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신세대는 결국 어느 순간 구세대가 된다 [임명묵의 MZ학 개론]
  • 임명묵 작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6.11 16:05
  • 호수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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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대선에서 ‘脫에르도안 세대’인 신세대는 ‘에르도안 세대’인 이전 신세대를 왜 이기지 못했나

5월28일 치러진 튀르키예 대통령선거 결선투표에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은 52%를 득표해 재선에 성공했다. 2003년부터 튀르키예 총리로 시작해 이미 20년째 집권하고 있는 에르도안은 이번 선거 승리로 최소한 2028년까지 권좌에 앉을 수 있게 됐다.

이번 선거에서 에르도안의 승리는 필자를 비롯한 많은 관찰자를 놀라게 만들었다. 2018년 이래 튀르키예는 고질적인 경제난을 겪고 있었고, 에르도안의 장기 집권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국민이 늘어나고 있었다. 여기에 더해 선거 직전에 일어난 대지진까지 겹치면서 에르도안 정부에 대한 강한 민심 이반이 관찰되고 있었다. 실제 많은 여론조사 결과도 야당 공화인민당의 케말 클르츠다로을루의 우세를 점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런 악재를 딛고도 에르도안이 승리를 거둔 이유는 무엇일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튀르키예에 나타난 두 번의 세대 전환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TASS 연합
5월28일(현지시간) 튀르키예 대통령선거에서 에르도안 현 대통령의 당선이 확정되자 지지자들의 축하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TASS 연합

개혁 성향 에르도안, 장기 집권으로 달라져

100년 전인 1923년 튀르키예 공화국이 건국된 이래, 튀르키예 정치를 규정하는 단어는 다름 아닌 ‘케말주의’였다. 튀르키예의 국부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가 제시한 국시인 케말리즘은 튀르키예가 이슬람교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속주의 공화국이 돼야 한다는 강한 믿음을 특징으로 한다. 케말의 후예인 튀르키예 군부는 이 세속주의를 통해 튀르키예가 다른 유럽 국가와 마찬가지로 선진적인 근대 국가가 되기를 희망했고, 이슬람의 정치적 개입 기미가 보일 때마다 쿠데타로 민선 정부를 전복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군부 통치하 튀르키예에서는 새로운 세대가 부상하고 있었다. 이들은 튀르키예 독립전쟁이나 세계대전 같은 급박한 위기 속에서 군부가 보여준 리더십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는 세대였다. 대신 이들은 군부가 오랜 기간 경제적 발전을 이루지 못했고, 국민의 이슬람 신앙을 억압한 것에 큰 불만을 품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많은 신세대가 케말주의 정책에 반대하는 야당을 강하게 지지했다. 야당은 국가 주도 계획경제를 시장경제로 자유화해 경제 발전을 촉진하고, 이슬람을 공적 영역에서 더 넓게 수용하겠다고 공약했다. 2002년 에르도안은 시장 자유화와 정치적 민주화, 이슬람 정체성 포용을 내세우며 선거에서 승리했다.

에르도안은 집권 초기에 신세대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이 시기만 하더라도 에르도안은 튀르키예의 유럽연합(EU) 가입을 공약으로 내걸었고, EU가 요구하는 정치와 언론의 자유를 확대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서부 지역의 강한 세속주의자들도 ‘이슬람과 민주주의의 조화’ ‘새 시대에 맞는 이슬람’ 같은 논의는 수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집권 10년 차까지 에르도안은 경제 자유화 개혁을 통해 튀르키예 경제의 고속성장을 이끌면서 전국적인 지지를 확보했다. 유럽을 지향하는 세속주의적 청년들도, 케말주의에 반발하고 이슬람을 깊이 믿는 이슬람주의적 청년들도 모두 에르도안에 만족했다.

