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정국’ 딜레마 빠진 민주당…힘 잃은 ‘반격 카드’
  • 송종호 서울경제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11.11 13:05
  • 호수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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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에 대한 정부 책임 묻는 목소리 커짐에도 野 지지율 정체…섣불리 장외 나섰다 역풍 우려도

#1. 윤석열 대통령이 격노했다. 윤 대통령은 11월7일 국가안전시스템 점검회의에서 경찰을 겨냥해 “왜 4시간 동안 물끄러미 쳐다만 보고 있었냐”고 강하게 비판했다. 비공개로 전환된 회의였지만, 대통령실은 이례적으로 윤 대통령의 회의 발언을 원문 그대로 공개했다.

#2. 민주당 내 강경파 의원들을 중심으로 11월9일 정부·여당이 이태원 참사에 대한 국정조사와 특검을 수용하지 않으면 정권퇴진 운동을 시작하겠다고 선언했다. 안민석, 김승원, 김남국, 최강욱, 황운하, 박주민 등 20여 명의 의원과 민형배 무소속 의원까지 21명이 참여해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10·29 참사 최종 책임자인 윤석열 대통령이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우리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퇴진운동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11월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재명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시사저널 이종현

참사 정쟁화 프레임, 자칫 ‘이재명 구하기’로 비칠까 부담

국가애도기간이 끝나자 윤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의 힘겨루기가 본격화하는 양상이다. 민주당은 국정조사와 특검을 통해 책임을 윤 대통령에게 직접 묻겠다고 벼르고 있고, 용산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은 수사가 먼저라며 국정조사에 선을 긋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초기 대응 부실과 경찰의 일탈 등 이번 참사는 가뜩이나 낮은 윤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을 재촉하고, 국민의힘을 휘청거리게 만들 것이라고 봤지만 윤 대통령 지지율은 소폭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집권세력의 무능이 부각된 만큼 야당인 민주당은 반등을 노릴 수도 있었지만 국민의힘과의 정당 지지율 격차는 별 차이가 없다. 

실제 여론조사 전문기관 알앤써치가 뉴스핌 의뢰로 ‘이태원 압사 참사’ 이후인 11월5~7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2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긍정평가는 한 주 전보다 2.7%포인트 상승한 38.2%로 집계됐다. 반면 부정평가는 같은 기간 2.1%포인트 하락한 59.4%를 기록했다. 정당 지지율 조사에서도 국민의힘은 37.6%, 민주당은 39.4%. 양당 간 지지율 격차는 1.8%포인트로 오차범위 내 접전이었다.(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이번 참사 당시 112 신고 내역 등이 드러나면서 야당은 총공세를 퍼붓고 있지만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는 여론조사인 셈이다. 오히려 ‘랠리 어라운드 더 플래그 효과(rally-around-the-flag event)’, 즉 국가가 위기를 겪을 때 시민들이 국기 아래로 결집해 정부와 대통령의 지지가 상승하는 혜택을 얻는 상황이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민주당의 고심은 깊어지고 있다. 특히 참사의 아픔을 정쟁화한다는 프레임이 부담이다. 당장 매주 열리는 ‘촛불집회’에 지도부는 개인 자격으로도 참석하지 않기로 했다. 그만큼 참사를 정치에 이용한다는 여론의 역풍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무엇보다 참사 정쟁화 프레임이 ‘이재명 구하기’로 비칠 수 있다는 점에서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참사 원인을 규명하고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하는데, 그게 당 대표 사법 리스크를 막으려는 행동으로 해석된다”며 “원내외 전략을 구체적이고 체계적으로 구축하지 않으면 책임자를 처벌하지도 못한 채 정국 주도권만 빼앗길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해당 관계자는 “국정조사를 한다면 이번 참사에만 초점을 맞춰야 하는데 이재명 당 대표 사법 리스크 탓에 본질이 흐려질 수 있다”며 “특검도 이태원 참사 특검이냐, 대장동 특검이냐를 두고 그 범위와 대상 등의 다양한 의견이 있는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반대로 정부·여당의 카드는 다양하고 효과도 크다. 당장 검찰은 11월9일 이 대표의 최측근 정진상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 대한 동시다발적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앞서 정기국회가 시작된 9월1일 ‘백현동 의혹’과 관련해 허위사실을 공표한 혐의 등으로 이 대표에게 소환 통보를 했고, 대검찰청 국정감사를 하루 앞둔 10월19일엔 이 대표의 또 다른 최측근인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체포했다. 야 3당이 국정조사요구서를 제출한 11월9일엔 국회 본청 압수수색까지 나섰다. 잊을 만하면 ‘이재명 사법 리스크’ 카드를 꺼내드는 셈이다.
 
김용·정진상 두 인물의 핵심 증거나 물증이 없는 민주당사에 대한 압수수색은 일종의 ‘보여주기용’이라는 게 민주당의 주장이지만, 여론의 집중은 이재명 사법 리스크에 몰릴 수밖에 없는 검찰의 행동들이다. 국정조사가 시작된다 해도 경찰 수사가 속도를 내면 국조 역시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최성범 용산소방서장을 부실 대응 등 혐의로 입건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관계자들을 줄줄이 입건, 구속시키면 국조에 대한 관심보다 관계자들의 입건, 구속에 집중도는 더 커지기 마련이다. 

 

“30% 무당층 품지 못하면 사법 리스크보다 더 큰 위기 처할 수도”

결국 장외투쟁 욕구는 더 커질 수 있다. 이미 민주당 내부에선 촛불항쟁, 정권퇴진 등이 언급되기 시작했다. 이 대표도 11월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진실 규명에 정부·여당이 협조하지 않고 있는데, 국정조사가 가장 빨리 진상에 접근하고 국민에게 사태의 원인을, 근본적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기회”라며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국정조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표는 “잘못한 조직이 스스로 수사한다는 ‘셀프 수사’로 어떻게 진실이 밝혀지고 국민이 신뢰하겠냐”며 “그렇기 때문에 상당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는 특검도 지금부터 준비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 대표는 ‘촛불’을 언급하며 의미심장한 발언을 이어갔다. 그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에 대해) 진지한 애도가 있어야 한다”며 “숨기려고 하지 말라. 숨긴다고 없어지지 않는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촛불을 들고 다시 해야겠나”라고 말했다. 현재 지도부는 참석하지 않기로 한 촛불집회와 민주당이 직접 결합할 수 있다는 의미인 셈이다. 

그렇다고 장외로 나간다는 건 더 부담이다. 163석 거대 제1당이 원내를 이탈해 장외집회에 나설 경우 가뜩이나 어려운 대내외 경제 상황은 제쳐두고 권력투쟁에만 몰두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민주당 수도권 한 의원은 “지지층만 바라보며 장외집회를 주장하는 의원들이 있지만 국민의 공감을 얻고 이태원 참사 원인 규명과 야당 탄압을 다 막을 수 있는 투쟁전략과 원내전략, 민생전략을 각각 세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해당 의원은 “지금 여론은 무당층이 30%로 사실상 제3당을 형성하고 있는 셈”이라며 “민주당이 무당층을 품지 못하면 사법 리스크보다 더 큰 위기에 놓일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또 다른 민주당 관계자는 “지금은 유족들이 경황이 없어 참사 원인 규명과 책임자 처벌에 신경을 못 쓰는 형편”이라며 “당장의 지지율이나 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 등에 일희일비할 게 아니라 유족들이 도움을 청할 때 준비된 정당으로 민주당이 존재하면 된다”며 현 상황에 대한 돌파 가능성을 자신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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