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컵 유치’ 헛꿈만 꾼 5개월, 외교 현실은 더 비참했다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10.21 16:35
  • 호수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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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컵 유치 실패가 남긴 한국 축구의 초라한 자화상
정몽규 회장 체제에서 꾸준히 추락한 국제 축구 외교력만 재확인

63년 만의 아시안컵 유치에 도전한 대한민국 축구의 꿈은 우리만의 작은 그림이었던 것일까? 10월17일 아시아축구연맹(이하 AFC)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집행위원회 회의에서 2023년 AFC 아시안컵 개최지로 카타르를 선정했다. 우리를 더 비참하게 만든 것은 그나마 막판까지 경합이 될 것으로 예상했던 한국과 카타르의 대결이 거의 일방적인 카타르 우세 일변도로 흘렀다는 점이다.

당초 개최지였던 중국이 지난 5월 코로나 팬데믹 여파를 이유로 개최권을 반납하면서 AFC는 긴급하게 새로운 개최지를 물색했다. 지난 9월 유치 신청을 마감했고 한국, 카타르, 인도네시아가 경쟁했다. 그마저도 인도네시아는 10월 2일 자국에서 발생한 축구장 소요 사태를 경찰이 진압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대규모 압사 참사로 유치전의 동력을 잃었다. 사실상 한국과 카타르의 2파전이었다.

무려 62년 전인 1960년 서울에서 제2회 대회를 개최하고 우승(1·2회 연속 우승)을 거둔 뒤 한국은 아시아 정상에 단 한 번도 서지 못했다. 월드컵 본선에 10회 연속 출전(총 11회)했고, 아시아 국가 중 최고 성적(4위)도 냈지만 아시안컵에선 번번이 들러리였다. 손흥민이라는 아시아 역대 최고의 선수가 맹활약하는 시대에 우승의 적기를 잡을 수 있다고 판단한 한국은 63년 만의 아시안컵 개최에 나섰다.

때마침 정부에서도 지원을 약속했다. 지난 6월 열린 브라질과의 친선전 당시 직접 상암 월드컵경기장을 찾은 윤석열 대통령이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을 차지한 손흥민에게 체육훈장 청룡장을 수여하면서 “유치를 도울 테니 적극 추진하라”고 대한축구협회와 문화체육관광부에 지시했다. 문체부는 박보균 장관을 중심으로 국내외에서 아시안컵의 한국 유치에 대한 명분을 호소했다. 이미 2019년 아시안컵이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열렸고, 2027년 대회도 사우디아라비아 개최가 유력한 만큼 순환 개최 근거에 따라 동아시아가 가져가는 것이 맞다는 명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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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대표팀 서포터스 ‘붉은악마’가 카메룬전이 열린 서울월드컵경기장에 대형 현수막을 걸고 2023년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유치를 응원했다.ⓒ뉴시스

명분만 외친 한국, 대의와 실리 모두 내세운 카타르에 완패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한국과 카타르의 2파전 양상 같았지만, 이미 집행위원의 표심은 카타르로 크게 기울었다는 판세 분석이 10월 들어 국내외에서 나왔다. 아랍권 일부 언론은 카타르의 승리가 확실하다는 보도를 집행위원회 개최 이전부터 타전했다. 대한축구협회가 막판까지 집행위원을 만나며 표심을 잡기 위한 호소를 했지만, 흐름이 기울었다는 분위기를 감지하지 못했을 리 없었다.

10월17일 오후 대한축구협회가 유치 실패 확정 후 낸 입장문의 요지는 순진했다. 카타르가 오일머니로 무장한 물량 공세를 펼쳤고 그 차이를 뒤집을 수 없었다는 것. 카타르가 유치 조건으로 참가국의 경비 지원은 물론 AFC가 지불해야 하는 대회 운영 인건비까지 내겠다는 뜻을 전달한 것은 사실이다. 최근 AFC와 카타르 소유의 글로벌 네트워크 방송사인 ‘beIN’이 중동·북아프리카 지역의 중계권을 10년 장기 계약으로 합의한 것도 비슷한 맥락의 신호였다. 카타르는 스포츠 메가 이벤트 유치에서 항상 비슷한 전략을 펼쳐왔다. 오는 11월 국제축구연맹(FIFA)과 함께 치르는 2022 월드컵 유치는 더 노골적이었다. 이번에도 그런 전략이 예견되지 못한 변수는 아니었다.

