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장억제, 핵 공유 버금갈 수준으로 고도화해야
  • 조경환 통일연구원 초빙연구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10.24 11:05
  • 호수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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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환 기고]
“파리를 위해 뉴욕을 희생할 것인가?”라는 드골의 명제 극복할 정도로 ‘자동 개입’ 의사결정 구조를 미국에 요구할 필요

북한 김정은 정권이 한반도에서의 핵 패권 의도를 갈수록 노골화하고 있다. 핵 포기를 믿지 않는 우리 국민이 90%를 넘고, 61.7%가 한국의 핵무장을 지지(시사리서치 10월18일 여론조사)한다. 미국과 나토(NATO)식으로 핵을 공유해 맞서자는 여론이 비등하다.

독일 등 5개 나토 회원국은 미 전술핵을 자국 영토에 배치해 미국의 통제 아래 두지만, 유사시에는 자국 전투기로 투하한다. 장관급의 핵계획그룹(NPG)을 연 2회 열어 핵 정책을 관장한다. 실무그룹을 상설로 둔다. 당사국 동의하에 사용하고 거부권도 행사한다. 하지만 역시 핵무기 운용 및 발사의 전권은 미국 대통령이 보유한다. 미 국내법과 핵비확산조약(NPT)상 그 권한을 나눠 가질 수는 없다. 이런 점에서 ‘핵 공유’는 사실 부풀려진 개념이긴 하다. 그래도 나토를 심리적으로 안정시키는 정치적 의미는 크다. 한미 간 핵 공유는 그래서 미국의 확고한 대북 억지의 징표다. 중국·러시아의 북한 비핵화 대열 복귀를 압박하는 효과도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북한군 전술핵운용부대 등의 군사훈련을 지도하며 “적들과 대화할 내용도 없고 또 그럴 필요성도 느끼지 않는다”고 밝혔다.ⓒ연합뉴스

미국, 북한의 전술핵 역량에 의구심 가져

핵 공유를 거론하기 전에, 한미 간 위협 인식에 대한 차이를 확인하는 게 먼저다. 북한의 ‘핵무력정책’ 법제화(9월8일)에 대한 국내 전문가의 해석은 두 갈래다. 선제공격으로 변화했고, 주 타깃이 한국이므로 대응에 질적 전환을 가져와야 한다는 주장이 그 하나다. 다른 하나는 북핵 도발의 연속선에서 본다. “호전성의 외피를 둘렀지만, 정세와 경제 불안감의 발로”라고 풀이한다. 표방한 핵 교리만큼 핵 능력이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에 사용 문턱을 더 낮추고 더 공격적이라는 것이다.

북한이 9월25일부터 10월14일까지, ‘전술핵운용부대 군사훈련’ 명목으로 한미 연합 및 한·미·일 합동훈련을 겨냥해 탄도미사일을 발사하고, ‘9·19 군사합의’상 ‘비행금지구역’에 전투기와 폭격기를 근접시키고, 동·서해의 ‘해상완충구역’으로 대규모 포격 등 군사력을 투사한 데 대한 한미 전문가들의 인식에는 미묘한 차가 있다. ‘모든 탄도미사일에 전술핵무기를 연계’시킨 정치·군사적 의미에는 다 같이 주목한다. 그렇지만, 40~60년 된 비행기종 등을 들어, 북한이 도발하면 할수록 약점을 노출하고 전력을 소진하고 말 것이라는 관점이 있다. 미 전문가들은 전술핵 역량에 의구심을 가진다. 실전이 벌어지면 한미 전투기의 공격에 순식간에 요격된다고 판단한다. 정권을 걸지 않고는 단 한 개의 핵무기도 사용하지 못하며, 갖은 애를 쓰는 것은 그만큼 취약하다는 방증으로 본다.

그다음으로, 한미의 기존 대응 역량을 진단한 뒤 핵 공유의 전략적 근거를 제시하는 게 순서다. 미국의 확장억제는 계속 발전 중이다. 1978년 한미안보협의회(SCM)에서 ‘핵우산’ 제공을 구속력 있는 외교문서로 명문화했다. 북핵 1차 실험 직후인 2006년 12월에 확장억제를 명문화한 데 이어, 2009년에는 그 수단을 핵우산에다 재래식 타격 전력, 미사일 방어를 포함하는 모든 범주의 군사 능력으로 그 개념을 보강했다. 한국이 공격을 받으면 미 본토가 공격받는 것과 같은 정도로 가용 전력을 제공한다는 뜻이다.

