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패거리 리더십 아닌 국민 전체 바라보는 리더십 절실”
  • 감명국·구민주 기자 (kham@sisajournal.com)
  • 승인 2022.11.07 07:35
  • 호수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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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인터뷰
“국가가 왜 존재하나? 국민의 생명과 안전 지키는 게 첫 번째…공직자는 분명한 책임의식 가져야”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다. 이런 때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지금 대한민국은 위기의 연속이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에 무역수지 7개월 연속 적자까지 경제위기는 현실로 닥쳐왔고, 민생고에는 아랑곳없이 여야는 허구한 날 정쟁만 일삼고 있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은 연일 이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10월29일 이태원 참사가 발생해 꽃다운 156명(11월3일 현재)의 생명을 앗아갔다. 우리 사회는 트라우마에 빠졌다. 통합과 정치는 실종되고, 리더십 부재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시사저널이 11월3일 만난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는 인터뷰 내내 “통합”과 “덕(德)”을 강조했다. “리더십을 바로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화운동 시절 자신을 탄압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리더십을 평가하기도 했다. 자기 표, 자기 지지자들만 바라보는 패거리 리더십이 아닌, 국가를 생각하고 국민 전체를 바라보는 리더십이 절실한데, 안타깝게도 지금은 그런 리더십이 안 보인다고 걱정했다. “정치판을 떠난 사람이 뭘 자꾸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게 좀 그렇긴 하다”고 여러 차례 인터뷰를 사양하던 ‘원로 정치인’은 지금의 위기 상황에 대해 끝내 격정을 토해 냈다.

ⓒ시사저널 이종현
ⓒ시사저널 이종현

“한미 동맹 튼튼히 하되, 무역 경쟁 대응도 필요”

‘이태원 참사’ 뉴스를 접하면서 어떤 생각이 드셨습니까.

“대단히 안타까웠습니다. 꽃다운 나이의 젊은이들이 축제를 즐기러 가서 이처럼 어이없는 참사를 당하다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국가가 왜 존재하나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이야말로 국가가 존재하는 첫째 이유입니다. 어떠한 경우라도, 설령 젊은이들의 잘못이 있었다손 치더라도 이렇게나 많은 희생이 발생한 건 전적으로 국가의 책임입니다.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은 더욱 분명하게 책임의식을 느껴야 합니다. 주무부처 장관 등 정부 관료들은 지금 책임을 회피하려는 듯한 태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 누구의 잘못이든 책임은 내가 진다’는 적극적인 책임의식을 갖춰야 합니다. 그래야 그다음 대비책도 나올 수 있습니다.”

후진국형 재난이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왜 이런 대형 사고가 우리 사회에 끊이지 않는 걸까요.

“우리는 역사적으로 아주 빠른 성장을 했습니다. 세계 최빈국에서 10대 경제 강국 반열로 빠르게 올라섰죠. 세계로부터 많은 것을 받아들였고, 이제는 우리가 K컬처 등 많은 것을 세계로 전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성장하는 데만 도취돼 있던 탓에, 우리 국민의 안전과 생명 보호 등 본래 국가의 존재 이유에 대한 고민을 게을리했습니다. 진정한 선진국이 되기 위한 길은 경제성장과 국방력 강화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선진시민사회를 만드는 일입니다. 이제 이 부분을 제대로 준비해야 합니다. 이 안타까운 참사가 그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 일이 정쟁의 계기나 수단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이건 윤석열 정부를 떠나 우리나라의 총체적인 책임입니다.”

지난 10·26 사태 43주기를 맞아 중앙일보에 기고한 글이 화제가 됐습니다. ‘박정희 리더십’을 평가하는 글이었는데, 특별히 박정희 전 대통령을 조명한 계기가 있었습니까.

