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움직이는 3축의 하나, ‘개딸’의 위력 [유창선의 시시비비]
  • 유창선 시사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2.10 14:05
  • 호수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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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지도부·처럼회, 팬덤 세력과 사실상 정치적 연대 형성
탄핵·특검 등 당내 강성 분위기 이끌어

1월28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대장동·위례신도시 개발특혜 의혹에 대한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검에 출두했다. 이 대표가 탄 차량이 도착하자 모여 있던 지지자들은 “대표님, 사랑합니다” “이재명은 죄가 없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그를 응원했다. ‘나를 위해 이재명’이라는 피켓을 든 사람도 있었고, 이 대표를 바라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다. 이재명이라는 정치인과 한마음이 된 지지자들, 이름하여 ‘개딸’들이다.

ⓒ시사저널 이종현
1월28일 대장동 사건으로 소환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서울 중앙지검 출석이 예정된 가운데 이재명 대표 지지자들의 항의 집회가 열리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李 검찰 출석 동행 안 한 의원 등 명단 올려

개딸은 본래 이 대표를 지지하는 2030 여성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들은 자신에게 ‘개혁의 딸’이라는 의미를 붙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이 대표의 열성 지지자들을 통칭하는 말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남성들도, 50·60대 지지자들도 모두 개딸이 되었기 때문이다. 대신 이제 개딸은 팬덤정치를 상징하는 용어가 되었다. 지난해 대선이 끝나고 민주당 공동비대위원장을 맡았던 박지현은 감히 ‘팬덤정치와의 결별’을 내걸었다가 오히려 자신이 왕따가 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었다. 개딸들의 위력은 그만큼 강력하다.

그런 개딸들이 최근 들어 다시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고 있다. 이 대표가 검찰에서 조사를 받은 다음 날, 친민주당 성향의 ‘딴지일보’ 게시판에는 ‘민주당 의원들 검찰 방문 및 발언 SNS 전수조사’라는 제목의 게시글이 올라왔다. 그 글은 민주당 의원 169명의 이름을 가나다순으로 나열하고 서울중앙지검 출석 당시 동행 여부, 검찰 관련 비판 발언 여부를 항목별로 ‘O 또는 X’로 표시한 표를 올렸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의원 85인’은 따로 표를 만들어 보여주기도 했다. 일종의 블랙리스트였던 셈이다.

이 게시글은 검찰 수사에 침묵하는 것은 ‘당원에 대한 배반’이니 “경선과 총선 때 평가해 위선자들이 걸러지기를 바란다”는 얘기를 꺼내기도 했다. 실제로 이 리스트에 오른 의원들에게는 전화와 문자폭탄이 쏟아졌다. 민주당 소속 의원 전원을 검열하며 문제가 있는 의원들에게는 개딸들의 위력을 보여주는 ‘사상지도’가 행해진 셈이다. 

그런가 하면 민주당 내 비명계 의원들을 주축으로 1월31일 창립한 ‘민주당의 길’에 대해서도 개딸들의 압박이 가해지고 있다. 이 모임이 장차 세력화해 이 대표를 흔들 것이라는 의심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오죽하면 정치인들이 모임을 만들면서 가입 회원 명단을 철저히 비공개로 했겠냐마는, 그래도 개딸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참여가 의심되는 의원들 명단이 올라오고 있다. 개딸들은 이 명단을 놓고 겉은 파란 민주당이지만 속은 빨간 국민의힘인 ‘수박’들을 감별해야 한다고 나서고 있다. 강성 지지자들의 요구에 맞춰 장외집회에 나선 민주당이지만 정작 자신들 내부에서는 집회와 결사의 자유조차 보장되지 않는 모순된 광경이다. 

