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허재,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 김종수 스포츠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6.25 12:05
  • 호수 175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농구 대통령’에 이어 ‘스포츠 예능 대세’ 까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받다 데이원의 ‘KBL 퇴출’ 사태 장본인으로 책임 내몰려

‘농구 대통령’에 이어 ‘스포츠 예능 대세’까지, 농구인이자 방송인인 허재는 탄탄대로만 걸어왔다. ‘농구 천재’로 불리던 선수 시절, 허재가 소속된 팀은 리그를 지배했다. 팀 성적에 더해 개인의 화려함까지…, 팬들은 허재의 일거수일투족에 열광하고 환호를 보냈다. 지금까지도 선수 허재가 팬과 농구인들 사이에서 ‘역대 넘버원’으로 꼽히는 이유다.

성공 가도는 선수에서 그치지 않았다. 은퇴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40세의 나이에 코치도 거치지 않고 곧바로 KCC 감독으로 취임해 2회 우승의 업적을 남겼다. 국가대표 감독도 경험했다. 어디 그뿐인가. 두 아들 허웅·허훈이 모두 국내를 대표하는 스타플레이어로 성장하며 자식 농사에서도 주변의 부러움을 받았다.

지도자 시절에는 이른바 ‘뽑기 운’으로도 유명했다. 남들은 단 한 번도 쉽지 않은 거물급 신인을 드래프트를 통해 연거푸 품에 안은 전력 때문이다. 원주에서 플레잉코치로 뛰던 당시 김주성을 뽑은 것을 비롯해 KCC 감독 시절에는 신인 드래프트와 혼혈 드래프트를 통해 하승진과 전태풍을 1순위로 지명한 바 있다.

ⓒ뉴시스
2022년 8월25일 경기도 고양특례시 일산서구 고양체육관에서 열린 남자 프로농구 ‘고양 캐롯 점퍼스’ 창단식에서 허재 데이원스포츠 대표가 창단 포부를 발표하고 있다. ⓒ뉴스1

농구계 안팎 우려에도 “걱정할 것 없다” 일축

특히 전태풍을 뽑던 당시 운의 절정을 보여준 장면은 지금까지도 회자된다. 혼혈 드래프트 뽑기에서 순서상 가장 마지막인 10번째에 걸려버렸기 때문이다. 아무리 드래프트 운이 좋기로 소문난 허 감독이라도 이것만큼은 어려워 보였다. 그런 가운데 기적이 일어났다. 앞의 9개 팀이 모두 ‘꽝’을 뽑는 말도 안 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난 것이다.

그렇게 뽑은 셋은 모두 팀 우승에 기여하며 1순위 가치를 더해 줬다. 국가대표 감독 시절에는 중국 기자단의 무례한 질문에 거침없는 언행으로 받아치며 이른바 상남자로 박수를 받기도 했다. 이렇듯 허재는 선수·감독으로서 그를 응원하던 팬들에게 ‘영웅’이었다. ‘허재라면 어떤 식으로든 해줄 거야’라는 믿음을 팬들에게 심어주었다.

수년 전부터는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블루칩으로 떠오르며 어지간한 연예인 부럽지 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카리스마 넘치던 코트에서와 달리 소탈하고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준 것이 비결로 꼽히고 있다. 그야말로 하는 일마다 잘되며 ‘복을 타고난 사람’으로 불리는 모습이다. 농구 유망주로 주목받기 시작한 용산중·고 시절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스포트라이트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그런 허재가 최근 제대로 위기에 빠졌다. 현재 농구계를 발칵 뒤집어놓고 있는 이른바 ‘데이원 사태’가 그것이다. 데이원 스포츠는 대우조선해양건설을 모기업으로 하는 데이원자산운용이 스포츠단 운영을 위해 설립한 특수목적법인이다. 지난해 고양 오리온을 인수했으며 박노하 재무총괄대표와 허재 운영총괄대표의 공동대표 체제로 출범했다.

하지만 시작 단계부터 삐걱거리며 기대보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점점 키워왔다. 무엇보다 재정 상태에서 믿음을 주지 못했다. 제출 서류가 부실해 1차 회원사 가입 심사에서부터 보류 판정을 받았다. 그런 상황에서 허 대표는 KBL 이사회를 강하게 설득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데이원 창단에 허 대표의 역할이 매우 컸다고 판단되는 가장 큰 이유다.

