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정부가 할 일을 기업에 떠넘기지 말라
  • 이진우 MBC 《손에 잡히는 경제》 앵커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10.07 17:05
  • 호수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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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사안에 대해 국민들의 생각과 여론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최근 홈플러스가 팔고 있는 7000원짜리 ‘당당치킨’이라는 상품은 12년 전 롯데마트가 팔다가 여론의 역풍을 맞았던 5000원짜리 ‘통큰치킨’과 정확히 동일한 상품이다. 12년 전에는 왜 대형마트가 동네 치킨가게를 못살게 구느냐고 비판하던 여론이 이번에는 소비자들의 선택권이 중요하다면서 오히려 당당치킨을 옹호하고 있다.

대형마트의 의무휴업일과 관련해서도 처음에는 전통시장의 보호를 위해 필요하다는 쪽이던 여론의 물꼬는 요즘 소비자 불편을 계속 방치하는 게 옳으냐는 쪽으로 바뀌었다. 물론 그사이 여러 가지 변화가 있기는 했다. 동네 치킨집이 꽤 줄어들고 그 자리를 교촌, BBQ 등 유명 프랜차이즈가 메웠다. 대형마트 아니면 전통시장이던 소비자들의 쇼핑 선택지에 인터넷 쇼핑이 등장하면서 대형마트만 견제해서는 전통시장을 보호하기 어렵게 됐다.

그렇다고 여론이 달라졌다기엔 좀 이상한 점이 많다. 유명 프랜차이즈 치킨가게가 늘어나긴 했지만, 그 가게에서 치킨을 튀겨 파는 상인들은 5000원짜리 통큰치킨이 등장했던 12년 전의 그 동네 치킨가게 사장님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전통시장을 보호해야 한다면 인터넷 쇼핑이 늘어났더라도 대형마트의 의무휴업일은 계속 유지하는 게 일관성 있는 정책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생각은 꽤 달라진 게 분명해 보인다.

유튜브와 넷플릭스가 우리나라 인터넷망의 절반 이상을 점유하는 바람에 SK텔레콤 등 통신회사들의 비용 부담이 너무 크니 유튜브 운영사인 구글이나 넷플릭스가 망사용료를 부담해야 한다는 여론도 최근에는 달라졌다. 망사용료는 서비스 주체의 본사가 있는 개별 국가의 통신사에 내는 것이 국제적인 룰이다. 네이버가 한국의 통신사에 망사용료를 낸다고 구글도 한국 통신사에 망사용료를 낼 필요는 없다는 구글 측의 의견에 많은 여론이 동조 의사를 보이고 있다. 여론이 이렇게 바뀌자 구글 등에 망사용료를 부과하려던 입법 절차에도 브레이크가 걸리는 중이다.

지난 18일 오후 서울역 택시승강장에서 시민들이 택시를 잡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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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의 방향이 달라지니 정부 정책도 급변했다. 심야에 택시 잡기가 어렵다는 이유로 우버나 타다 같은 플랫폼 운송 서비스를 확대 허용하겠다는 계획을 국토부 장관이 밝힌 것이 그 사례다. 택시기사들의 생계를 보호해야 한다면서 타다를 불법 유사 택시로 규정했던 게 2020년이었다는 점을 떠올리면 불과 2년 만에 정부의 생각이 바뀐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택시기사의 생계가 중요하냐, 아니면 승객들의 편의가 중요하냐는 질문에 대한 여론의 선택이 2년 만에 바뀐 것으로 보는 게 옳다.

그 어떤 이슈에서도 ‘약자와 서민을 돕자’는 쪽의 논리가 늘 이겼던 대한민국의 여론 관행이 왜 갑자기 바뀌고 있는 것일까. 그건 아마도 ‘약자의 구제는 이제 소비자나 기업에 맡기지 말고 정부가 직접 하라’는 목소리가 강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정부가 세금으로 해야 할 일인 ‘약자를 돕는 일’을 우격다짐식 입법과 제도로 대기업이나 부유층 등이 부담하도록 하는 일을 서슴없이 해왔다. 그러나 택시기사들의 낮은 수입 문제는 택시비를 올리든, 정부가 지원하든 정공법으로 풀어야 한다. 외부의 도전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해 주고 돕는 것은 결국 정부 돈으로 도와야 할 대상을 다른 사람의 돈으로 돕도록 미루는 일이다. 요즘 확연하게 달라진 여론은 기업은 좋은 상품을 만들고, 소비자는 최선의 선택을 하고, 그 과정에서 탈락하는 이들은 정부가 최소한으로 지원해 다른 영역에 도전할 수 있게 돕는 선순환을 만들라는 목소리일지도 모른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진우 MBC 《손에 잡히는 경제》 앵커<br>
이진우 MBC 《손에 잡히는 경제》 앵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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