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벤투’ 둘러싸고 선수-축구협회 이견 ‘팽팽’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12.17 13:05
  • 호수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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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파 즐비한 대표팀 선수들 적극적 목소리 “외국인 감독 선호”
축구협회는 국내 지도자 선임론에 기울어…“2월까지 선임 완료”

12월13일 저녁, 파울루 벤투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인천국제공항에서 수많은 팬의 배웅 속에 출국했다. 카타르월드컵까지 4년4개월의 여정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대한민국을 떠나는 그는 동고동락했던 한국인 코치들과 포옹하며 잠시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2018년 8월 그와 동행했던 4명의 포르투갈 코치, 일명 ‘벤투 사단’도 같이 돌아갔다.

2014 브라질월드컵에 이어 2018 러시아월드컵에서도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뒤 대한축구협회는 카타르월드컵에 대비해 4년의 한 사이클을 통째로 맡길 외국인 지도자를 찾았다. 감독을 도울 각 영역의 전문 코치를 대동하는 대규모 코칭 스태프 운영까지 준비했다. 그렇게 고민 끝에 선임한 벤투 감독은 총 6명의 코치를 구성해 한국 축구사에 유례없는 대규모 사단의 수장이 됐다. 벤투 감독과 포르투갈 코치에게만 매년 40억원이 넘는 연봉과 생활 지원이 투자됐다.

그 투자의 성과는 확실했다. 벤투 감독은 한때 보수적이고 완고한 대표팀 운영으로 ‘벤고집’이라고 불렸다. 하지만 누가 뭐라 해도 자신의 길을 고집한 것은 확고한 철학에서 비롯된 것이었고, 벤투 감독과 코치들은 선수들을 만족시킬 리더십과 방법론을 보유했다. 부임 초기부터 손흥민·기성용·이청용·구자철 등 유럽 경험이 풍부한 선수들이 “유럽 최신 수준의 훈련 세션을 경험하고 있다”며 강한 지지를 보냈다. 결국 벤투 감독은 벤고집으로 출발해 젊은 세대의 극찬 중 하나인 ‘벤버지’(벤투+아버지)로 자신의 임기를 마쳤다.

ⓒ시사저널 최준필
국가대표 선수단이 월드컵 16강행을 이루고 귀국한 12월7일 인천공항에서 인사말을 하는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오른쪽)을 벤투 감독(왼쪽)과 선수들이 바라보고 있다. ⓒ시사저널 최준필

축구협회 난상토론에서 벤투의 철학과 방식에 의구심 나타나기도

벤투 감독의 월드컵 이후 행보는 일찌감치 결정돼 있었다. 지난 9월 대한축구협회와 벤투 감독의 재계약 협상은 결렬됐다. 16강에 진출하자 정몽규 축구협회장이 카타르 현지에서 다시 재계약 가능성을 타진했지만, 떠나겠다는 벤투 감독의 의사만 재확인했다. 그는 유럽에서 지도자 생활을 재개하기를 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제 다음 4년을 위한 새로운 감독 선임이 당장 중요한 미션이 됐다.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용수 부회장을 중심으로 한 기술파트가 새 사령탑 선임을 준비한다. 축구협회는 12월13일 보도자료를 통해 “감독 선임은 내년 2월까지 완료할 예정이며, 국내외를 막론하고 적합한 지도자를 추천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당장 내년 3월에 A매치가 기다리고 있고, 카타르에서 열리는 아시안컵에서 64년 만의 우승에 도전해야 하는 만큼 2월까지는 새 선장을 찾아야 한다.

11월 중순 축구협회는 사전 정지 작업도 진행했다. 비공개로 열린 전력강화위원회 회의에서 벤투 감독 후임을 어떤 방향으로 선임할지에 대한 난상토론이 열린 것이다. 그 자리에서 국내 지도자 선임론이 비중 있게 나왔다.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첫 번째는 벤투 감독의 철학이 한국 축구의 향후 방향성과 일치하는지에 대한 의문론이었다. 결과론적으로 벤투 감독은 16강에 진출했지만, 그 과정에서 철학과 방식에 대한 의구심이 붙은 상태였다. 카타르월드컵 16강에 진출한 팀 중 한국을 제외한 15개 팀은 자국 감독을 선임해 결과를 냈다.

