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습관 개선이 말처럼 쉽나? 약부터 제대로 챙기자!
  • 노진섭 의학전문기자 (no@sisajournal.com)
  • 승인 2023.06.05 12:05
  • 호수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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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80대에 저염식·운동 통하지 않아…약 잘 먹는 습관이 중요

예전에 성인병이라고 했던 생활습관병은 나쁜 생활습관이 오랜 기간 누적된 결과다. 생활습관병은 그 자체로도 삶의 질을 떨어뜨리지만, 생명까지 위협하는 각종 합병증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가령 고혈압은 뇌·심장·신장 등에 영향을 미쳐 뇌졸중·치매·심장비대·심부전·협심증·심근경색·신부전·동맥류 등의 원인이 된다.

생활습관병은 나이나 많을수록 발병률이 높다. 2021년 국가 통계를 보면, 70세 이상의 고혈압 유병률은 전체의 약 66%다. 생활습관병 예방과 치료에는 생활습관 개선이 기본이지만 70대 이후 고령층에게 생활습관 개선은 말처럼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염분은 혈압을 높이므로 고혈압 환자에게는 저염식이 권고된다. 세계보건기구(WHO)의 권고대로 하루 소금 섭취를 5g 이하로 유지하면 혈압을 2~8mmHg 낮출 수 있다. 

소금 5g은 대략 라면 1개로 섭취하는 양이다. 만일 점심에 라면 1개를 끓여 먹으면 저녁에는 염분이 전혀 없는 음식을 먹어야 하루 소금 권장량 이하로 유지할 수 있다. 만일 저녁에 된장찌개(소금양 5g)를 먹으면 혈압 관리는 물 건너간다. 게다가 한국 식단에는 김치·젓갈·국·찌개 등 나트륨이 많은 음식이 대부분이다. 사실상 하루 섭취 권장량 5g 이하로 소금을 섭취하기란 쉽지 않다. 특히 입에 밴 음식을 평생 먹어온 70·80대가 하루아침에 식습관을 바꿀 수 있을까.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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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습관병 환자에게 권고하는 또 다른 생활습관 개선은 운동이다. 유산소운동은 심혈관질환 위험을 낮추고 저항성 운동은 혈당과 혈압 조절에 효과적이다. 운동으로 혈압을 4~9mmHg 낮출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빈도와 강도라는 조건이 있다. 운동을 거의 매일 땀이 나거나 호흡이 가빠질 정도로 해야 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런 사실을 많은 사람이 알지만, 운동은 좀처럼 몸에 배지 않는다. 그래서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시카고대·펜실베이니아대 공동연구팀이 일반인 3만 명과 의료계 종사자 3000명의 자료를 바탕으로 습관이 형성되는 시간을 조사했더니 운동이 습관으로 자리 잡기까지 평균 6개월 걸린다는 결과가 나왔다. 특정 습관이 형성되는 데 평균 3주 걸린다면 운동은 훨씬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국전쟁 이후 사회 재건과 경제 발전 속에서 건강보다 일을 중시하며 살아온 70·80대에게 운동이란 생소할 수 있다. 또 무릎이나 허리가 좋지 않은 세대다. 거의 매일 30분 이상 땀이 날 정도로 6개월 이상 운동할 70·80대가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다. 

이렇듯 생활습관 개선이 어려운 고령자에게 생활습관 개선을 집요하게 강조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 예컨대 고혈압 환자는 약 처방을 받기 위해 정기적으로 의사를 만나야 하지만 의사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 병원 방문을 피할 수 있다. 운동을 하다가 자칫 낙상 등으로 삶의 질이 더 나빠지는 경우도 있다. 또 의사의 말대로 생활습관 개선을 통해 혈압이 조금 낮아지면 환자가 임의로 약을 줄이거나 약 복용을 중단할 수도 있다. 강희철 세브란스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생활습관 개선은 중요하다. 그러나 고령자에게 생활습관을 너무 강조하면, 생활습관만 고치면 약을 먹지 않아도 된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고령자에게는 약물치료가 우선이고 생활습관 개선은 부가적인 치료다. 즉 고령자에게 생활습관 개선이란 복용하는 약의 순응도를 높이고, 약을 규칙적으로 먹고, 생활을 절제하고, 위험 요인을 피하기 위한 목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젊은 사람도 실천하기 쉽지 않은 저염식이나 꾸준한 운동을 70·80대에게 기대할 순 없다. ⓒfreepik

