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시간 개편안 방향 맞지만 방법이 틀려 [김상철의 경제 톺아보기]
  • 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전 MBC 논설위원) (ls@sisajournal.com)
  • 승인 2023.04.04 13:05
  • 호수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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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자 보호할 제도적 장치 마련해야

근로시간 개편 문제로 떠들썩하다. 논란은 ‘주 최대 69시간’을 놓고 시작됐다. 현행 주 52시간제에서 시간 상한선을 높인 제도다. 기본 52시간에, 추가 연장근로 12시간, 선택근로 5시간을 더해 한 주 최대 69시간 근무를 허용하자는 방안이다. 하루 11시간30분씩, 주 6일을 일해야 채울 수 있는 시간이다. 일이 몰릴 때 더 많이 일할 수 있도록 ‘유연화’하자는 게 법안의 취지였다.

현실을 모른다는 반발이 거셌다. 압도적인 비판 여론에 정부는 “1주에 69시간씩 근무하라는 게 아니다. 바쁠 때는 일주일에 최대 69시간까지 일을 시킬 수 있도록 허용하되, 대신 바쁘지 않을 때는 장기 휴가 등을 이용할 수 있도록 시간을 나눠 쓰는 ‘유연근무제’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반응은 냉담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나서 60시간을 상한선으로 두라고 말하며 여론 진화에 나섰다. 법안을 공개하고 입법예고까지 했지만 근로시간 개편 문제는 이제 다시 검토해야 할 상황이다.

정부가 최근 주 최대 69시간까지 근무를 허용하는 개편안을 입법 예고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사진은 3월20일 근로시간 개편안 찬반 조사판이 붙어있는 서울 중구 민주노총 ⓒ연합뉴스
정부가 최근 주 최대 69시간까지 근무를 허용하는 개편안을 입법 예고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사진은 3월20일 근로시간 개편안 찬반 조사판이 붙어있는 서울 중구 민주노총 ⓒ연합뉴스

현실과 거리 먼 정부안에 반발

차가운 반응은 당연하다. 열심히 일하고 난 후에 장기 휴가를 갈 수 있다는 발상은 현실과 거리가 멀다. 현재 근로기준법을 적용받는 근로자도 주 52시간 넘게 일하고 주어진 연차조차 모두 누리지 못하는 것이 보통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일-생활 균형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 직장인은 연평균 17일의 연차휴가를 받고도 실제로는 11.6일만 사용했다. 연차유급휴가 소진율은 평균 58.7%에 불과하다.

정부는 현행 주 52시간 근무제의 틀을 유지하면서 연장근로 관리 단위만 유연화하는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실제 노동시간은 주 단위로 연장되기 쉽다. 영세 사업장의 노동자는 선택의 폭이 더욱 제한될 것이다. 아직도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 일하는 나라 중 하나다. 한국행정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취업자의 연간 실노동시간은 2021년 기준 1915시간에 달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노동시간인 1716시간보다 199시간, 독일보다는 566시간 더 길다. 회원국 중 우리보다 근로시간이 긴 나라는 멕시코와 코스타리카, 칠레 정도다. 우리 사회를 ‘과로 사회’라고 부르는 건 과장이 아니다.

너무 긴 근로시간은 직업 만족도는 물론이고 일과 생활의 균형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높은 소득에 비해 우리나라 사람들의 삶의 질이 떨어지는 이유고 저출산의 핵심적인 원인이기도 하다. 야근으로 축적한 휴일을 제주도 한 달 살기 등으로 쓴다는 건 비현실적이다. 기업은 급하면 몰아서 일을 시킬 수 있겠지만 근로자는 원하는 대로 몰아서 쉴 수 없다. 더구나 과로로 산업재해 발생률이 높아지면 어떻게 할 것인가. 장시간 노동은 노동자의 건강 상태를 악화시킨다. 과로로 인한 대표적인 질환인 뇌·심혈관질환의 경우 지금도 발병 전 12주 동안 업무시간이 1주일에 평균 60시간을 초과하는 경우 업무 관련성이 쉽게 인정된다. 69시간을 근무하라는 건 2023년의 한국 사회에선 환영받을 수 없는 정책이었다.