개딸들의 블랙리스트에 오르고 문자폭탄을 받은 의원들의 우려가 커지자 이 대표가 진화에 나서기도 했다. 이 대표는 자신의 지지자들을 향해 “저와 함께하는 동지라면 문자폭탄 같은, 내부를 향한 공격은 중단해 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재명 지지자의 이름으로 공격받고 상처받으신 의원님들께는 사과 말씀을 드린다”면서 의원들의 반발을 누그러뜨리려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대표의 이런 말들로 개딸들의 문자폭탄 공격이 잦아들 것이라 기대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개딸로 표현되는 강성 팬덤층이 민주당에 미치는 영향력은 생각보다 강력하다. 현재 민주당을 이끌고 있는 지도부, 그리고 강경파 모임 ‘처럼회’는 이들 개딸과 사실상 정치적 연대를 구축하고 있다. 이 대표에 대한 소환조사 이후 개딸들의 목소리가 다시 높아지는 데 맞추어 민주당의 분위기도 다시 초강경 기조로 가고 있다. 민주당은 당내 온건파의 우려와 반대에도 국정농단 사태 이후 6년 만에 대규모 장외투쟁에 나섰다. “‘이재명 방탄’ 프레임에 이어 대선 불복 프레임에 걸릴 수는 없지 않은가”(박용진 의원), “개딸로 불리는 이 대표 지지층에 당이 휘둘려서는 안 된다”(이원욱 의원)는 온건한 목소리들은 힘을 얻지 못한다.

 

‘선거 3연패’ 교훈 벌써 망각한 모습

2월4일 장외집회를 끝낸 민주당은 다시 강경투쟁 분위기를 이어가며 이상민 장관 탄핵소추안 발의를 당론으로 결정하고 이틀 만에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이 장관의 직무는 헌법재판소가 탄핵 심판을 내릴 때까지 정지되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에서 어떤 판단이 내려질지는 불확실하다. 이태원 참사에 대한 이 장관의 정치적·도의적 책임은 분명해 보인다. 다만 헌법에 명기된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 해당되는지 여부는 헌재가 판단을 내려야 할 쟁점으로 남아있다. 만약 헌재에서 탄핵소추안이 인용되지 않고 기각된다면 민주당에 오히려 역풍이 불 민감한 사안이다. 민주당이 그런 부담을 무릅쓰고 탄핵소추안을 밀고 나간 것은 당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강성 분위기 때문이다.

그 선봉에는 강경파 일색으로 구성된 당 지도부가 있다. 민주당 최고위원회의는 언제나 누가 더 센 발언을 내놓는가를 경쟁하는 무대가 된 지 오래다. 당내에 존재하는 강온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지도부가 되지 못한다. 그리고 민주당의 또 하나의 지도부가 있다면, 21대 국회에서 민주당 강경투쟁을 선도해온 강경파 의원들 모임인 처럼회다. 이들은 선거 3연패을 낳은 주역으로 지목되면서 지난해 6·1 지방선거 패배 이후 한발 뒤로 물러서 있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근래 들어 이재명 대표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처럼회의 강경투쟁도 다시 고개를 들었다. 처럼회를 주축으로 한 의원 수십 명은 2월1일 밤부터 국회 로텐더홀에서 김건희 여사 특검과 이상민 장관 탄핵소추안 추진을 촉구하는 농성을 벌였다. 

‘김건희 특검’은 법안 발의는 이미 지난해에 했지만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의 반대, 역풍에 대한 우려 등으로 사실상 접어둔 상태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 김건희 특검을 다시 밀어붙이자는 강경론이 당을 이끌어가고 있다. 이는 이재명 대표 검찰 소환조사에 대한 개딸들의 반발이 반영된 맞불용 성격이다. 

21대 총선 이후 강경노선으로만 치닫다가 정권도 내주고 선거 3연패를 당했던 민주당이었다. 하지만 어느 사이에 그 패배의 교훈을 모두 망각한 모습이다. 개딸들의 목소리는 가까이서 들리고, 민생 우선을 요구하는 민심의 목소리는 멀게만 들리는 탓이다. 전당대회를 ‘반윤 찍어내기’의 아수라장으로 만들고 있는 국민의힘도 한심해 보이지만, 그렇다고 민생은 뒷전이고 ‘이재명 방탄’을 위한 강경일변도 정치투쟁에만 매달려 있는 민주당으로 민심이 갈 것 같지도 않다. 여도 야도, 서로가 지기 위한 경쟁을 벌이는 모습이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유창선 시사평론가
유창선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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