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게인 2002’의 마법은 손흥민·김민재·이강인의 발끝에서 나온다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11.19 13:05
  • 호수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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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 월드컵 첫 8강 목표로 하는 한국 축구의 6대 핵심 승부처
히든카드 조규성과 절치부심 김진수의 깜짝쇼, 벤투의 심리전도 기대

새로운 월드컵에 도전하는 한국 축구엔 2002 한일월드컵과 2010 남아공월드컵이 늘 부채(負責)처럼 느껴진다. 한국이 참가했던 지난 열 번의 월드컵 중 조별리그를 통과해 토너먼트까지 간 두 대회는 대표팀이 늘 지향해야 하는 희망봉인 동시에 거대한 벽이다. 유럽·남미와는 축구 레벨 면에서 차이가 났던 한국 축구는 월드컵 조별리그를 통과하는 것부터가 난제였지만, 그것을 훌륭히 풀었던 두 사례는 늘 비교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직전 대회였던 2014 브라질월드컵과 2018 러시아월드컵은 그런 희열과 거리가 멀었다. 4년 동안 절치부심하며 파울루 벤투 감독에게 오롯이 지휘봉을 맡긴 이번 카타르월드컵은 지난 두 대회와는 다른 결과를 기대하게 한다. 남아공월드컵 당시 감독으로 최초의 원정 16강을 이끈 허정무 대전하나시티즌 이사장은 “선수 구성 면에서는 이번이 낫다. 조편성도 나쁘지 않고, 카타르는 우리에게 익숙한 곳이다. 16강을 넘어 8강을 목표로 삼을 만하다”고 말했다. 벤투호가 갖고 있는 경쟁력과 핵심 승부처를 짚어본다.

2022 카타르월드컵에 출전하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주장 손흥민을 중심으로 11월16일 카타르 도하의 알에글라 훈련장에서 훈련에 임하고 있다.ⓒ연합뉴스

1. 부상 우려를 역이용하는 손흥민의 반전

손흥민은 한국이 이번 월드컵에서 어떤 퍼포먼스와 성적을 거둘지 엇갈리는 평가 속에서 유명 축구인과 유력 언론들이 가장 먼저 꼽는 벤투호의 강점이다. 지난 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을 차지하고,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를 꼽는 발롱도르 투표에서도 11위에 오르며 월드클래스 인증을 받았다. 미국 스포츠 전문매체 ESPN은 11월17일 ‘카타르 월드컵 최고의 선수 톱50’을 선정해 발표했는데, 손흥민은 아시아 선수 중 유일하게 13위에 이름을 올렸다. 한국의 조별예선 상대인 포르투갈의 지존 호날두(20위), 우루과이의 핵심 발베르데(14위)보다 더 높은 순위다.

월드컵 첫 경기를 3주 남겨둔 11월3일 손흥민은 경기 중 입은 안와골절로 인해 수술대에 올랐다. 의료계는 최소 4주에서 8주의 안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하지만 벤투 감독은 일찌감치 손흥민을 월드컵 최종 명단에 넣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월드컵 대회 규정상 첫 경기 24시간 전까지 부상으로 인한 선수 교체가 가능하다. 설령 회복이 지연돼 전 경기를 소화할 수 없어도 조별리그 3차전까지 희망을 걸어볼 셈이다. 출전 여부를 확신할 수 없어도 손흥민은 존재만으로 상대 팀에 긴장감을 주는 선수다.