근로시간 유연화가 노동시장 개혁의 주요 과제인 건 맞다. 변화가 심한 기업 환경에서 정해진 일정대로만 일하기는 어렵다. 기존의 제도가 현실에 맞지 않는다면 개선이 필요하다. 업종이나 기업 간 환경의 차이가 있고 이를 반영한 탄력적 제도 없이는 시장의 변화에 대처하기 어렵다. 정부가 나서서 근로시간을 획일적으로 정하고 이를 강제하는 것이 이상적인 모델은 아니다. 미국의 법정 근로시간은 주 40시간이다. 하지만 근로시간 최대 상한을 규제하고 있지는 않다. 원칙적으로 보자면 정부가 해야 하는 일은 근로자 건강을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휴식시간을 규정하는 것처럼 노동 조건의 큰 틀을 제시하고 그 준수 여부를 감독하는 것이다.

구체적 방식은 현장의 노사가 협의하고 타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근로자 건강권에 엄격하기로 유명한 독일이나 네덜란드 등에서는 주간 근로시간 규제라는 개념 자체가 사라졌다. 6개월이나 1년간 하루 8시간이라는 평균을 지키면 될 뿐 때때로 넘치는 것을 용인하고 나중에 그만큼 쉬게 한다. 초과근로 시간을 적립해 사후에 정산하는 이른바 근로시간계좌제를 도입한 대표적인 나라가 바로 독일이다.

그러나 이게 가능했던 것은 독일의 법제와 노사문화가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많은 노동 문제는 우리의 기업문화에서 비롯된다. 비합리적인 규제를 부르는 주체는 이상적인 방식이 지켜지기 어려운 우리의 기업문화고 현실이다. 우리나라에서 노동 개혁이 어려운 것도 결국은 이 때문이다. 기업에 대한 불신이 아직도 너무 크다.

우리나라의 노동 관계법은 1953년 제정됐다. ‘하루 8시간, 주 48시간’이 그때 처음 정해졌다. 근로시간을 주 40시간으로 제한하고 노사가 합의하면 12시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는 2004년에 근로자 1000명 이상 대기업을 대상으로 시작됐다. 실제로 법에서 인정되는 일주일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였고 토요일과 일요일 각 8시간씩 총 16시간 근로가 추가로 허용됐다. 주 68시간 근로 관행은 여기서 나왔다. 근로시간이 주당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어든 것은 2018년이었다. 경영계는 지금의 주 52시간제로는 업무량이 폭증할 때 일을 소화할 수 없다며 그동안 제도 개선을 요구해 왔다. 개편안 취지는 잘못된 것이 아니다.

 

노동 개혁 시작은 근로시간 유연화

하지만 기업에 근로시간 연장의 편의를 주려면 근로자들을 보호할 제도적 장치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 근로자의 건강권 보호는 충분히 이뤄져야 하고 긴 시간 근무에는 적정한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 몰아서 일하는 건 법제화하면서 몰아서 쉬는 건 자율에 맡긴다면 균형이 맞지 않는다. 장기적으로는 근로시간을 더욱 줄여 나가는 것이 옳다. 오래 일하면 생산성도 떨어진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연구팀이 만 19세 이상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해 근로시간과 노동생산성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에서도, 주당 근로시간이 증가할수록 노동생산성 손실이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이 희망하는 근무시간도 주 40시간 이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 결과를 보면 취업자의 주당 희망 근무시간은 36.7시간이었다. 근로자의 삶의 질을 높이는 일 또한 잊지 말아야 할 노동 정책의 목표다. 우리의 근로기준법 제1조는 근로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하고 향상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돼있다. 근로시간 유연화는 오로지 기업의 편의를 위해 도입하는 것이 아니다. 노동시간 단축과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 절감이 목적이기도 하다. 경직적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바꿔나가면서 동시에 근로시간 한도를 낮춰 과잉노동 역시 억제해야 한다. 근로시간 유연화는 노동 개혁의 시작이다. 그러나 정부는 시작부터 길을 잃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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