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월드컵은 ‘8강’이 보인다!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12.09 14:05
  • 호수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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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월드컵에서 벤투호가 남긴 희망과 아쉬움의 장면 10선
조규성·이강인·백승호 등 소중한 경험과 자신감 얻어
공수의 핵 손흥민·김민재 부상은 두고두고 아쉬워

2018년 8월17일, 파울루 벤투 감독 선임으로 시작된 축구 국가대표팀의 4년이 넘는 항해는 2022 FIFA 카타르월드컵 ‘16강 진출’이라는 항구에 안전하게 진입하며 끝마쳤다. 벤투호는 하나의 월드컵을 치르는 4년이라는 사이클을 온전히 한 감독에게 맡긴 한국 축구사 최초의 도전이었다. 이전까지 대표팀은 4년 단위의 감독 체제를 지속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심지어 히딩크 전 감독도 1년6개월(2001년 1월~2002년 6월)이었다.

2022 카타르월드컵에서 16강전을 마친 축구 국가대표팀이 12월7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2 카타르월드컵에서 16강전을 마친 축구 국가대표팀이 12월7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시사저널 최준필

2010 남아공월드컵 이후 12년 만의 16강 진출까지의 과정에는 의구심도 많았지만, 적어도 벤투호는 흔들리지 않았다. 선수들은 벤투 감독과 동행한 포르투갈 코치 4명이 구성한 전문적인 훈련 세션에 대만족을 표시했다. 지금의 주장 손흥민, 그리고 현재는 대표팀에서 은퇴한 이전 주장 기성용이 “유럽 최상위 레벨 팀과 비교해 부족함이 없다”고 호평했다. 그런 신뢰 속에 코칭스태프와 선수단은 혼연일체가 됐다. 2년 연속 한일전에서의 대패, 보수적인 팀 운용에 대한 지적을 받았지만, 한편으로는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을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하게 통과하고 목적성 높은 빌드업을 통한 능동적 축구를 펼쳐 기대를 모았다.

16강 진출만으로 기대치가 채워진 건 아니었다. 월드컵 조별리그 3경기 모두 상대와 대등한 플레이를 보이며 당당한 승부를 펼쳤다. 우루과이·가나·포르투갈을 상대로 3전 전패를 전망한 이도 많았지만, 오히려 한국이 H조에서 가장 좋은 내용을 펼쳤다는 평가가 유럽 언론에서도 빗발쳤다. 내용과 결과를 모두 잡은 것은 홈에서 열렸던 2002 한일월드컵 이후 처음이다. 16강에 진출한 남아공월드컵 당시에도 조별리그에서 아르헨티나에 1대4로 완패했었다. “어느 팀을 상대하든 우리가 준비한 축구를 주도적으로 펼치겠다”던 벤투 감독의 약속은 완전히 달성된 것이다.

국민은 세계적인 선수들을 상대로 당당히 맞서는 태극전사들의 모습에서 자긍심을 느낄 수 있었다. 동시에 이번 카타르월드컵과 같은 퍼포먼스라면 2026년 북중미 3개국(미국, 멕시코, 캐나다)에서 공동 개최되는 차기 월드컵에서 16강을 넘어 8강까지 진출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얻었다. 한편으로는 더 높은 도약을 위해 해결해야 할 숙제도 여전히 발견한 대회였다. 다음 월드컵을 위해 한발 더 나아갈 동력을 얻은 희망적인 장면 5개와 아쉬웠던 장면 5개를 각각 꼽아봤다.

ⓒ연합뉴스

■ 희망적인 장면 5선

1. 한국 축구사 새로 쓴 조규성의 멀티골

가나와의 2차전은 치열한 승부의 연속이었다. 전반 초반 주도권을 잡고 가나를 흔들던 벤투호는 전반 24분과 34분 상대의 세트피스, 크로스 공격 장면에서 집중력을 잃으며 잇달아 실점했다. 0대2로 끌려가던 상황에서 벤투 감독은 나상호·이강인을 후반 일찌감치 투입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이강인이 투입되며 전방에서 킥을 이용한 공격이 시작됐고 그 목적지에는 조규성이 있었다. 조규성은 후반 13분 이강인의 크로스를, 16분에는 김진수의 크로스를 잇달아 헤더 골로 연결했다.