문제는 거기에 맞설 우리의 전략이었다. 명분은 한국 축구가 스스로를 납득시키는 자기 중심적인 설득이다. 그다음 필요한 것은 실질적인 전략과 차별화였다. 그러나 한국이 내세운 것은 스포츠 이벤트 유치와 동떨어진 문화 콘텐츠였다. 대한축구협회와 문체부는 최근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K팝, K컬처, 관광을 아시안컵이라는 축구 이벤트와 결합해 종합문화대회로 개최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75만 명의 관광객을 유치하겠다는 목표치도 내세웠다. BTS, K푸드가 주도하는 K컬처는 최근 세계적인 트렌드지만 아시아권을 대상으로 하는 축구대회 유치에 적합한 비전은 아니었다. 개최 결정을 이끄는 소수의 AFC 집행위원을 설득할 근거로는 한참 부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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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9월2일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열린 2023 AFC 아시안컵 대한민국 유치 알림대사 발대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메이저대회 유치는 손흥민과 BTS만으론 가져올 수 없어

카타르에도 대의명분은 충분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AFC가 재정적인 위기를 맞고, 주요 대회를 치르는 데 애를 먹을 때 해결사로 나선 것은 카타르였다. 코로나19가 한창 기승이던 2020년 진행 자체가 불가능해 보였던 AFC 챔피언스리그 토너먼트는 카타르의 적극적인 지원 속에 버블(한 곳에 모여 외부와의 접촉 차단) 방식으로 무사히 마쳤다. 집행위원들에게 카타르는 아시아 축구가 위기를 극복하는 데 중요한 리더십을 발휘한 존재라는 이미지가 있었다.

축구에 집중한 실리적인 설득에서도 카타르가 앞섰다. 아시안컵이 3회 연속 중동에서 개최될 경우 지역 순환 원칙은 깨지지만 카타르는 적극적인 투자로 그 이상의 값어치를 하겠다고 강조했다. 아시안컵은 AFC가 치를 수 있는 최고 레벨의 대회이고, 수익과 홍보가 중요한 스포츠 산업이다. 카타르는 그 부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손실을 모두 책임지겠다고 했다. FIFA 월드컵을 위해 마련한 최신식 인프라와 대규모 숙박시설도 활용할 수 있었다. 한국은 축구의 매력을 뒷전으로 두고 문화 콘텐츠를 결합한 아시아의 축제라는 감성만 강조했고, 카타르는 축구 그 자체를 최고의 조건으로 펼칠 수 있는 스포츠 대회에 집중했다. 집행위원들의 선택은 거기서 확고히 갈렸다.

한국은 성적 면에서 아시아 축구의 맹주다. 하지만 축구 외교 면에서는 이미 외톨이다. 이번에 아시안컵 개최권을 결정하는 AFC 집행위원 23명 중 한국인은 없었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은 2019년 AFC 부회장과 FIFA(세계축구연맹) 평의원 선출에서 모두 낙선하며 국제 축구 외교를 펼칠 지위를 상실했다. 정 회장이 당시 중동세의 독점에 민주적 절차가 부족하다며 반기를 든 데 대한 부메랑 효과였다. 축구 영향력에서 한국과 비교조차 안 되는 몽골 축구협회장과의 양자 대결에서도 10표 차로 완패했다.

문제는 그렇게 잃은 외교력이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제 축구 주류에서 밀려나며 흐름을 읽지 못하고 있다. 신뢰 역시 떨어졌다. 사실 한국은 2019년 열렸던 AFC 집행위원회 당시 2023년 아시안컵 개최지 유치 신청을 했다가 철회한 전력이 있다. 당시 대회 일정이 겹친 FIFA 여자월드컵 개최를 선택하면서다. 정 회장은 남북 공동개최를 전제로 규모가 더 큰 국제대회로 급선회했다. 하지만 결국 그해 말 여자월드컵 유치 신청도 철회했다. 남북관계가 경색되며 북한축구협회가 공동개최에 대해 아무런 호응을 하지 않았고, 국내에서는 문체부 승인도 받지 못했다.

아시아를 넘어 세계 축구 외교에서도 한국은 갈지자 행보를 반복하는, 신뢰하기 어려운 파트너라는 이미지만 굳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개최권을 내려놓자 긴급하게 달려드는 모습은 국제 외교의 기본 원칙인 기브앤테이크가 없는 결례로 보일 수밖에 없었고 집행위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기 어려웠다.

2019년 정 회장이 사실상 국제 축구 외교에서 축출됐지만 그 자리를 대체할 새로운 인물을 키우지 못한 것도 패인으로 꼽힌다. 4년 가까이 AFC 집행위원 1명 없이 허송세월했다. 차범근, 홍명보, 박지성, 이영표 등 선수로서 국제적인 명성을 쌓은 인물이 많지만 한국은 우물 안 개구리 식으로만 활용했다. 그들의 선수 시절 활약에 아시아가 경외감을 보낼 순 있지만, 그들을 보유했다는 것이 메이저대회를 유치할 명분으로 통용되진 않는다.

이번 아시안컵 유치전에서도 대한축구협회는 손흥민을 홍보 영상에 앞세웠다. 막판에는 BTS까지 동원해 아시안컵 유치의 염원을 말했다. 하지만 월드스타의 바람과 호소로 유치될 수 없다는 것만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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