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의 또 다른 전쟁범죄, ‘우크라이나 아동 납치’의 실상
  • 클레어함 유럽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3.25 10:05
  • 호수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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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점령지 아동들을 러시아로 강제 추방
약 70만 명의 어린이가 ‘러시아화’ 교육받아

국제형사재판소(ICC)가 3월17일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2000년 1월 처음 권좌에 올랐을 때는 G7 정상회의에 정식 초청받아 ‘G8’ 그룹에 포함되기도 했던 푸틴은 23년 후 123개국이 비준한 국제형사재판소에 의해 우크라이나 점령지의 아동들을 러시아로 강제 추방한 혐의의 전범으로 지명된 것이다. 국제형사재판소는 공론화를 통해 러시아의 전쟁범죄를 줄여보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취지를 밝혔다.

ⓒEPA 연합
우크라이나 어린이들이 러시아의 침공이 계속되는 가운데 2022년 4월28일 하르키우의 지하철역으로 대피해 있다. ⓒEPA 연합

국제형사재판소, 푸틴에 체포영장 발부  

전쟁 초부터 아동 문제에 대해 경고해온 유럽과 러시아 야권도 국제형사재판소의 이런 적극적 행보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독일 녹색당의 ‘인권 및 인도주의 지원위원회’ 대변인인 보리스 미야토비치 의원은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ICC의 체포영장 발부는 국제 형사법 역사의 한 이정표”라고 운을 뗀 후, “이는 우크라이나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한 러시아의 체계적이고 광범위한 대규모 공격으로 자행된 수많은 혐의에 대응하는 첫 번째 단계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ICC가 앞으로 더 많은 혐의를 제시할 것임을 시사했다. 아울러 그는 “안타깝게도 ICC는 (로마 규정의 법리적 문제로) 침략범죄에 대해 아직 기소할 수 없지만, ICC 절차를 보완하는 국제재판소를 설립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희망도 피력했다. 그는 2006년부터 몇 년간 국제형사재판소에서 다수 프로젝트의 범죄 분석을 한 경력이 있다. 

러시아의 유력한 언론인이자 야권 정치인인 막심 카츠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푸틴 같은 지도자에게 비신성화는 악몽”이라며 “그의 권력은 법률, 선거, 왕위 계승에 근거하지 않고, 그가 초자연적 존재, 즉 지구의 운명을 결정하는 선택된 소수 중 하나라는 식의 널리 퍼진 오류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제 123개국의 어느 경찰이라도 그를 체포할 수 있게 되었으니 더 이상 그는 세계의 지도자가 아니다. 이 체포영장은 그의 진정한 정체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카츠는 정전(停戰)을 요구한 러시아 야당 야블로코당에서 활동한 적이 있다. 

러시아로 강제 추방된 우크라이나 아동들의 통계수치에 대해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올해 1월26일 친지의 신고로 행방불명이 확인된 아동은 1만4700명이라고 발표했으나, 실제론 대략 7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올해 1월 러시아 국방부는 지난해 2월 이후 총 73만 명의 아동이 러시아에 왔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면 러시아로 강제 추방된 아동들은 도대체 누구일까. 이에 관해 현재까지 공개된 상세한 보고서는 소셜미디어 게시물, 정부의 발표 등 공개 자료와 고해상도 인공위성 이미지를 활용한 예일대의 연구 보고서가 대표적이다. 

‘우크라이나 어린이의 재교육 및 입양에 관한 러시아의 체계적인 프로그램’이라는 제목으로 2월14일 발표된 이 보고서를 요약하면 피해 아동들은 부모가 있는 경우, 고아, 장애 아동 등으로 나뉜다. 러시아가 점령해온 지역의 아동들로 대개는 러시아 정부가 주관하고 후원한 ‘캠프’로 보내진 이후 부모나 후견인의 동의 없이 귀가 조치되지 않고 러시아로 강제 이주된 경우다. 200명의 아동이 있었던 한 캠프는 애초에 부모의 동의 없이 아동을 데려갔다고 공식 인정하기도 했다. 총 43개 캠프 중 78%에서 아동들은 러시아의 역사·문화에 관한 사상 재교육을 통해 친러시아 성향으로 교육되고 있다.

