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윤’ 대표 만들자고 18년 당규 폐기한 국민의힘 [유창선의 시시비비]
  • 유창선 시사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12.23 12:05
  • 호수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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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여론 배제한 채 당원 투표 100%로 전당대회···‘尹心’만을 추종하고 민심 읽지 못하는 집권여당

집권 여당의 당대표 선출 방식이 18년 전으로 돌아갔다. 2023년 3월초 전당대회를 앞둔 국민의힘의 비상대책위원회는 2004년 이후 계속 이어져 오던 7대3 룰(당원 투표 70%+국민 여론조사 30%) 규정을 폐지하는 대신, ‘당원 투표 100%’로 바꾸기로 의결했다. 이 당헌·당규 개정안은 바로 다음 날 소집된 상임전국위원회를 거친 데 이어, 규정상 최단 기간인 사흘간의 공고일을 거쳐 지난 12월23일 전국위원회에서 확정됐다. 축구 경기 시작을 앞두고 골대를 옮기는 일이 속전속결로 진행된 것이다.

국민의힘이 당 안팎의 비판을 감수하면서 이렇게 경선룰 개정에 나선 것은 유승민 전 의원 등 ‘비윤’(非윤석열) 대표의 등장을 막기 위한 고육책으로 보인다. 그동안 유 전 의원이 국민의힘 차기 당대표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선두로 올라서는 조사 결과들이 연이어 나왔다. 물론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의 역선택 결과라는 해석이 유력했지만, 국민의힘 지지층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유 전 의원이 선전하는 양상이 나타났다. 근래 들어 ‘반윤’이라는 소리까지 듣는 유 전 의원이 만에 하나 여당 대표가 되었을 경우에 대한 당 지도부의 위기의식이 얼마나 컸을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1월11일 성남 서울공항에서 국민의힘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 주호영 원내대표 등 환송 인사들과 악수하고 있다.ⓒ연합뉴스

중도 확장성 갖는 인물, 경쟁력 갖기 어려워져

그렇지 않아도 절대 다수 의석을 가진 민주당이 국회에서는 여전히 집권당 노릇을 하고 있는지라 무엇 하나 마음대로 할 수 없던 것이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의 처지였다. 그런 마당에 윤 대통령과 각을 세워온 당대표라니, 어떻게든 막아야겠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함께 도입된 결선투표제 또한 난립하는 ‘친윤’ 후보들의 단일화를 통해 ‘친윤’ 대표를 굳히기 위한 이중장치로 해석되고 있다.

그런데 아무리 급해도 바늘허리에 실을 매어 쓸 수는 없는 일. 모양이 너무도 안 좋고 명분도 없다. 정진석 비대위원장은 “이념과 철학 목표가 같은 당원들이 대표를 뽑는 것은 당연하다”며 “당원의 자발적 투표로 당대표 선출이 가능하므로 비당원 여론조사를 병행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개정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이제까지 18년 동안 유지되었던 경선룰은 나름의 역사가 있는 것이다. 2004년 당시 전당대회를 앞두고 ‘남원정’으로 불린 남경필·원희룡·정병국 의원 등 소장파 의원들이 국민적 관심과 지지 속에 새 대표를 선출해야 한다며 국민참여 경선을 제안해 도입된 것이 그동안의 7대3 룰이었다. 물론 거기에는 민주당이 2002년 대선후보 경선 때 도입한 국민참여 경선이 선풍을 일으키면서 시대적 추세처럼 받아들여진 환경도 크게 영향을 주었다.