189cm의 장신에다 2021년 상무 입대 후 근육량만 6kg 늘린 피지컬 개조를 통해 얻은 제공권과 힘을 활용해 가나 수비진을 뚫었다. 순식간에 2대2 동점을 만든 조규성은 한 경기에서 멀티골을 기록한 최초의 한국 선수가 됐다. 지금까지 한국 축구는 월드컵에서 늘 상대적 열세 속에서 경기를 하다 보니 멀티골의 폭발력을 발휘할 상황이 나오지 않았다. 조규성이 그 문을 열며 한국 축구의 새로운 발전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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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히든카드 이강인의 맹활약

당초 이강인은 월드컵 본선행마저 불투명해 보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벤투 감독에게 이강인은 모두에게 보여주지 않은 완벽한 히든카드였다. 우루과이와의 1차전에 교체 투입돼 적극적인 돌파와 슈팅 시도로 조규성과 함께 분위기를 바꾸는 역할을 한 그는 가나와의 2차전에서 맹추격전을 이끌었다. 측면이 아닌 2선 중앙 공격에 서서 프리롤을 부여받은 이강인은 왼쪽 측면까지 자유롭게 오갔다. 적극적인 압박에 이은 빠른 타이밍의 크로스로 조규성의 추격 골을 도우며 자신의 월드컵 첫 공격 포인트를 기록했다.

혼자서 경기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이강인의 창조성은 곳곳에서 빛났다. 가나전 후반 30분 처리한 프리킥 찬스가 대표적이었다. 수비벽을 넘은 뒤 골문 근처에서 뚝 떨어지는 예리한 슛은 비록 골키퍼 로렌 아티지기의 슈퍼세이브에 막혔지만, 왜 이강인의 왼발이 스페인에서 주목받는지를 보여줬다. 선발 출전한 포르투갈전에서 손흥민을 향해 정교한 침투 패스를 넣어주며 공격을 지원했다. 가까스로 벤투호에 승선했지만 당초 벤치만 지킬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씻고 본선 4경기에 모두 출전, 145분을 소화했다. 2001년생인 이강인이 첫 월드컵에서 자신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면서 2선의 새로운 중심이 됐다.

 

3. ‘승리의 부적’ 김영권의 세트피스 득점

수비수 김영권은 월드컵 두 대회 연속 득점에 성공했는데 타이밍과 방식이 절묘하게 동일했다. 2018 러시아월드컵 조별리그 최종전이었던 독일전에서는 후반 추가 시간 코너킥 상황에서 선제골을 터트리며 2대0 승리를 이끌었다. 이번 카타르월드컵에서도 포르투갈과의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골을 터트렸다. 전반 28분 이강인이 올린 코너킥이 호날두의 등을 맞고 흐르자 몸을 날려 왼발슛으로 처리해 동점골을 뽑았다.

4년 전에도 손흥민의 코너킥이 독일의 미드필더 토니 크로스를 맞고 굴절된 것을 골로 처리했던 김영권이었다. 세트피스에서 득점을 올리면 승리한다는 한국의 공식이 다시 한번 달성되는 순간이었다. 자신의 골로 한국의 16강 진출을 견인한 김영권은 브라질전에서 100번째 A매치 출전에 성공하며 센추리클럽에도 가입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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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16강 이끈 황희찬의 역전골과 ‘8분의 기다림’

카타르월드컵에서 벤투호가 만든 최고의 순간은 황희찬의 포르투갈전 역전 결승골이었다. 월드컵을 위해 대표팀에 합류한 뒤 훈련 중 햄스트링을 다친 황희찬은 우루과이·가나와의 경기에 결장했다. 가나전을 앞두고 팀훈련에 복귀했지만 벤투 감독은 2대3으로 지는 상황에서도 황희찬의 투입을 아꼈다. 포르투갈전 후반 21분 투입된 황희찬은 곧바로 특유의 저돌적인 돌파로 상대 수비를 휘젓고 다녔다. 후반 추가 시간에 돌입한 지 1분 뒤 맞은 찬스를 놓치지 않았다. 상대 코너킥 공격을 차단한 뒤 손흥민이 공을 달고 50여m를 질주했다. 8명의 포르투갈 선수가 뒤쫓아왔지만 황희찬도 전력 질주를 했고, 손흥민의 절묘한 패스를 받아 간결한 오른발 슈팅으로 마무리했다. 선수 보호를 철칙으로 삼는 벤투 감독의 기다림에 보답한 황희찬의 득점이었다.