체첸과 크림반도의 일부 캠프는 군사교육도 시행했다. 대부분 저소득층에 속한 부모나 친척들은 아이들의 휴가 및 무상급식을 위해 캠프에 보낸 경우가 많았는데, 이들은 아이들과 떨어져 있는 동안 소통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또 부모가 반드시 직접 데리러 와야 한다는 까다로운 픽업 조건으로 ‘이산가족’의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이 캠프들은 크림반도나 극동 지역에도 분포되었는데 가장 먼 마가단 캠프는 우크라이나 국경보다 미국이 오히려 3배나 더 가깝다. 현재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는 60세 이하 성인 남성이 출국 금지된 상황이어서 어머니만 아동 픽업이 가능하다. 그나마 혼자 여행이 어렵거나 여행 경비가 부족한 경우도 많다. 러시아의 전면 침공 이후 상업용 항공이 중단되어 어떤 어머니는 자녀를 찾으러 수천 마일을 운전해야 했다. 일부 아동은 ‘친우크라이나 성향’이라는 이유로 귀가 조치가 취소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국가 보육시설에 속했던 아동들도 대개 부모가 없는 고아가 아니라 부모의 형편이 어려워 위탁한 경우가 많았다.  

 

“우크라이나 국가근절계획의 일부”

드미트로 루비네츠 우크라이나 의회 인권위원은 지난 2월 텔레그램에서 “러시아인들이 우크라이나 어린이들을 납치해 포르노 동영상을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 증거로 2명의 러시아인이 나눈 아동 포르노물 촬영에 우크라이나 어린이를 이용하는 것에 대한 왓츠앱 대화 발췌본을 제시했다.

러시아 정부가 추진해온 아동 강제 추방 정책에 대한 가장 주목받는 이유는 소위 ‘우크라이나 지우기’다. “우크라이나 어린이들을 추방하고 ‘러시아화’하는 것은 우크라이나의 미래를 위태롭게 한다”는 제목으로 프랑스의 지식인들은 지난해 8월 공개 서한을 르몽드에 게재한 바 있다. 아동 정신의 베르나 골스, 인류학자 베로니크 그라페, 영화 제작자 조나단 리텔 등이 참가했는데, 이들은 대규모 아동 납치는 ‘우크라이나의 정체성과 국가를 지우기 위한’ 푸틴 프로젝트의 일부라며 국제사회의 개입을 호소했다.

이들은 “푸틴의 ‘특수작전’은 우크라이나를 말살하려는 시도로, 강제로 추방된 아이들의 러시아화를 통해 우크라이나 문화와 언어를 지우며 지속된다”며 “어린이의 재교육은 푸틴의 측근인 티모페이 세르게이체프가 발표한 우크라이나 국가근절계획의 일부이며, 러시아 언론은 우크라이나의 정체성을 부인하는 내용을 방영해 오고 있다”고 경고했다. 

세르게이체프는 러시아 억만장자 미하일 프로호로프 등이 고객인 정치 컨설턴트로 부차 학살의 증거가 밝혀진 당일, ‘제노사이드의 청사진’이라고 불리는 칼럼을 자국 매체에 게재했다. 그는 대다수의 우크라이나인은 나치 이데올로기에 연관돼 있어 검열을 통한 “사상 억압”을 통해 “재교육”이 필요하고, 우크라이나 주권을 빼앗아야 한다고 주장해 물의를 빚었다. 반면 《폭정》과 《가짜 민주주의가 온다》의 저자 티모시 스나이더 교수에 의하면, 푸틴의 정신적 지주인 이반 일린(러시아의 파시즘 철학자)은 정교 파시즘의 원조다. 그는 히틀러를 볼세비즘에 맞서 문명을 지키는 수호자라고 보았고, 러시아 모델에 입각한 더 많은 혁명을 저지함으로써 “유럽 전체를 위해 엄청난 봉사를 했다”고 말한 바 있다. 

불법 입양 절차를 통한 미성년자 납치는 스페인의 프랑코 정권, 칠레·아르헨티나 독재 치하 등에서도 체계적으로 조직된 바 있다. 2차 세계대전 동안 나치의 선동에 의해 폴란드나 다른 점령지에서 납치된 5만~20만 명가량의 아이도 ‘아리안’ 가족에 의해 ‘입양’되어 ‘독일인화’된 아픈 역사가 있는데, 이처럼 불행한 과거가 다시 러시아에서 반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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