“요즘 우리나라가 겪는 위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도 북한에서 또다시 장거리탄도미사일을 발사했고 조만간 7차 핵실험이 염려되는 등 안보가 극도의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경제도 위기입니다. 고물가·고환율·고금리에 수출은 감소하고 무역 적자와 경상수지 적자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국가부채와 가계부채 모두 감당하기 힘든 수준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우리나라 지도자들이 제대로 된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에서 출발해 박정희 리더십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됐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죠. 지금 전 세계가 치열한 반도체 패권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경기도 용인에서 추진 중인 150만 평 규모의 반도체 클러스터의 착공이 3년이나 늦어지고 있습니다. 인근 지방자치단체와의 이해충돌이 원인으로 꼽힙니다. 착공이 차일피일 미뤄지는데도 중앙정부는 아무런 역할을 못 하고 있습니다. 좀 더 강력한 리더십이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대표께서는 박정희 정권에서 ‘유신독재 철폐’를 외쳤고, 누구보다 탄압을 받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이런 평가가 좀 의외이긴 한데요.

“저는 1960년대부터 박 전 대통령이 사망한 1979년 10월26일까지 오직 독재 반대와 유신 철폐만을 외친 사람이었습니다. 청계천 판자촌에서 빈민 운동과 민주화 운동을 이어가며 어렵게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박 전 대통령이 사망하고 나서 영국으로 유학을 가게 됐습니다. 그곳에서 영국·미국 학생들과 언쟁을 벌였습니다. 그들은 제게 대한민국 경제 발전의 놀라움을 이야기했습니다. 이에 맞서 저는 ‘너희가 전태일을 아느냐, 여공들이 신민당 당사에서 떨어져 죽은 YH 사건을 아느냐’고 따져 물었습니다. 그러다가 ‘아, 내가 보는 박정희와 밖에서 보는 박정희가 다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박 전 대통령의 독재와 인권탄압은 비판받아 마땅하죠. 하지만 유학생활을 마치고 정치인이 된 후 많은 정부 및 기업 관계자를 만나며 국가의 미래를 설계했던 그에 대한 인식이 조금 더 바뀌게 된 건 사실입니다.”

ⓒ시사저널 이종현
ⓒ시사저널 이종현

“복합적 위기 앞에 박정희 리더십 되짚어 볼 필요 있어”

2020년대를 살아가는 오늘, 권위주의적인 리더십이 가능할까라는 의구심이 듭니다.

“지금 경제위기와 안보위기가 겹쳐 이중고를 겪고 있습니다. 미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발생한 안보 경쟁을 경제 경쟁으로 확대시키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한미 동맹을 튼튼히 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한미 동맹을 튼튼히 한다는 건 비단 한·미 양국 간 관계뿐 아니라 남북관계와 한·중 관계에 있어서도 북한과 중국에 긴장감을 줘 우리의 발언권을 키우는 길이므로 전략적으로도 매우 중요합니다. 다만, 이젠 이와 동시에 한·미 간 새롭게 벌어지고 있는 무역 경쟁에 대한 대응도 필요합니다. 자유무역거래를 기본 축으로 삼던 미국이 이제 자국보호주의 무역을 택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경제적으로 위협할 수 있는 존재가 된 것이죠. 미국과 동맹을 유지하면서도 무조건적으로 미국을 믿고만 가선 안 되는 상황인 겁니다. 이처럼 새롭게 맞이하게 된 복합적인 위기를 잘 이끌고 갈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도 저는 박정희 리더십은 한번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봤습니다.”

지금의 복합적인 위기 상황을 지적하셨는데, 필요한 대응책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자유무역을 기본으로 하되 산업에 대한 국가적 지원에 지대한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미국만 해도 ‘인텔’ 등 자국 업체가 반도체 회사를 설립하는 데 막대한 현금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기존의 자유무역 질서가 이미 무너지고 있는 것이죠. 우리도 새롭게 전개되는 국제환경 속에서, 남들과의 기술 격차를 벌려 확실히 앞서가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현장에 지원해야 하는지 좀 더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합니다. 지금의 위기를 기회로 바꿔나가야 합니다. 몇 해 전 일본이 무역 보복의 일환으로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수출규제를 가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이를 극복하고 우리는 소부장을 자체 조달할 능력을 갖게 됐습니다. 위기에서도 이 같은 번영의 기틀, 새로운 가능성을 충분히 마련할 수 있습니다.”

