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정신 헌법 전문’ 수록, 안하나 못하나
  • 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3.05.15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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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43주년 다시, 민주주의] ‘5·18정신 헌법전문’ 수록 난항
개헌 블랙홀에 37년 간 옴짝달싹··“尹정부서도 장담 못해”
수차례 개헌 논의에도 물거품··“원 포인트 개헌, 의지 문제”
5·18민주주의 정신의 헌법 전문(前文) 수록 문제는 5·18이 풀어야 할 숙제다. 그러나 ‘5·18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지 37년이 지난 현재까지 이렇다 할 성과가 없는 실정이다. 개헌 지지부진에 5·18정신 헌법 전문 수록이 난항을 겪고 있어서다. 14일 오후 고아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묘지에 가는 길목에 5·18민주화운동 43주년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5·18민주주의 정신의 헌법 전문(前文) 수록 문제는 5·18이 풀어야 할 숙제다. 그러나 ‘5·18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지 37년이 지난 현재까지 이렇다 할 성과가 없는 실정이다. 개헌 지지부진에 5·18정신 헌법 전문 수록이 난항을 겪고 있어서다. 14일 오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묘지에 가는 길목에 5·18민주화운동 43주년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5·18민주주의 정신의 헌법 전문(前文) 수록 문제는 5·18 오늘이 풀어야 할 당면과제다. 그러나 ‘5·18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지 37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렇다 할 성과가 없는 실정이다. 개헌 지지부진에 5·18정신 헌법 전문 수록이 난항을 겪고 있는 것이다. 

5·18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은 광주뿐만 아니라, 국내 각계각층에서 오랫동안 요구해 온 사항이다. 5·18민주화운동 43주년을 맞아 각계에서 5월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에 모든 역량을 결집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다. 

5·18기념재단 등 5월 단체들은 “5·18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는 것은 국가정체성으로 확정하는 의미가 있다”며 “국민적 의지를 서둘러 모아야 한다”고 밝혔다. 민병로 전남대 법학대학원 교수는 “민주화의 역사에서 5·18민주화운동이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만큼 앞으로 10차 헌법 개정을 논의할 때 반드시 5·18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아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주의’ 천명 헌법전문서 빠진 5·18정신

현행 헌법 전문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이라고 규정해 국가적 목표로서의 민주화를 천명하고 있다. 이처럼 ‘민주주의’가 우리 헌법의 기본원리이자 이념적 기초임에도 정작 5·18민주주의정신은 빠져 있다. 

‘5·18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 논의는 이미 수십년 전부터 정치권에서 구체적으로 시도된 적이 있다. 1987년 노태우정부 때 6월 항쟁으로 쟁취한 ‘대통령 직선제’ 헌법 개정 당시 야당의 헌법개정안 초안에는 5·18민주화운동을 계승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여당인 민정당 측이 “역사적 평가나 가치가 확립되지 않은 일부의 주장”이라고 난색을 표해 여야 협상과정에서 삭제됐다.

이후 이 같은 주장이 제대로 조명을 받지 못하다가 2007년 노무현정부가 원포인트 개헌을 주장하면서부터 다시 논의가 시작됐다. 당시 민병로 전남대 법대 교수(현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는 “대한민국 국민이 5.18민주화운동 정신을 계승한다는 문구를 헌법 전문에 반드시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5·18민주주의 정신의 헌법 전문(前文) 수록 문제는 5·18이 풀어야 할 숙제다. 그러나 ‘5·18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지 37년이 지난 현재까지 이렇다 할 성과가 없는 실정이다. 개헌 지지부진에 5·18정신 헌법 전문 수록이 난항을 겪고 있는 것이다.
5·18민주주의 정신의 헌법 전문(前文) 수록 문제는 5·18이 풀어야 할 숙제다. 그러나 ‘5·18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지 37년이 지난 현재까지 이렇다 할 성과가 없는 실정이다. 개헌 지지부진에 5·18정신 헌법 전문 수록이 난항을 겪고 있는 것이다.

호남지지 받은 文정부서도 실패…원포인트 개헌론도

이는 10년이 지나 대선에 나선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에 반영됐다. 문 대통령은 2017년 3월 20일 광주를 방문해 비전 선포와 공약을 공개하는 자리에서 “5.18민주화운동 정신을 헌법전문에 기록하고, 5.18 관련자료 폐기금지 특별법을 제정하겠다”고 약속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발언으로 호남 지지율이 상승하는 전환점을 맞게 된다. 

대통령에 당선된 뒤 2017년 5·18민주화운동 37주년 기념식에서도 “5·18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겠다는 공약을 지켜 광주정신을 헌법으로 계승하는 진정한 민주공화국시대를 열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공약을 지키지 못했다. 이듬해 2018년 5·18정신을 헌법전문에 담은 개헌안 발의를 추진했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에 따라 현행 헌법은 3·1운동과 4·19혁명 이념만 전문에 수록하고 있다. 

5·18정신 헌법전문 수록은 지난해 대선에서 주요 대선후보들의 공통된 대선공약이었다. 윤석열 대통령 또한 후보 시절 5·18정신을 헌법 전문에 수록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대통령 취임 직후인 지난해 5·18 기념식에서 이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다만, 윤 대통령은 대선 공약에 반영하지는 않았다. 헌법 개정은 국민적 합의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어쨌든 윤 대통령의 거듭된 약속으로 민주정부에서도 못한 헌법전문 수록이 보수정권에서 급물살을 탈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다. 하지만 1년간 단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더구나 언제 이뤄질지 모를 개헌을 전제조건으로 달아 임기 내 공약 실천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란 회의가 점차 고개를 들고 있다. 

