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9월 항저우 아시안게임 때 딸 국제무대 데뷔시킬 수도
  • 이영종 뉴스핌 통일전문기자(북한학 박사)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6.25 08:05
  • 호수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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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평창올림픽 때 여동생 김여정 등장시킨 데 이어, 아시안게임에 딸 김주애 데리고 중국 방문할 가능성 제기

6월18일 끝난 노동당 전원회의에 등장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말없이 자리를 지켰다. 올 상반기 북한 체제의 정책 추진 결과를 총화하고 하반기 노선과 사업 방향을 점검하는 중요한 회의였지만 회의가 열린 사흘 내내 함구한 것이다. 집권 이후 15차례의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김정은 연설이 없었던 건 이번이 처음이라 이례적이란 평가가 정부 대북 부처 안팎에서 나왔다.

김정은의 침묵은 5월31일 벌어진 군사정찰위성 추락 사고가 직접적인 배경일 수 있다. 앞서 국가우주개발국과 위성발사준비위원회를 잇달아 방문하면서 “우리의 절박한 요구”라며 조속한 위성 발사를 독려했지만 한국 누리호에 선수를 빼앗긴 데다, 서둘러 발사 버튼을 눌러봤지만 국제적 망신만 샀던 탓이다.

노동당 정치국이 이번 제8기 8차 전원회의 보고에서 “가장 엄중한 결함은 군사정찰위성 발사에서 실패한 것”이라고 자인한 것도 북한 권력 핵심부의 기류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은 회의 결과를 노동신문과 조선중앙TV를 통해 상세히 내보냈는데, 이를 통해 주민들은 처음으로 위성 발사 실패 사실을 접했을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의 절치부심은 오래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위성 발사 실패 이튿날 여동생인 김여정이 담화를 통해 “군사정찰위성은 머지않아 우주 궤도에 정확히 진입하여 임무수행에 착수할 것”이라고 공언했고, 전원회의에서도 “빠른 시일 안에 위성을 성공적으로 발사한다”는 입장이 강조됐기 때문이다. 김정은 입장에서 지금의 위성 발사 실패 국면에서 벗어나는 길은 재발사를 통한 성공뿐이다.

ⓒ조선중앙통신 연합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태양절(김일성 주석 생일·4월15일)을 맞아 내각과 국방성 직원들의 체육경기 재시합을 관람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4월17일 보도했다. 공개된 사진을 보면 김 위원장이 딸 주애와 여동생 김여정 당부부장과 함께 참석한 모습이 확인된다. ⓒ조선중앙통신 연합

7·27 전승절 때 위성 발사 재개 전망 

사실 김정은의 계획은 야심 찼다. 우주개발국 등을 방문해 위성을 살펴보는 장면을 연출하면서 딸 김주애를 부각시켰다. 지난해 11월 화성-17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현장인 평양 순안비행장 활주로에 김주애를 데뷔시킨 김 위원장으로서는 위성 발사 성공 현장에 딸과 함께하는 건 각별한 의미가 있다. 핵과 미사일 개발이 미래세대의 ‘안전’을 위해서라고 강변하면서 딸을 대동했으니, 위성 발사 현장에 데리고 나오는 건 당연한 수순일 수 있다.

한미 정보 당국은 김정은이 위성 발사가 이뤄진 평북 철산군 동창리 기지에 딸 김주애를 비롯한 관계자들을 함께 데리고 나온 정황을 대북 첩보위성으로 포착한 것으로 파악된다. 국정원은 발사대에서 1.3km 떨어진 지점에 김정은과 그 일행을 위한 관측대가 설치된 걸 파악해 동향을 추적했던 것으로 국회 정보위에 보고했다.