11월16일 손흥민은 대표팀 유럽파 중 가장 마지막으로 결전지인 카타르 도하에 입성했다. 토트넘에서 조금이라도 더 집중 치료를 받으며 회복세를 높이기 위해서다. 그의 짐에는 토트넘 구단에서 특수 제작한 안면 보호 마스크도 들어있었다. 시야나 호흡에 불편감을 주는 마스크를 쓰고 경기에 나갈지는 미정이다. 과거 케빈 더 브라위너를 비롯해 비슷한 얼굴 부상을 당한 많은 선수가 같은 문제로 인해 마스크는 보험으로만 준비하고 실제로는 마스크를 쓰지 않고 경기를 소화했었다. 손흥민의 현재 회복 상태와 어느 시점에 경기에 출전할지 여부는 철저한 1급 기밀이다. 이 부분은 달리 말하면 상대 팀에도 큰 변수다. 손흥민 출전 유무에 따라 전술적 패를 달리 가져가야 하는데, 이 점을 벤투 감독이 역으로 파고들 수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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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상대 스트라이커 무력화시킬 김민재의 킬러 본능

손흥민과 더불어 벤투호를 떠받치는 양 기둥인 나폴리의 김민재는 부상 없이 무사히 카타르에 도착했다. 11월13일 열린 이탈리아 세리에A 우디네세와의 홈경기에도 선발로 나서 끝까지 뛰어, 공식전 14경기 연속 풀타임을 소화했다. 이틀 뒤 도하에 입성한 그를 향한 관심은 폭발적이었다. 세리에A 9월의 선수상을 시작으로, UEFA가 선정한 챔피언스리그 전반기 베스트11에도 이름을 올리며 빅리그 입성 후 단숨에 유럽 최고의 센터백에 등극했다. 손흥민 못지않은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김민재는 수비의 본고장인 이탈리아에서도 무결점 수비수로 올라섰다. 190cm, 88kg의 탄탄한 체격에 특급 공격수 수준의 순간 최고 스피드 35km/h의 빠른 발까지 갖춰 유럽의 내로라하는 공격수를 차례차례 무력화시켰다. 상대보다 늘 한발 앞서가는 특유의 공격적인 수비에 나폴리의 스팔레티 감독은 “짐승 같다. 위험을 감지하면 집중력이 더 올라가는 선수”라고 평가했다. 21세기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센터백인 조르지오 키엘리니는 “처음엔 김민재가 누군지 몰랐다. 몇 경기를 보고 그를 데려온 나폴리 단장에게 축하 전화를 했다”며 찬사를 보냈다.

나폴리 입단 후 세리에A와 챔피언스리그의 수준 높은 경기를 거듭하며 조율과 리딩 능력도 한층 업그레이드됐다. 오프사이드 함정을 파서 발 빠른 선수들을 무력화시키는 데도 능하다. 거기에다 공격진으로 보내는 패스 성공률도 90%에 달할 정도로 안정적이다. 후방에서의 정확한 빌드업, 상대의 압박을 깨는 의외의 전진은 벤투호에서도 김민재가 보여줘야 할 중요한 무기다. 나폴리 합류 후 머리로만 2골을 터트려 세트피스에서의 득점도 책임진다.

걱정스러운 점은 14경기 연속 풀타임의 강행군으로 체력이 떨어진 점이다. 벤투호는 손흥민의 부상 회복만큼이나 김민재의 체력 회복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지난 러시아월드컵을 앞두고 부상으로 낙마했던 22세의 잠재력 강한 수비수 김민재는 이제 유럽 최고 경쟁력을 지닌 26세의 대형 수비수로 자신의 첫 월드컵을 준비한다. 그는 “팀에 헌신할 준비가 됐다. 나를 포함해 팀이 하나가 돼 승리를 위해 뛰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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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극적인 승선으로 기세 오른 이강인의 마법 패스

이강인의 A매치 출전 기록은 2021년 3월에서 멈춰있다. 일본과의 평가전 이후 A매치에 나서지 못했다. 지난 9월 평가전에서도 벤치만 지켰다. 그러나 벤투 감독은 월드컵으로 향하는 26인 명단에 이강인을 포함시켰다. 그는 명단 발표 후 기자회견에서 “기술이 상당히 좋은 장점을 지녔다. 여러 부분에서 발전했기에 선발했다”고 말했다.

