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숙·박지현·조정훈, 소신파 3인의 고독한 정치 [유창선의 시시비비]
  • 유창선 시사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10.17 10:05
  • 호수 172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바른말 하는 합리적 정치인은 비주류로 밀려나…진영논리 갇힌 여의도에서 충성과 복종 요구당해

지난 3월 대선 때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캠프에 참여했던 윤희숙 전 의원과 윤 후보가 고성이 오가는 언쟁을 벌였다는 소문은 정치권에서는 파다하게 알려진 내용이다. 가족들의 문제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는 윤 전 의원의 입장과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윤 후보의 입장이 충돌하면서 그런 광경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윤 후보가 한때 ‘정치를 같이 하고 싶은 1순위’라고 했던 윤희숙의 이름은 언제부터인가 언론에 뜸해졌다. 정권교체가 이뤄져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는데도 윤 전 의원은 입각 후보자 하마평에 오르내리지도 못했다. 보수 정당의 대표적인 경제정책통이라는 얘기가 무색할 지경이었다. 쓴소리에 대한 ‘괘씸죄’ 때문일 것이라는 게 여권 주변의 짐작들이었다.

ⓒ뉴시스·뉴스1

尹과 언쟁 벌였던 윤희숙, 하마평에서 사라져

사실 새 정부에 윤 전 의원의 정치적 상품성은 충분히 있는 것이었다. 부친의 농지법 위반 의혹에 대한 책임을 지고 의원직을 전격 사퇴했던 그의 결단은 정치권에서는 보기 드문 것이었다. 자신과 관련된 의혹에 대해서도 아직도 버티기로 일관하는 다른 정치인들과는 달리, 아버지 문제에 대해서도 책임지겠다는 엄격한 태도는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겨주었다.

윤희숙은 자기 진영을 향해 쓴소리를 주저하지 않는 소신형 정치인이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의원 연찬회에서 강의를 한 그는 “어렵게 찾아온 정권을 성공시키기 위해 무슨 고민을 어떻게 하고 있는가”라며 의원들 면전에서 쓴소리를 했다. “여야가 별로 다르지 않게 사심 정치를 하고 있다”고도 했다. 윤 전 의원은 초대 내각 인사 때 여러 의혹이 불거진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와 김인철 교육부 장관 후보자 등을 향해 “이 정도 물의를 일으켰으면 사회 지도층으로서 조금 더 과하게 책임지는 모습이 어떨까”라고 사퇴를 촉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소신과 정책 능력으로 정치적 기회를 잡기는 녹록지 않았다. 윤 전 의원은 인천 계양을 보궐선거에 출마해 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한판 승부를 벌이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이준석 전 대표 등 지도부의 제동으로 그럴 기회를 갖지 못했다. 인물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에서 상대적으로 여론의 호평을 받고 있는 정치인임에도, 아무런 활동 기회를 잡지 못하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윤희숙의 정치적 반(半)백수 상태가 계속되는 것은, 그런 정치인을 불편해하며 껴안지 못하는 윤석열 정부를 포함한 여권 세력의 협량함을 드러내는 장면이기도 하다.

더불어민주당 쪽에서 박지현 전 비대위원장이 겪었던 수난은 그보다 훨씬 격렬했다. 박 전 위원장은 대선을 앞두고 ‘팬덤정치 청산’ ‘86 용퇴’를 외치다가 당 주류의 반감을 샀다. 그는 대선과 지방선거가 끝난 이후로도 이재명 의원의 당 대표 출마를 반대하는 입장을 밝히곤 했다. 그런 박지현에게 돌아온 것은 ‘개딸’들의 문자폭탄과 선배 정치인들의 훈계였다. ‘재명이네 마을’에는 박 전 위원장이 과자를 입에 물고 남자 어린이의 입으로 전달하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과 함께 ‘박지현 남아 성추행 논란’이라는 글들이 쏟아졌다. 그가 이재명 대표를 비판하고, 성희롱 발언 논란을 빚은 최강욱 의원의 징계를 요구한 데 대한 응징이었다. 민주당 권리당원인 남성 유튜버가 ‘박지현이 사는 집’이라며 어떤 집 앞에 서서 그를 비난하는 생방송을 하는 사건도 일어났다.