나이에 맞춘 현실적 지침이 중요

의사가 환자를 쫓아다니면서 소금을 적게 먹고 운동하는지 살펴볼 수는 없다. 생활습관 개선은 오롯이 환자의 몫이다. 젊은 사람도 실천하기 쉽지 않은 저염식이나 꾸준한 운동을 70·80대에게 기대할 순 없다. 생활습관 개선이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라 나이에 맞춘 현실적인 지침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의료계에서도 나오고 있다. 조상호 한림대성심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원론적으로는 생활습관 개선이 필요하지만 생활습관 개선은 환자가 스스로 실천하는 부분이어서 작심삼일로 끝나기 일쑤다. 개인의 생활습관을 개선하려면 의사나 정부의 적극적이고 장기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따라서 당장 중요한 것은 약 복용이다. 약물치료는 생활습관 개선보다 효과가 좋으므로 약 복용을 잘하도록 유도하는 편이 현실적”이라고 설명했다. 

생활습관 개선은 실천할 의지가 있는 연령층에 강조하는 편이 합리적이다. 나쁜 생활습관은 젊더라도 고쳐야 하는데 최소 66세 이전에 개선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중년에서 노년기로 넘어가는 생애 전환기인 66세의 노쇠 정도가 향후 10년의 건강을 좌우한다는 사실이 의학적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정부가 40세뿐만 아니라 66세를 대상으로 생애 전환기 무료 건강검진을 시행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근 미국의사협회 국제학술지(JAMA Network Open)에 66세의 노쇠 정도로 10년 후 건강 상태를 예측할 수 있다는 논문이 실렸다. 이 논문에 참여한 서울아산병원, 연세대 의대, 미국 하버드대 의대 공동연구팀은 2007년부터 2017년까지 건강검진을 받은 66세 성인 9만8885명의 국민건강보험 데이터를 활용해 노쇠 정도에 따른 10년 이내 사망률을 분석했다. 또 노화에 따른 질환 발생률도 살펴봤다. 

노쇠 정도는 △병력 △신체·검체 검사 △신체건강 △정신건강 △장애 등 5개 영역의 39가지 항목을 평가해 측정했다. 이 노쇠 정도에 따라 건강한 집단, 노쇠 전 집단, 경증 노쇠 집단, 중증 노쇠 집단으로 분류했다. 각 집단의 10년 내 사망률을 살펴보니, 66세 당시 심하게 노쇠한 사람은 건강한 사람에 비해 10년 이내 사망률이 약 4.4배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 건강한 집단의 사망률은 연간 100명 중 0.79명인데, 노쇠 전 집단에서는 1.07명, 경증 노쇠 집단에서는 1.63명, 중증 노쇠 집단에서는 3.36명으로 집계됐다. 

각 집단의 질환 발생률에도 차이가 보였다. 생명과 연결되거나 삶의 질을 현저히 떨어뜨리는 심부전·당뇨·뇌졸중의 10년 내 발병 위험이 중증 노쇠 집단에서는 건강한 집단보다 각각 2.0배, 2.3배, 2.2배 높았다. 신체적·정신적 기능 저하로 타인의 돌봄이 필요한 비율은 중증 노쇠 집단에서 건강한 집단에 비해 10.9배 높았다. 이 외에도 낙상·골절·관상동맥질환 등 암을 제외한 대부분 질환의 발병률이 건강한 집단보다 중증 노쇠 집단에서 유의미하게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마디로 종합하면, 심하게 노쇠한 집단에서 10년 내 노화에 따른 질병에 걸리거나 다른 사람의 돌봄이 필요할 가능성이 건강한 집단에 비해 약 3.2배 높은 셈이다. 