어쨌거나 불안한 재정 상태 등 이런저런 우려에도 데이원은 신생 구단으로 창단하게 된다. 이를 보는 농구계 안팎의 시선에 걱정이 묻어났으나 그럴 때마다 허 대표는 “걱정할 것 없다”고 일축했다. 하지만 직접적인 자료 공개 등 눈으로 보이는 부분에 대한 증명에는 인색했고 그로 인해 많은 루머가 돌 수밖에 없었다.

불안은 현실이 됐다. 데이원은 회원사 1차 가입금 5억원을 내지 못해 지난해 10월 개막 직전까지 리그 운영에 피해를 줬고 이후에는 잔금 10억원 미납 문제로 플레이오프 진출 여부를 걱정케 했다. 김승기 감독을 필두로 선수단은 기대 이상의 성적을 냈지만 돈 문제로 플레이오프 진출권을 따내고도 자격을 박탈당할 뻔한 촌극이 빚어졌다.

최선을 다했던 선수단과 달리 데이원은 시즌 내내 돈 문제로 시끄러웠다. 코칭스태프·선수·직원 임금, 협력업체 대금 등이 모두 밀리며 함께한 이들을 난관으로 몰아넣었다. 견디다 못한 선수들이 국회를 찾아 의원들과 면담을 진행했을 정도다. 데이원은 시즌 종료 후부터 새로운 인수 업체를 찾아다녔지만 번번이 불발에 그쳤다.

ⓒ뉴시스
6월16일 서울 강남구 KBL에서 데이원 농구단 제명을 결정하는 임시총회가 열렸다. ⓒ뉴시스

데이원 사태에 책임지려 하지 않는 태도에 팬들 실망

결국 데이원은 KBL이 정한 6월15일까지 임금과 외상 대금 등을 처리하지 못하며 최종적으로 제명되고 말았다. 제명이 결정된 날 두 공동대표인 허재 대표와 박노하 대표 모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며, 정경호 단장만 참석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최악의 경우 선수단이 뿔뿔이 흩어지며 9구단 체제로 다음 시즌이 진행될 가능성도 제기되는 가운데, KBL 측은 최대한 기존 10개 구단 체제를 유지하려는 의지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남자 프로농구단 유치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 부산시와 연계해 새로운 구단 창단을 이끌어내겠다는 계획이다.

새로운 인수 구단이 만들어지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고 볼 수는 없다. 코칭스태프·선수·직원들의 밀린 임금 및 협력업체 외상 대금 등은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 상황에 대한 팬들의 실질적인 분노도 이 부분에 가장 많이 꽂혀있다. 사태를 초래한 데이원 구단을 비롯해 그들을 승인한 KBL 등 잘못한 주체는 많지만 누구 하나 실질적인 책임을 지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불어 현 사태가 벌어지기까지 적지 않은 역할을 한 허재 대표에 대한 성토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런저런 우려의 소리가 있을 때마다 ‘문제 없다’ ‘기다려 달라’는 식으로 일축하며 사태를 키워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번도 시원스레 뭔가가 해결된 적은 없었고, 결국 최악의 상황이 도래하고 나서야 슬그머니 “공사로 따지면 부실공사였다”고 뒤늦게 이를 인정했다.

무엇보다 허 대표에 대한 팬들의 실망이 큰 것은 책임지려 하지 않는 듯한 태도다. 그가 재무담당은 아니었다고 해도 지난 한 시즌 동안 데이원의 얼굴은 사실상 허 대표였다. 창단에 큰 역할을 하기도 했고, 시즌 내내 데이원 대표로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럼에도 많은 후배가 경제적으로 고생하고 있는 시점에 뾰족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현재 허 대표는 KBL 측으로부터 향후 KBL 구단과 관련한 모든 활동을 불허한다는 제명에 가까운 징계를 받은 상태다. 여기에 대해 팬들 사이에서는 ‘의도하지 않았다 해도 최악의 상황에 대한 책임은 당연히 져야 한다. 징계 여부를 떠나 진심 어린 사과도 필요하다’는 의견부터 ‘허재에 대해서만 너무 가혹하다. 데이원 창단을 승인하고 해결 방안에는 미온적이었던 KBL 측도 책임이 크다’는 등 갑론을박이 오가고 있는 분위기다.

국가대표팀에 차출된 전성현과 이정현, 군 입대 예정 선수를 제외한 데이원 소속 선수들은 현재 KBL과 고양시의 도움으로 고양체육관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여러모로 힘든 와중이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는 분위기다. 많은 팬과 농구인들은 데이원 사태로 인해 피해를 본 이들의 문제가 조속히 해결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