리더십을 말하기엔 지금 우리 정치권의 상황이 너무 절망적입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제가 정치를 한 지 30년이 됐지만 지금처럼 정치가 정쟁의 도구로 타락한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여당이나 야당이나 할 것 없이, 미래에 대한 고민은 없고 입만 열면 상대방을 향한 헐뜯기와 공격뿐입니다. 과거엔 국회 안에서 싸우더라도 일정이 끝나면 여야가 섞여 맥주 한잔하며 풀기도 했는데, 요즘엔 이런 여야 간 교류 자체가 없다고 합니다. 당내에서도 주류에 반대하는 발언은 존립하지 못합니다. 바로 왕따가 되고 SNS에서 집중 공격을 받습니다. 이러니 누구라도 선뜻 나서지 못하고 위축됩니다. 싸움의 정치만 남았어요. 정치가 나라의 미래를 보는 게 아니라, 지금 당장 내 표와 내 지지자들만 바라보는 패거리 정치를 일삼기 때문입니다.”

 

“尹, 상대를 끌어안고 베푸는 리더십 보여야 지지율 회복”

이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요.

“우리 정치의 견고한 양당 정치, 승자 독식 정치가 지금과 같은 ‘죽기 살기’의 정치를 만들어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독일의 예를 들어봅시다. 독일은 지난 70년 동안 총리가 단 9번 바뀌었습니다. 다당제, 연립정부 구조 속에서 정치가 안정됐기 때문입니다. 독일 보수정당인 기민당 소속 메르켈 전 총리가 탈원전 정책을 발표한 데도 이러한 연립정부의 특징이 담겨 있습니다. 메르켈은 친(親)원전주의자였지만 앞서 사민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이들의 탈원전 정책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또 사민당은 그보다 앞서 녹색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하면서 이들의 탈원전 정책을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원외 소수정당인 녹색당의 구호가 연정에 연정을 거듭하며 집권당의 정책이 되고 국가의 주요 정책이 된 것이죠. 우리 정치에도 이러한 모습이 필요합니다. 다당제가 다양한 여론 반영과 정치의 평화, 정책의 연속성을 만듭니다. 반면 양당제에선 정권이 바뀌면 이전 정권 죽이기가 제1의 과제가 돼버립니다. 정치 전반을 불안정하게 만듭니다.”

지금 윤석열 대통령의 경우 70대 이상·TK (대구·경북) 등 전통적 지지층이 중심이 된 지지율 30%대에 정체돼 있습니다. 원인을 어떻게 진단하십니까.

“윤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사정 정국이 되고 있습니다. 그가 검찰 출신이라는 점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검찰 출신의 한 정치인은 자신이 검찰 때를 벗는 데 무려 8년이 걸렸다고 하더군요. 사람들을 전부 피의자로 보고 또 힘으로 계속 누군가의 위에 올라서려 하는 습성을 버리는 데 그토록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얘기였습니다. ‘내 편’만을 챙기는 것도 문제입니다. 윤 대통령의 인사는 내 편을 든 사람들 위주로 요직에 등용해 왔습니다. 전문성이 필요한 자리에도 소위 선거캠프 사람을 쓰다 보니 많은 실책이 나오는 것입니다.”

지지율 위기를 돌파하려면 어떤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보십니까.

“사실 윤 대통령의 경우 준비된 대통령은 아니었습니다. 문재인 정부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우리 편을 찾다가 발견한 인물이고, 그래서 갑자기 지금의 자리에 오르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더더욱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덕(德)’으로 국정을 운영해야 합니다. 상대를 벌주고 다스리기보다는 끌어안고 베푸는 리더십을 보여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의 부족한 전문성을 채워줄 다양한 전문가가 모여들게 되고, 제대로 된 국정운영에 동력이 생깁니다. 논어에 ‘위정이덕 비여북신 거기소이중성공지(爲政以德 譬如北辰 居其所而衆星共之)’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치를 덕으로 하면 북극성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도 모든 별이 그곳으로 모인다는 뜻입니다. 지금 윤 대통령이 가져야 할 태도이자 정치의 근본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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