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은 ‘나쁜 놈들 전성시대’를 어떻게 통과했나
  •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7.08 14:05
  • 호수 176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홍콩 근현대사의 어두운 그림자 들춘 영화, 《풍재기시》
한 화면에 등장한 곽부성과 양조위

홍콩 누아르로 소개되고 있는 이 영화. 《첩혈쌍웅》이나 《무간도》 유의 누아르를 기대하면 안 된다. 누아르적인 분위기가 없는 건 아니지만, 속내를 들춰보면 실존 인물들을 통해 홍콩 근대사를 회고하는 이야기에 가깝다. 홍콩 역사에 대한 배경지식이 관람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는 영화란 얘기다. 5·18 민주화운동, 북한 공군장교 이웅평 월남 사건 등을 극에 녹여낸 이정재 감독의 《헌트》 같은 영화를 우리가 보는 것과 해외 관객이 보는 것의 감상 차이라고 하면 설명이 되려나.

《풍재기시》는 한 영국인의 홍콩 송환을 둘러싼 잡음으로 시작한다. 이 영국인. 우리에겐 낯설지만, 홍콩 역사에선 매우 유명한 피터 고드버다. 피터 고드버는 홍콩이 영국 식민지였던 시절, 홍콩에 상주하던 경찰 간부였다. 왜 그는 홍콩 시민과 경찰의 뜨거운 감자가 됐을까. 고드버가 재직하던 1950~70년대 이 도시는 그야말로 부정부패가 일상인 무법천지였다. 폭력조직 삼합회가 마약과 도박 등으로 거둬들인 검은돈은 정·관계 뇌물로 흘러들었고, 당연히 법은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경찰들 역시 범죄와의 전쟁은커녕, 범죄조직과 결탁해 뒷돈을 두둑하게 불렸다. 자릿세나 관리비 명목으로 시민들 돈도 양심의 가책 없이 받아 챙기던 시절이었다.

영화 《풍재기시》의 한 장면 ⓒ㈜빅브라더스 제공

실존했던 부패 경찰 뇌락과 남강

이런 불법적인 행위는 홍콩 안에서 주요 요직을 차지한 영국인들이라고 해서 크게 다를 게 없었다. 그중 한 명이 바로, 고드버였다. 그는 홍콩에서 머무르는 동안 430만 홍콩달러라는 막대한 돈을 횡령했는데, 이것이 발각되자 자신의 신분을 이용해 수사 도중 영국으로 유유히 도주해 버렸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홍콩 시민들은 분노했다. 부패 척결에 앞장섰어야 할 경찰 총수가 횡령도 모자라 해외로 도주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당국은 그러나, ‘피터 고드버를 홍콩으로 소환하라’는 시위가 극렬해지고 그것이 영국 통치 전반에 걸친 불만으로 확대되자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게 됐다.

결국 고드버는 홍콩으로 소환되고, 4년이란 실형을 선고받게 된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1974년 홍콩에선 반부패 수사기관 염정공서(廉政公署)가 출범한다. 익숙하게 다가오는 분들이 있을 수 있겠다. 맞다. 문재인 정부 시절 ‘공수처’ 도입을 두고 여야가 갈등을 빚던 당시, 그 모델로 자주 언급됐던 곳이다. 그렇게 출범한 공수처에 대해서는…(영화 지면이니) 말을 아끼겠다.

각설하고, 고드버에 대한 이야기를 구구절절 늘어놓은 건 《풍재기시》가 홍콩 사회에 만연했던 부정부패 역사를 정면에서 바라본 영화여서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주인공 뇌락(곽부성)과 남강(양조위)은 염정공서를 통해 탐관오리를 잡아들인 영웅들인가. 아니다. 염정공서 탄생에 지대한 역할을 한 부패한 경찰들이다. 1970년대 고드버 송환을 언급하며 문을 연 《풍재기시》는 과거로 시계추를 돌려, 순수했던 두 남자가 1940~70년대에 격변하는 홍콩 사회를 통과하며 어떻게 변모했는가를 따라간다.

