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과 민주당은 ‘비주류’를 허하라 [유창선의 시시비비]
  • 유창선 시사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2.24 16:05
  • 호수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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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 민주주의 다시 위협받고 모욕당하는 지금의 정치 현실 ‘퇴행적’
하나의 질서, 하나의 목소리만 존재하는 정당은 ‘죽은 정당’

“정치인의 과오도 경중이 있다. 이재명 대표는 이미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그 과오가 매우 중하다고 생각한다.” “정치인이 어느 정도 뻔뻔하다고 해도 뻔뻔한 것도 정도가 있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의 ‘비주류’인 김해영 전 의원이 이재명 대표의 퇴진을 요구하며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이다. 이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을 앞두고 민주당 지도부가 당의 결속을 강조하는 가운데 터져 나온 작심 발언이다. 이 대표를 지지하는 ‘개딸’들은 “당장 민주당을 탈당하라”며 김 전 의원을 원색적으로 비난하고 나섰다. 

이보다 앞서 박지현 전 민주당 비대위원장이 이재명 대표의 체포동의안 가결을 촉구하자 그의 출당과 징계를 요구하는 당원들의 청원도 확산되었다. 민주당 온라인 당원 청원 사이트 ‘국민응답센터 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박지현 전 위원장에 대한 출당 권유 내지 징계를 요구합니다’라는 청원에는 닷새 만에 3만 명 넘는 당원이 참여했다. 민주당 내에서 감히 이 대표 퇴진이나 체포동의안 가결을 요구하는 비주류의 주장은 용납되기 어려움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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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전대에 출마한 비윤계 후보들인 이기인, 천하람, 허은아, 김용태 후보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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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31일 민주당 비명계 의원들이 모인 ‘민주당의 길’ 1차 토론회 모습 ⓒ연합뉴스

비주류 발언권, 이토록 허약했던 적 있었나

이번에는 국민의힘이다. 3·8 전당대회 당대표 경선에 출마한 안철수 후보가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윤핵관’들을 비판했다. “그 사람들한테는 대통령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고 자기들의 다음 공천이 중요하다”고 비판한 것이다. 이 얘기를 전해 들은 윤 대통령이 격앙해 직접 나섰다. “윤핵관은 대통령을 직접 공격하고 욕보이려는 표현 아닌가” “실체도 없는 윤핵관 표현으로 정치적 이득을 보려는 사람은 앞으로 국정운영의 방해꾼이자 적으로 인식될 것”이라고 안 후보를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이진복 대통령실 정무수석도 기자들 앞에서 안 후보의 발언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안 후보는 대통령과 동급이 아니다. 대통령이 간신 구분도 못 하고 국정운영 하겠냐”는 것이다. 당대표 경선에 나선 후보가 윤핵관을 비판했다고 대통령이 나서서 이렇게 역정을 내니 이제 여권 내에서 ‘윤핵관’이라는 표현은 금칙어가 된 셈이다. 당장 경고를 받은 안 후보부터 “앞으로 윤핵관·윤안연대라는 말은 쓰지 않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당대표 경선에 나선 후보도 대통령의 마음에 들지 않는 말을 했다고 공개적으로 이처럼 호되게 당하니, 앞으로 국민의힘 안에서 누가 입을 제대로 열 수 있을까.

여야 양당에서 벌어진 이 두 개의 광경은 당 주류의 생각을 거스르는 언행이 어떤 신세가 되는가를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그런 말을 한 사람은 개인 혼자다. 하지만 그런 발언을 한 사람을 응징하는 사람들은 힘도 있고 숫자도 많은 거대한 세력이다. 설혹 그런 이의 제기에 생각을 같이하는 동료 정치인이 있다고 한들, 이런 분위기에서 감히 동조하거나 연대할 꿈조차 꾸기 어렵다. 더구나 내년 4월에는 22대 총선이 있으니 공천 걱정도 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그런 점에서 민주당이든 국민의힘이든 주류와 비주류는 대등하게 비교할 상대가 되지 못한다. 양쪽의 힘은 심하게 비대칭적이다. 우리 정치사에서 비주류의 발언권이 이토록 허약하고 보잘것없던 시절이 있었을까 싶다. 우리 정치에서 비주류는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주류에 맞서 당의 방향과 노선을 둘러싼 건강한 논쟁을 이끄는 등 당에 활력을 불어넣기도 했다.

