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 대치 선도하는 윤석열 vs. 이재명, 누구 좀 말려줄 이 없나 [유창선의 시시비비]
  • 유창선 시사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12.09 16:05
  • 호수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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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중심, 윤 대통령 아닌 여당이 돼야…야당도 이재명 대표 거취 재검토할 때

윤석열 정부의 첫 예산안이 법정 시한인 12월2일을 진즉에 넘겼다. 새 정부가 들어서고 편성된 첫 예산부터 이렇게 대치하는 상황은 작금의 여야 관계가 얼마나 험악한가를 보여주고 있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의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는 사안들이 산적해 있다.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이상민 행안부 장관의 책임을 묻는 문제는 두 당 사이의 최대 쟁점이다. 방송법·노란봉투법 등 법안 처리를 둘러싼 갈등도 심각하다. 종합부동산세(종부세)와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법안에 대한 입장 차이도 아직 크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런 개별 사안들을 넘어서는 여야 간 근본적인 불신과 적대가 갈수록 격해지고 있는 현실이다.

당장 윤석열 정부의 검찰은 민주당 쪽 인사들을 겨냥한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재명 대표의 최측근인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과 정진상 대표실 정무조정실장이 연이어 구속되면서 수사의 칼날은 이 대표를 향하고 있다. 이에 민주당은 당대표에 대한 수사와 기소를 막기 위해 ‘이재명 방탄’을 우선하는 강경 노선을 추구하고 있다. 정기국회에서 나타난 민주당의 비타협적 태도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대응하려는 ‘이재명 방탄’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검찰은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으로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을 구속했고 수사는 박지원 전 국정원장 등으로 계속 확대될 전망이다. 이에 문재인 전 대통령까지 나서서 “부디 도를 넘지 않기를 바란다”며 강한 불만을 토로했고, 다시 국민의힘은 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까지 촉구하는 점입가경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동안 잠복해 있던 신구 권력 간 갈등이 급기야 격렬한 단계로 치닫는 모습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국회 운영에서도 협치를 기대하기 어렵고 서로 밀리지 않고 상대를 제압하기 위한 기싸움으로 갈 수밖에 없다.

ⓒ시사저널 박은숙

이재명, 대표직 내놓고 살아 돌아오는 길 택해야

정권은 바뀌었지만 국회에서는 여전히 민주당이 절대 다수 의석의 제1당이다. 그러니 민생국회가 길을 잃은 데 대한 책임을 민주당에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재명 대표는 정진상 실장이 구속된 직후에도 “민생을 지키는 야당 역할에 더욱 충실하겠다”고 다짐했다. 취임 100일을 맞은 입장문에서도 “민생·민주주의 위해서라면 국민께서 맡긴 권한을 주저 없이 행사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 ‘주저 없음’이 문제였다.

갈등 법안들에 대해 의석수 힘을 앞세워 단독 처리하는 입법 독주가 습관처럼 다시 등장했다. 정부는 예산 가운데 무엇 하나 자기 뜻대로 할 수 없으니 국회에서는 민주당이 집권당임을 실감하게 된다. 이제 민주당은 아무런 주저함이나 고민도 없이 언제나 강경 노선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당이 된 모습이다. 윤석열 정부를 악마화해온 민주당이기에 강경할수록 스스로 정의롭다고 여기게 돼버렸다.