이후 남은 추가 시간 5분을 버틴 한국은 VAR 판독으로 경기 전개가 늦던 가나와 우루과이의 경기 소식을 기다려야 했다. 대표팀 선수들과 코칭 스태프는 그라운드에서 원을 그리고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상황을 체크했다. 중계상으로 우루과이의 마지막 프리킥 공격이 무산되고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 선수들은 환호했다. 한국 팬들이 몰려 있는 골대 쪽을 향해 달려가 슬라이딩을 하며 16강 진출을 자축하는 셀레브레이션을 했다. 주장 손흥민은 “다른 경기 결과를 기다리며 하나로 모여 있던 그 순간은 축구 인생에서 절대 잊지 못할 순간”이라고 말했다.

 

5. 백승호가 남긴 희망의 만회골

세계랭킹 1위이자 우승후보 1순위인 브라질의 벽은 높았다. 16강전에서 브라질을 만난 한국은 모든 면에서 열세였다. 전반에만 4골을 허용하며 무너지는 듯했다. 한국의 자존심을 세운 것은 백승호였다. 후반에 황인범을 대신해 투입된 백승호는 이강인이 오른쪽 측면에서 올린 프리킥 공격을 브라질 수비가 막아내자 흘러나온 공을 왼발로 완벽히 트래핑한 뒤 그대로 왼발 중거리 슈팅을 날렸다. 그 전까지 손흥민·황희찬의 매서운 공격을 수차례 막아내던 세계 최고의 골키퍼 알리송이 힘껏 몸을 날려봤지만 막을 수 없는 완벽한 중거리슛이었다. 이번 대회에서 공격만큼 수비도 화려한 브라질이 허용한 두 번째 실점이자, 정예 멤버를 가동하지 않은 카메룬전의 실점을 제외하면 사실상 가장 완벽하게 당한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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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쉬웠던 장면 5선

1. 손흥민의 마스크와 김민재의 테이핑

이번 대회에서 한국이 가장 아쉬웠던 상황은 에이스들의 몸 상태가 완전치 않았다는 점이다. 손흥민은 월드컵을 3주 남겨놓고 경기 중 당한 안와골절 부상으로 수술대에 올랐다. 당초 월드컵 출전조차 어렵다던 예상을 뚫고 조별리그 3경기와 16강전까지 전 경기 풀타임을 소화했다. 하지만 경기력은 완전치 못했다. 안면보호 마스크를 쓴 상태로 뛰다 보니 시야가 좁아졌다. 경기를 거듭할수록 플레이는 좋아졌지만 급박한 상황에서 특유의 결정력이 발휘되지 않았다. 마스크와 피부가 밀착돼 금세 땀이 흐르는 것도 선수에게는 변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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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재도 가장 중요한 본선 무대에서 부상에 시달렸다. 대표팀 합류 전까지 소속팀 나폴리에서 공식전 17경기 연속 풀타임을 소화해 쌓인 피로가 결국 조별리그 1차전부터 터졌다. 우루과이전 후반에 상대를 쫓다가 그라운드에서 미끄러져 쓰러진 김민재는 오른쪽 종아리 근육을 다쳤다. 가나와의 2차전에 선발 출전했지만 급격히 속도를 내야 하는 장면에서 불편한 모습을 보이며 결국 후반 39분 스스로 벤치에 사인을 보내며 교체됐다. 벤투 감독은 포르투갈전에 결국 김민재 대신 권경원을 투입해야 했다. 브라질전에 선발로 복귀했지만 특유의 단단한 수비를 보여주지 못했고, 3경기에서 7실점을 허용하는 아쉬움으로 첫 월드컵을 마쳐야 했다.

 

2. 완벽한 빌드업으로 맞은 찬스 놓친 황의조

우루과이전 전반 45분은 이번 대회에서 벤투호가 보여준 최고의 경기력이었다. SBS 해설위원으로 나선 레전드 박지성이 “역대 월드컵 최고의 경기력이다”고 극찬할 정도였다. 옥에 티는 무득점이었다. 전반 34분 한국이 맞은 기회가 두고두고 아쉬웠다. 오른쪽 측면부터 시작된 빌드업이 완벽한 찬스로 이어졌다. 나상호·정우영·김문환의 패스 플레이가 우루과이 수비를 무너트렸다. 마지막 김문환의 패스가 골문 앞에 대기 중이던 황의조에게 정확히 향했지만 그의 오른발을 떠난 공은 허무하게 골대 위를 넘어가고 말았다. 벤투 감독이 부임 후 줄곧 믿었던 해결사 황의조는 지난여름 프랑스의 보르도를 떠나 그리스의 올림피아코스로 이적했는데, 새 소속팀에서 경기 감각이 떨어지고 말았다. 그 결과 우루과이전에서 최고의 찬스를 놓쳤고, 이후 선발은 조규성의 차지가 됐다.