하지만 집권 10년 차를 지나면서 에르도안 정권의 정책 방향성은 달라졌다. 유로존 경제위기와 아랍의 봄을 거치며 에르도안은 외교적 성과를 유럽보다는 중동에서 찾고자 했다. EU의 눈치를 볼 이유가 없어지면서 에르도안은 반정부 운동을 거리낌 없이 진압할 수 있었다. 에르도안은 과거와 같은 ‘자유주의적 이슬람’ 등의 수사에 의지하기보다는, 더 엄격한 이슬람주의와 과거 오스만 제국의 영광을 이야기하는 ‘신오스만주의’를 새로운 국가 이데올로기로 내세우며 자신의 핵심 지지 그룹에서의 위상을 공고화하고자 했다.

 

튀르키예 대선, 정치와 세대의 관계에 시사점

튀르키예의 두 번째 세대적 전환은 이 무렵 일어났다. 과거 에르도안을 밀어올린 세대는 케말주의에 대한 반발로 이슬람주의라는 대안 이데올로기를 지지했었다. 그러나 그들은 2000년대와 2010년대를 거치며 기성세대가 되었다. 이후 등장한 신세대들은 케말주의에 대한 기억이 희미하고, 에르도안 시기의 기억만 있는 이들이었다. 이 신세대 중에는 집권 초 에르도안이 이끌었던 경제성장이나 정부의 이슬람에 대한 지원, 국제정치에서 높아진 튀르키예의 위상을 기억하며 에르도안을 열렬히 지지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신세대 중 많은 이는 2018년부터 만성화된 경제위기, 반대자에 대한 가혹한 억압과 SNS를 비롯한 언론 자유의 제한, 술이나 대중문화 같은 일상 영역에 간섭하는 종교적 보수주의에 불만을 품고 있기도 하다.

에르도안을 열렬히 지지했던 ‘이전의 신세대’와 달리 현 신세대들의 에르도안에 대한 지지가 예전 같지 않았기에, 야당인 공화인민당과 케말 클르츠다로을루는 튀르키예의 미래를 위해 정권교체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에르도안도 이에 위기의식을 느껴 선거 기간 동안 청년층 맞춤형 공약들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야당은 에르도안의 장기 집권에 불만을 품은 청년층에게서 결정적인 지지를 얻어내진 못했던 것 같다. 사실 20년 전 에르도안이 당시 청년들을 열렬한 지지 세력으로 확보한 것과 비교하면 클르츠다로을루의 시도는 부족한 점이 많았다. 에르도안은 당시 케말주의에 대해 청년들이 느끼는 불만을 명확히 파악하고, 자유화와 이슬람이라는 언어로 확실히 표현할 수 있었다. 후에 권위주의 성향을 강화하고 신오스만주의를 내세울 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서 야당은 ‘에르도안주의’에 대항할 수 있는 새로운 비전과 슬로건을 만들지 못했다. 경제를 정상화하고 민주주의를 회복하겠다는 것이 야당의 주요 선거 구호였다. 그러나 지금의 야당이 과거 20세기 튀르키예를 상당 기간 통치했음을 생각하면, 이는 미래 지향보다는 과거 회귀적 인상을 강하게 줄 수 있었다. 그 실질적인 내용이야 어떻든 에르도안이 건국 100주년을 맞이한 오스만 제국 영광의 부활이라는 확실한 미래 지향적 비전을 제시한 것과 뚜렷이 대비됐다.

두 번째 세대적 전환을 겪고 있지만, 첫 번째 전환과 달리 정권교체를 이루지 못한 튀르키예의 경험은 정치와 세대의 관계를 이야기할 때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해 준다. 첫째는 모든 신세대는 결국에는 어느 순간 구세대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금 이야기되는 청년들의 논의 또한 언젠가는 새로운 청년들이 제기하는 의제에 의해 ‘기성세대의 낡은 소리’로 치부될 것이고, 또 그래야만 한다.

둘째는 아무리 세대적 전환이 이뤄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새롭게 부상하는 세대의 불만을 하나로 묶어 구체적인 비전으로 만들지 못한다면 실질적인 정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없다는 것이다. 경제 정상화와 민주주의 회복으로는 신오스만주의를 이길 수 없었듯 말이다. 누군가 한국에서 세대적 전환을 이끌기를 원한다면, 마찬가지로 반드시 새로운 세대의 불만을 구체화할 새로운 언어와 비전을 먼저 제시해야만 할 것이다. 

임명묵 작가
임명묵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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