이런 정황을 종합할 때 북한은 가장 조속한 시점에 위성 발사를 재개할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2012년 4월 광명성 3호 실패 당시 북한은 8개월 만인 그해 12월 재발사에 성공했다. 이번의 경우 이르면 7·27 ‘전승절’ 70주년을 계기로 재발사를 단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6·25 전쟁 휴전협정 체결일을 ‘미국과 싸워 이긴 전승절’이라 주장해온 북한에선 ‘꺾어지는 해’(5년, 10년 주기)인 70주년 행사를 대대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정황이 포착되고 있는데, 이에 맞춰 발사 버튼을 누를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북한 움직임에 한미는 ‘위성을 내세운 ICBM 고도화’라며 강력 대응을 공언하고 있는 만큼 대치 국면은 이어질 공산이 크다. 평양 외곽 미림비행장에서 수천 명의 병력과 무기체계, 차량·장비를 동원한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 연습이 펼쳐지고 있는 만큼 7월27일까지 분위기 반전을 꾀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기류 변화를 점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그 이후 캘린더상에 잡혀있다. 올해 9월23일부터 10월8일 사이에 중국 항저우에서 열리는 제19회 아시안게임이다. 주목되는 건 북한이 일찌감치 항저우 출전을 위한 북한 선수단 명단을 조직위원회에 제출했다는 점이다.

중국 국가체육총국과 항저우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는 6월14일 기자회견에서 “이번 대회에 45개 국가·지역이 모두 참가 신청을 했다”고 밝혀 북한의 참가를 알렸다. 아시안게임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산하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에 속한 45개 국가올림픽위원회(NOC)가 참가 대상이고, 북한도 회원국이다.

북한의 아시안게임 참가는 코로나19 비상방역으로 3년 넘게 닫아걸었던 문을 열고 국제 스포츠 무대로 나오겠다는 신호다. 여기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안방에 차린 아시안게임 잔칫상에 불참해 모양새를 구기는 걸 피하려는 김정은의 계산도 깔린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한·미·일 공조 국면 속에서 북한은 중국·러시아와의 연대가 그 어느 때보다 긴요하다는 점에서다.

흥미로운 대목은 서울과 베이징의 외교가에서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한 김정은의 중국 방문설이 흘러나온다는 점이다. 개막식 참석에 맞춰 항저우에서 시진핑과 정상회담을 하는 방안이다. 특히 대북 관측통들은 김정은이 김주애를 대동해 스포츠 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모습을 연출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도 주목한다.

 

개막식 참석 맞춰 시진핑과 정상회담?

이런 국면이 성사된다면 2018년 2월 평창동계올림픽에 김여정이 특사로 방문해 세계적인 이목을 끌었던 상황을 재연하겠다는 의도일 수 있다. 김정은은 그 직전까지 화성 계열의 ICBM을 연신 쏘아대면서 문재인·트럼프 정부와 대립각을 세웠지만 결국 신년사를 통해 평창동계올림픽 참가 의사를 밝히면서 극적인 반전 드라마를 펼쳤다.

김 위원장의 김주애 띄우기가 반년 넘게 이어지고 있지만 그 내막은 아직 파악되지 않고 있다. 4대 세습 후계구도를 조기에 구축하겠다는 의도인지, 단순한 분위기 탐색을 위한 움직임인지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10세 안팎의 어린 딸을 후계자로 삼으려 한다면 당장 유고 사태가 발생했을 때 대처는 어떻게 하느냐는 문제와 함께 국정 분담 상황까지 가고 있던 여동생 김여정과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하는 궁금증도 있다.

김주애에게 관심이 쏠리면서 그가 둘째 딸이 아닌 장녀라는 설도 제기됐고, 김정은과 이설주가 낳은 세 아이가 1남2녀가 아니라 아들이 없는 상태라는 주장도 나왔다. 하지만 국정원은 미 정보 당국과의 첩보 교류를 통해 김정은의 초청으로 방북했던 전미농구협회(NBA) 출신 데니스 로드먼의 ‘둘째 딸 주애’ 증언이 사실인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김정은이 중국을 딸 김주애와 함께 방문한다면 폭발적인 관심을 끌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핵과 미사일 도발로 얼룩진 그의 이미지를 국제 스포츠 무대에 딸과 함께 등장한 모습으로 변모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김정은이 시진핑과의 대화에서 딸 김주애나 북한 체제의 미래에 대해 언급하게 된다면 좀 더 깊은 속사정 파악이 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현재의 도발과 대치 국면을 바꿀 계기가 필요하다. 7·27 행사 연설이나 정찰위성 재발사 이후 있을 김정은의 언급에 눈길이 쏠리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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