이런 상황을 대면한 박지현은 “비대위원장에 취임한 날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민주당 지지자들로부터 언어폭력에 시달리고 있다”며 “이런 공격은 엄청난 고통”이라고 하소연했다. 팬덤정치 청산을 외쳤다가 팬덤정치의 매운맛을 본 셈이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박지현이 ‘86 용퇴’ ‘팬덤정치 청산’을 주장하자 윤호중 전 비대위원장은 책상을 내리치고는 회의장을 박차고 나갔다. 어느덧 육십 줄에 들어선 86 정치인은 20대 청년 정치인을 그런 식으로 호통치며 나무랐다. 박지현을 가르치고 훈계하는 선배 정치인들의 목소리는 차고 넘쳤다. 당 대표에 출마하려 했던 박지현은 피선거권 자격 미비를 이유로 예비후보자 등록 신청이 거부되었고, 그에 대한 구제는 당의 관심 밖이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박지현을 ‘떠오르는 인물 100인’으로 선정했지만, 정작 그가 속한 민주당에서는 ‘왕따’ 신세에 처했다.

 

박지현·조정훈, 개딸들의 문자폭탄 쏟아져

얼마 전 민주당 팬덤 지지층으로부터 문자폭탄 세례를 받은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도 소신파 정치인이다. 그는 민주당이 추진한 ‘김건희 특검법’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조 의원은 “지금 이 상황에서 대통령 부인에 대한 특검이 민생에 얼마나 도움이 되겠냐”며 “한 여인의 남편으로 남의 부인을 정치 공격의 좌표로 찍는 행위가 부끄럽고 좀스럽다”고 김건희 여사 저격에 올인하는 민주당을 비판했다. 캐스팅보트였던 그의 반대로 법사위에서의 패스트트랙 지정이 불가능해지자 ‘개딸’들로부터 전화·문자폭탄이 쇄도했다.

민주당 윤석열 정권 정치탄압대책위원장을 맡은 박범계 의원은 조 의원을 겨냥해 “어떻게 해서 국회에 들어오게 됐는지 한 번 되돌아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 의원이 21대 총선에서 민주당의 비례 위성정당이었던 더불어시민당 소속으로 당선된 사실을 환기시킨 것이었다. 마치 빚을 갚으라고 독촉하는 채권자의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 장경태 최고위원도 “불공정한 수사가 계속되는 것을 방치하는 것도 거기에 동조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그 역사적 책임은 아마 본인이 혼자 지긴 어려워 보인다”며 조 의원을 압박했다. 조 의원은 얼마 전 한 인터뷰에서 “반대하는 모습과 방식에서 패거리 정치, 집단주의 정치, 선동 정치 정말 최악의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진영논리에 갇힌 정치를 비판하며 탈진영 정치를 추구해온 그에게는 ‘김건희 특검법’ 반대가 나름 합리적인 판단이었지만, 민주당의 길을 막는 선택은 정치적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일이었다.

윤희숙, 박지현, 조정훈, 이들 소신파 정치인 3인이 겪은 수난은, 각자가 속해 있는 곳은 다르지만, 우리 정치의 문제가 무엇인가를 공통적으로 보여준다. 진영논리에 갇힌 우리 정치는 자기가 속한 진영에 대한 무조건적인 충성과 복종을 요구한다. 그에 반하는 입장이나 소신은 불온한 것이 되어 중심에서 밀려나 주변인으로 내몰리게 된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진영론자들은 양자택일 구도를 고착화하고 강화시켜 나간다. 누가 뭐라 한들, 지금과 같은 진영 대결의 정치 구도를 유지해야 자신들의 기득권도 계속 지켜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시대전환의 유일한 국회의원인 조정훈 의원은 “새로운 지도부가 생길 때 발전적 해체까지 고민하면서 양당 정치 외에 정말 정치를 삼분지계 할 사람들을 한번 다 모아보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문제는 지금의 정치 구도에 파열음을 내며 삼분지계를 선도할 세력을 찾기가 어려운 현실이다. 국민의힘과 민주당 두 거대 정당 안에서도 변화를 향한 몸부림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우리 정치에 이토록 용자(勇者)들이 없던 시절이 또 있었을까. 길 위에 사람이 없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유창선 시사평론가
유창선 시사평론가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