어쨌든 당원투표와 국민 여론조사가 결합된 경선룰은 보수정당의 폐쇄적 울타리를 넘어 국민 여론을 중시하는 정당으로 변모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런 역사를 갖고 있던 제도가 단지 ‘유승민 같은 비윤’이 당대표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한 이유로 사라지게 된 광경은 정상적이지 않다. 2021년 전당대회에서 ‘이준석 현상’의 강풍이 불었던 것도 ‘선거인단 투표 결과 70%+여론조사 결과 30%’라는 기존의 당규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준석 전 대표에 대한 평가와는 상관없이, 그런 새로운 흐름의 가능성이 열려 있는 제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앞으로 국민의힘 당대표 선출은 어떤 이변의 가능성도 없는, ‘예측이 확실한 경선’에 갇혀버리게 되었다. 아무리 지난 대선을 거치면서 청년 당원들의 입당이 늘었다고 하지만, 투표권을 갖는 책임당원들의 구성에서 지역적으로는 영남, 연령적으로는 고령층, 이념적으로는 보수층이 단연 우위를 점하는 것이 국민의힘의 현실이다. 결국은 강한 보수적 색채를 내세우고 보수정당에서 오랫동안 정치를 해온 후보가 우위에 서게 되는 구조다. 정작 2024년 4월 총선 승리를 위한 중도적 확장성을 갖는 인물들은 경쟁력을 갖기 어렵게 되었다. 이런 경선룰은 국민의힘을 낡은 것이 부활하고 새로운 것이 움트기 어려운 당으로 고착화시킬 것이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이 과정에 ‘윤심(尹心)’이 작용했다는 정황이다. “대통령이 사석에서 전당대회 룰을 변경할 거면 (당원 투표 비중을) 100%로 하는 게 낫지 않겠냐는 취지의 언급이 있었다”는 여권 관계자의 전언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실제로 이 얘기가 나올 무렵부터 당 비대위에서도 당원 투표 100%로 가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일사불란하게 나오기 시작했다. 당원 투표 100%는 윤 대통령의 뜻이라고 받아들여도 아마 틀리지 않을 것이다.

 

갈수록 편향되는 ‘윤 대통령 보수 행보’ 우려

총선을 1년여 앞두고 있게 되는 전당대회에서 이 같은 ‘당대(당과 대통령실) 관계’는 심히 우려된다. 그렇지 않아도 근래 들어 윤 대통령의 보수 편향 행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근래 단행된 인사들에서 전희경 대통령실 정무1비서관,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 김광동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 등 강경 보수 성향으로 알려진 인물들이 계속 중용돼 논란이 반복되었다. 그리고 화물연대 파업 대응을 거치면서 정부의 강경 기조가 눈에 띄게 나타나고 있다.

일단 보수층의 결집을 가져오면서 지지율 상승을 이끌고 있으니, 그 효과의 맛을 본 윤 대통령이 계속 강경 보수의 방향으로 국정을 이끌고 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조금만 더 앞을 내다본다면, 당장 총선 승부만 생각한다 해도, 중도층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정권이 국회 다수당이 되고 성공한 정부가 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와 같은 일이다.

단지 ‘친윤 대표 만들기’ 당규 개정만이 문제는 아니다. 경선 레이스는 이렇게 시작되지만 막상 국민에게 새로운 감흥이나 기대를 불러일으킬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 안팎에서는 이미 많은 출마 예상자가 자천 타천으로 거명되고 있다. 원내에서는 5선 조경태, 4선 권성동·김기현·윤상현, 3선 안철수 의원 등이, 원외에서는 유승민 전 의원, 나경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 황교안 전 자유한국당 대표 등이다. 문제는 이들 가운데 ‘친윤’ ‘비윤’을 막론하고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는 인물을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대다수 주자가 과거 정치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뿐더러 변화하는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리더십으로 인정받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100% 당원’들이야 남다른 열의를 가질지 모르겠지만, 보통 국민에게는 ‘그들만의 리그’로 비춰지기 십상이다.

지금 국민의힘이 드러내고 있는 문제의 본질은 ‘윤심’만을 추종하며 대통령실과의 수평적 관계를 포기하고 수직적 관계를 자청하는 모습에 있다. 차브리스와 사이먼스 교수의 연구서 《보이지 않는 고릴라》에는 농구장에서 패스 횟수를 세는 데 너무 집중한 나머지 바로 눈앞으로 지나간 고릴라를 보지 못한 실험 대상자들의 얘기가 나온다. 자신들의 착각에 발목이 잡히는 ‘무주의 맹시(盲視)’ 현상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친윤 대표 만들기’에만 정신이 팔려 민심을 읽지 못하고 무리수를 두는 국민의힘의 모습이 그러하다. 집권여당이 그래버리면 민심과 대통령의 가교 역할은 대체 누가 한단 말인가.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유창선 시사평론가
유창선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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