외부 우려와 달리 대표팀 내부에서는 벤투 감독이 이미 지난 9월 이강인의 최종 발탁을 낙점해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경기에만 투입하지 않았을 뿐 훈련에서 이강인을 활용하는 비중이 컸다. 새로운 선수, 혹은 오랜만에 발탁한 선수를 바로 실전에 투입하기보다 훈련을 통해 철저하게 자신의 계획 속으로 스며들게 만드는 벤투 감독 특유의 ‘인큐베이팅’(부화·보육) 방식이 이뤄졌다는 얘기다.

그런 과정이 아니더라도 이강인은 지난 9월 이후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서 무력시위를 펼치며 월드컵에 갈 자격을 증명했다. FC바르셀로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상대로 경쟁력을 발휘했고 친정팀인 발렌시아를 상대로는 현란한 페인팅에 이은 날카로운 슈팅으로 자신의 시즌 2호골을 터트렸다. 약점으로 지적받던 수비력이 개선됐고, 공을 소유할 때와 줄 때의 판단이 좋아졌다. 특유의 드리블과 킥 등 장점을 살리며 마요르카의 에이스로 거듭났다.

기본적으로 이강인은 선발보다는 경기 흐름을 바꾸거나 상대에 맞춘 전술을 수행하는 조커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벤투 감독이 월드컵 본선에서는 수비적인 경기 운영도 할 수 있다고 예고했는데, 그럴 경우 이강인은 개인 전술을 통한 탈압박에 이어 단 한 번에 최전방으로 찔러주는 날카로운 패스로 적은 숫자로도 효율적인 공격을 이끌 수 있다. 프리메라리가에서 3도움을 올린 날카로운 왼발 킥은 크로스 패턴이나 코너킥, 프리킥 같은 세트피스에서 큰 기여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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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벤투의 히든카드 ‘새로운 골잡이’ 조규성

벤투 감독이 본선을 앞두고 손흥민의 부상과 더불어 고민하게 된 또 다른 변수는 최전방 공격수 황의조의 부진이다. 황의조는 손흥민·김민재·정우영·황인범과 함께 벤투 감독 부임 후 가장 확고한 입지를 다진 선수다. 2019년 여름 보르도에 입단하며 프랑스 리그1으로 진출, 2시즌 연속 두 자릿수 득점을 올리며 박주영 이후 유럽에서 가장 성공한 정통 스트라이커로 입지를 굳혔다. 하지만 보르도의 강등과 함께 이적을 추진한 과정이 수월하지 않았다. 프리미어리그의 노팅엄 포레스트로 이적했지만, 일단 형제 구단인 그리스의 올림피아코스로 임대를 갔는데 새 환경 적응에 애를 먹으며 기나긴 골 침묵에 빠졌다. 지난 9월 A매치에서도 경기력 난조를 보여 우려를 샀다.

그러면서 급부상한 선수가 전북 현대의 골잡이 조규성이다.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 과정에서 벤투 감독이 과감히 발탁한 조규성은 이후 빠른 성장세를 보이는 중이다. K리그에서는 17골로 주민규(제주)를 제치고 득점왕에 올랐고, 10월말 열린 FA컵 결승 2차전에서도 2골을 기록하며 전북에 우승을 선사했다. 조규성의 상승 곡선은 황의조의 부진과 정확히 대비된다. 시즌 종료 전까지 조규성은 리그 2경기에서 3골, FA컵 결승 1, 2차전 합계 3골을 넣었다. 벤투호의 마지막 평가전이었던 아이슬란드전에서도 송민규의 결승골을 도왔다. 188cm, 84kg의 건장한 체격을 이용한 전형적인 경합은 물론 배후 침투에 의한 패턴까지 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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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월드컵 8년을 기다린 김진수의 한풀이

손흥민과 동갑인 92년생 김진수는 서른 살에 첫 월드컵에 나선다. 10대 후반부터 큰 기대를 모았지만 앞선 두 차례 월드컵은 모두 부상으로 낙마했다. 특히 주전 자리를 점하고 있던 지난 러시아월드컵 때는 3월 유럽 원정에서 부상을 당해 꿈을 접어야 했다. 현재 사우디아라비아의 알나스르가 원소속팀이지만 전북으로 임대를 와있는 그는 지난여름 “월드컵이라는 꿈을 먼저 생각하겠다”며 임대기간을 연장할 정도로 월드컵에 진심이다.

