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중국 시진핑 ‘축구굴기’의 피해자 된 손준호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5.26 13:05
  • 호수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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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당국, 승부조작·도박 등 반부패 숙청 빌미로 축구계 초토화
무죄추정 원칙 깬 ‘손준호 구류’, 아슬아슬한 한중 관계의 한 단면이란 지적도

손준호는 한국 축구 황금라인으로 꼽히는 ‘92세대’ 중 한 명이다. 손흥민, 황의조, 이재성, 김진수 등 1992년생 동갑내기들과 함께 각급 대표팀·소속팀에서 활약했다. 2020년 전북 현대를 K리그 우승으로 이끌며 MVP를 차지한 그는 이적료 60억원을 기록하며 중국 슈퍼리그 산둥 타이산으로 옮겼다. 슈퍼리그 진출 1년 만에 손준호는 리그 최고의 선수가 됐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취소됐지만 연말 시상식이 진행됐다면 MVP는 손준호가 틀림없었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A대표팀에서도 정우영(알 사드)과 함께 기성용의 후계자로 경쟁을 시작하며 눈길을 모았다. 풀럼, 사우샘프턴 같은 프리미어리그 클럽도 눈독을 들였다. 오히려 산둥은 손준호에게 기존보다 2배가량 많은 연봉을 제시해 3년 재계약을 맺었다. 2022 시즌에도 손준호의 활약은 변함없었고 산둥은 2년 연속 리그 우승에 성공했다. 작년 카타르월드컵에도 출전한 손준호는 브라질과의 16강전을 포함해 총 3경기에 나섰던 그야말로 국가대표 톱클래스 선수다.

카타르월드컵 축구 국가대표 손준호가 2022년 11월22일 도하에서 열린 대표팀 훈련에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대한축구협회, 손준호 보호 위해 관계자 현지 파견

그런 핵심 선수가 5월12일 중국 공안에 연행됐다. 이미 2주가 지났다. ‘비국가공작인원(비공직자) 수뢰’ 혐의다. 상하이에서 연행돼 현재 랴오닝성 선양에서 형사 구류 상태로 현지 공안 특별반의 조사를 받고 있다. 중국 현지 언론이 최초 보도했고, 16일 중국 외교부가 손준호의 구류 사실을 확인해 줬다. 17일 선양 총영사관이 영사 면회를 마쳤다. 손준호는 면회에서 인권탄압 등의 행위는 없었다며 편안한 모습을 보였다고 하지만 현재 체포를 정당화할 명확한 증거를 입증하지 못한 채 구류 상태로 시간이 흐르고 있다.

그 와중에 중국 언론들은 손준호의 유죄를 확신하는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초기에는 승부조작 가담 혐의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지난 3월 그와 친분이 두터운 팀 동료 진징다오가 다른 3명의 동료와 함께 승부조작 및 도박 혐의로 구금된 상태다. 진징다오는 조선족으로 김경도라는 한국명을 갖고 있다. 한국어를 능숙하게 잘해 손준호와 절친했던 탓에 그와 연루됐을 거라고 쉽게 추정한 것이다. 징역 5년형이 가능하다는 성급한 판단까지 더했다. 그러나 일주일여가 지나면서 당국의 발표는 뇌물수수 혐의로 바뀌었다. 손준호 영입과 재계약에 관여한 하오웨이 감독과 중국인 에이전트가 각각 승부조작 가담, 뇌물수수 혐의로 이미 체포된 상태인데 그 과정에서 선수도 피의자로 특정돼 조사 중이라는 것이다. 

손준호는 5월12일 상하이 푸둥 국제공항에서 체포됐다. 당시 공안은 산둥 선수단 전체를 대상으로 참고인 조사를 진행하기로 돼있었다. 손준호는 감기몸살로 인해 컨디션이 떨어져 파비우 감독대행의 허락을 받고 나흘간의 휴가를 얻어 한국에서 치료하기로 돼있었다. 가족과 함께 출국하고 있던 손준호는 탑승게이트 앞에서 붙잡힌 것으로 알려졌다. 뇌물수수 혐의는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는 게 손준호 측의 입장이다. 선수의 한국인 에이전트인 박대연씨는 “2019년 말 전북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치고 해외 이적을 추진할 당시 중국에서만 5개 팀이 제의했다. 유럽과 중동에서도 제안이 있었는데 선수가 뇌물을 써서 이적할 필요가 없었다”고 말했다. 현재 체포된 중국인 에이전트가 하오웨이 감독에게 사적인 대가를 지급했을 가능성은 있지만 선수가 거기 관여할 이유는 없다는 것. 