제한적 핵 공유를 ‘플랜B’로 상정해볼 수도

미국의 핵 태세는 전략핵 중심이다. 미 본토의 B-52 전략폭격기와 ‘미니트맨Ⅲ’ 대륙간탄도미사일, 인도·태평양 해역 전략핵잠수함(SSBN)의 ‘트라이던트Ⅱ’ 탄도미사일(SLBM), 그리고 괌과 일본에 배치된 B-1B 전략폭격기는 빠르면 20~30분 내 평양을 타격한다. 최첨단 ‘저위력 핵무기’는 사용 가능한 핵이다. 전술·전략핵 개념을 뛰어넘어 정밀하게 외과적 타격을 한다. 미국은 핵무기 위치를 적이 모르도록 하는 게 오랜 정책이다. 북한에 인접한 주한미군에 전술핵을 들이는 것은 안전하지 않다. 유지·관리 비용도 막대하다. 굳이 전술핵을 한반도에 다시 배치할 군사 기술적인 효용이 별로인 이유들이다.

더욱이 미 전술핵을 재배치하고 나면 북한에 대한 비핵화 요구는 더 이상 하기 어렵다. 중·러의 강력한 반대는 불을 보듯 빤하다. 사드 1개 포대를 두고서도 집요하게 걸고넘어지는 중국이다. ‘공포의 균형’의 안정(stability of the balance of terror)을 장담하지 못한다. 나토식 핵 공유는 이 때문에 실은 갈 길이 먼 셈이다.

그렇지만 한국민은 기억한다.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은 1969년 “아시아 우방국들의 자력 안보” 독트린을 발표한 뒤, 1971년 3월 제7보병사단 등 주한미군 2만1000명을 철수시켰다. 1993년의 ‘1차 북핵 위기’ 때 미국은 ‘북폭(北爆)’을 독자적으로 판단했다. 한국의 운명을 좌우할 의사결정에 정작 한국의 공간은 없었다. 따라서 우리도 미국에 요구할 것은 이 국면에서 해야 한다.

첫째는 확장억제를 핵 공유에 버금갈 수준으로 고도화하는 것이다. “파리를 위해 뉴욕을 희생할 것인가?”라는 드골 전 프랑스 대통령의 명제를 극복할 정도로 ‘자동 개입’ 의사결정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차관급인 한미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의 지위를 격상하고, 실무기구가 상설로 뒷받침함으로써 동맹 신뢰를 제도로 구현해야 한다. 군의 ‘3축 체계’를 확장억제와 어떻게 연계할지 및 한국의 역할은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정해 두어야 한다. 전술핵을 역외인 괌 등에 배치해 놓고 한국 F-35A로 투하하는 제한적 핵 공유를 ‘플랜B’로 상정해볼 수도 있다.

둘째, 북한의 진화하는 SLBM 능력에 대응, 미 핵잠수함 기술의 한국 전수를 고려할 시점이다. 지난해 9월 미국은 호주에 핵잠수함 기술 제공을 약속했다. 마침 미 행정부도 대외군사판매(FMS)와 기술에 대한 통제는 냉전 사고이며, 동맹국들이 기술적 역량이 없을 때 만들어진 제도임을 잘 알고 있는 터다.

셋째, 한미 원자력협정의 개정이다. 미국은 여전히 한국이 핵무기를 개발할지 모른다고 의심한다. 평화적 핵의 기본 역량인 사용후핵연료 재처리와 농축을 막고 있다. 일본에는 허용하는 조치다.

마지막으로, 김정은 정권이 아파할 레버리지의 축적이다. 북한의 유엔 회원국 특권을 정지시키는 카드가 남아있다. 장거리 순항미사일 활동도 그 위협이 커진 만큼 유엔 안보리 결의안으로 금해야 한다. 북한의 인권 강조 및 외부 정보 유입 등 ‘MZ세대’를 겨냥한 한미 정부와 민간의 대응을 더 체계적으로 구사해 나가야 한다. 핵미사일 도발에 국가 자원을 쏟아부으면서 김정은 정권의 목표와 주민의 목표 간 불일치는 커질 대로 커졌다. 북한 주민들은 그 핵이 자신의 삶을 보장해 주지 않음을 알아가게 될 것이다.

조경환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조경환 통일연구원 초빙연구위원

조경환은 누구

외교부 샌프란시스코 부총영사와 국가정보원 고위 공무원을 지냈다. 행정학박사다.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과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을 거쳐 현재 통일연구원과 강원연구원 초빙연구위원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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