두 번째는 비용과 관련한 현실적인 문제였다. 축구협회는 코로나 팬데믹 동안 후원사, 중계권 수익이 급감해 국제축구연맹(FIFA)으로부터 500만 달러의 긴급 대출을 받기도 했다. 최근 상황이 호전되고 있지만 2024년 6월 준공 예정인 대한민국 축구종합센터에 드는 총 예산 3000억원 중 1200억원을 축구협회가 내야 한다. 나머지 금액은 축구종합센터 소재지인 천안시가 지원하지만 인프라 강화를 위해 새롭게 예산을 쏟는 만큼 나머지 분야의 예산이 줄어든 상태다. 그런 상황에서 벤투 사단처럼 대규모 비용이 드는 코칭 스태프 운영은 쉽지 않다.

 

선수들 “우리의 감독 너무 쉽게 선택하지 않도록 목소리 내야”

선수들의 생각은 어떨까. 분위기는 다르다. 높은 수준의 훈련과 세련된 전술, 여론의 압박에 흔들리지 않는 철학을 지닌 외국인 감독을 더 선호하는 모습이다. 애초에 벤투 감독의 선임 자체도 선수들의 바람에서 비롯됐다. 벤투 감독 선임을 이끈 김판곤 전 전력강화위원장(현 말레이시아 축구대표팀 감독)은 “러시아월드컵 당시 선수들이 울분을 토했다. 더 이상 월드컵에서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했다. 세계와의 격차를 좁히길 원했다. 그래서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축구를 펼칠 외국인 감독과 그 사단을 데려오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축구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는 대표팀 미드필더 이재성(마인츠)도 결이 비슷한 주장을 했다. 월드컵이 끝나고 12월12일 블로그에 글을 올린 이재성은 “(벤투) 감독님이 떠나시는,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벌써 많은 이야기가 나오고, 비관적인 분위기도 있다. 선수들도 걱정하고 있다”고 의견을 밝혔다. 이어서 “선수들이 목소리를 내야 할 것 같다. 우리의 감독님을 너무 쉽게 선택하지 않도록,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 번이라도 더 고심하게 되지 않을까. 리더가 누가 되느냐에 따라 한 팀이 완전히 바뀔 수 있다는 걸 우리가 몸소 체험했다. 벤투 감독님이 그걸 증명하셨다”고 덧붙였다.

주장 손흥민은 감독 선임에 대해 직접적으로 의견을 내진 않았지만 “대한민국 축구엔 이번 월드컵이 끝이 아닌 시작이다.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팀이 되어야 한다”며 향후 대표팀 운영이 진취적인 방향으로 연속성 있게 가야 한다는 뜻을 내비쳤다. 한국 축구가 카타르월드컵을 통해 내용 면에서 수세적이지 않은, 대등한 내용의 공세적 경기를 펼치는 패러다임 변화에 성공한 만큼 이 흐름을 이어가기 위한 감독 선임은 중요한 첫 단추다.

벤투 감독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선임 기준을 확고히 세우고, 협상 대상자의 전술적 성향을 철저히 분석한 데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2018년 7월 당시 벤투 감독은 중국 슈퍼리그에서 실패한 상황이었지만 김판곤 위원장은 “히딩크 감독도 과거 스크래치가 난 상태에서 왔었다. 최근의 성과가 아니라, 지도자 이력에서 어떤 것을 추구했느냐를 확인하고 선임했다”고 말했다. 벤투 감독은 실제 면접에서도 한국에 동행하려는 코치들을 끌고 나와 훈련 세션 영상을 공개했다.

단순 이름값과 최근의 성적, 주관적인 기준의 성품과 인상만으로 섣불리 선임할 경우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당장 8년 전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그런 경우였다. 슈틸리케 감독은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선수 출신이지만 지도자로서의 이력은 부실했다. 부임 후 2년간은 승승장구했지만, 월드컵 최종예선에 들어서자 밑천이 드러났다. 한국 축구의 위상은 점점 높아지고, 주요 선수들은 유럽 빅리그에서 뛰고 있다. 매일 세계 최고 레벨의 훈련과 경기를 경험하고 있는 선수들의 눈높이를 대표팀에서 충족시키지 못하면 그 차이에서 불협화음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국내 지도자를 아예 배제할 근거는 없다. 한국인 감독들도 최근 경험치를 충실히 쌓으며 수준을 높이고 있다. 김학범 전 올림픽 대표팀 감독, 최용수 강원FC 감독 등 현재 언급되는 후보들이 만일 선임 기준에 부합한다면 그들도 후임 감독으로서 자격은 있다. 반대로 기준이 불분명한, 투명하지 않은 선임 과정은 국민은 물론 대표팀 선수들의 반발까지 살 수 있다. 선임 배경과 기준, 능력에 대한 브리핑을 인사 주체가 자신 있게 할 정도의 감독을 데려와야 한국 축구는 4년 뒤 월드컵에서 더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 있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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