주류와 비주류가 당권 경쟁까지 벌이던 당내 민주주의로 말하자면 민주당의 역사가 보수정당보다는 훨씬 앞서 있었다. 독재정권 시절에도 야당은 양김인 YS(김영삼)와 DJ(김대중)가 번갈아 가며 주류와 비주류를 하면서 당권과 대권 경쟁도 하고 민주화 투쟁에 힘을 합치기도 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야당이던 민주당 대표를 하던 시절에도 ‘친문 패권주의’를 비판하는 비주류 세력이 당내에 존재했다.

이들은 문재인 대표의 노선과 갈등을 빚다가 20대 총선을 앞두고 안철수 대표가 이끌던 국민의당에 대거 합류한다. 그 뒤로는 민주당에 세력으로서의 비주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지금도 민주당에서는 김해영 전 의원 외에도 이상민·조응천 의원, 박지현 전 비대위원장 등이 당의 현안에 대해 주류와는 다른 쓴소리를 내곤 한다. 하지만 세력이 없는 발언은 당의 의사결정에 별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민주당에는 ‘민주’가 없다”는 말이 나온다. 

 

정치권의 시계, 거꾸로 움직이고 있어

그런데 ‘민주’가 없는 것은 국민의힘도 다를 바 없음을 이번 국민의힘 전당대회 과정이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얼마 전 국민의힘 친윤계가 들고나온 당정일체론이 그것이다. 장제원 의원은 “당정이 하나가 되지 못하고 계속 충돌됐을 때 정권에 얼마나 큰 부담이 있었느냐”며 당정 충돌이 정권의 지지율을 추락시킨 정치사를 환기시켰다. 박수영 의원도 “대표적 대통령제 국가인 미국과 프랑스는 왜 대통령에게 적극적인 역할을 부여하고 있을까?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당정분리론에 대한 재검토를 주장했다. 당 주류가 대표로 밀고 있는 김기현 후보는 아예 당정일체론을 내걸고 “우리는 대통령과 공조와 협력을 해야 하는 부부관계인 것이지, 서로 따로 떼서 사는, 별거하는 관계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대통령과 여당이 당정 협의를 통해 함께 가야 국정에 혼란이 없음은 당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통령과 여당이 부부가 되어버리면, 다른 집 사람들이 뭐라고 할 때 함께 화부터 내게 된다. 국민의힘 일각에서는 아예 윤 대통령을 ‘명예 당대표’로 추대하자는 얘기까지 나왔다고 한다. “여당을 ‘용산출장소’로 만들 것이냐”는 천하람 후보의 항변에 이유가 있다. 용산도 그렇고, 국민의힘 주류인 친윤계는 정당 민주주의라는 것을 비효율적이고 귀찮은 것으로 여기는 모습이다. 대통령의 뜻에 맞춰 일사불란하게 가는 것이 참된 여당의 모습이지, 대통령과 다른 소리들을 하면 국정을 어떻게 운영하느냐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비주류의 목소리는 경청하고 포용하는 것이 아니라 배제하고 찍어내야 할 대상이 된 것이다.

그렇게 보면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보여주는 모습이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 정치는 독재와 권위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정당 민주주의를 제대로 구현하지 못했다. 오랜 세월 우리 정치를 이끌었던 3김 정치도 많은 업적을 내기는 했지만, 정당 민주주의를 억누르는 리더십으로 작용했던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런 역사를 딛고 이루어냈던 것이 오늘날의 정당 민주주의였다. 그런 정당 민주주의가 다시 위협받고 모욕당하는 정치 현실은 분명 퇴행적이다. 하나의 질서, 하나의 목소리만 존재하는 정당은 다양성을 잃은 죽은 정당이 되기 쉽다.

다양한 의견이 자유롭게 개진되고 토론되는 정당이 비로소 자신의 힘을 갖는 정당이다. 그럼에도 거꾸로 가려고 하는 여야 정당의 모습은 대체 정치가 왜 이 모양인가 하는 탄식을 낳게 만든다. 발언의 자유를 보장하라. 비주류를 허하라. 정치권의 시계가 뒤로 가고 있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유창선 시사평론가
유창선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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