뇌락과 남강은 출신 성분도, 기질도 극과 극인 인물들이다. 먼저 남강. 엘리트 출신인 그는 이성적인 동시에 속을 좀체 드러내지 않는 인물이다. 반면 말보다 몸이 앞서는 뇌락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경찰 주요 요직까지 오른 입지적인 인물. 외향적인 동시에 터프하다. 두 사람은 각자의 장점을 펼쳐 보이며 경찰 내에서 승승장구한다. 그러나 하늘 아래 1인자는 둘일 수 없는 법. 의외로 초반에는 큰 탈 없이 잘 지낸다. 스스로 ‘2인자 전략’을 선택한 남강 덕분이다. 물론 이들의 관계는 언제나 불안불안하다. 홍콩 범죄조직의 상납금을 받는 사업으로 ‘한배’를 탔지만, 서로 다른 경찰 파벌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침 뇌락의 편에 선 마약상을 남강이 정리하려고 하면서 두 사람 관계는 극단으로 치닫는다.

곽부성과 양조위가 연기한 뇌락과 남강은 실존 인물들이다. 이들은 홍콩 삼합회를 쥐락펴락하기도 했으니, 경찰과 폭력 조직 간 유착을 다룬 영화가 한때 홍콩에서 우후죽순 나온 이유도 이와 무관하진 않을 것이다. 특히 뇌락은 여러 차례 영화화된 인물이다. 1992년 제작된 유덕화 주연의 《여락》 시리즈와 견자단과 유덕화가 주연한 《추룡》(2017)을 통해서다. 두 작품에선 유덕화가 모두 (여락이란 이름을 단) 뇌락을 연기한 바 있다. 흥미로운 건 《여락2》에서 곽부성이 여락의 아들 캐릭터로 등장했다는 점. 그런 그에게 30년 만에 아들이 아닌 주인공 자리를 맡긴 이는 《기항지》(2017)로 곽부성에게 금상장 시상식 남우주연상을 안겼던 옹자광 감독이다.

홍콩 영화 사상 가장 많은 3800만 달러(약 501억원)의 제작비를 투입한 《풍재기시》의 볼거리 중 하나는 미술과 영상미다. 두 사람의 일대기를 따라가며 당대의 시대상들을 현실감 있게 구현했다. 장면 장면에 힘을 준 게 느껴지는 영상미도 연신 존재감을 드러낸다. 다만, 갑작스러운 뮤지컬 장르로의 전환이나 작정하고 찍은 듯한 탭댄스 장면 등이 극 전반의 분위기와 이질감이 커서 생뚱맞다는 인상을 자아내기도 한다. 두 인물의 대치를 그려내는 밀도 또한 그리 높지 않다. 사건 해결 과정에서의 설명이 지나치게 생략돼 있어 극의 몰입을 방해하기도 한다.

 

으리으리한 ‘의리’ 대신 ‘연정’

앞서 이야기했듯 클래식 홍콩 누아르와도 결이 다르다. 홍콩 누아르 하면 떠오르는 건 으리으리한 ‘의리’. 그 어떤 일이 있어도 형제를 배신하지 않겠다는 ‘신념’이다. 1970~90년대 사람들이 홍콩 영화에 열광하고, 트렌치코트와 성냥개비가 날개 돋친 듯 팔린 이유다. 《풍재기시》에는 이러한 의리가 옅다.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한 건 《화양연화》스러운 멜로다. 뇌락과 남강 사이를 팽팽하게 당기는 것 역시 우정보다는 사랑의 삼각관계다. 2인자를 자처한 후 판의 큰 그림을 그리는 남강의 마음을 추동하는 것은 뇌락을 향한 의리나 형제애보다는 뇌락의 아내가 된 여자를 지켜주고 싶은 연정, 혹은 열등감이다. 《화양연화》를 연상시키는 미장센이나, 《아비정전》을 떠오르게 하는 양조위의 홀로 추는 춤은 관객에 따라 ‘향수’로, 혹은 ‘개성 없음’으로 보일 수 있겠다.

호든 불호든 예상을 여러 면에서 빗나가게 하는 영화에서 이견 없이 줄길 만한 건, 곽부성과 양조위 두 배우일 것이다. 유덕화, 여명, 장학우와 함께 한때 아시아 전역에서 오빠 부대를 동원했던 ‘4대 천왕’ 곽부성. 홍콩 영화의 살아있는 전설인 양조위. 영화는 두 사람의 만남만으로 일찍이 화제를 모았는데, 실제로도 두 배우를 한 화면에서 만나는 벅참이 있다. 반대로 홍콩 영화에 별다른 관심이 없거나, 곽부성·양조위의 배우 역사에 심드렁한 사람이라면 《풍재기시》는 당최 무슨 이야기인지 미로로 가득한 영화로만 남을 가능성이 크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