 

3. 우려가 현실로…테일러 주심의 일방적 휘슬

가나와의 2차전을 앞두고 심판 배정이 공개됐을 때 국내 팬들은 불안감에 휩싸였다. 프리미어리그에서 판정 논란이 잦았던 앤서니 테일러 주심이었기 때문이다. 걱정은 현실이 됐다. 테일러 주심은 경기 내내 애매한 판정으로 한국의 리듬을 끊었다. 하이라이트는 종료 상황이었다. 가나에 2대3으로 뒤진 한국의 마지막 공세 때 코너킥이 나왔지만, 테일러 주심은 미련 없이 종료 휘슬을 불었다. 영국 매체들조차 “추가 시간의 추가 시간, 경기의 연속성을 고려하면 코너킥까지 줬어야 한다”고 지적했을 정도다. 김영권을 비롯한 선수들이 격렬히 항의하자 벤투 감독은 선수들이 퇴장이나 추가 경고를 받을 것을 우려해 그라운드로 뛰어 들어갔다. 선수들 대신 판정 미스를 맹렬히 지적한 벤투 감독은 테일러 주심으로부터 퇴장 조치를 당했다. 하지만 이 퇴장이 오히려 선수들의 의지에 불을 붙였고 관중석에서 지켜본 벤투 감독에게 16강 진출을 선사했다.

 

4. 힘든 경기 운영 부른 3경기 연속 초반 실점

대회 전체를 총괄했을 때 가장 아쉬운 부분은 우루과이전을 제외한 나머지 3경기 모두 선제 실점을, 그것도 아주 이른 시간에 허용해 스스로 힘든 경기를 거듭했다는 점이다. 가나전은 전반 24분, 포르투갈전은 전반 5분, 브라질전은 전반 7분에 각각 선제 실점을 했다. 이른 시간에 실점을 하다 보면 동점을 만들기 위해 우리 스스로가 공수 밸런스를 일부 무너트리고 나서야 한다. 그러면 상대는 우리 수비에 생긴 공간을 역이용하는데, 가나전과 브라질전에서는 연속 실점으로 흔들리며 패하고 말았다. 실점 패턴도 비슷했다. 포르투갈전에서 호르타, 브라질전에선 비니시우스에게 실점한 장면의 시작은 측면에서 상대의 빠른 전진을 도전적인 수비로 막으려다 오히려 밀리며 순식간에 생긴 것이다. 가나전의 마지막 3번째 실점도 흡사했다. 이런 패턴에 대한 대비가 부족한 점은 수비라인 형성이 엉성했던 점과 더불어 이번 대회 벤투호의 유이한 전술적 문제점이었다.

 

5. 체력 저하가 부른 브라질전 대량 실점

한국은 이미 16강전부터 체력이 심각히 떨어진 모습이 드러났다. 상대였던 브라질은 2경기 만에 16강 진출을 일찌감치 확정하고, 카메룬과의 조별리그 최종전에는 선발 라인업을 대부분 바꾸는 로테이션을 단행했다. 같은 휴식일에도 브라질과 한국의 활동량과 움직임에 확연한 차이가 난 이유다. 상대적으로 전력이 약한 한국은 조별리그 3차전에 로테이션을 돌릴 여유를 갖기 어렵다. 이번 대회도 마지막까지 힘을 짜내 전력을 쏟았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회복을 위한 시스템이다. 2002 한일월드컵 당시 히딩크 감독은 4강 진출의 숨은 원동력으로 의무팀의 역량을 꼽았다. 벤투 감독은 카타르월드컵을 마치고 귀국하는 자리에서 경기 외적인 부분에 대한 지원 문제를 거시적으로 언급했다. 이번 대회에 한국은 2명의 전문의와 5명의 재활 담당 트레이너로 구성된 의무팀을 파견했지만, 선수들의 극적인 부상 회복이나 체력 관리는 돋보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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