손준호 측은 최근 중국 법무법인을 통해 현지 변호사를 구했고, 접견 신청을 위해 당국에 제출할 서류 절차를 밟고 있다. 이르면 5월29일을 전후해 손준호와 변호사의 접견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공안이 구류를 정당화하고 있는 구체적 혐의도 파악할 수 있다. 중국 언론이 제기하는 승부조작·뇌물수수 등에 대한 무혐의 입증도 시작할 수 있다. 대한축구협회(KFA)도 국가대표 선수인 손준호를 보호하기 위해 전한진 경영본부장과 협회 소속 변호사를 선양으로 보낼 예정이다. 

일반적이라면 중국축구협회를 통해 협조를 요청하는 것이 빠르지만 현재 그럴 상황이 아니다. 중국축구협회 행정은 마비 상태다. 손준호의 구류는 산둥팀을 넘어 중국 축구계 전체 상황을 확대해서 봐야 한다. 현재 중국 정부 차원에서 승부조작·불법도박·뇌물 등 각종 비위 척결을 위한 작업이 한창이다. 현역 시절 프리미어리그 에버턴에서 활약한 스타 출신의 리티에 전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은 작년 11월 체포됐다. 선수 선발 과정에서의 비리, 스폰서로부터 불법적인 후원을 받은 혐의다. 그의 개인 통장에서는 190억원에 달하는 돈이 발견됐다. 이어 2월에는 천쉬위안 중국축구협회장과 실무를 담당하는 류이 사무총장, 천융량 사무차장이 감찰 조사를 받았다. 공안이나 검찰 차원이 아닌 공산당 중앙기율검사위원회·국가감찰위원회가 직접 나섰다. 

5월16일 중국 슈퍼리그 경기에서 산둥 소속 으로 뛰고 있는 모습 ⓒ산둥타이산 홈페이지 캡쳐

코로나19로 거품 빠진 슈퍼리그…월드컵 5회 연속 탈락

축구계가 대대적인 기율·감찰위 조사를 받은 것은 2009년 이후 처음이다. 중국 축구계에 승부조작과 그와 관련된 도박, 선수 발탁의 부정부패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10여 년 이상 잠잠했던 사안이 갑자기 몰아친 계기는 5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 실패가 트리거가 됐다. 중국 축구는 치우미(축구광)로 유명한 시진핑 주석 취임 후 엄청난 투자가 진행됐다. 시진핑은 축구를 통해 새 반향을 일으키겠다는 축구굴기(공식명 축구개혁 종합방안)를 국가 정책으로 삼았고 재계는 절대권력자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당국의 인허가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공기업과 건설사들이 바쁘게 구단을 인수했다. 연간 수천억원을 국내외 유명 선수 영입에 썼다. 그 과정에서 디디에 드로그바, 카를로스 테베스, 오스카, 헐크, 펠라이니 등 세계적인 선수가 슈퍼리그에 입성했다. 2016년 겨울에는 세계 축구 리그 중 가장 많은 이적료를 써 모두를 경악하게 했다.

하지만 국가대표팀의 경쟁력은 차원이 달랐다. 중국은 한국과 일본이 개최국 자격으로 본선에 직행한 2002 한일월드컵 때만 유일하게 월드컵 본선 무대에 나섰다. 외국인 선수들이 없는 순수 중국 선수들만으로는 동남아 국가와의 경쟁조차 버거웠다. 특히 2022 카타르월드컵은 슈퍼리그에서 활약한 외국인 선수들을 귀화시키는 방안까지 동원했지만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에마저 패하며 최종예선에서 탈락했다. 

슈퍼리그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거품이 순식간에 빠졌다. 중국 정부의 고강도 방역조치 속에 경제가 흔들렸고 슈퍼리그 구단을 보유한 대기업들은 줄줄이 도산했다. 급여 체불이 길어지자 유명 선수와 감독들은 미련 없이 중국을 탈출했다. 거침없던 황사 머니가 걷히자 축구굴기는 10여 년 만에 허무한 결말을 맞았다. 축구팬들은 기본을 망각한 시진핑의 허황된 정책을 비판하기 시작했고, 월드컵 5회 연속 탈락과 함께 축구계는 당국의 무서운 채찍을 맞기 시작했다. 

이 불똥이 손준호에게까지 튄 것이다. 명확한 체포 근거를 밝히지 못하고 2주째 구금하는 무리수의 배경에는 최근 위태로운 한중 관계도 자리 잡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중국은 일본 히로시마 G7 정상회의를 앞두고 미국, 호주 국적의 중국인을 체포해 실형을 선고했다. 해외 매체들은 유명 축구 선수인 손준호의 구금에 대해 “일종의 인질 외교”라며 “윤석열 대통령 주도로 한국이 미국, 일본과 군사동맹을 재개한 시기와 일치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은 5월18일 정례 브리핑을 통해 이런 지적에 반박하며 “한중 관계와 우리 국민 구류는 별개의 사안”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국민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지원과 조치는 하겠지만 의혹에 대한 소명은 선수가 할 일”이라며 이번 사안을 개인 문제로 확실하게 선 긋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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