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과의 동침’ 승부수, 대역전 드라마 만들다
  • 송종호 서울경제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4.07 08:05
  • 호수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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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DJ도 과감한 인재 영입·파격적 개혁으로 외연 확대

2016년 총선 이후 대선·지방선거·총선까지 내리 4연패는 국민의힘 몫이었다. 반전은 2021년 서울·부산시장 재보선에서 벌어졌다. 국민의힘은 더불어민주당 정권의 ‘내로남불’에 힘입어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민주당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주류 교체의 신호탄을 쐈지만 ‘조국 사태’를 시작으로 정치적 자산을 소진해 버렸다. 

결국 2022년 윤석열 대통령 당선으로 진보·보수 간 대결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윤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 간 대선 결과는 0.73%포인트 차였다. 초접전이었지만 승자인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을 친정체제로 완전히 장악했고, ‘이재명의 민주당’을 시도했던 이 대표는 사법 리스크에 시달리고 있다. 겉보기에 일사불란해진 집권여당이 총선에 유리한 지형이 됐지만 정권마다 치러진 중간평가 선거를 들여다보면 정작 승부처는 따로 있었다. 

ⓒ시사저널 이종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가 종료된 2020년 4월1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 마련된 더불어민주당 개표상황실에서 관계자들이 방송사 출구조사 발표를 지켜보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보수의 승리 방정식이었던 ‘적과의 동침’

2016년 김무성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대표는 20대 총선이 박근혜 정권의 운명을 결정짓는 선거라며 180석을 자신했다. “구국의 심정”이라고도 했다. 실제 새누리당에는 40%대에 가까운 고정 지지층이 있었고 내홍이 반복된 민주당은 안철수계의 탈당과 분열로 결집조차 어렵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안철수 현 국민의힘 의원은 당시 국민의당을 창당해 호남 민심을 요동치게 했다.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 기반까지 분열 양상을 보이자 새누리당에는 200석까지도 석권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가득했다.

문재인 당시 민주당 대표는 결국 ‘내려놓기’를 선택했다.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 1등 공신인 김종인 위원장에게 당권을 내주고 자신은 인재 영입에 나섰다. 방송 활동으로 인지도가 높은 표창원과 이철희, 게임업계 CEO 출신 김병관, 고졸 출신 여성으로 삼성전자 임원을 지낸 양향자, ‘세월호 변호사’ 박주민 등을 영입했다.

최종 인재 영입 승부처는 박근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출신인 조응천 의원이었다. 문 전 대통령은 당시 조 의원을 설득하기 위해 ‘별주부짱’에 상주하다시피 했다(정윤회 문건 사건으로 조 의원은 당시 공직생활을 떠나 별주부짱이라는 횟집을 운영했다). 이를 두고 당시 새누리당은 ‘엽기영입’이라고 쏘아붙였지만 적진에 있던 조 의원 영입은 화룡점정이었다. 총선 결과는 민주당의 신승.

2014년 세월호 참사 직후 치러진 지방선거에서도 승리했던 국민의힘은 ‘따놓은 당상’이었던 총선 승리는커녕 국회의장도 원내 1당이 된 민주당에 내줘야 했다. 민주당이 몸부림치며 환골탈태하는 동안 새누리당은 김무성 대표와 청와대 간 갈등을 키우는 데 시간을 허비했다. 당시 문재인 대표의 내려놓기와 적과의 동침은 현 야당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이 같은 ‘적과의 동침’ 전략은 민주화 이후 보수당의 승리 공식이었다. 1987년 대선 이듬해 치러진 13대 총선에서 민정당은 여소야대의 참패를 당했다. 돌파구는 3당 합당이었다. 민정당은 통일민주당과 공화당 합당으로 위기를 탈출했다. 인위적인 정계개편으로 탄생한 민자당은 현재까지도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산업화의 옛 보수가 민주화의 신보수를 껴안는 전향적인 외연 확장이었다. 이념보다는 실리를 선택한 결과 1991년 지방선거에서 민자당은 득표율 41%로 전체 의석의 65%를 차지하며 국정 운영의 동력을 이어갈 수 있었다.

정권 재창출에 성공한 후 민자당은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중간평가 성격인 1995년 지방선거에서 광역단체장 15곳 가운데 5곳에서만 이기는 참패를 겪었다. 지선 1년 전부터 악재가 잇따라 터졌다.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대구지하철 공사장 가스폭발 사고 등 잇따른 대형 사고에도 정부의 조처가 미흡하자 민심은 빠르게 식어갔다. 