이런 민주당이 정상궤도로 들어서려면 먼저 이재명 대표의 거취 문제를 진지하게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민주당이 강경으로의 질주를 멈추지 못하는 이유 가운데는 ‘이재명 사법 리스크’가 큰 영향을 주고 있다. 당대표가 수사를 받는 상황을 바라보고만 있을 수도 없고, 그래서 이 대표에 대한 수사를 막는 데 당이 매달리다 보니 갈수록 당 전체가 늪에 깊이 빠져드는 꼴이 되고 만다. 설훈 의원이 “‘떳떳하기 때문에 혼자 싸워 돌아오겠다’고 선언하고 당대표를 내놓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사실상 이 대표의 사퇴를 촉구했던 것도 민주당이 처한 딜레마의 표현이었다. 이 대표가 ‘선당후사’의 마음으로 당대표직에서 물러난 위치에서 자신을 방어하는 싸움을 벌이는 것이 당을 위한 길이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민주당은 이 대표를 지키기 위한 강경 투쟁의 길을 계속 갈 수밖에 없게 된다. 정기국회에서 재연된 입법 독주의 강경 노선은 민주당에는 결국 독이 될 수밖에 없다. 21대 총선 이후의 입법 독주에 대한 역풍으로 각종 선거에서 잇따라 패배했음을 민주당은 잊지 말아야 한다. 다가오는 22대 총선에서 민주당이 대선 패배를 설욕하려면 등 돌렸던 중도층의 지지를 되찾을 합리적인 노선의 재정립이 필수적인 과제다. 아무리 팬덤 지지층의 목소리가 큰들, 중도 외연의 확장 없이는 승리할 수 없음을 지난 선거들은 보여주었다. 그동안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추락했는데도 민주당에 대한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지지 못했던 원인이 이재명 대표에게 있었음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민주당이 강경으로 치닫는 배경에 이재명 대표가 있다면, 여권 또한 강경으로 치닫는 배경에 윤석열 대통령이 있다. 정기국회의 최대 정치적 쟁점은 이상민 장관의 거취 문제였다. 이태원 참사 책임자 가운데 한 사람인 이 장관의 사퇴가 없자 민주당은 해임건의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그러면 국정조사가 무슨 필요가 있냐며 반발했다. 민주당이 아예 해임건의안이 아니라 탄핵소추를 검토한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여야 관계는 더욱 냉각되었고 새해 예산안 협상은 한층 어려운 분위기가 되었다. 이 장관의 거취 문제가 정기국회의 다른 사안들을 다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된 것이다.

 

이 장관에 대한 윤 대통령의 과도한 집착이 국회 교착 상태 빠트려

이는 이 장관에 대한 윤 대통령의 과도한 집착 때문이다. 이 장관이 자신의 직접적인 잘못으로 책임져야 하거나 법적인 문제를 야기한 것이 없는데도 야당에 떠밀려 사퇴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소신을 윤 대통령은 갖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법적인 문제가 없으면 책임질 필요가 없다는 생각은 검사들의 것이지 민심을 껴안아야 하는 대통령의 것이 될 수 없다. 법적 논리가 아니라 정치 논리에 따라 민심을 따라야 하는 것이 대통령의 책무다.

지금 국민들이 보기에는 이태원 참사에 대해 제대로 책임진 사람을 찾기 어려운 형국이다. 경찰의 중간 간부들에게만 무섭게 책임을 물으려 하고 있지, 경찰 수뇌부·용산구청장·서울시장·행안부 장관 등과 같은 고위 책임자들 가운데는 아직껏 물러난 사람이 없다. 야당이 재난을 정치화하고 있다고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재난의 정치화’를 막을 수 있는 선제적인 리더십을 어째서 발휘하지 못하는 것인지 납득되지 않는다.

근래 들어 여권의 강경 기류는 대통령실이 선도하는 분위기다.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의 진상은 밝혀져야 하지만 정치보복 논란을 촉발할 강경한 사법처리 확대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화물연대 파업에 대한 강경 대응으로 보수층의 결집과 지지율 반등이 이루어진다고 하지만 ‘북한의 핵 위협과 마찬가지’라고까지 몰아붙일 일은 아니다. 총선으로 가는 길목에서 강경 일변도의 정부 모습은 중도층 유권자들에게 결코 매력적이지 않다. 대통령의 서슬 퍼런 기(氣)가 참모들의 고언을 누른다면 앞으로의 국정운영은 낙관적이기 어렵다. 정치의 중심은 대통령이 아니라 당이 돼야 한다. ‘강 대 강’으로 치닫는 정국의 뒤에 있는 윤석열과 이재명, 이 강경한 ‘투톱’을 말릴 사람들은 어디 없을까.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유창선 시사평론가
유창선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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