14일 오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은 참배객들이 묘역을 향하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14일 오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은 참배객들이 묘역을 향하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5·18정신’ 왜 헌법전문에 넣어야 하나  

그렇다면 왜 ‘5·18정신’이 한 나라의 최상위법이자 기본법이며 모든 법질서의 정점에 위치한 헌법에까지 굳이 명기돼야 할까. 일부에서는 4·19의 헌법전문 수록으로 충분하다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헌법 전문에 민주주의를 발전시킨 역사적 사건으로 4·19혁명만을 규정하는 것은 4·19 이후 장기간의 군사독재가 있었던 만큼 우리나라의 민주화운동을 설명하기에 부족한 면이 있다는 지적이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해 12월 열린 ‘5·18정신 헌법전문 국회토론회’에서 “4·19와 5·18은 그 주체도 다르고, 민주화운동의 내용도 다르다. 4·19만을 규정하는 것은 5·18이 갖는 다양한 헌법적 의미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다”며 “새로운 민주주의의 시대를 연 5·18의 민주주의정신 계승이 헌법 전문에 반드시 명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역사적 평가가 진행 중인 사건이라면 논란이 있을 수 있고 헌법 전문에 명시하기에는 시기적으로 이르다는 주장도 나올 수 있다. 하지만 40여년의 지난한 과정을 거치면서 5·18에 대한 객관적인 역사적·법률적 평가와 정의가 확고하게 내려진지 오래됐다는 것이다. 5·18특별법 제정에 이어 1997년 국가기념일로 지정됐고, 201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국민적 동의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도 공감대를 형성했다. 최근 5·18기념재단이 공개한 ‘2023년 일반국민 5·18 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44.1%가 헌법전문 수록이 ‘매우 필요하다’고, 26.7%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둘을 합치면 70.8%로 국민 10명 중 약 7명이 찬성한 셈이다. 특히 지난해 조사보다 필요하다가 1.7% 늘고, 불필요하다는 답변이 2.1% 줄어들었다. 

이처럼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국민의 태도와 평가를 고려할 때 5·18의 헌범 규범화에 대해 국민적 수준에서는 이미 충분한 동의가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 이 같은 사정들을 종합할 때 5·18정신의 헌법전문 명문화는 충분히 설득력을 갖고도 남는다는 것이다. 국민들의 절대다수가 지지하는 ‘5·18정신의 헌법전문 수록’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국가적인 개헌과제로 결단만 남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5·18민중항쟁 43주년을 여샛 앞둔 14일 오후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로 이어지는 길에 이팝나무가 꽃을 피웠다. 광주시는 1994년 5·18묘지를 조성한 후 이듬해 5월에 꽃을 피우는 이팝나무를 묘지 진입로에 대대적으로 심었다. 이팝나무는 이밥(쌀밥)이 어원이라는 설도 있어, 주먹밥을 나누던 5·18의 의미와도 맞닿아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5·18민중항쟁 43주년을 여샛 앞둔 14일 오후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로 이어지는 길에 이팝나무가 꽃을 피웠다. 광주시는 1994년 5·18묘지를 조성한 후 이듬해 5월에 꽃을 피우는 이팝나무를 묘지 진입로에 대대적으로 심었다. 이팝나무는 이밥(쌀밥)이 어원이라는 설도 있어, 주먹밥을 나누던 5·18의 의미와도 맞닿아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與野 겉으론 이견 없는 상태…또 립서비스에 그치나  

여야 정치권도 헌법 전문에 5.18정신을 담는 것에 대해 거의 이견이 없는 상태다. 문제는 개헌이 성사되지 않으면 결국은 공염불로 끝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또다시 립서비스(빈말)에 그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최근 논란을 일으킨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이 해당 공약이 표를 얻기 위한 ‘립서비스였다’고 발언한 것도 이 같은 의심을 부채질하고 있다. 

민주당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민주당이 거대여당으로, 개헌을 위한 적기였으나 공약 이행에는 실패했기 때문이다. 지역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개헌은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국회 차원에서도 가능하기 때문에, 다수 의석을 가진 민주당에게도 책임을 똑같이 물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실 개헌은 권력구조 등 다른 정치적 쟁점들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인데다 지지층의 눈치도 살펴야 해서 여야의 합의가 쉽지 않은 사안이다. 한 정치권 인사는 “워낙 여야의 정치적 셈법이 첨예하게 대립해 지금 단계에서 개헌을 추진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대통령과 국회 모두 5·18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 의지만 있다면 당장 ‘원 포인트 개헌’이라도 못 할 게 없는 상황이다. ‘5·18정신의 헌법전문 수록’만을 내용으로 하는 원 포인트 개헌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무게가 실리는 대목이다. 

강기정 광주시장은 “내년 총선과 동시에 5·18 정신 헌법 전문 수록을 위한 원 포인트 개헌이 될 수 있게 합의해 주기 바란다”며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넣는 것은 절차만 남았을 뿐 여야, 진보·보수, 호남·영남, 대통령 후보들 모두 동의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김민석 민주당 정책위 의장도 원 포인트 개헌을 찬성한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차제에 쉽지 않은 개헌에 앞서 ‘5.18정신만큼은 헌법전문에 담자’는 정치권의 공개 선언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조진태 5.18기념재단 상임이사는 “헌법 개정 논의를 하기 전에라도 여야가 상호 합의해서 국민들에게 약속을 하는 그걸 공표하는 자리를 먼저 가졌으면 좋겠다”며 “이것을 지렛대로 삼아서 개헌 논의를 적극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광주시 관계자는 “5·18민주화운동은 3·1독립운동과 4·19혁명을 이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살아있는 역사로 5월 광주정신은 6월 항쟁과 촛불항쟁으로 이어졌다”며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역사 왜곡을 방지하고 올바른 역사인식을 이어가기 위해 헌법전문에 5·18정신을 수록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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