 첫날 1번홀에서 4오버파인 ‘쿼드러플보기’를 범하고도 전혀 흔들림 없이 이후 버디를 7개나 잡아냈고, 최종일 61타를 쳐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다는 점이다. PGA투어 15개 대회에 출전한 끝에 첫 우승을 일궈낸 것이다. 그것도 정식 PGA투어 멤버가 아닌 임시 특별회원 자격을 얻어 출전한 대회에서 우승컵을 안았다. 이는 역대 최초 2000년대생 우승자이자 한국인 최연소(20세 1개월 18일) 우승이다. 또한 PGA투어 역사상 두 번째 최연소 우승이다.

그는 강한 멘털과 함께 위기 극복 능력이 뛰어나다. 실수한 이후에도 좀처럼 샷이 흔들리지 않는다. 톰(토마스)은 김주형의 영어 이름이다. 톰은 장난감 기차가 나오는 애니메이션 토마스 더 트레인(토마스와 친구들)을 좋아해서 딴 이름이라고 한다. 겸손이 몸에 밴 그는 “애늙은이 같다는 말을 종종 듣곤 한다”고 전했다. 김주형은 자신의 롤모델처럼 ‘한국의 타이거 우즈’로 한 걸음씩 걸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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