선거 패배 이후 민자당의 선택은 역시 적과의 동침이었다. 민자당은 신한국당으로 간판을 바꾸고 당시 허삼수 의원 등 40여 명을 물갈이했다. 그 자리엔 민중당 출신 이재오·김문수·이우재 등 재야 운동권 인사들이 파격적으로 영입됐다. 보수 거대 여당인 민자당이 이들을 ‘영입 1호’로 성사시킨 자체가 뉴스였다. 

그만큼 신한국당은 절실했다. 총선이 임박해서는 ‘모래시계’ 검사로 일약 대중 유명인이 된 홍준표 변호사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책실장 출신의 정태윤 전 민중당 대변인도 영입해 기득권 이미지를 완화했다. 박찬종 변호사에 이어 이회창·이홍구 전 총리 등 중도층을 끌어당길 수 있는 거물급 인사도 영입했다. 특히 이회창 전 총리는 총리 시절 YS와 갈등을 빚는 등 껄끄러운 사이로 알려졌지만, 총선 경쟁력을 더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총선 결과는 신한국당 승리였다. 

1992년 대선에서 YS에게 패배한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뉴 DJ’ 전략으로 반격에 나섰다. 평생을 괴롭힌 색깔론을 잠재우기 위한 선택으로 ‘적과의 동침’ 카드가 또다시 등장했다. 노태우 정부에서 대북 정책을 맡았던 군 출신의 임동원 전 장관과 천용택 전 장관을 합류시켜 색깔론에 맞서게 했다. 또 TK(대구·경북) 출신의 판사 추미애를 영입해 시선을 끌면서 이후 총선에서 각 정당은 지지층을 확대하기 위해 기존 지지 세력을 보완할 수 있는 인재를 영입하는 데 집중하게 됐다. 

YS의 신한국당이 시민단체와 노동계 인사, 사회적 약자 등을 영입하고 DJ의 새정치국민회의가 군 출신과 기업인(정세균 전 총리) 등을 영입하는 이른바 ‘크로스’ 영입 방식이 자리를 잡은 것도 이때다. 물론 자신과 갈등을 빚은 이회창 전 총리와 운동권까지 흡수한 YS의 파격이 더 컸다. 그 결과 1996년 15대 총선에서 신한국당은 139석으로 과반을 차지하진 못했지만 제2당인 새정치국민회의가 79석을 얻은 데 비해 의석수에서 크게 앞섰다.

2000년 16대 총선에선 DJ가 우상호·이인영·임종석 등 386 운동권 인사를 젊은 피로 대거 수혈하면서 개혁성·젊음 등을 차별화로 내세웠다. 야당인 한나라당(신한국당의 후신)도 가만있지 않았다. 이회창 당시 총재는 현역 의원 43명을 공천 배제하고 남경필·원희룡·오세훈 등 또 다른 젊은 피를 대거 수혈했다. 운동권 젊은 피보다 소장파 젊은 피가 민심에 먹혔다. 한나라당은 133석, 여당인 새천년민주당은 115석을 얻었다. 

 

22대 총선에선 누가 운동장을 넓게 쓸까

이처럼 거대 양당 모두 이념의 틀을 벗어나 실시했던 과감한 인재 영입과 쇄신은 승리 방정식이었다. 2004년엔 그 유명한 ‘천막당사’가 등장했다. 김용환 전 의원 등의 자발적 불출마도 이어졌다. 그 결과 보수정당은 2007년·2012년 연속 집권에 성공했다. 코로나19 대휴행기인 2020년에 치러진 21대 총선은 큰 위기 앞에 기존 집권당에 결집하는 ‘국기결집효과’가 크게 작용했다. 민주당이 180석이라는 최다 의석을 차지했지만 인재 영입 효과로 보긴 어려웠다. 압도적인 의석수는 민주당의 내로남불을 가속화시켰다. 그 결과는 앞서 언급한 대로 정권교체였다.

22대 총선을 1년 앞둔 현재, 정권을 빼앗긴 민주당은 말할 것도 없고, 승리한 보수정당 국민의힘도, 진보정당 정의당도 위기에 빠져 있다. 위기를 극복하고 내년 총선에서 승리하는 열쇠는 적과의 동침마저 허용하며 개방과 파격을 밀고 나갈 때 만들어질 수 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YS와 DJ는 적과의 동침을 서슴지 않으며 당을 개방했다. 개방과 파격이 국정 운영의 동력으로 이어졌고 당의 외연 확장은 총선 등 각종 중간평가 선거의 승리 원인이 됐다”며 “반대로 폐쇄적인 당 운영과 안일한 인재 영입에 머물 경우에는 늘 민심은 등을 돌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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