 

생활습관 개선은 66세 이전에 필요

허약한 정도를 의미하는 노쇠란 용어는 시간에 따른 나이가 아닌 개인별 노화 수준을 의미하는 ‘후생유전학적 나이’를 이해하는 핵심 개념이다. 즉 노화와 질병의 축적으로 기능이 감퇴해 스트레스에 취약해진 상태를 말한다. 같은 나이라도 노쇠가 심하면 통상적으로 노화가 더 진행된 것으로 간주한다. 개인마다 노화 속도가 다르며 같은 나이라도 노쇠 정도가 심하면 노화가 더욱 빨리 진행됐다(가속노화)고 볼 수 있다.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는 “같은 나이라도 생물학적 노화 정도, 즉 노쇠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이러한 차이로 먼 미래의 사망과 건강 상태까지도 예측할 수 있다. 가능한 한 젊을 때부터 규칙적인 생활습관과 운동·금연·절주·스트레스 관리 등을 통해 건강을 관리하면서 노쇠와 질환을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미 노쇠가 진행된 경우라면 다제 약물을 점검하고 노쇠의 흔한 원인이 되는 근감소증·인지기능 감소·우울·불안·수면장애 등에 대해 전문의를 찾아 노인의학적 도움을 받으면 좋다”고 말했다. 

ⓒ서울대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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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노쇠 정도는 ‘3m 왕복 걷기’로 확인된다

자신이 얼마나 노쇠했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누구나 해볼 수 있는 비교적 간단한 방법이 있다. 의자에서 일어나 3m를 걸은 후 반환점을 돌아 다시 의자에 앉는 시간을 재면 된다. 이 시간이 10초 이상이면 신체 기능이 떨어진, 즉 노쇠한 상태다.

3m 왕복 걷기를 10초 이내에 못 하면 노쇠·치매 위험이 1.6배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지난해 국제 학술지(Plos One)에 발표됐다. 손기영 서울아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팀은 2021년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건강검진 코호트 자료(2002~15년)를 바탕으로 66세 노인 8만1473명의 ‘일어서서 걷기(TUG)’ 검사 결과와 이후 국가장애등록 여부를 평균 4.1년(최대 8.9년)간 분석했다. TUG 검사는 균형 감각·다리 근력·보행 속도 등 노인의 신체 기능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방법으로 생애 전환기인 66세 노인의 건강검진 항목에 포함돼 있다. 이 연구에서 대상자 중 29%는 TUG 검사에서 평균 11.76초를 기록해 신체 기능 저하 진단을 받았다. TUG 검사에서 정상 진단을 받은 그룹은 평균 7.20초를 보여 비정상 그룹보다 4.6초 앞섰다.

대상자들의 국가장애등록 여부를 장기간 추적한 결과, TUG 정상 그룹의 장애 발생은 1000인년으로 환산(대상자 1000명을 1년간 관찰했다고 가정)할 때 0.215명이었다. 반면 TUG 비정상 그룹의 장애 발생은 1000인년당 0.354명으로 나타나 정상 그룹보다 장애 발생이 1.6배(60%) 많은 것으로 확인됐다. 장애 종류는 뇌 손상·시각 장애·청각 장애·언어 장애·정신 장애 등으로 다양했다. 즉 신체 기능이 떨어졌다는 진단을 받으면 신체 움직임이나 각종 장애 발생 위험이 크다는 의미다. 손기영 교수는 “중년에서 노년기로 넘어가는 생애 전환기에 있는 사람이라면 건강검진 등을 통해 노쇠 여부를 정확히 판단해볼 필요가 있다. 신체 기능이 저하되어 있다면 허벅지 근육 강화에 도움이 되는 스쿼트나 런지 등 근력 운동을 꾸준히 하고 단백질을 충분히 섭취하면서 건강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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