단단한 수비와 적극적인 공격 가담으로 현재 대한민국 최고의 풀백이라는 평가를 받는 김진수는 드디어 월드컵 무대까지 입성했다. 전북에서 리그와 FA컵에서 격전을 치르며 오른쪽 허벅지를 다쳐 또 한 번 월드컵을 직전에서 놓치는가 싶었지만 카타르 입성 전까지 철저히 회복에 전념하며 최종 명단에 들었다. 카타르에 도착한 김진수는 “8년을 기다린 무대다. 정말 간절히 원했다”는 말로 좌절의 연속이었던 그의 월드컵 도전사를 지켜본 이들을 가슴 뭉클하게 만들었다.

벤투 감독은 오른쪽 풀백에 김태환·김문환·윤종규 3명을 뽑았지만 왼쪽 풀백은 김진수·홍철 2명을 선택했다. 가용 자원이 상대적으로 적은 만큼 김진수의 활약이 중요하다. 게다가 벤투 감독은 손흥민과 김진수의 왼쪽 라인을 가장 중요한 공격 루트로 삼아왔다. 손흥민이 조별리그를 온전히 소화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김진수의 비중은 더 커졌다. 8년을 기다린 그의 한풀이가 성공적으로 이어져야 벤투호의 성공 가능성도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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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마지막에 꺼낸 ‘스리백’, 벤투 감독의 심리전

벤투 감독은 월드컵을 앞두고 치른 마지막 평가전인 아이슬란드전에서 깜짝 스리백을 가동했다. 이 경기는 H조 상대들이 한국의 전력을 분석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거기서 벤투 감독은 지난해 3월 한일전 이후 1년8개월여 만에 처음 스리백을 쓴 것이다. 한일전 때는 이강인을 제로톱으로 세우는 변칙적인 3-6-1 형태였지만 이번에는 전형적인 3-4-3 포메이션을 앞세운 벤투 감독이었다. 선수 구성의 변수로 인한 반강제적 스리백 운영이 아닌 것도 처음이었다.

뒤쪽에 3명의 수비수를 세워 공간을 상대에게 최대한 노출하지 않으며 안정감을 찾으려 했다. 상대 선수가 그것을 파괴하기 위해 중앙에 몰리면 측면의 열린 공간으로 좌우 윙백이 나아갔다. 전방에는 조규성을 중심으로 권창훈, 송민규가 자연스럽게 위치를 바꿔가며 상대 수비를 흔들려고 했다. 3-4-3은 최근 첼시, 토트넘, 바이에른 뮌헨 등 유럽 명문 클럽이 주로 쓰는 전형이다. 경기 운영에 다양한 변화를 줄 수 있고, 강한 전방 압박을 기본으로 측면 중심의 공격을 펼치는 장점이 있다.

벤투 감독은 부임 후 주로 4-1-4-1 포메이션을, 그리고 최근에는 4-4-2 포메이션 등 포백을 썼지만, 월드컵을 불과 3주도 남기지 않고 스리백을 쓴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 벤투 감독의 트릭인지, 아니면 플랜B 이상의 가치가 있는지 의견이 엇갈린다. 벤투 감독 역시 본선에서 스리백을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인터뷰를 남겼다. 상대 팀 입장에서는 혼란이 커진다. 만일 벤투 감독이 주 전술을 틀었다면 상대도 거기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한다. 상대 전력과 전술 분석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월드컵의 특성상 벤투 감독이 선제적으로 심리전을 시작한 셈이다.

변수보다는 정석에 집중하는 완고한 성격으로 주목받았던 벤투 감독이 막판에 꺼낸 한 수가 본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월드컵 성공의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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